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퇴화
옛날 용산의 삼각지 근처를 지날 때면 눈을 감고도 여기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근처에 제과공장의 굴뚝이 달콤한 밀크 캬라멜 냄새를 뭉텅뭉텅 피워냈기 때문이다. 어린 우리들은 그 냄새를 '캬라멜 방귀'로 명명했었다. 지금은 전자상가로 탈바꿈한 용산 청과물 시장 근처를 지날 때는 채소 냄새가 났고, 노량진 수산시장근처에서는 비릿한 어물냄새가 났다. 냄새는 삶과 뗄 수 없는 감각이었다. 그 당시에 명민한 후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장동 우육 시장, 을지로의 건어물 시장, 염천교 구두공장… 서울의 냄새지도를 작성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냄새가 사라졌다. 길거리에서의 군밤냄새도 예전 같지 않다. 왜일까. 사람들의 후각이 무뎌진 탓일까.
서울의 배기가스의 농도도 예전 같지 않다. 광고의 언어들과 이미지들도 하루가 다르게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의 게시판을 채우는 언어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만고만한 것들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도드라지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메시지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인간의 감각을 향하여 달려드는 메시지들이 너무 강해진 것이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삶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은 아닌지.
정전이 되었을 때 어둠을 밝혀주던 고마운 촛불의 빛이 다시 전기가 들어오는 순간 왜 그렇게 초라한 빛이 되고 마는 것인지. 인간의 감각은 더 강한 자극에 우선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라지만 때론 씁쓸한 생각도 든다.
진리는 미풍처럼 온다고 말한 이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였다. 강한 것, 외치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작은 것, 속삭이는 것, 부드럽게 인간의 감각에 스미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감각기관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