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e to the Moon -Ana Caram
 
1.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살까 망설이던 차에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를 읽었다. 마침 어떤 친구가 여행중이었다. 나는 떠나지 못하는 내 몸을 가볍게 한탄했다. 마음의 엑소더스를 위해 <나의 프로방스>를 읽었다. 유머스럽고 경쾌하다. 감각적이기 이를 데 없다. 책을 읽으면 먼저 배가 고파진다. 프랑스의 진기한 음식들을 떠올리다가 나는 문득 일산 자유로 끝에 있다는 음식점 <프로방스>에 꼭 한번 가보겠다고 결심을 했다. 저녁에는 예전에 읽었던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을 읽었다. 벌써 몇번째일까. 김화영의 이 아름다운 산문은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오늘 책꽂이에서 김화영의 <바람을 담은 집>과 장그르니에의 <존재의 불행>과 <지중해의 영감> 그리고 장자끄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렇게 세 권을 뽑아서 출근했다....내 몸은 비록 내 친구와 함께 있지 못해도 내 마음은 내 몸밖에서 떠돌 것이다. 끼냐르의 말은 옳다. <모든 독서는 엑소더스다> 나의 출애급!

 
2.
프로방스에 대한 최상의 찬가는 장그르니에가 봉헌했다.
 
 
이 고장은 너무나 잘 빚어져서 장인(匠人)인 신의 작품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중해의 영감』,P.132
 
 
그러나 이는 단순한 수사학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지중해의 영감』에서 장그르니에는 프로방스를 이렇게 말한다.

 
프로방스 지방은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친구로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또 그곳을 잠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려고 오는 사람에게 무익하지 않은 애정 어린 교훈을 준다. 프로방스의 시인 미스트랄은 고향의 땅과 여행지의 땅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곳은 고향의 당이다. 누군가 풍경의 침묵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곳에서 해방되는 듯한 감정으로 감동 받지 않을 수 없다.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루드마랭과 카드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이간과 가까이 있고, 인간에게 우정을 베풀려고 허락한다. 인간은 이 땅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땅이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언제나 고이 간직할 수 없었던 충실성을 이 땅은 인간에게 불러일으킨다. 인적 없는 이 마을과 폐허로 남은 성들이 그 슬픈 증거이다. 애정 없이 만들어진 위대한 것은 결코 없다. 『지중해의 영감』,P. 130
 
 
따지고 보면 김화영의 아름다운 산문집 『행복의 충격』의 제목도 프로방스의 매혹을 말하는 데서 빌어왔다.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비극적인 수년을 프로방스에 와서 보낸 북구인(北歐人) 반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태양, 그의 인상주의는 이 고장 행복의 충격을 표현 것이었다. 『행복의 충격』,P.58
 
지중해안의 따뜻한 가슴, 프로방스는 완전히 절망한 사람이 올 곳은 아니다. 오직 행복한 자,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이도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기뻐지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 『행복의 충격』,P.39
 
Lowell Herrero의 회화는 프로방스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호소한다. 가보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 미묘한 착각,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환영이다. 나는 이 환영에 매인다.
 
Lowell Herrero의 가을냄새


Harvest Picnic


Lavender Harvest I


Hillside Flowers



Autumn in Chianti

    
 화가 Lowell Herrero의 그림
 이탈리아와 프로방스지방을 돌며 접한 사람들의 모습,  
혹은 나파밸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 주위에 살아가고 있는 농부들과
그들의 일하는 모습이 Herrero 그림의 주요 테마가 되어주고 있다,
나파벨리니 끼안띠니.. 모두 와인 라벨에서나 보던 지방 이름인데...
그림에서 풍기는 이미지로만 봐도 지역 이름을 내세워 와인을 생산할 만 하다.
따뜻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 적절한 기온변화로 일구어지는 흙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힐 듯 하다.

