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를 할 때 이니셜을 쓰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내가 언제 그랬어, 하는 식의 항변을 친구로부터 받기가 십상이다. 내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일지라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보려고 했던 것만을 말하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에 내 친구의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이니셜을 쓰는 것은 안전한 일이다. 더 안전한 방법이 없을까?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 그러니까 하나의 픽션을 구상하면 문제는 손쉽게 해결된다. 친구들이 “너 그거 내 얘기 한 거 아니야”라고 따지고 들면, 그거 픽션인데 왜 성화를 대고 난리야, 라고 가볍게 응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약간의 죄의식만 감수하면 이런 방식의 말하기는 교묘하지만 재미있는 데가 있다. 하지만 픽션에는 많은 비용이 따른다. 픽션은 그 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자(일단은 그를 예술가라고 하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르다. 게으른 자는 고작 이니셜을 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H

H가 신림동 고시촌 근방에서 <스피노자의 안경>이라는 안경점을 할 때의 이야기다. 다소 현학적인 간판이 제법 문화적인 친구의 이목을 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그곳은 안경을 맞추러 온 고객들보다는 시간을 죽이러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트로츠키 자서전과 황지우, 송찬호, 이진명, 최승자의 시집은 안경점에 꽂혀있을 목록치고는 이례적인 것이었는데 어쩌면 그런 이례적인 아이템이 사람을 끌어 모았는지도 몰랐다. 확실히 그곳엔 이례적인 아이템이 즐비했다.

먼저 H의 외모를 보자. 한때 문학청년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그의 깡마른 체구, 존 레논을 연상시키는 길고 풍성한 머리칼, 대학생들의 철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 그 옆에 즐비하게 꽂혀있는 음악 씨디들은 범상한 안경점과 <스피노자의 안경점>을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더구나 스타일리쉬한 그의 성품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준 것은 그의 노란색 오토바이였다.

H는 그 오토바이를 폼나게 부릴 줄 아는 친구였다. 고시생들로 북적거리는 신림동 골목길을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노란색 오토바이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머리의 사람이 아니라 몸의 사람이다.>

한때 문학에 심취했던 이력으로 보아 그는 어느 정도는 머리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H는 오토바이는 단순한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지붕이 없는 사람들의 철학”이라고 했다. 나는 <지붕이 없는>이라는 대목에 방점을 찍었다.


H의 물침대 매트

몹시 추웠던 날, 그의 옥탑방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몸을 비틀기에도 불편할 정도의 몹시 비좁은 방이었다. 개 발에 주석편자라던가, 물침대 매트라면 한갓진 교외의 모텔방에나 어울릴 법한 소재라는 것이 내 상식이었으니, 물침대 매트는 그 방의 규모나 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럭셔리한 것이었다. 더구나 싱글로 사는 그에게 물침대는 분명 지나친 구석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손님 대접을 한답시고 내게 물침대 매트를 양보했다. 뱀을 밟을 때의 느낌이 그럴까. 쿨렁쿨렁, 몸을 뒤챌 때마다 이상한 탄력이 등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몸을 뒤챌 때마다 꼬루루룽 하는 물소리가 잠을 방해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맨바닥을 청하면서 물침대 매트를 양보했다. 그는 물침대 매트로 오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 내가 이렇게 눌러주면 얘(물침대 매트)는 꼭 이렇게 답해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한 사내의 몸에 반응하는 창부처럼 물침대 매트는 적당한 비음을 내질러 주고 있었다.

몸의 외로움에 답해주는 물침대 매트! 그것은 어쩌면 사치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요청과 부름을 외면하는지. 내가 그 겨울, H보다 더 외로웠다면 물침대의 언어를 알아들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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