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화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문화의 수수께끼/마빈 해리스/한길사/2000년




  문화는 일종의 습관이다. 김치문화는 우리의 먹는 습관이고, 한복은 우리의 옷 입는 습관이고, 장례문화는 우리의 죽음을 처리하는 습관이다. 영남에는 영남의 김치 문화가 있고 호남에는 호남의 김치문화가 있듯이 한 나라 안에서도 이 습관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 차이와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속한 문화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생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이 독선적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는 인도 농부들이 굶주리면서도 왜 암소를 잡아먹지 않는지 힌두교도들의 맹목적 신앙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근시안적 태도다. 암소에게 어떤 신성한 종교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판단도 섣부르다. 육식을 금하는 동양의 정신주의니 생명존중이니 하는 말들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머쓱해질 정도로 마빈 해리스는 철저하게 그 원인을·물질적인 데서 찾는다. 먼저 트랙터와 같은 현대식 농기구를 살 여유가 없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는 유일한 농경 수단이다. 또한 암소에서 나오는 젖은 각종 유제품의 원료가 되고, 쇠똥은 비료와 연료로 사용된다. 이렇게 유용한 소를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잡아먹는다면 장기적으로 생계가 막연해진다. 마빈 해리스는 바로 여기에서 금기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해리스는 이슬람교도나 유대인들, 그리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도 설명한다. 돼지는 소처럼 풀만 먹고 살 수는 없고, 곡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인간과 먹이를 두고 직접 경쟁한다. 또 돼지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털도 없고, 땀을 흘려 체온조절도 할 수 없기에, 깨끗한 진흙 속에 뒹굴어 체온을 조절해야 한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건조한 중동의 기후에서는 먼 거리를 몰고 다니기가 힘들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중동지방은 식용에 충족될 만큼의 돼지를 사육하기에는 생태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소규모의 사육은 돼지고기에 대한 유혹만 크게 하므로 아예 돼지고기의 식용을 금지하고 양이나 염소 등을 치는 데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집단에게는 생태계가 지탱해줄 수 있는 적정한 인구수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생산 활동에 열중하다 보면 생태계가 황폐해져 결국에는 생산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해결책은 영양공급을 줄이거나 인구를 줄이는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때 피임이나 낙태와 같은 안전장치가 없었던 원시인들의 제도화된 인구축소 수단이 금기와 규제와 전쟁, 유아살해 등이었다는 것이 마빈 해리스의 설명이다.

  물론 유아살해가 옳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야만적이라고 보지 말라고 저자는 주문하면서 효과적인 피임법과 낙태법이 개발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아동살해가 자행되었는지, 18세기의 영국사를 들여다보라고 충고한다. 서구는 선이요, 비서구는 악이라는 등식이 고루한 편견임을 깨달으라는 석학의 매서운 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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