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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이야기
앨리슨 쿠더트 / 민음사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불의 힘을 다스리는 불의 거장들
그 옛날 중국의 동진 땅에는 포박자(抱朴子)로 알려진 도가의 신비주의자 갈홍(葛洪)이 있었다. 살아서 그는 해괴망칙한 발언을 일삼았고 죽어서 천계로 비상했다. 하늘이 그를 어여삐 여겨 모셔간 것. 하늘을 감동시켰던 그의 발언의 한 대목을 여기에 들어보자.
<연금술사의 목적이 털투성이의 발이나 기다란 귀 혹은 성적인 능력과 같은 불사를 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면 금을 만드는 데에 야채만을 사용해야 한다> 야채만으로 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 갈홍의 선언 앞에 경배드리자. 참으로 위대한 헛소리의 장관.
연금술사들은 이런 경구를 섬겼단다. <너의 원소들을 음악적으로 즐겁게 해라> 이 놈의 연금술사들은 커뮤니케이션엔 관심도 없다. 알아먹고 싶으면 텍스트를 가지고 국을 끓이든 찌개를 끓이든 조히 낑낑거려봐. 이렇게 말하는 연금술사들은 은유의 대가다. 일상 적인 어법은 깡그리 무시한 채 언제나 새로운 이름으로 사물을 명명한다. 이들은 광물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하늘이 분해된 용과 썩어가는 시체들과 독을 품은 뱀과 피 흘리는 펠리칸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텅 빈 하늘에서 연금술사들은 무한을 찾아낸다.
그러나 목마름의 피안인 신기루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늘 바깥에 있다.
실험실을 운영하다 걸핏하면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먼지와 화염 속에 한 연금술가 서있다. 그가 말한다 <좆됐군> 그러나 현자의 돌을 찾는 도정은 끝이 없다. 거기엔 시작만이 있다. 천하지만 아름답고, 쓸모는 없지만 귀중하고, 찾기는 힘들지만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현자의 돌. 그곳에서 모든 불가능한 역설들이 하나로 형제답다.
용의 쓸개, 호랑이의 발, 개의 피, 쥐의 꼬리, 황소 무릎, 닭의 머리, 오리발바닥, 말의 고창. . . . . . 무엇에 무엇을 얼마만큼 섞어야 현자의 돌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거칠고 조야한 물질들에서 더러움을 제거하여 이들을 변성시켜 가장 순수한 물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숭고한 의무감에 무릎을 꿇는 저 얼빠진 연금술사들은 사물들을 꼬신다. 원소들을 달랜다. 오, 순수한 물질이여, 부디 바라옵건대 내가 그대의 비밀을 얻어 금의 의상을 입을 수 있기를. 하지만 대개의 돌들은 침묵한다.
연금술사의 주변에는 절대적인 침묵과 기다림의 열망만이 존재하였다. 침묵과 기다림만이 금의 신을 불러들인다. 금욕과 청결이 여기에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 묵언정진이랬다. 침묵을 견딜 수 없으니 조만간 화 있을진저.
불의 힘을 다스리는 그들은 불의 위대한 거장들이었다. 연금술사들은 불 주위를 배회하면서 조절할 수 없는 힘과 열정을 불어넣는다. 돌은 그 열기를 견딘다. 그러나 어떤 열기가 돌로 하여금 천기를 누설케 한다. 연금술사들은 그 소리를 듣는다. 때로 어떤 돌멩이들은 거짓으로 천상의 비밀을 말한다. 돌이라고 해서 다 믿을 게 못된다. 무수한 실패는 연금술사의 훌륭한 이력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깜찍하게 자기를 합리화했는지. 그들은 작업의 애매모호함은 대개 그들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의 척도라고 생각하였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신비함으로 덮어두고 자신들의 성공이나 실패를 자신들의 능력이나 합리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힘의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렇다. 책임질 수 있는 부분만 책임지면 그만이다. 때로 내 책임이라고 하는 부분조차 곰곰 생각하면 내 탓이 아닐 때, 잘못을 떠 넘기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영적인 지침이 찢겨 없어져버린 때에 그들은 새로운 구원을 고안한다. 연금술. 내가 여전히 나인 것이 지겨운 것이다. 여지껏 나로써 살아왔는데 또다시 나로 살아야 한다니. 끔찍하다. 어떻든 金을 만들어야겠다.
죽음이 없이는 어떠한 초월도, 어떠한 갱생도 없다. 신체를 절단하거나, 끓는 물이나 불로써 육체에 훼손을 입히는 이미지는 연금술 저작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표현들이다. 생성 이전에 반드시 부패가 있어야 한다.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기듯, 모든 부패는 발생을 의미하므로 누군가가 부패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한다. 金의 신은 반드시 댓가를 요구한다.고통을 다오. 죽음을 다오. 끓어오르는 너의 피를 다오.
죽음으로부터 생명이 나오고 독이나 사악함으로부터 저 위대한 대지의 보물, 현자의 돌이 추출된다. 독을 마셔라. 두꺼비의 젖을 먹어라. 천상의 매와 지상의 뱀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라.
『침묵의 서』는 말한다. <기도하고, 독서하고, 독서하고 또 독서하라. 그리고 작업하라, 그러면 너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