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갈아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의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의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의 지평선이 있어요. 그저 그것뿐. 당신은 매일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고,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으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에요.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매일 계속돼요.
 
그리고 어느날, 당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죽어버리고 말아요.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높은 하늘을 가로질러서, 서쪽 지평선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거듭해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 속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져서는 죽어 버리는 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지면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쪽을 향하여 걸어가는 거에요.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몇일이고 몇일이고 아무 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지면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것이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죠   무라까미 하루끼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中에서
 
천양희의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를 읽다가 희귀한 병의 이름을 알았다.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시베리아 벌판에서 날마다 밭을 갈면서 살아가는 농부들이 반복되는 일 때문에 이 병에 걸린다고 한다.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라고 발음해본다. 가슴이 먹먹하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헤이- 쥬땜
 
밤이 오면 길이 
    -이성복

밤이 오면 길이
그대를 데려가리라
그대여 머뭇거리지 마라
물결 위에 뜨는 죽은 아이처럼
우리는 어머니 눈길 위에 떠 있고,
이제 막 날개 펴는 괴로움 하나도 오래 전에 예정된 것이었다
그대여 지나가는 낯선 새들이 오면
그대 가슴속 더운 곳에 눕혀라
그대 괴로움이 그대 뜻이 아니듯이
그들은 너무 먼곳에서 왔다
바람 부는 날 유도화의 잦은 떨림처럼
순한 날들이 오기까지,
그대여 밤이 오는 쪽으로
다가오는 길을 보아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길이
그대를 데려 가리라
 
숨길 수 없는 노래
                           - 이성복 -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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