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과연 식량이 없어서 굶는 것일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갈라파고스







1798년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다. 맬서스는 가난과 배고픔을 지구상의 인구를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수단으로 본 것이다. 이 맬서스의 이론을 단적으로 사이비 이론이라고 말하는 이는 『왜 세계는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이다. 그는 굶는 이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006년 10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기아 희생자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에 10살 미만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갔다.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3분에 1명꼴로 생겨났다. 세계인구의 7분의 1인 8억5천만 명, 65억 인구의 약 20%가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아프리카는 전인구의 36%가 기아에 무방비상태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굶어죽었다. 15살 미만 북한 아동의 37%, 젖먹이는 엄마의 30%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구의 기아문제가 식량부족 탓일까. 결론적으로 현재의 기아 문제는 절대로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1984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평가에 따르면, 현재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생산되는 식량의 양은 지구 인구의 2배인 1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왜 세계는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를 기아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갑자기 곡물 시장에서 대량의 곡물을 방출하면 가격이 무너져 덤핑효과가 나타나고, 반대로 곡물을 사재기하여 인위적인 품귀현상을 불러일으켜 가격을 오르게 하는 투기꾼들인 소수의 곡물 메이저들과 투기금융자본의 합작이 주범이라는 것이다.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컨티넨털 그레인(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와 같은 거대 금융자본들은 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곡물의 생산을 제한하고, 심지어 불태우거나 바다에 빠뜨리고 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야 할 곡물이 재가 되거나 물고기의 밥이 되는 셈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도 기아의 주범이다. 저자는 높은 영아사망률 해결을 위해 무상 분유 제공을 내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의 비협조로 실패하여, 끝내 퇴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든다. 1970년 당시 칠레의 긴급과제는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문제 해결이었다. 이에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인 칠레 인민전선의 아옌데는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ℓ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때 칠레에서 목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는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제값을 주고 분유를 사겠다는 아옌데의 분유 구매 요구를 거부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왜 판매를 거부했을까. 이익을 원치 않아서? 이유는 그 반대다. 당시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인 헨리 키신저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정책을 꺼리고 있었고,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다국적 기업이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국적기업과 키신저가 이끄는 미국정부의 고립정책에 부딪친 아옌데는 CIA와 결탁한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쿠데타에 의해 암살된다. 칠레에서의 개혁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우려가 작용한 결과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벌어진다. 개혁적인 대통령 상카라는 인두세를 폐지하고 개간 가능한 토지를 국유화해 4 년 만에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지만 프랑스 정부의 조종을 받은 군부 세력에 의해 암살되고 만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식민지 정책 또한 문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경우를 보자. 세네갈은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 의해 땅콩 농사에만 매달리도록 강요받는다. 종주국인 프랑스는 세네갈을 상대로 자국에 필요한 작물인 땅콩만을 경작하게 하는 이른바 단일경작(모노컬쳐)을 강요한다. 그 결과 세네갈 정부는 땅콩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로 태국이나 캄보디아, 혹은 그 밖의 나라에서 쌀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세네갈의 주식은 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나 쌀을 수입할 수가 없다.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식량 수입의 독점권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자국의 식량증진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국민들이 굶주려야 그들의 이익이 극대화된다. 기아는 식량 부족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10 년 넘게 계속된 미국의 이라크 경제봉쇄 정책 또한 문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할 때까지 이라크는 제한된 양의 석유를 수출할 수 있다. 그리고 석유수출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국제적 감시 아래 식량이나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이라크의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유니세프에 의하면 미국의 이라크 경제 봉쇄 조치로 인해 매일 200명의 아이들이 죽어갔다고 전한다. 석유의 보고인 중동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계산이 수많은 이라크인들의 죽음을 불러온 셈이다.




물론 이런 정치적인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다. 육식의 문화도 기아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지방이 촘촘히 박힌 깊은 맛의 쇠고기를 만들기 위해 소에 기름진 옥수수 등 곡류를 먹이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1,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바로 가축이 먹는 사료가 된다. 매년 가축에게 먹이는 6억 t의 곡식을 인간이 직접 먹는다면 10억 명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육식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의 설명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막화와 대규모의 원시림 벌채 또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저자는 몇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우선적인 과제는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면한 긴급구호를 위해 비축된 비상식량을 배급하고 관리하는 것은 WFP 담당자들은 도움을 줄 나라의 사회구조가 어떤지 거의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도움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부실하고 부패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원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그들에게 농사 짓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 세계 수위의 식량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브라질의 대도시와 시골에서 아이들이 매일같이 굶주리는 것도 구조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다. 지주의 1%가 경작지의 43%를 차지하고 있고 2000년의 경우 1억 5300만 ha의 땅이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제3세계 국가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에 대한 지원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기아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장자크 루소의 “약자와 강자 사이에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익의 극대화만을 꾀하는 시장 자유화 논리는 억압과 착취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사회정의를 위해 세계시장에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자유방임적인 시장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시장주의 논리의 허상을 버리라는 충고다. 그는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의 눈멀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저자는 주장 일변도로 나가지만은 않는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을 역임했던 경력이 말해주듯 그의 주장은 신뢰성이 있는 자료들을 동원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더구나 책은 아들이 묻고 아빠가 답하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쉬운 문체로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책과 함께 푸드퍼스트(food first)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식량과 발전정책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집필한 『굶주리는 세계』를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은 식량이 충분하지 않다, 자연 탓이다. 인구가 너무 많다, 미국의 원조가 기아를 해결한다, 녹색혁명이 해결책이다 등등, 굶주림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 12가지를 골라 그 허구성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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