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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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사고를 위한 생각의 도구

생각의 탄생/로버트 루트번스타인/에코의 서재



‘논다’라는 단어에는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놀고 있네.”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의 경우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죠. 비아냥거리는 말에 기분 좋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노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요.

놀이는 신나기도 하지만 놀이가 주는 실용적 도움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아이들은 뛰고 솟구치고 물구나무 서는 놀이를 통해 육체를 단련하고 평형감각을 키우고, 전략을 필요로 하는 게임을 통해 사고력을 발달시키고, 협력을 요구하는 게임이나 룰의 준수를 요구하는 게임을 통해 사회성과 준법성을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놀이가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이는 스위스의 아동발달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였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는 놀이는 정신적 , 신체적 발달. 사회적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놀이의 창조성을 장 피아제보다 더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이는『생각의 탄생』의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입니다. 2007년 10월에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기업이 저성장의 벽에 부딪힌 것은 창조성이 결여된 일 중심의 문화 때문이라고 말하며, “창조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시와 음악, 미술이나 공연 등에서 볼 수 있는 예술성을 사업에 가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는 놀이는 곧 창조라고 말했습니다.

생리학자인 루트번스타인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어떻게 나오는지 줄곧 의문을 품었죠. 그는 창의력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역사학자인 부인과 함께 천재들의 사고 구조 분석에 착수했습니다. 먼저 그는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 리처드 파인만 등 창의성이 빛나는 천재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천재들의 사고 회로에 존재하는 공통점에 주목했죠. 그 결과 그들은 하나같이 ‘생각의 도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이 사용한 생각의 도구들을 13개의 단계로 정리하는 야심찬 기획에 착수했고, 『생각의 탄생』이라는 저서는 바로 그 야심찬 기획의 결과물입니다.

저자는 ‘창조적 사고의 결과로 나오는 개념은 공식적인 의사전달 시스템, 이를테면 말이나 방정식, 그림, 음악, 춤 등으로 변환될 수 있으며 그 변환의 과정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13 가지의 생각의 도구, 즉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을 책을 통해 하나하나 소개합니다. 과연 이 도구들을 사용하면 누구나 창조의 대가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죠.


먼저 관찰입니다. 사람들은 까마귀를 검다고 여기지만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은 까마귀는 “홀연 젖빛 금색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공작석의 빛을 발하기도” 한다고 말한 바 있죠. 사람들은 까마귀를 편견에 얽매여 까마귀를 무조건 검다고 말하지만 박지원은 ‘있는 그대로’의 까마귀를 사실적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 결과 까마귀는 햇빛 속에서 자주색이나 비취색으로 바뀌는, 풍부한 빛을 머금은 존재라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던 거죠.

관념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관념의 사물’을 볼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사물의 원리를 수용할 수 있는 적극적인 관찰의 눈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늘이 파랗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았지만 18세기의 물리학자 존 틴달은 하늘의 색깔이 대기 중의 먼지나 다른 입자들과 부딪혀 산란하는 햇빛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죠. 적극적인 관찰의 눈은 이렇게 발견이나 발명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도구는 ‘형상화’, 곧 상상 속에서 사물을 그려내는 능력입니다. 보이지 않는 원자의 움직임을 상상 속에서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곧 형상화의 능력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테네시 윌리엄스는 희곡을 써 나가면서 직접 연기한 탓에, 집주인으로부터 미쳤다는 오해까지 받았죠. 형상화를 극단적으로 밀고나간 결과입니다.

저자는 형상화 능력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옷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시각적으로 떠올려보라고 충고합니다. 시를 눈으로 보기보다는 직접 낭송해보거나 시 낭송을 들으라는 거죠. 저자는 아예 “예술을 하라”고 당부까지 합니다. 음악이나 춤, 회화나 요리에 관한 것을 배우기만 하지 말고 직접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쓰고, 음식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인 거죠.


세 번째 생각의 도구는 ‘추상화’입니다. 추상화는 일종의 단순화죠. 세상에는 수많은 꽃이 존재합니다. 그 각각의 생김새와 향기는 제각기 다르죠. 그러나 그 다름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꽃들 간에는 다른 종들과 공유하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꽃들의 개별적 차이를 제거하고, 그 공통적인 속성을 뽑아내(철학용어로 말하자면‘추상抽象'해 내어) 우리는 '꽃’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추상화’는 복잡한 현상과 사물의 공통성을 간파해내는 민첩한 사고의 기술입니다.


패턴인식과 패턴형성도 유용한 생각의 도구입니다. 19세기의 유리공예가 에밀 갈레는 유리를 붙였을 때 나오는 기상천외한 모양과 효과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벽지의 대리석 무늬가 수천 개의 신기한 형상, 혹은 석양의 구름, 거대한 양 우리로 변한다고 말했죠.

