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내 인생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몸짱 시대의 뚱보의 사랑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조현실 옮김 / 바람의 아이들, 2004




    몸짱 신드롬이라던가. 어른들은 런닝 머신 위에서 몸 만들기에 아침저녁으로 여념이 없다. 청년들도 몸에 관한 한 어른들에 못지 않다. 한 조사에 의하면 어떤 대학교의 여대생 10명 가운데 4명이 자신의 체격을 비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여자 신입생 절반 이상이 운동으로 살을 빼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확고한 자의식이 없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분명한 자신의 의지 아래 육체를 두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관리하고 '살'을 적으로 규정하겠지만 아이들은 몸을 이성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확고한 자의식이 없다. 어른들은 책을 읽는다, 음악을 듣는다, 미술을 감상한다는 식의 고상한 취미를 가질 수도 있고, 골프나 테니스를 치거나 마라톤을 하는 등의 스포츠에 빠져볼 수도 있고, 하다 못해 고스톱에 빠질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문화를 즐길 만한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없다.

    물론 아이들에게 문화를 가르칠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라고 해서 뾰족한 문화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이 빠질 데라곤 별반 없다. 고작 인터넷 게임을 즐긴다거나 스타에 열광하는 정도랄까. 그런 류의 또래문화에도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먹고 마시는 몸의 쾌락밖에 딱히 즐거움을 찾을 데가 없다.

    둘러보면 가히 미식가의 천국이다. 음료만 해도 수십 가지 종류요, 아이스크림만 해도 그 종류와 이름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감자칩 하나만 해도 그 종류의 다양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TV 광고는 끊임없이 식욕을 자극하고 구매를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금욕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과욕이다. 미디어는 아이들의 욕망을 엄청나게 부풀리는데 한가하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가르친다는 것도 시대착오라면 착오라 하겠다.

    어떻든 아이들은 엄청 먹어댄다. 어른들은 '웰빙'을 기치로 이제야 음식문화를 성찰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반성의 인간이기 이전에 쾌락의 인간이다. 아이들은 '정신'에 좋은 것보다는 '혀'에 좋은 것에 탐닉한다. 몸에 나쁜 것은 하나 같이 혀에 좋다. 피자와 햄버거가 그렇고, 생크림 케익과 아이스크림이 그렇고, 갑자칩과 쵸코 쿠키가 그렇다. 아이들에게 웰빙을 들먹이며 혀에 꺼끌꺼끌한 '현미밥'이나 나물반찬과 녹차 한 잔을 권하기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이래저래 아이들의 몸피는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TV나 컴퓨터는 아이들의 운동량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라고 아이들에게는 말하지만 부모의 속내는 편하지 못하다. 왠지 우리 아이들이 남보다 뒤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런 저런 학원을 보내다 보면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시간이 없다. 이래 저래 아이들의 몸피는 두꺼워져 간다. 문제가 체력 저하로 그치면 다행이다. 청소년층에서 비만아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당뇨병이나 고혈압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성찰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이 거의 없다는 것은 좀 유감스럽다. '몸'에 관련한 책들은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몸에 관련하여 진지한 사유를 이끌어 낼 만한 책들이 드물다는 말이다. 『뚱보, 내 인생』이 반가운 것은 이 대목에서다.

    우울한 뚱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야,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마음이지 몸이 아니란다 하는 식의 관념론을 설파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럴까. 청소년들은 엄연히 현실주의자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쾌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몸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패션잡지를 보라. 몸에 대한 청소년들의 열기가 저절로 느껴진다. 『뚱보, 내 인생』의 주인공, 벵자멩에게 몸에 대한 마음의 우월성을 설파하는 일방적인 관념론은 설득력이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벵자멩은 꾸역꾸역 먹는다. 잼 바른 식빵, 초콜릿, 버터, 치즈, 생크림 얹은 파이, 케첩을 듬뿍 뿌린 파스타,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튀김……. 이런 음식들이 벵자멩의 몸무게를 89㎏까지 늘려 놓는다. 자, 벵자멩을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식이요법도 소용이 없다. 잘 참다가 폭식을 하면 '요요현상'이라고 절식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살이 찌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과식이나 폭식은 성인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줄 수 있겠지만 청소년들은 현실주의자가 아닌가. 성인병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이지 현실의 일은 아니다. 그런 외모로서는 이성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단다. 바로 이것이 정답이다. 너를 사랑스럽게 보는 바로 그 눈길을 위해서 너는 너를 관리해야 한단다. 바로 이것이 정답이다. 네가 진정으로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네가 너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너는 참을 수 없는 너의 식욕을 눌러야만 한단다. 바로 이것이 정답이다.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사랑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입증하려면 너는 고통을 참는 법을 배워야해. 이것이 정답이다. 가장 강력한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것이 '사랑'임을 『뚱보, 내 인생』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짝사랑하는 클레르와 수영장에서 마주친 뒤 벵자멩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다이어트가 시작된 것이다. 무면허 침술사에게 침을 맞고, 음식일지를 적고, 식이요법을 한다. 클레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클레르는 벵자밍의 다이어트 노력을 칭찬하고 호감 어린 엽서까지 보내온다. 다이어트는 한층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클레르는 벵자멩의 사랑을 우정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이 아니었다고, 벵자멩은 앞이 캄캄해진다. 다이어트, 그런 게 다 무슨 필요란 말인가. 사랑도 받지 못하는 이 볼품 없는 몸을 관리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절망이 다시 식욕을 부른다. 식욕은 다시 살을 부른다. 이 일을 어찌할까?

    이 작품으로 작가, 미카엘 올리비에는 '엥코륍티블 상' 등 프랑스, 벨기에, 독일에서 16개의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방영되었다고 하니 톡톡히 주목을 받은 작품인 셈이다.

    몸을 말하는 여타의 책들이 계몽적 어투가 강했지만 이 책의 문체는 밝고 편안하며 유머스럽다. 번역은 편안한 호흡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청소년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청소년의 언어로 청소년의 고민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일체의 과장이 없다. 섣부르게 뚱보를 위로하려는 관념론자의 자의식도 없다. 속도감 있는 문체, 경쾌한 호흡이 청소년 소설의 한 모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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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해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