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장의 활력 유지와 사회적 정의실현을 위한 제3의 길

제3의 길/앤서니 기든스/생각의 나무/2000년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공익(共益)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결실도 얻게 된다.”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다르게 부른다면 '가격'이다. 시장의 가격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저절로 조절되고, 생산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논리다. 가만 놓아두어도 가격이 거래를 성사시키니, 정부는 범죄 예방을 위해 치안유지 차원에서 야경꾼들로 하여금 순찰이나 돌게 하고 가급적이면 시장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 이른바 아담스미스와 같은 자유주의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야경국가론’이다. 국가는 소극적이어야지 적극적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이기적인 욕망을 앞세워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시장의 가격, 즉 보이지 않는 손이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이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은 실로 막대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의 경험은 이 ‘보이지 않는 손’이 만능이 아니었음을 일깨운다. 1929년 미국의 주식값 대폭락과 함께 폭발한 대공황은 공업 생산량의 추락과 농산물 가격 폭락, 유럽의 금융공황, 대량의 실업사태를 불러왔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의심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방과 치안만 감당하면 될 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방임주의는 대공황이 야기한 충격 앞에서 무력했다. 먼저 독과점이라는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산량은 줄이고 가격은 비싸게 받는 독과점 기업들의 횡포는 고스란히 소비자들과 중소기업의 피해로 전가되었다. 둘째, 아담 스미스의 믿음과 달리 시장 가격이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 나타났다. ‘외부효과’의 발생이 그것이다. 외부효과란 어떤 한 사람이나 단체의 경제활동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산을 정비하여 골프장을 만든다면 그 사업자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골프장을 관리하는 데에 들어가는 맹독성 약물로 인해 산 아래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결국 자유로운 사익 추구는 공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셋째,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기업들은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공공재 생산을 외면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했으며 그 손의 힘도 생각한 것처럼 만능은 아니었다. ‘보이는 손’, 즉 정부의 개입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와 같은 극좌, 파시즘과 같은 극우가 확산됐다. 각국은 극단주의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 당시 스웨덴의 사민당은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국가 계획의 안정성을 결합하려 했다. 그 결과 노동자, 자본가, 정부 삼자의 대타협으로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 탄생했다. 대량실업 사태 속에서, 자본가는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노동자는 임금을 양보했으며, 정부는 사회보장을 약속했다. 스웨덴은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고 세계는 스웨덴에 주목했다. 그리고 지금은 좌파 정책의 상징으로 꼽히는 스웨덴 복지국가제도에 ‘중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도’가 서유럽에서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식 세계화가 ‘뜨거운 감자’였던 1990년대였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었다. 신자유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밀튼 프리드만, 하이예크 등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자유라는 가치를 극대화시켜야 정부개입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신자유주의론자들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담스미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와 하이예크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는 달리 '자유'의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라는 말로 시장개방을 주장한다. 이른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용어도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우루과이라운드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한 시장개방의 압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여 경제적 윤택함을 누리고 있는 서구 선진국에서는 경제적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경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서는 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잘 운영되고 있지 못한 점을 근거로 들어,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개방, 공기업 민영화 등 자유경쟁이 사회적인 효율성을 높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2007년 10월 10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세계화의 3대 요소 중 기술과 외국자본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최근 20년간 세계화가 소득 불균형에 미쳤던 영향을 분석한 이 보고서는 세계화로 전체적인 부가 증가했지만 저소득 노동자보다 숙련 노동자의 소득 증가율이 훨씬 높아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외국자본이 개발도상국의 기술집약적 산업에 투자를 선호함으로써 숙련노동자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1996년 11.6%였던 빈곤층이 2006년 20.1%로 늘었고 중간층은 55.5%에서 43.7%로 축소됐다. 빈곤층은 건강도 악화돼 하위 10%의 양호한 건강 비율이 98년 43.7%에서 2005년에는 24.1%로 내려갔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으로 비정규직과 임시직이 늘어 노동자들의 고용의 질 또한 악화되었다. 생산, 교육, 고용, 주거, 소비 등 모든 부문에 있어서의 양극화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큰 사회적 문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음미해야 할 만한 책이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제3의 길』이다.


