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여자의 목소리가 세계를 바꾸다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옥희 감수 / 에코리브르, 2002



    직 머리칼도 세지 않은 사람이 말하기엔 좀 되바라진 얘기지만, 주량과 폐활량은 줄어들지 몰라도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차츰 느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가만 멈춰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조용히 숨을 고르는 시간, 멀거니 먼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기력이 쇠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사태와 추이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여유가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격정적인 청춘에게는 그런 여유와 거리가 없다. 누구였던가. 자신에게 저항할 권능을 주지 않기 위해 신은 인간에게 청춘과 지혜를 동시에 주지 않았다고 말한 이는.

    또 하나 사람에 대한 ‘연민’이란 것도 나이가 들면서 늘기 마련이다. 빛나는 젊음의 육체는 장애를 모른다. 장애가 없으니 반성이 없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시간 속에서 낡아가기 마련, 썩지 않는 불후(不朽)의 육체가 어디 있으랴. 잇몸이 아프고 어깨가 뻐근하고, 삐걱삐걱 육체에도 장애가 생기기 마련,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바라본다. 누구나 자신의 쇠함을 스산한 감정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썩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육체를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는 나르시시스트의 시선은 분명 청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나르시시스트의 시선은 문득 타인의 육체를 보게 된다. 타인의 육체 속에 각인된 상처를 보게 된다. 아, 너도 몸을 가졌었구나, 너도 나처럼 욕망으로 덜걱거리는 존재였었구나, 비로소 한 인간은 타인의 육체 속에 운명처럼 깃들여 있는 고통의 무늬를 보게 된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연민은 그 고통의 무늬를 들여다보는 스산한 감정을 이르는 말일 터이다. 인간이란 따지고 보면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넘겨짚다가도, 인간은 삼라만상을 다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시선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인간도 낮춰볼 존재만은 아니구나 하는 숙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환경 생태학 분야의 고전이며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 중의 하나라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코리브르)은 한 인간이 가진 연민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큰 지적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환경운동이 모든 나라의 사회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한 책이기도 하다. DDT 등의 위험한 화학물질이 어떻게 토양을 오염시키고, 녹색식물을 고사시키고, 이 잎에 붙어사는 곤충을 무차별 살육하고, 이 곤충을 먹고사는 새들을 죽게 하는가, 수생 생물을 떼죽음 당하게 하고, 인간의 건강을 파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를,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증언하고 있다. 이 사태의 배후에 생태학적 연관관계에 무지한 전문가들, 정책당국자, 그리고 산업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고발한다.

    레이첼 카슨은 이 책에서 합성화학살충제 산업의 급작스러운 부상은 2차 세계대전의 산물임을 말한다. ‘화학전에서 사용할 약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몇 종류의 물질은 곤충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죽음을 불러올 약제를 테스트하는 데 곤충류가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확장하면 살충제는 살생제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이런 살충제는 유해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효소를 파괴하고 에너지를 얻는 산화과정을 방해하며 각종 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을 억제해 불치병을 일으킨다고 카슨은 지적한다. 당연히 살충제는 벌레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포식자인 새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살충제가 새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침묵의 봄』이다. 카슨의 한 친구가 살충제 살포 이후 새들이 노래하길 멈추었다며, 이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하자, 카슨은 이후 약 4년에 걸쳐 조사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묶어 펴낸 책이 다름 아닌 『침묵의 봄』이다.

    “우리가 마구 없애버리는 식물들은 사실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흔히 ‘잡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런 자연적 식물 군락은 토양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화학제초제를 사용하면 이런 유용한 기능이 상실되게 마련이다.‘ 이미 반 세기전에 씌어진 책이니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자연에 잡스러움은 없다. 어떤 미물이든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의 잣대로 어떤 것은 익충이니 어떤 것은 해충이니 분류하지만 사람에게 익충인 것이 어떤 생물에겐 해충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익충, 해충 하는 식의 분류란 인간이란 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소위 ‘동굴의 우상’에 다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생태계에서 가장 해로운 존재가 인간인 셈인데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하는 낯간지러운 칭호를 아무 부끄럼 없이 지닌다.

    당장 먹기는 곶감이 달다던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생태계의 진실을 보지 못해 생기는 문제점을 카슨은 보여준다. ‘돼지풀을 제거한다는 미명 하에 도로변에 수천 갤런의 화학약품이 살포되었다. 하지만 무차별적 살포로 인해 돼지풀이 오히려 증가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돼지풀은 일년생 풀이다. 매년 이 풀이 다시 종자를 퍼뜨리려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토양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돼지풀을 없애려면 관목이나 양치류, 다른 다년생 식물을 빽빽이 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자주 제초제를 뿌리면 이런 보호 역할을 하는 식물 역시 죽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나지 않는 넓은 땅을 돼지풀이 재빨리 차지한다.’ 돼지풀은 돼지풀이고 양치류는 양치류일 수는 없다. 풀과 수목과 벌레와 강과 연어가 서로 기대어, 얽히고 설킨 생명의 그물이 곧 생태계다. ‘내’안에 ‘네’가 있고 ‘너’안에 ‘내’가 있다는 것이 생태계의 진실이다.

    ‘우리 몸 속에도 생태계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는 아주 사소한 원인으로 인해 엄청난 결과가 생겨난다. 원인과 결과가 별 관계없는 듯 보일 때가 많다. 원래 상처를 입은 곳에서 한참 떨어진 어떤 곳에서 병의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지점 설령 그것이 분자 하나라 할지라도 여기에 변화가 생기면 결국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주어 별 상관없는 기관이나 조직에서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학연구도 등장했다.’는 카슨의 주장은 생태계에도 역시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이 거대한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이 책은 카슨의 분노를 담은 책이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생태계에 어떤 폭력을 가했는지를 이 책은 줄기차게 고발하고 있다. 또 진실을 밝혀야할 과학이 이익과 생산이라는 현대적인 신을 섬기기 위해 타협점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과학계와 산업계가 어떤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카슨은 날카롭게 지적했다. “과학단체가 무언가 이야기할 때, 우리가 듣는 것은 진정한 과학의 소리인가 혹은 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리인가?” ‘선택성 살충제(우리가 제거하기를 바라는 해충에게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살충제)를 사용하면 유기물질을 분해하는 데 필수적인 ’익충‘은 죽이지 않고 농작물을 해치는 토양 속 유충만 죽인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누군가? 과학자다. 그러나 토양에 침투한 살충제에 지렁이들이 죽고 그것을 먹고 새들과 오소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그것이 강물로 흘러 플랑크톤을 죽이고,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포식자인 연어마저 떼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감정에 호소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히스테릭한 여성ꡓ이니 ꡒ자신이 저주하는 살충제보다 더 독하다ꡓ다느니, 카슨은 이 책을 쓰고 언론과 화학업계로부터 엄청난 비방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곧이어 지구의 날(4월22일)이 제정됐다. 암연구소는 DDT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발표했고, 미국의 각 주는 DDT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타임지는 그녀를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았다.

    『침묵의 봄』이 처음으로 출간된 것이 1962년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레이첼 카슨의 경고는, 오직 성장만을 능사로 아는 오늘의 한국 땅에서도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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