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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평점 :
동양인과 서양인의 생각의 지도는 어떻게 다른가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김영사/2004
주변 상황에서 분리〮〮〮〮∙고립되어 있는 둥그런 구(球)에서 상하좌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상하좌우엔 반드시 기준이 필요한 거니까요. 동서남북의 방향 설정도 기준이 없이는 불가능한 개념입니다.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한 쪽은 동쪽이 되고 또 한 쪽은 서쪽이 되지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해가 뜨는 쪽에 있는 대한민국이 동쪽이 되지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해가 뜨는 태평양 저편에 있는 미국이 동쪽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 기준이 없는 한 동쪽이니 서쪽이니 하는 방향개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명백하게도 동양이나 서양이나, 동구니 서구니 하는 방향을 전제로 한 개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서양이니 동양이니 하는 개념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동쪽 먼 끝에 있는 나라가 되는 거구요. 그래서 대한민국은 극동아시아의 한 국가가 되었던 거지요.
어쨌든 동양과 서양이라는 개념이 어떤 속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임의적인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리처드 니스벳이 지은 『생각의 지도』는 동양과 서양의 사고 과정에서 나타타는 차이를 섬세하게 분석하고 그 기원을 설명한 책입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지도에 의존합니다. 서양과 동양이란 서로 다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동양과 서양에 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생각의 지도’ 가 필요하다는 것이 러처드 니스벳의 주장입니다. 니스벳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사고 체계에서 정말로 다르다면, 태도 신념 가치 선호와 같은 심리적 특성들에서 나타나는 문화간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생각의 도구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문화에 대해서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보편주의자들이 그들이죠. 그들은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인지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키모인들이건 피그미족이건 지각과 기억, 인과분석과 범주화, 그리고 추론과정에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문화권의 사람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신념 체계가 다르다면, 그것은 그들이 세상의 다른 측면을 모거나 아니면 단순히 다른 내용을 교육받았기 때문이지 서로 다른 인지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자 또한 한때는 보편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에 대한 철학자와 인문학자, 역사학자들의 저술을 탐독하기 시작하면서 보편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각종 고전과 연구서, 행동양식에 대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임을 보여줍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해보시오'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인들은 주로 성격 형용사(친절하다, 근면하다 등)나 자신의 행동(우표수집을 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등)을 말하는 데 비해, 중국. 일본. 한국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동원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많이 언급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서양은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동양인들은 사회적 맥락을 중시한다는 말입니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이러한 차이를 ‘저맥락(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의 언급을 통해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저맥락 사회인 서양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떼어내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 인간이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서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지요.
다양한 색깔의 볼펜들을 보여주면서 하나를 고르게 하는 실험 결과 한국인들은 가장 흔한 색깔을, 미국인들은 가장 희귀한 색깔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개성을 중시하는 서양인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의 속담을 생각한다면 한국인들의 개성추구가 서양인에 비해 왜 소극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가요. 자기주장이 강하고 개성이 분명하다 보면 논쟁이 잦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논쟁은 ‘제2의 천성’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인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기주장을 하는 훈련을 받지만 동양에서는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맥락을 중시하는 동양인들은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자기를 억누르지만, 개성을 중시하는 서양인들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논쟁을 좋아하는 서양에서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지는 인식론으로서의 논리학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법적으로 가리기 위해서는 법적 분쟁도 잦습니다. 책은 재미있는 자료를 소개해줍니다. 바로 ‘엔지니어와 변호사에 대한 상대적 선호’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한 나라의 변호사의 수를 한 나라의 엔지니어의 수로 나눈 것이 ‘엔지니어와 변호사에 대한 상대적 선호’를 보여주는 지표인데, 그 지표에 따르자면 미국이 일본에 비해 41배 정도 엔지니어에 비해 변호사를 선호한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적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갈등이 법적 대결로 해결되지만, 일본과 같은 집합주의적 사회에서는 중재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법적 해결을 시도할 때 선과 악은 분명히 구분되며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기본전제로 하지만, 동양에서의 갈등의 해결 목적은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쌍방간의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갈등의 해결수단으로서 타협이 중시된다는 것입니다.
