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
스티븐 헤렉 감독, 안젤리나 졸리 외 출연 / 베어엔터테인먼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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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죽음
 -영화<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에 대한 단상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온다. 부자는 첨단의료장비를 동원해서 목숨을 더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을 회피할 수는 없다. 촌부나 황제나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금전과 명예와 권력이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요 착각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결국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간이다. 권력과 명예란 우리가 잠시 거처하는 임시방편의 장소일 뿐, 오직 죽음만이 우리의 영원한 회귀처일 뿐이다.
 
죽음이 먼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순진한 착각이다. "저승길이 멀다드니 대문밖이 저승이라"는 민요의 한 구절이 오히려 죽음에 대한 진실을 우리에게 더 가깝게 말해주고있는지도 모른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등교한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온다든가, "우리 저녁에 외식하자." 다정하게 말하며 출근한 남편이 응급실에 초주검이 되어 실려갔다는 다급한 소식을 접했다는 사연을 우리는 주위로부터 듣곤 한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나로부터 먼곳에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죽음으로 해서 더욱 풍부해진다. 내가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좀더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이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더욱더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이 그 어떤 낙원보다도 아름답게 비칠지도 모른다. 또 평소에 아옹다옹 지내던 가족들이 누구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로 비칠지도 모른다. 죽음은 이렇게 삶에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매일을 죽음에 붙들려 전전긍긍 살아갈 수는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도 있다. 내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믿음에 이끌려 우리에게 한번 주어진 현세에서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시키는 것도 어쩌면 어리석은 행위인지도 모른다.
 
영화 <어느 날 그녀에게 생긴 일>에서의 주인공은 시애틀 방송국의 잘 나가는 리포터 레이니. 화려한 금발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늘씬한 몸매, 그리고 시애틀의 영웅인 최고의 야구 스타 남자친구를 약혼자로 둔 레이니는 길거리의 예언자를 인터뷰하다가 자신이 일주일 안에 죽을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레이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코 흘려듣지만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부터 예언자의 예언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서 대체 성공이란 무엇인가. 잘 나가는 약혼자와의 결혼이 부를 약속한다 할지라도 정작 그와 나의 영혼이 소통하지 못한다면 대체 부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가족은 죽음 앞에서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레이미는 자신의 삶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죽음을 망각한다. 그러나 죽음을 망각한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죽음을 의식하는 삶이란 죽음의 공포에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보다 충만하고 건강하게 꾸려나가는 삶이리라.
 
감독:스티븐 헤렉. 주연:안젤리나 졸리, 에드워드 번즈. 제작: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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