-
-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유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에 담긴 메시지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말하는 방식의 의외성이다. 의사라면 의사에 걸맞은 폼을 잡아야 하겠지만 저자는 전혀 권위적인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캐주얼한 어법은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얼마나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고발해준다.
서민 역시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멘델존처럼 환자를 실습대상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실습이 필요하다면 굳이 환자들의 항문에 손을 넣을 필요가 없다. 똑같은 인간인 학생들 역시 직장(直腸)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학생들끼리 서로 직장검사를 한다면, 서로간의 유대감도 얼마나 커지겠는가." 라고 말할 때 저자는 심각한 내용을 심각하지 않은 어법을 빌어 말하고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탈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매스컴에서 대머리의 선행사례를 대대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으며, 방송사나 신문사 등에서도 기자를 뽑을 때 일정 비율 이상을 대머리로 뽑아야만 진정한 탈모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머리가 지배하는 세계가 대머리의 우월성을 역설한다면,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뽑고 대머리인 척 위장을 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겠는가." 라고 그는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의 구분이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의 문제, 즉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서적이다.
채식주의나 성장 클리닉 등의 문제점, 호르몬제, 비타민제 복용이나 헬리코박터 박멸 등의 문제에 대해 이 책은 객관적인 의사 입장에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제왕절개나 피임 등의 문제점과 우리가 가진 잘못된 의학상식을 하나하나 짚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거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의약품을 계발했다는 내용들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한다. 의사의 이해관계와 제약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모종의 공모가 생길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비타민이 몸에 좋다, 어떤 약이 혈압강하에 좋다, 어떤 약이 헬리코박터를 박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라는 식의 발언들도 이런 식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결국 의학에 관련한 기사들을 일백 프로 신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의료계의 문제를 의료계 밖에서가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이런 그의 내부 고발은 그가 '기생충에 기생해서 사는 기생충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내과의사나 외과의사보다는 기생충학자가 병원의 이해관계나 권력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특권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료계의 문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전력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쉽게 말해 의사와 병원의 '비하인드 스토리'쯤 될 것이다.
이 책은 의료계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씌어진 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설파하고 있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의사에 대한 친근감을 불러온다. 퇴근 후에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친구처럼 의사가 친근하게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책을 읽고 나면 저자 '서민'의 이름이 더욱 '서민'적으로 다가온다. 솔직한 고백과 서술이 갖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