패턴인식이란 복잡한 사물의 모습에서 일정한 형상을 읽어내는 일이다. 우리가 음악에 사용하는 음계 역시 일정한 패턴이고, 혈액형 역시 일정한 패턴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BO식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9번 염색체에 들어있고, 항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 역할도 상당히 자세하게 밝혀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적혈구가 만들어내는 항원까지 고려해서 혈액을 분류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ABO식을 포함해서 모두 29종류가 밝혀져 있고, 사람의 혈액형은 모두 600여 가지나 있다고 합니다. 혈액형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패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저자는 우리가 경험한 세계를 표현하고, 경계 짓고, 정의하기 위해 더 많은 패턴을 발명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실제 지식을 소유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이해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유용한 생각의 도구는 유추입니다. 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들 사이에 기능적으로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서울대 김영정 교수는 주전자의 끓는 물을 보고 증기기관의 원리를 추론해내는 사고가 통합적 사고의 전형적인 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주전자의 끓는 물은 구체적 현상이요, 증기기관의 원리는 추상적 원리입니다. 이렇게 이미 잘 알려진 현상을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새로운 원리를 발견해내는 기술이 유추죠.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구체적 현상을 바탕으로 사고를 확장하여 만유인력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내 마음 호수다’와 같은 문학적 비유도 마음의 평화와 호수의 잔잔함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유추입니다.


몸으로 생각하기도 유용한 생각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머리로 생각하면 금방 오타가 납니다. 오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충실해야죠. 몸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바로 몸의 움직임 속에 행동을 각인시키라는 말입니다. 볼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백 번의 강의를 듣는 것보다 플로어에 올라서 직접 공을 굴리는 것이 낫겠죠. 몸은 마음의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거든요. 몸을 아끼지 마십시오. ‘몸으로 때우기’는 아주 좋은 학습의 방법입니다.


감정이입도 훌륭한 생각의 도구입니다. 영국 배우 데니얼 데이루이스는 자신이 맡은 역을 실제생활에서 ‘살아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극중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극중의 인물이 되어 보라는 것이죠. 의사라면 환자가 되어보고, 교사라면 학생이 되어보고, 아들이라면 아버지가 되어보는 것이 감정이입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바로 이런 경험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게 해주는,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일깨워줄 수 있을 것입니다.


3차원적 공간을 2차원적으로 변형하기, 모형만들기도 유용한 생각의 도구입니다. 2차원적 지도를 3차원적으로 상상해보는 차원적 사고도 좋겠습니다. 종이접기는 2차원적 소재를 구부리고, 접고, 압착해서 3차원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좋은 훈련입니다.


놀이는 저자가 강조하는 아주 중요한 생각의 도구입니다. 저자는 놀이를 활용한 창조적 천재의 예로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을 듭니다. 사격, 골프, 포커 등 각종 게임광이었던 플레밍에게 미생물 연구는 골치 아픈 과제가 아니라 박테리아와 함께하는 ‘놀이’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놀기 위해서는 좀더 과격해질 용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 말라고 교육받은 일도 가끔 해 보라는 것이죠. 음식을 가지고도 장난도 쳐보고, 진흙탕에서 뛰어다녀도 보라는 것입니다. 몸의 기하학적 마술사라고 불리는 필로볼러스 무용단은 비가 내린 뒤의 진흙탕 속에서 뛰어놀았던 경험에서 떠오른 영감을 이용해 새로운 안무, ‘데이 투(Day Two)’를 창작했다고 합니다. 놀이를 얕보아선 안 되겠지요.


변형도 유용한 생각의 도구입니다. 리차드 파인만은 많은 방정식을 소리로 변환시켰다고 합니다. 그 결과 등차수열은 꾸준히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음계가 되었고, 등비수열은 점차 빨라지는외침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고, 손으로 두드리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지각하는 육체적 감각과 물리적 세계의 개념을 서로 결부시켰다고 합니다. 화가인 파울 클레는 음악을 이미지로 변형시키기도 했답니다.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이 어떤 형상을 떠올려주는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변형의 좋은 연습이 되겠지요.


생각 도구의 완결은 통합입니다. 그는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오늘날의 교육이 학문간 장벽에 따라 나뉘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창조적 사고의 발육이 저해된다고 말합니다. 수학자가 수식 안에서만 생각하고, 음악가가 음표 안에서만 생각하고, 소설가가 단어 안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히지 말고,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을 하나로 하라는 것이 저자의 충고입니다.


책을 읽었다면 그것을 말로써 직접 표현해보는 것, 머릿속에서 귓속에 흐르는 음악을 구체적 형상으로 떠올려보는 것, 바로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당장에 실천해보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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