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味覺)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책들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할머니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밥상머리에서 먹는 것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사람은 벌받는다." 쌀 한 톨에도 우주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땅과 태양, 구름과 빗방울의 협력에 농부들의 수고로움이 더해져야 비로소 쌀 한 톨이 여문다면 쌀 한 톨 앞에서의 낯 찡그림은 분명 불경일 터였다 .
음식을 가지고 가타부타하는 사람들을 마뜩찮게 생각했던 것이 우리네 상식이었다. 주는 음식에 토달지 말고, 찡그리지 않고 먹는 남자가 진정한 사내요, 그런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어른들은 반찬 투정을 하는 아이들을 구슬리고는 했다. 뭘 먹든 잘 먹으면 그것이 곧 건강이요, 장수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지당한 말씀이셨다. 적어도 먹거리가 오늘날처럼 망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패스트푸드의 제국』(에릭슐로서/ 에코리브르)을 읽고도 햄버거에 군침이 돈다면 매우 비위가 강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가령 이런 구절을 읽고도 흔쾌히 자신의 아이의 간식으로 햄버거를 권장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패티(햄거거 안의 다진 고기) 한 조각은 수십, 수백 마리로부터 모은 쇠고기로 만들어지는데, 이콜리균에 감염된 소 한 마리는 3만 2,000파운드의 다진 쇠고기를 오염시킨다”
1997년 8월 허드슨 푸드사는 콜럼버스 공장에서 만들어진 3,500만 파운드 정도의 다진 고기를 스스로 회수했다. 보건담당 공무원들이 발병 원인을 추적했지만 리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리콜 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이미 2,500만 파운드의 고기가 소비되고 나서였다고 한다.
슐로서는 지난 8년 동안 ‘O157'균 등에 오염된 햄버거 때문에 식중독에 걸리거나 숨진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수치가 과장이라고 할지라도 섬뜩하다. 저자는 패스트푸드의 어두운 이면을 걷어내기 위해 의회와 농림부가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사의 로비 활동이 이를 묵과할 리가 없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저자는 말한다. ꡒ패스트푸드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패스트푸드 음식을 하나 살 때마다 그 이면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또 이 음식이 만들어내는 길고 짧은 파급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그런 다음 주문을 하라. 아니면 돌아서서 매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라. 우리는 패스트푸드 제국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ꡓ
슐로서가 지적한 어두운 이면은 단지 건강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의 약 3분의 2가 20세미만의 저임금 파트 타임의 비숙련 노동자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감수하며 일할 수 있는 곳도 역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다. 최저 수준의 임금이야말로 패스트푸드의 성장전략 중의 하나다. 전국적인 체인화, 프렌차이즈화로 인한 미국의 자영농의 몰락 또한 패스트푸드의 어두운 이면 중의 하나다. 아직은 뚜렷한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전략을 펼친다는 것 또한 문제점이라고 슐로서는 지적한다.
하지만 이러한 은근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패스트푸드는 여러모로 간편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젊은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세련된 음악을 들으며 조금은 문화적으로 간편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 아닌가. 더구나 10대들의 미팅 장소로 맥도널드나 KFC 등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은 그만이다. 어떤 10대가 뚝배기집이나 순대국집을 미팅의 장소로 정할 것인가. 더구나 매너니 예절이나 따질 것 없이 뚝딱 간편하게 한끼를 해치울 수 있는 곳이 패스트푸드 아닌가.
순창 고추장, 남원 추어탕, 풍천 장어, 마포 주물럭, 이동 갈비, 포천 막걸리, 병천 순대, 목포 세발 낙지, 평양 냉면, 섬진강 재첩국, 춘천 막국수, 평창 올챙이국수, 진도 홍주, 경주 법주, 영광 굴비, 전주 비빔밥, 천안 호두과자, 서산 어리굴젓, 인천 쫄면, 장충동 족발, 신당동 떡볶이, 신림동 순대, 명동 칼국수, 동래 파전, 예로부터 어떤 고장은 ‘맛’으로 기억된다. 자본주의적 대규모 생산시스템이 문화와 생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듯, 버거킹, KFC, 맥도날드 등의 대규모 프렌차이즈는 맛의 다양성을 저해한다.
이러한 미각의 획일화에 저항하자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패스트푸드의 선두주자인 맥도널드가 1989년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들어섰을 때 시작된 것이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이다. 슬로푸드란 말 그대로 패스트푸드(fast food)의 반대. 미국의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자, 현재 슬로푸드의 회장인 카를로스와 그의 친구들이 맛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이 운동을 시작했다.
