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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ㅣ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평점 :
겨울, 찻집에서의 화두
찻집은 한산했다. 추위 탓인지 샘터 파랑새 극장 앞 버스정류장엔 잔뜩 웅크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이 나다닐 날씨가 아닌 혹한인데도 대학로는 인파로 붐볐다. 나는 약속한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을 죽일 요량으로 함민복의 시구 하나를 떠올렸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참구하기에 적당한 화두였다.
밤과 낮의 경계인 박명의 시간에 꽃이 핀다. 태양이라는 꽃. 남과 밤의 경계인 석양의 시간에도 꽃은 핀다. 황혼이라는 꽃. 액체와 고체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성애꽃. 액체와 기체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뿌연 수증기의 안개꽃. 인생의 이유기(離乳期)인 청소년기에도 꽃은 핀다. 여드름, 삶과 죽음의 경계에도 꽃은 핀다. 저승꽃. 그쯤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후후, 실소가 비어져 나온다. 아무래도 이런 게 아닌 듯싶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함민복이 틀렸을 수도 있다. 둘이 모두 틀렸을 가능성은 더욱 크다. 어쨌든 다시 시작이다.
내가 나라는 개체성을 떠나 세계가 일시에 나에게 틈입할 때,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나만의 개체성을 고집하기를 그쳤을 때, (물론 나는 그런 무아의 황홀경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어떤 강철의 무지개꽃이 피는 것은 아닐까. 내가 소시민성의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전체의 삶,
보편의 삶 속으로 나를 투신시키는 탈아와 몰아의 순간, 나는 문득 어떤 황홀한 꽃한송이를 보아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경계를 넘는 순간, 그래서 더 이상 내가 예전의 차원에 머무를 수 없을 때, 그때 꽃이라도 피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그 만남이 예전의 만남일 수 없을 때, 위로차라도, 설령 마음에 없는 꽃이라도 씽긋 한번 피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에게 꽃다발을 안기듯 경계를 넘는 자에게 한다발의 꽃송이라도 바쳐야 온당하지 않겠는가. 모든 경계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경계에 한다발의 소국이라도 놓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의 세계를 버리고 하나의 세계를 끌어 안는 자들에게 꽃한송이라도 바쳐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경계에 꽃이 핀다가 아니라 모든 경계에 꽃을 바쳐야 한다로 바꾸어 써야 옳지 않은가. 그러나 사정은 어떤가. 모든 경계를 기꺼운 마음으로 봐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경계는 위험하다. 위험할뿐더러 불순하다. 모든 극단주의자들을 보호관찰 대상으로 하는 사회에서 모든 경계에는 감시의 서늘한 성애꽃이 필 뿐이다. 겨울은 모든 경계를 완강하게 만든다. 물은 가장 확고부동한 자세로 존재의 영역을 표시하고, 사람들은 잔뜩 안으로 또아리를 틀며 겨울 공기에 노출되는 체표면의 면적을 극소화시킨다. 혹한은 대기를 투명하게 하고 그 투명한 대기 속에서 모든 것들은 명확한 경계선을 가진다. 그 경계선들은 보란 듯이 내 영역을 주장한다. 그 투명함이, 그 명쾌함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나 늦은 여름날의 오후를 좋아했던 것 같다. 상도동 옛집에서 뜰 앞의 오동나무의 넓은 잎사귀가 후박나무에 그늘을 드리울 때, 존재가 제 존재의 영역을 확고하게 주장하지 않는 그런 순간, 나에게도 슬몃슬몃 졸음이 오고 그랬다. 설탕물이 미지근한 물에 녹듯 내가 내 존재의 윤곽을 허무는 체험을 나는 졸음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에서 무의식의로의 몰입은 한껏 나른하고 달콤했다. 그 달콤함도 또 하나의 꽃이라면 꽃이랄 수 있겠다. 그때 나에게도 애인이 있었다면, 오동나무가 후박나무에게 그러듯 나도 애인의 살 속으로 깊이 파고 들었을 것이다.
목욕을 한다.
밖으로 난 창에는
뿌옇게 김이 서린다
어둠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더는 제 무게를 견딜 수 없다는 듯
주먹을 웅크린 채
어떤 결단의 끝장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의 길
그 흘러내리는 길 사이로
보이는 불빛
차가움과 더움의 경계에서
내 몸뚱이와 불빛들을
비로소 소통하게 하는
저 물방울의 길
마른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나는
내가 써야할 시들을
생각해본다
-졸시,「경계」
모든 것들이 제 경계의 딱딱한 금속성을 시위하는 겨울이다. 찻잔을 만지면 찻잔의 미지근한 체온 속으로 무엇인가가 녹아 들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문득 모든 경계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은 경계도 있겠지만 그런 경계는 이미 내 관심사는 아니다. 이제 조금씩 만남에 너그러워질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