온화한 영혼이 투영되고 조금은 과장된 유머가 얼핏 비치는 그림들
 

-마음이 무거운가요…여행이 힘이 되지요-함정임(소설가)

이 시간에도 누군가 먼 곳으로 가고 또 오고 있다. 항구와 철도역과 공항과 터미널로 가며오며 일으키는 바람 냄새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머리가 쏠리고 혼이 꺼들려간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온 사람은 가을 속으로, 삶의 진창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다. 그러다 문득 마주친 일터 유리창을 거울삼아 지난 여름의 흔적을, 내 몸, 내 영혼에 새겨온 먼 곳의 햇빛과 바람과 구름의 자취를 은밀히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러다 문득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지금 나는 이전의 그 사람인가.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곳, 여기는 이전의 그 세계인가.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라 하지 않고 ‘세계’라고 대답했다. 여기 방금 여름의 뜨거운 햇빛 속을 통과해온 두 사람의 세계인이 있다. 『여행의 기술』의 알랭 드 보통과 『나의 프로방스』의 피터 메일. 둘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행의 두 측면, 예술로서의 여행과 삶으로서의 여행을 나누어 보여준다. 청년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화가들이, 작가나 시인들이, 철학자들이 떠났던 곳, 작품화했던 곳으로, 바로 그 작가와 화가와 철학자를 동반한 여행을 떠나고,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피터 메일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았던 수많은 장소 중 오직 한 곳, 언젠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프로방스의 한 작은 마을의 집으로 옮겨가 일 년을 살아보는 것으로 여행을 현실화한다.

여름이면 유럽으로 향하던 발길을 접고 남행 열차에 몸을 싣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펼쳤다. 삶의 방식이나 여행의 방식처럼 여행서를 읽는 방식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방식은 최적의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읽는 것이다. 안락한 거실 소파나 서재가 아닌 유동적인 임시 공간, 가령 간이 휴게소나 공항 터미널의 대기 의자, 또는 유리창이 있는 열차 칸.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알랭 드 보통은 일찍이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를 외친 최초의 이방인 보들레르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하다. 구름의 발견자, 아니 구름의 산책자 보들레르처럼 그는 열차·비행기·배를 타고 바베이도스 섬으로, 낙타의 이집트로, 시나이 사막으로, 암스테르담 운하로, 레이크디스트릭트 골짜기로, 프로방스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밀밭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심지어 간이식당이 있는 길가 휴게소에까지. “고속도로 옆의 언덕에 자리 잡은 이 외딴 휴게소에는 시(詩)가 있다.(…) 예기치 않게 시적인 느낌을 주는 장소들. 공항 터미널, 항구, 역, 모텔. 어느 19세기 작가의 작품과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어느 20세기 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19세기의 작가는 프랑스의 보들레르이고, 20세기의 화가는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다. 알랭 드 보통은 이들을 통해 휴게소와 공항과 비행기와 기차와 같은 여행을 시작하는 장소들을 새롭게 주목한다. 소설가 플로베르와 철학자 훔볼트를 앞세워 여행의 동기를 이루는 두 가지 요소, 이국적인 것과 호기심을 분석하고 여행의 풍경들, 그러니까 시골과 도시의 풍경과 사막의 숭고함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시인 워즈워스와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 그리고 성서의 욥을 불러낸다. 그리고 여행의 미적 체험, 그러니까 눈을 열어주는 예술을 위해서는 프로방스의 반 고흐의 스케치 여행을 그대로 따라가 보고, 여행의 끝, 귀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의 침실 여행기’를 쓴 프랑스의 18세기 소설가 드 메스트르의 기발한 여행 습관까지 소개한다.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를 통해 시적인 언어와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당대의 에세이스트로 인정받은 알랭 드 보통은 여행에 관한 최고의, 아니 최후의 책을 쓰고 싶었던가보다. 『여행의 기술』에서 그는 여행에 관한 모든 것, 여행에의 욕구와 동기와 기대는 물론 포기와 실망까지 여행의 일부로 끌어안음으로써 여행과 여행서의 양식을 개척한 예술가들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예술의 지향점으로 여행을 모색했다면, 피터 메일은 삶의 지향점으로 여행을 사용하고 있다. 피터 메일의 이력을 보면 영국과 미국에서 15년간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했고, 이후 관리자로 광고회사를 이끈 것으로 되어 있다. 광고인이란 욕망의 흐름을 초 단위로 읽고 전략을 바꾸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잿빛의 긴 겨울과 여름 내내 눅눅한 초록의 세계가 바로 영국이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갈구하듯’프로방스의 찌는 듯한 더위와 따가운 햇살을 그리워하며, ‘마을의 상점들과 포도밭을 찍은 사진들을 보고’‘침실 창을 통해 비스듬히 스며드는 햇살에 잠을 깨는 것을 꿈꾸던’영국인 피터 메일 부부는 어느 날 그 꿈을 이룬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거의 충동적으로 일어났다고 피터 메일은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그 누구보다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 인공의 낙원이 아닌 자연의 소박한 삶, 사람 냄새 나는 집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외치듯 고백하는 것이다. “순전히 집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집을 오후에 보았지만, 저녁쯤에 마음은 벌써 그 집으로 이사를 끝낸 듯했다.”