토니 블레어는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기치로 내걸고 영국의 노동당을 현대화함으로써 1997년 총선에서 압승했다. 이때 세계적인 석학인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제3의 길'을 제창해,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의 개혁 노선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기든스가 말하는 ‘제3의 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을 풍미했던 ‘제1의 길’과 ‘제2의 길’을 넘어서려는 정치적인 시도다. 기본적으로 제3의 길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제1의 길’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라면, ‘제2의 길’은 시장에서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모델이다. 한쪽은 좌파의 길이라면, 또 한 쪽은 우파의 길이다. ‘제3의 길’은 북유럽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모델, 즉 좌파의 모델에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미국과 같은 신자유주의 국가의 모델, 즉 우파의 모델에는 사회적 평등을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제1의 길’과 ‘제2의 길’에 대한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제3의 길』에서 저자는 ‘제1의 길’의 성공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네덜란드 모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6년 전 바쎄나르에서 체결된 협약*(1982년의 바쎄나르 협약, Wassenaar Agreement은 노사간에 이루어진 임금안정과 근로시간단축을 중심으로 한 합의이다.)에서 네덜란드 노동조합들은 작업 시간의 점진적인 축소와 교환하여 임금의 경감에 합의하였다. 그 결과 노동 임금은 과거 10년 동안 30퍼센트 이상 감소한 반면에 경제는 번영하였다. 이러한 번영은 1997년 6퍼센트 이하라는 낮은 실업률과 더불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네덜란드 모델은 적어도 일의 창출과 복지 개혁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인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회투자국가’와 적극적 복지에서 잘 나타난다. 앤서니 기든스가 언급한 사회투자국가는 경제가 잘 작동하려면 교육, 직업훈련, 주거, 의료 등 사회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보육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투자를 늘려서 단기적으로는 여성노동력 확보, 중장기적으로는 인적자본 유지 및 빈곤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복지의 투자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대신 직업 훈련과 교육 개혁 등의 적극적 복지 정책 시행으로 이들이 사회에 재편입되는 것을 도와야 한다. 빈민지역의 대규모 재개발도 범죄 예방, 빈민에 대한 기회균등과 사회적 배제를 막기 위한 중요한 사회투자 정책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일생 동안 지속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인 ‘평생교육’도 일종의 사회투자라 할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여 직장에 부설되어 있는 탁아소에 맡길 수 있는 이른바 ‘가족 친화적 작업장’ 또한 여성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투자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복지를 근로와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근로연계복지’라고도 이름할 수 있다. 근로연계복지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3의 길’은 전통적 복지국가와 구분되고, 경제성장과 사회정책을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노선과도 구분된다. ‘제3의 길’의 핵심은 복지를 생산요소, 투자로 본다는 데 있다. 사회투자 전략은 노동시장 정책과 실업, 빈곤 정책의 적극적 연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도 기존 모델과 상이하다. 청장년 실업자와 빈민, 그리고 편부모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는 고전적 복지국가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취약계층을 노동시장 안으로 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은 신자유주의와 뚜렷이 구분된다. 신자유주의 노선이 사회복지 지출을 비생산적이고 경제에 부담을 주는 상충적 관계로 인식하지만 사회투자국가에서는 사회정책의 생산적 기능이 강조되고 경제성장과 사회정책을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한다. 현대 경제, 특히 지식기반 경제가 잘 작동하려면 교육, 직업훈련, 주거, 의료 등 사회정책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제3의 길』의 주제는 ‘사회민주주의의 갱신, The Renewal of Social Democracy ’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평등’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의 빈곤층은 가난 때문에 사회 중심에서 강제적으로 배제되는 한편 부유층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배제시킨다. 이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통합의 과제가 국가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복지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국가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단체들은 대선후보들에게 “성장 중시 경제 발전을 차기 정부의 핵심 전략으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개발제한구역 폐지, 토지거래 허가제도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분양원가 공개 폐지, 은행의 비금융회사 출자 제한 완화, 법인세 인하 등이 그 구체적 내용이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사회투자국가론’을 한국 사회에 적극 수용하자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경제사회구조가 오늘날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등의 새로운 상황과 위험을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급 격차(2003년 1.53배)가 해마다 늘고 있고, 10가구 중 1가구가 절대빈곤 상태에 빠져 있을 정도로 소득분배가 악화하고 있다. 2005년 현재 4829만명이던 인구는 2050년에는 4234만명으로 줄어드는 데 비해 65살 이상의 노인은 2005년 전체 인구의 9.1%에서 2050년에는 37.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이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사회경제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사회투자국가론’이라는 것이다.


우파들은 ‘제3의 길’이 복지국가의 환상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좌파들은 ‘제3의 길’이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제3의 길』에서 주장하고 있는 사회투자국가는 사회복지정책이 경제발전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만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접근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고 하면서 ‘사회투자국가론’은 시장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혼란과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들어 약점으로 든다.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 평등, 분배 등의 가치를 너무나 희생하고 있다는 점, 또한 비판론의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서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중도좌파 정권들이 실각하고 우파 정권들이 재등장한 것은 ‘제3의 길’의 한계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앤서니 기든스는 정부와 국가 개혁, 불평등의 해소, 세계화에의 대응이라는 시각에서 ‘제3의 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장의 활력 유지와 사회적 정의실현,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제3의 길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유효한 이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3의 길의 한국적 수용을 위해 학계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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