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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평점 :
꽃도 십자가도 없는 따라지 인생들
마이너리그 / 은희경 / 창작과비평사
97년 동서문학상(타인에게 말걸기), 98년 이상문학상('아내의 상자'), 2000년 한국소설문학상('내가 살았던 집')을 수상한 메이저리그 작가, 은희경이 펴낸 소설집의 제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이너리그』다.
58년 개띠 동창생 네 명의 변두리 인생들을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용띠나 범띠도 아니다. 하다 못해 쥐띠나 돼지띠도 아니다. 그들은 개띠다. 58년 개띠. 이들은 개띠답게 개같이 살아간다. '꽃도 십자가'도 없는 2류 인생들, 김형준, 장두환, 조국, 배승주. 이 네 아이콘들의 배경무늬는 유신시대, 월남파병, 10․26과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이다.
그 배경무늬들은 이 네 명의 아이콘들과는 무관하다.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그 시대의 한 가운데 놓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가. 작가야 시대와 무관하게 음풍농월의 삶을 살았든 말든, 모든 진지한 작품들은 그 시대를 비껴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모든 진지한 작품들은 '시대와의 불화'를 과장해야 했다. 심지어는 삼류 포르노그라피까지도 욕망으로 달아오르는 몸뚱이를 숨기기 위해 시대와의 불화를 과장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모든 진지한(?) 소설들은 몸보다 마음이 한 수 위였다.
그러나 여기 네 개의 아이콘이 있다. 그 네 개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한 시대를 살아온 비루한 속물들의 창이 열린다. 그 속물들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다. 40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삶을 차분히 관조할 수 있는 나이다. 그 성찰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뼈아픈 회고도 없다. 이 뼈아픈 회고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삶은 엇박자로 자꾸 지리멸렬해지는데 의식만은 깨어있어 삶을 아프게 옥죈다. 그러나 진정 아픈 것도 아니다. 반성을 위한 반성, 이런 것도 자꾸 하면 식상하는 법이 아닌가. 시간의 물살을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는 기차를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울음이 쏟아지는 이창동의「박하사탕」, 어떠한 교묘한 이론을 들어 그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반성 일변도라면 그것도 좀 머쓱한 일이다.
이런 생각에서일까. 은희경은 『마이너리그』에서 섣불리 반성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리멸렬, 어차피 그런 게 삶이 아니냐고. 시대의 모순을 꿰뚫어 보고,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는 예언자적 삶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따라지 인생들도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런 변두리 인생들에 대해서 조금 따스한 시선을 가졌다 해서 그것이 무슨 크게 흠이 되겠느냐고. 둘러보면 오히려 이런 끗발 없는 인생들이 우리네 이웃들이 아니냐고. 왜 '있어야 할 것'을 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당위의 짐을 벗어버리고 현실을 조금 유쾌하게 저공비행했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큰 잘못이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볼멘 소리에 대한 차가운 냉소도 만만치 않다. "중산층 베스트 셀러 작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복고 시류에 영합한 통속 소설이 아닌가".
곽경택의 영화,『친구』가 영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은희경에 대해서도 여전히 흔쾌한 표정을 지을 수 없을 것이다.『새의 선물』에서 보여주었던 막강한 기억력을 동원하여 시대의 소품들을 온통 쏟아부었지만, 거기에 어디 시대에 대한 아픔의 흔적이 있느냐고, 그들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소품은 있지만 시대는 없고, 삶은 있지만 인생은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들은 고까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은희경이 소위 잘 나가는 '메이저리그' 작가이기에 그들의 미간은 더욱 구겨질 것이다.
이 땅의 40대는 누구인가. 정확히 58년 개띠들은 누구인가. 386세대의 치열함도 없다. 총화단결로 수출 백억불 시대의 쾌거를 이룩한, 70년대에 20대를 보낸 산업전사들의 피와 땀도 없다. 분신의 열정도 없고 화염병을 던질 열혈성도 없다. 그 비루한 40대들이 이 소설을 많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작가 은희경의 바람이란다. 은희경은 이 소설의 냉소적인 코웃음이 마이너들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이들을 마이너로 만든 사회적 상황들에 대한 사회적 조롱이라고 첨언을 한다. 글쎄, 은희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말자.
애초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면 모든 게 못마땅한 법이다. 삶도 그렇다. 견제구 하나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만루에 번번이 홈런을 허용하는 삼류 인생들. 이런 인생이 못 마땅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지는말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게 마이너리그가 아닌가, 한 수 접어줄 수 있다면 이 소설을 마뜩찮게 볼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