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테크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전영택 외 옮김 / 민음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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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몸의 요구를 거스르는 위험한 자본의 논리



    계 최대의 종자(種子)회사인 미국의 몬산토사가 개발한 ‘터미네이터’라는 유전자가 있다. 말 그대로 '끝내주는' 유전자. 이 유전자가 이식된 씨앗은 파종을 하여 수확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씨앗은 다시 얻을 수 없다. 결국 이듬해에 파종을 하려면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 씨앗을 몬산토사에서 다시 구입할 수밖에 없다. 이 ‘터미네이터’ 유전자는 어떤 씨앗에도 이식이 가능하단다.

    과연 이 유전자 연구는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소비자에게도 농민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바이오테크 시대』(민음사)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의 대답이다.

    리프킨의 『바이오테크 시대』는 국정보고서의 자료를 읽는 듯 풍부한 예시와 사례들로 유전자 연구에 따르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바이오테크 시대』에서 리프킨은 대가답게 특유의 지적인 성실함과 열정으로 유전자 기술에 따르는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윤리적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든 리프킨은 환경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환경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고 문명에 접근한다. ‘엔트로피’라는 개념도 그랬고, 육식에 대한 비판도 그랬다. 흔히 박식가들이 놓치기 쉬운 학문적 진정성을 리프킨은 잃지 않고 있다. 문명에 보내는 그의 경고는 예언자의 일갈에 가깝다.

    유전공학의 문제점을 대중적인 관심사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도 『바이오테크 시대』는 주목에 값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생명공학 기술이 만들어내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성공적 사례와 그로 인한 문제점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의 섬뜩한 경고에 직면하게 된다. 리프킨의 경고는, 그의 주장에 신뢰성을 보태고 있는 수많은 예시들로 해서 구체적 설득력을 가진다. 그 사례들을 요약해보자.

    과학자들은 나무를 고체화하는 유기 물질인 리그닌(lignin)이라는 목질소(木質素)를 파괴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효소를 만드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 조작된 효소를 이용하여 제지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를 정화하거나 생물 재료를 분해시켜 에너지를 얻는다면, 이 효소가 상업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 효소를 가진 박테리아가 다른 장소로 이주하여 숲속에 널리 퍼지게 된다면, 그 박테리아가 나무를 고체화하는 리그닌 물질을 파먹어 들어가 수백만 에이커의 숲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해충을 먹이로 하는 육식성 곤충을 만들어 방출하고, 물고기가 더 빨리 더 크게 자라고 차가운 해역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그물고기의 유전 암호 속에 성장 호르몬 유전자와 넙치류에서 추출한 부동(不凍) 유전자를 삽입하여 방출할 경우, 만약 이 유전자 조작된 물고기가 한정된 수역을 벗어난다면 그 지역의 다른 토종 물고기보다 더 월등한 경쟁력을 갖게 되어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1996년 취리히의 식물과학 연구소 과학자들은 ‘버실러스 투린지언시스’라는 토양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인도산 벼에 이전하여, 그 벼가 ‘노란줄기좀벌레’와 ‘줄무늬좀벌레’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필리핀의 국제연구소가 이 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이 국제 벼 연구소는 필리핀에서 그 유전자 이식 벼 재배를 허가받을 계획이다. 어떤 곤충학자들은 그 토양 박테리아 유전자를 이식한 유전자 이식 벼가 바람에 의한 수분과정을 통하여 그 벼와 혈연관계에 있는 가까운 야생잡초로 퍼져 그 잡초가 해충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며, 저항력 있는 슈퍼버그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유전자 이식 농작물이 또 다른 방법으로 세계의 유전자 자원을 서서히 고갈시킬 위험이 있다. 종래의 품종 개량 방법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식물이 저항력을 갖게 하며, 때때로 수백 개의 유전자가 그 저항 형질에 관련되는 데 반해, 유전자 조작 방법은 어떤 가능한 환경으로부터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항 형질을 갖는 단지 하나 또는 두 개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데 그친다. 모든 이식유전자 삽입 방법은 농작물이 적의 공격에 대해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많은 독을 뿜어 반응하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해법이나, 그 수명이 짧아 곧 바로 기술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즉, 유전학자들이 저항 형질을 가진 단지 <하나의 유전자>에 의존함으로써, 해충, 바이러스, 버섯균류가 매우 짧은 기간 내에 그 유전자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훨씬 쉽게 승리하게 된다. 그 사이에, 병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 작용하는 수백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변종은, 새로운 이식 유전자를 가진 슈퍼식물에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포기되고, 결국은 멸종한다.

    하루에도 74종의 동식물이 멸종한다고 한다. 단순히 열악해진 환경 문제 탓만은 아니다. 동식물의 멸종에도 정치․경제적 동기가 개입한다.

