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들은 자신과의 내밀한 만남을 주선한다. "전시에나 평상시에나, 나는 책을 안 가지고 여행하는 일은 없다. 그러면서도, 책 한 장 읽지 않은 채로 며칠이고 몇 달이고 지나가기 일쑤이다."라고 말하는 몽테뉴의 『수상록』은 사려 깊은 한 인간의 성찰의 기록이다. 몽테뉴에게 성찰은 고독의 시간 속에서 숙성되었다. "나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는 것보다는, 늘 혼자 있는 것이 어쩐지 더 견디기 쉬울 것만 같이 여겨진다."라고 말할 때의 몽테뉴는 깨침을 위해 잠을 자지도 않고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장좌불와로 용맹정진하는 선사(禪師)의 면모를 풍긴다. "사는 위치가 외지다는 것은 사실인즉 오히려 나를 밖으로 더욱 확산 확대시킨다. 나는 홀로 있을 때에 더욱 즐겨 나라일, 세상일에 골몰한다. 루우브르궁이나 군중 속에서는, 나는 나의 껍질 속으로 도사려 든다. 군중은 나를 나 자신 속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몽테뉴의 고독은 협소한 자아를 넘어 세계의 한 가운데에 몽테뉴를 위치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재판하기 위해, 나 자신의 법률, 나 자신의 법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가혹하리만치 준열한 자기심판을 감행한 것은 아니다. 그는 솔직하게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을 인정한다. "확고한 의견이 뚫고 들어가 거기에 깊은 뿌리를 박기에는 나의 영혼은 적당한 터전이 못 되는 만큼, 나는 아주 자유롭고 거침없이 변론과 토론에 들어간다."라고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조금만 방향을 바꾸거나 관점을 바꾸면 내 안에서는 온갖 모순이 발견된다. 수줍음이 많으면서 건방지고, 정숙하면서 음탕하고, 박식하면서 무식하고, 거짓말쟁이이면서 정직하고, 관대하면서 인색하고, 구두쇠이면서 낭비가다."라고 말할 때의 몽테뉴는 천상의 인간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지상의 한 인간일 뿐이다. 그는 엄숙한 권위나 이론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때론 스스로를 제물로 삼는다. 치열한 반성은 곧 반성하는 자신의 자리까지를 응시하는 것이라고 할 때, 몽테뉴의 반성은 깊다. 몽테뉴는 때론 자신의 성적 무능력까지 고백한다.

 수상록의 '독자에게'의 마지막 구절은 상쾌하다. 그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독자여, 나 자신이 이 책의 내용이다. 이런 시시한 주제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함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럼 안녕" 그러나 때로는 우리 안에 바보가 필요하다. 실용과 이익과 계산만이라면 세상은 너무 건조하다. 때로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찾아오는 그런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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