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순례자 - 자연주의자 모노의 정신적 유언
테오도르 모노 지음, 안-바롱 옥성, 안인성 옮김 / 현암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대지가 메마른 곳에는 가장 현명하고 가장 탁월한 영혼이 있다”라고 말한 이는 헤라클레이토스다. 시련을 이겨내는 정신들에게는 마땅히 불모의 땅이 필요하다. 부처, 예수, 마호메트, 위대한 영혼들은 사막으로 갔다.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이라고 청마(靑馬) 유치환은 그의 <생명의 서>에서 노래했다. 위대한 영혼들이라고 해서 사막의 예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 그들에게 사막은 오히려 잔혹했다. 불은 쇠를 시험하고 고통은 인간을 시험한다고 했던가. 사막은 영혼을 조각하고 육체를 단련시킨다. 낮의 강렬한 태양과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없다면 사막은 초극의 장소가 될 수 없다. 예수가 광야를 40일 동안 떠돈 것도 고통과 유혹을 초극할 힘과의 대면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한 인간됨의 깊이와 폭이 그를 무력화시키려는 불과 모래의 시련과 맞닥뜨려 웅대한 인간적 드라마를 연출하는 곳이 사막이다. 오래도록 사막은 초극을 갈구했던 성자들의 땅이지 않았던가. 

    사막을 성소(聖所)로 삼고 평생 사막을 탐험하며, 사막의 식물과 곤충을 연구하고, 돌을 채집했던 테오도르 모노, 그에게 사막은 연구의 공간이기도 했고, 고행과 자기 성찰의 순례지이기도 했다. 사막, 그곳엔 일체의 장식과 군더더기가 없다. 지극히 무심하고 단조로운 곳이 사막이다. 모노는 『사막의 순례자』(현암사)에서 “사막에서는 하루 2.5리터의 물, 간소한 음식, 몇 권의 책,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라고 썼다. 대추야자 몇 알과 낙타의 젖, 일상의 모든 잔가지를 쳐버리고 사막은 최소한의 것으로만 한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외형적인 치레는 배제된다. 사막은 아주 적은 것을 갖고 살 수 있게 하고, 또 잘 견딜 수 있게 한다고 모노는 말한다. 간디는 ’100년전에는 사치품이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필수품이 되었다‘라고 일갈하지 않던가. 따지고 보면 우리의 소유는 지나치게 많다.

    사막에 넘쳐나는 것은 시간이다. 모노는 사막과 함께 하면 영원 즉 시간의 무한함을 매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아라비아 불모의 사막을 거주지로 하고 있는 베두인들처럼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고, 무엇을 빈틈없이 계획할 까닭도 없다. 개구착(開口錯), 입을 뻥긋거려 봐야 인간의 빈틈을 노리는 모래에게 길을 열어주는 꼴이 된다. 묵묵히 한 발 한 발의 정진(精進)이 있을 뿐이다.

    불모의 땅에도 침묵만은 차고 넘친다. 소음이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이라면 침묵은 우주가 존재하는 방식. 욕망으로 부글거리고 고통으로 삐걱거리는 피조물들을 내려다보며 우주는 천지운행을 침묵 속에 거듭한다. 소리는 공간에 어떤 육체적 질감을 갖게 하지만 침묵은 공간을 순수한 것으로 남겨두어 광대무변하고 심원한 곳으로 존재를 확장시킨다. 그 느슨한 탈아의 체험! 저 우주의 영역 너머, 저 물질의 영역 너머, 신의 영역에까지 닿고 싶은 구도자적 욕망이 은수자들로 하여금 사막을 찾게 한 것은 아닐까. 사막 그곳은 신과 더욱 가까운 곳이다.

    사막은 무엇보다 고독의 땅이다. 고독은 밖으로 열린 눈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내성(內省)의 눈을 갖게 한다. 고독은 무엇보다 자신을 응시하는 일이다. 대체 이 시련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련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그것은 성취할 가치가 있는가, 고통으로부터 한치도 자유롭지 못한 나에게 자유는 대체 무엇이며 의지는 또 무엇인가,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싸움은 충분히 치열한가, 사막의 고독은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질문하게 한다.

    사막, 그곳에서는 내 살의 무게, 내 뼈의 무게만이 모래를 딛고 서있다. 고통에 민감한 육체, 그러나 어떤 끝을 보고 말겠다는 분투의 정신, 이것이 다다. 용기는 나의 사소함을 고백하는 자기 긍정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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