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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중단하라 ㅣ 서해클래식 15
토마스 홉스 지음, 신재일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국가의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타이타닉호처럼 커다란 배가 빙산에 부딪혔다고 가정해보자. 배 안은 서로 살아남으려는 탑승객들의 이기적인 생존본능 때문에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대혼란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때 힘 있는 자가 앞에 나서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평하게 규칙을 정하고 조난 작업을 지휘한다면 탑승객들은 기꺼이 그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고 자발적으로 그의 통제와 명령에 따를 것이다. 바로 이 힘 있는 자가 홉스가 말하는 절대권력, 즉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무적의 수중괴물로 국가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며, 청교도혁명이 한창이던 1651년 출간된 홉스의 저서 이름이기도 하다.
청교도 혁명은 1642~1660년에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으로 찰스 1세의 절대주의 강화를 둘러싸고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벌어진 내란이다. 피를 부르는 내전은 생존투쟁을 위한 정글의 상태를 방불케 하였다. 이 싸움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가 홉스의 관심사였다. 홉스의 답은 ‘계약’과 ‘동의’였다. 개인들이 자신의 욕구와 의지를 군주에게 위임하기로 계약하고, 자발적으로 통치에 따른다는 것이다. 조난의 위기에 처한 탑승객들이 힘 있는 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고 그의 통제와 명령에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힘 있는 자가 곧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에 기인한 무질서를 평정하고, 인신의 보호와 평화라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통치권으로서의 국가, 즉 리바이어던이다. 그 이전까지 유럽에서의 통치권은 신이 내린 것이었다. 당연히 교회는 홉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의회파 역시 국가를 괴물로 비유한 홉스를 따돌렸다. 그러나 홉스는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정부 구성의 원리를 사회계약론 위에 세운 최초의 근대 정치 철학자로 평가된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두 가지 중요한 권리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묵비권과 양심적인 병역 거부의 권리가 그것이다. 이 두 권리에 대한 보장 없이는 국민들의 안정과 보호에 대한 보장도 없는 것이며, 국민들의 안전과 보호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이는 국민과 통치자 사이에 맺은 ‘계약’ 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21장에서 홉스는 “통치자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통치자의 힘이 지속적으로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 스스로를 보호할 선천적인 권리는 그 어떤 계약에 의해서도 폐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홉스는 시민들에게 국가에 일방적으로 헌신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원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시민들의 자연적인 권리라고 홉스는 주장한다. 그는 “만약 어떤 백성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거나, 그의 인격이나 생활수단이 적에게 감시를 당하고, 승자에게 복종하는 조건 아래 생명과 신체적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에게는 그와 같은 조건을 수락할 자유가 있다. 그 조건을 수락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로잡은 자의 백성이 된다는 뜻이다.”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는다. 국가에 우리 자신의 권리를 양도할 때, 목숨을 지킬 권리마저 양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것, 국민을 무시하고는 국가의 정당성을 세울 수 없다는 홉스의 주장은 국민의 위상을 높이고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에 데 크게 기여하였다. 홉스의 주장대로 국가가 국민들과의 계약과 동의의 산물이라면, 국민은 일방적인 충성이나 거부만으로 국가에 대한 태도를 정할 수 없다.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에 동의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