여행 중에 본, 지워지지 않는 순간을 인생의 지도에서 시간의 점으로 표시를 한다면, 그날 그들이 본 집은 1년이라는 삶을 가능하게 한 공간의 점인 셈이다. “마스라 불리는 프로방스의 전형적인 농가. 그 지역의 돌로 지은 그 집은 바람과 햇빛을 200년 동안이나 견뎌온 탓에 옅은 꿀색도 아니고 옅은 회색도 아닌 그 중간색으로 바래 있었다.” 피터 메일의 프로방스는 18세기에 단칸방에서 시작해 아이방, 할머니방, 염소 우리, 농기구 광을 덧붙이며 확장한 탓에 이상한 삼층집이 된 이 ‘집을 둘러싼 일 년’이라 할 만큼 집이 구심점 역할을 한다. 외국인으로 구옥(?)을 소유하고 수리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프로방스의 자연과 전통과 풍습과 체제, 그리고 그곳 사람의 기질과 속내를 훤히 꿰뚫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곳에서 일 년을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통달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영국인 이방인이 프로방스에서 일 년을 살았던 소박한 이야기가 전세계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데에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

피터 메일은 굉장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눈이 닿는 대상, 그의 펜이 머무는 장면은 독자가 바로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직접 그 맛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특장이 눈부시게 발휘되는 것은 단연 사람 묘사에 있다.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할 정도다.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소설의 출발점이라면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는 지극한 삶의 여행기이자 진솔한 삶의 소설인 것이다. 주말 오후 집에 마련된 피크닉 테이블이나 집 근처 나무 그늘 아래 느긋이 앉아 가을 햇살의 잔광 속에 이 책을 읽으면 그만이다. 프로방스의 기후를 특징 짓는 면도날 같은 미스트랄 바람과 우리의 송이 버섯과 맞먹는 흙 속의 검은 황금덩어리 송로 버섯의 진미, 팔월의 염소 경주대회와 구월의 포도 수확, 그리고 햇살 맛 나는 십일월의 올리브기름. 우리가 저 멀리 암스테르담에 가는 대신 베르미르의 그림 속 풍경을 구경하듯이,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는 프로방스에 가지 않고도 프로방스를 더 잘 느끼도록, 그리하여 프로방스를 오래 추억하도록 만든다.

어떤 이는 집을 떠나 들판을 세 번 헤매기를, 그 길 끝에 등불이 켜지고 있는 마을을 아득히 바라보는 것을 여행이라 하고(김윤식), 또 어떤이는 삶, 흐르는 삶, 내 삶과 남의 삶이 만나 이루는 공명을 여행이라 했다(김화영). 나는 여행은 마약 같은 것, 한번 빠지면 도무지 떨칠 수 없는 무서운 유혹, 중독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행이란 인생의 사용, 하루 반나절, 한 주일, 한 달, 심지어 일 년의 시간을 적금 통장의 일부를 사용하듯이 내 생의 시간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알랭 드 보통과 피터 메일의 여행기를 독회한 소감으로 말하자면 여행은, 최근 유럽 청년들의 경전이 되고 있는 여행서 제목처럼 ‘세계의 사용(Usage du Monde)’임을 새삼 확인한다.     조인스 200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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