책은 동양인의 맥락중시적 사고방식에 대한 실증적 경험들을 풍부하게 제시해줍니다. 일본과 미국 학생들에게 물고기가 중앙에 등장하는 물속 장면 애니메이션을 20초가량 보여줍니다. 양쪽 모두 중앙의 물고기를 비슷하게 기억했지만 물풀이나 개구리, 우렁이 등 배경 요소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 이상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또 중국 학생과 미국 학생에게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상황을 분석토록 했을 때, 중국 학생들은 72%가 문제의 원인을 쌍방에서 찾으려는 양비론적인 의견을 내거나 대립하는 견해를 절충하려고 노력한데 반해, 미국 학생들은 26%만이 그런 식으로 문제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서양은 논리에 기반한 양자택일(Either/Or)을, 동양은 종합과 융화(Both/And)를 지향한다는 이야기죠.
소와 닭과 풀이 그려진 3개의 그림 중에서 서로 관련된 2개를 묶는 과제를 주었을 때, 미국의 어린이들은 같은 분류 체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소와 닭을 하나로 묶지만 중국의 어린이들은 소와 풀을 묶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한쪽이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 ‘범주’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면 다른 한쪽은 서로의 ‘관계’에 근거한 방식을 사용한 까닭이지요. 소와 닭은 동물이라는 ‘동물’이라는 명사적 범주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소와 풀을 묶는 체계는 무엇일까요. 바로 ‘소가 풀을 먹는다’는 동사적 관계입니다. 서양인들에게 세상은 사물로 구성된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 사물을 포함한 범주와 이를 지배하는 규칙을 밝히려 하죠. 서양 아이들이 명사를 먼저 배우는 것도, 범주는 명사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동양인은 수없이 많은 관련 요인과 전체 맥락 속에서 사물을 파악하려 합니다. 그리고 사물들의 관계는 동사에 의해 표현됩니다. 중국어나 일본어, 한국어에서 동사가 문장의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 오는 것도 그 위치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곳들이기 때문이죠. ‘차’를 마시고 있기에 동양인들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묻지만 ‘마시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서양인들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묻습니다. 명사를 중시하는 서양인과 동사를 중시하는 동양인의 속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먼저 니스벳은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형태, 즉 도시국가 형태의 정치구조와 공회정치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저항적인 지식인들은 한 도시를 피해 자유롭게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개인의 자유로운 지적탐구가 가능했었었다는 점입니다. 또 고대 그리스가 해안가에 있었기 때문에 무역을 중심으로 삼았고, 그 결과 다른 사람, 다른 관습, 다른 사고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민족과 다른 종교, 다른 정치적 체계와의 접촉은 자연히 그들의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했고, 서로 다른 차이, 즉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논리학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중국의 자연환경은 대체로 평탄한 농지와, 낮은 산들과 강들로 이루어져 농경에 적합하였고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유리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쌀농사와 같은 공동작업은 서로간의 화합이 매우 중요하였고, 쌀농사를 위한 관개공사는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필요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해안까지 산으로 연결되어 농업보다는 사냥과 수렵, 목축이나 무역에 적합했던 그리스의 자연환경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악어나 도마뱀과 같이 일부 파충류가 낳는 알은 주변의 기온에 따라 암수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도마뱀의 경우는 33℃ 이상의 기온에서 알이 부화되면 대부분 수컷 도마뱀이 태어나고, 30℃ 이하에서는 거의 대부분 암컷 도마뱀으로 태어나고, 30~33℃ 사이에서는 암수의 비율이 고르게 태어난다고 합니다. 파충류에 있어서는 환경의 차이가 성별까지도 결정지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니스벳의 견해입니다. 내가 아무리 독립적인 사고를 하고 싶다 하여도 내가 속한 문화, 즉 내가 속한 공동체의 체제를 완벽하게 벗어나기란 어렵다는 것입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니스벳은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라고 말합니다. 차이와 다름을 알고 그것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함께 어울려 사는 공생의 지혜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