1989년 11월 9일 프랑스 파리의 코믹오페라에서 채택했다는 선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업 문명의 이름 아래 전개된 우리의 세기에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기계는 생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고, 우리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곧 음흉한 바이러스에 굴복해가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사람은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추구를 자제하는 것입니다. 이미 확인된 감각적 즐거움과 느리며 오래 가는 기쁨을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효율성에 대한 흥분에 의해 잘못 이끌린 군중에게서 우리가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합니다. 생산성 향상의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용기 있는 해답은 슬로푸드입니다.
진정한 문화는 미각을 낮추기보다는 미각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데는 경험, 지식, 국제적인 교환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슬로푸드는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합니다. 슬로푸드의 상징은 작은 달팽이이며, 이 운동이 국제 운동으로 나아가는 데 함께 할 능력이 있는 많은 지지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슬로푸드 운동의 기본 취지는 '맛을 표준화하고 전통 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를 먹지말고, 식사와 미각의 즐거움을 보존하자'라는 데 국한됐다. 그러나 1990년대 광우병 파동과 함께 슬로푸드 운동은 단지 ‘먹는 문제’에서 벗어나 유기농 문제 등으로 관심의 폭이 넓혀졌고, 나아가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자는 느리게 살기 즉, '슬로 라이프(slow life)'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후로 슬로푸드 운동은 채소, 동물, 문화의 다양성 수호를 위한 조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페트리니의 『슬로푸드』(나무심는사람, 김종덕 역)는 슬로푸드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한다. 이름도 생소한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소개한다는 흠이 있긴 하지만, 유전자조작으로 탄생한 이른바 '프랑켄 푸드'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이 소개하는 1996년 12월 2일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개최된 미각박람회의 내용은 흥미를 끈다. 만약 지구에 대홍수가 나서 방주에 음식을 태워야 한다면 어떤 음식을 승선시켜야 할 것인가, 당연히 햄버거와 같은 정크 푸드(쓰레기 음식)는 제외될 것이다. 원료가 변형된 음식이나. 종자 자체에 외부 유전자가 이식된 동물이나 식물은 방주에 들어올 수가 없단다. 음식문화는 절대로 전국적이 되거나, 세계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슬로푸드 멤버들의 주장이다. 슬로푸드 미국방주위원회에서는 미국 방주에 탑승할 자격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독특하고 품질이 뛰어나고 맛이 좋아야 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식품이어야 한다. 음식이 표준화되는 세상에서 설자리를 잃은 식품이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뚜렷한 지역성을 가져야 한다.
․지역의 고유음식으로 상징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 페트리니의 책은 독일의 유럽의회 농업위원장 헤르만 셰어의 발언을 빌어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헤르만 셰어는 지적한다. “소규모 생산으로는 이윤을 빠르게 회수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경쟁할 수 없다. 결국 패스트푸드는 소규모 생산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더욱이 이러한 추세 때문에 비료와 농약의 사용이 증가하고, 물과 토양이 오염되며, 농업의 미래는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그 결과 채소의 종류는 감소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유산이 특정기업에 의해 사유화되며, 농산물과 음식은 다양성을 잃고 단순화된다.” 산업의 논리로 농산물 시장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산물은 지리적 조건이나 토양의 조건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생산지역이 일정하게 정해지기 마련인데, 자동차는 단 10개의 나라에서 전 세계가 타는 차량을 생산할 수 있다. 헤르만 셰어는 말한다. “슬로푸드가 만들고 있는 방주는 농산물이 빠르게 유통되는 상황을 막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생산과 소비라는 과정에서 생물의 다양성을 보호하려면 투쟁을 해서라도 생명공학 특허를 막아야 한다. 와인과 음식의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농업경제를 지역화해야 한다. 음식의 질적 생산을 소중히 여긴다면 양적 생산을 중시하는 현재의 영농방식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폐지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페트리니는 음식에 대한 쇼비니즘을 경계한다. 이스라엘의 팔라펠, 일본의 다코야키(낙지구이), 멕시코의 타코스, 치앙라이의 카오소이, 영국의 피시앤드칩스, 그리스의 수블라키, 모로코 훈제시장의 먹을거리 등 세계 여러 지역의 고유음식을 소개한다. 독일 맥주의 종류도 5천 여종에 이른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잘 먹자’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먹되 제대로 먹자는 운동이다. 먹되 신선하게, 내 식으로, 네 몸에 맞게 먹자는 운동이다. 아울러 패스트푸드의 패권주의를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운동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의 입맛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햄버거, 피자, 치킨과 같은 패스트푸드가 그들의 입맛을 점령하기 전에.

『슬로푸드』를 번역한 김종덕 경남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저서 『슬로푸드 슬로라이프 』(한문화)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김종덕은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www.slowfoodkorea.com)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먹을거리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정작 먹을거리가 없는 세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