    아시아에는 쌀의 변종이 14만종이나 있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들은 그중 다섯 내지 여섯 개 변종들에 대해서만 유전자를 조작해 그것들을 쌀을 주로 재배하는 지역에 집중 재배하는 모델로 강요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이 대여섯 가지 변종 쌀들이 전체 논의 60~70%에서 재배된다고 한다. 미국식 패스트푸드가 각국의 고유의 음식을 몰아내듯 다국적 기업에 의해서 유전자 조작된 종자들이 각국의 고유한 종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농민들은 단지 유전자 조작된 종자가 수익성, 환금성,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토착 종자를 포기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유전자 조작된 식물들은 기민하게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환금성 가치에 눈이 어두운 자들은 결코 멀리 보려 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그 혜택을 만인에게 골고루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냉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넙치류에서 추출한 부동(不凍) 단백질 유전자를 받은 토마토, 감자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병아리 유전자가 삽입된 감자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는 분명 대규모의 인력과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이익이 없는 곳에 투자가 있을 수 없는 법. 점점 증가하는 세계 제초제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하여, 화학 회사들은 자기들이 판매하는 제초제에 대한 내성이 강한 유전자 이식 농산물을 개발했다. 특정 상표의 제초제에 대한 내성이 강한 식물을 개발하여 그 종자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후 그 종자를 농민에게 팔면, 종자 시장과 제초제 시장에서 모두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제초제를 뿌리는 과정에서 농작물에 해를 끼칠 염려가 적어지면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농부들은 마음놓고 제초제를 뿌릴 수 있기 때문에 땅은 그만큼 죽어갈 수밖에 없다. 또한 제초제 사용량이 증가하게 되면 제초제에 대한 잡초의 저항력이 더 커져 어지간한 제초제에도 끄덕 않는 슈퍼잡초가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기업가들이 사태를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는 점. 농작물의 최종 소비자들과 농작물의 모태인 생태계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비유하건대, 아이만 낳으면 이익이 된다면 한 해에 두 명 아니 세 명이라도 출산하라는 기세다.

    소위 ‘유전자 차별’도 문제다. 가령 유전자 검사비용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낮아진다면 보험료와 보험금 지급 범위를 평가하는 데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어떤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보험 급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개인이 본래부터 존재하여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유전자의 상태를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또는 그 유전자가 결코 발현되지 않을지도 모르거나 발현되더라도 그리 심각한 정도는 아니거나 치료가 가능한데도 단지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부당하다.

    생명공학 세기에는 인종과 민족집단을 유전자형에 따라 차별할 전망이 있는데, 이도 곤란한 문제를 야기한다. 과학자들이 인간게놈의 작용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됨에 따라 인종이다 민족 집단에 특유한 수많은 유전자 형질과 소인을 분류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모든 민족을 유전자에 근거하여 차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들은 극심한 빈혈을 유발하는 겸상적혈구 세포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 모기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력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미국으로 이주해간 흑인들에게는 말라리아의 위협이 사라졌으므로 이 유전자는 발생학적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병적인 유전자로 간주되는 억울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각종 기관이 과연 인종과 민족집단에 특유한 이 같은 유전 정보를 인종 차별, 인종 분리, 그리고 인종 학대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항공 관제 회사, 항공사, 경찰서와 같이 고도의 안정을 요하는 어떤 기관들이 알콜 중독, 우울증, 그리고 기분과 행동상의 이상을 유발하는 유전자 소인을 찾아내기 위한 유전자 검사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미래에는 유전자형을 이유로 근로자의 취업 기회가 박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유전자 구성에 따라 개인들을 분리하고 차별함으로써 유전자 귀족 계급과 유전자적 하층계급이 출현할 수도 있음을 리프킨은 경고한다.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섬뜩하다.

    1999년 8월 12일 프랑스 미요 시(市)에서 건설 중이던 맥도날드 매장의 일부가 시민과 농민들에 의해 해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농민연맹' 소속 조합원인 조제 보베는 반 세계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울력)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 파괴 활동을 주도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화에 맞서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WTO 회담을 무산시킨 프랑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 프랑스와 뒤푸르의 생생한 목소리를 대담형식으로 싣고 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생산주의 농업(기업형 농업)이 불러온 폐해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어떻게 세계의 농업을 황폐화시키고 있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보베는 자기 나라의 식량안보를 지킬 수 있고 제3세계의 가난과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농산물 교역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 거대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 흐름을 제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WTO 시민통제위원회를 상설화하자고 제안한다.

    조제 보베는 농학 분야의 공공연구 기관들이 오직 생산량을 늘리기 위하여 어떤 식물의 질병에 관해, 유전자에 관해 연구할 뿐, 전체적인 관점에서 농업의 위치나 농업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농업에 관한 공공 연구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구원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관해, 사회 안에서의 그 직업의 위치에 관해 그리고 생명에 관해 전반적인 성찰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일찍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문예출판사)의 저자 슈마허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구두뿐만이 아니라 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학자들은 기술만능주의의 함정에 빠져 그 기술의 사회적 파장에 관한 성찰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긴 성찰은 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 돈이 되는 것은 오직 기술이며 끝없는 확장이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세계화는 자본이 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길이다. 이에 저항하는 길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구축이라고 조제 보베는 말한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구축을 위해서는 중국혁명의 붉은 깃발도, 체 게바라의 초상도 필요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런 것은 이젠 끝났고 그렇기에 희망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영역(건강, 식량, 교육, 수자원, 생명체 보호 등)을 통해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에서 세계화로 상징되는 자본의 무한확장을 제지할 섬세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미국과, 거대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 흐름을 제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WTO 시민통제위원회를 상설화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주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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