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안 학교에 대해 말해 보라, 현행 교육 정책에 대해서 말해 보라, 요즘 '교권이 상실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그 원인과 교권을 회복하기 위한 해결 방안을 말해 보라,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말해 보라, 대중 매체 발달에 따른 알맞은 교육 방법을 말해 보라, 현직 교사들은 교원수급체계에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변화에 대해서도 극도의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다. 교사들의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교사로서의 특권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지녔을 수도 있는 노동자로서의 지위 때문인가, 자립형 고교 설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여 입학제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혀라,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해외 유학 이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대학입학의 심층면접에서는 교육에 관련해서 많은 문제들이 출제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합쳐 모두 12년의 학교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총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깊은 인식을 갖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강수돌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그린비, 2003년 07월)은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는 책입니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 일류대학만을 지향하는 학벌위주의 사회, 왕따와 학교폭력 등 우리교육의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강수돌 교수는 이 책에서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냅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도 제시합니다. 교육을 출세의 수단,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보지 말자는 것이지요. 학교가 훌륭한 노동능력을 배출하는 인력공급소가 되어선 안되겠다는 것이 강수돌 교수의 현실인식입니다. 한마디로 오늘의 교육은 '돈벌이의 패러다임'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수돌 교수는 주장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부와 권력에 있지 않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오염되지 않은 좋은 것을 먹고, 이웃들과 마음으로부터의 대화를 나누는 데에 있다고 강수돌 교수는 말합니다.

1999년부터 조치원에서 귀틀집을 짓고 살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부모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한 교육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봅니다. 부모가 아무리 훌륭한 모임에서 참교육, 인간교육, 바른교육 등을 배우고 결심한다고 해도 집에 돌아와 옆집 아줌마만 만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면 교육개혁은 물건너 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옆집아줌마가 “남들은 다 아이들을 학원에도 보내고 족집게 과외교사에게 맡기기도 하는데, 참교육이니 인간교육이니 그런 고지식한 얘기만 하다가는 나중에 자식들한테 원망듣기 딱 좋다”며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면, 대개의 부모들은 현실주의자로 돌아오고 만다는 것이다.

강수돌 교수는 어려운 말로 교육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강수돌 교수의 거주지가 조치원이 된 것은 그가 고려대 조치원 캠퍼스의 교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식 교육 때문에 서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은 직장이 충청권이나 강원권만 되어도 통근할 걱정부터 하고, 전라도나 경상도로 발령이 나는 경우 아버지만 내려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서울에 남는 것이 대개의 현실이지요. 그가 과감히 전원생활을 결심한 것은 전원생활을 통해 건강하게 아이들을 자라게 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단지 교육문제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인 물질주의에 대해, 우리가 가진 안일한 소시민적 삶의 자세에 대해 반성과 통찰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새겨볼 만한 구절: 효율성이란 한마디로, 투입량 대비 산출량의 비율을 말한다. 도일한 투입량이라면 산출량이 늘어나야 효율이 향상되는 것이고, 또 동일한 산출량이라면 투입량이 줄어 들어야 효율이 오르는 것이다. 투입이 줄면서도 동시에 산출이 늘면 효율은 가장 크게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효율성을 나타나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생산성'이다. 만일 이 정도 선에서 우리 삶의 문제가 순조로이 해결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는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 시장과 경쟁이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크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즉 모든 상품은 시장경쟁력이 있어야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또 그러기 위해서 노동생산성을 높여야만 했다. 투입을 줄이고 산출을 늘리자니 인간을 단순한 생산요소로 환원시켜 통제해야만 하고, 건강과 인격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또 원료와 에너지 공급, 폐기물 처리를 값싸게 하자니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에 인간성 상실이라는 정신적 황폐화까지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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