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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저엔트로피 사회를 향하여 삶의 틀을 바꾸자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세종연구원
1600년대 초에 프란시스 베이컨이 썼다는 『뉴 아틀란티스』는 과학이 유토피아를 건설해 줄 것이라는 낙관주의적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은 페루에서 닻을 올려 중국으로 항해하던 배가 폭풍우를 맞이하여 항로를 잃어버리고 헤매다 마침내 지도에 나오지 않는 땅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로 그곳이 인간의 과학이 만들어낸 유토피아 벤살렘 왕국이다. 벤살렘은 둘레가 5600마일로, 토양이 비옥한 섬이다. 벤살렘의 실력자는 학술원 회원인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건강을 증진시켜주고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물을 만들고, 유성의 체계와 운동을 모방한 거대한 건물을 만들고, 다양한 생물체를 번식시키고, 동물의 손상된 부위를 재생하는 방법도 연구한다. 과학자들의 손에서 섬은 유토피아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과학이 유토피아를 건설해줄 것이라는 당시의 이런 낙관론은 비단 프란시스 베이컨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지식의 진보가 인간의 삶의 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줄 것이라는 낙관주의적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의 과학문명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엔트로피』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도 과학문명이 장밋빛 미래를 건설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엔트로피』는 문명의 종말을 경고하는 책이다. 베이컨이 생각했던 대로 과학문명이 유토피아를 건설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의 과학문명에 대한 섬뜩한 경고인 셈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현대 문명에 대한 비극적 전망을 말하기 위해 끌어들인 개념은 열역학 법칙이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이 우주의 총 에너지는 불변이다. 즉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우주 전체의 에너지는 보존된다.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해서 새롭게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에너지를 계속 사용하더라도 고갈되지 않는다. 단지 그 형태만 변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석탄을 태우면 에너지 총량에는 변화가 없을지 모르지만 일의 에너지원이 되는 석탄은 다시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에너지와 물질의 형태 변화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질서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가 증가하는 상태로만 변할 수 있으며, 그 되돌림은 불가능하다. 이 때 사용 불가능한 형태로 바뀌어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곧 엔트로피란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양에 대한 척도이며, 엔트로피의 증가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를 뜻한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로도 표현된다. 가령 물과 잉크가 따로 있을 때는 물은 물대로 존재하고 잉크는 잉크대로 존재하므로 ‘무질서’하지 않다. 즉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다. 그러나 잉크가 점점 퍼져가면서 물속의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종국에는 잉크의 확산 현상은 멈춘다. 마찬가지로 빨갛게 단 부지깽이를 난로에서 꺼내어 공기 중에 방치하면, 부지깽이가 식어감에 따라 주위의 공기가 뜨거워진다. 열은 언제나 뜨거운 물체에서 찬 물체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부지깽이와 주위의 공기는 같은 온도를 유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에너지 수준에서 차이가 없어진 상태를 평형 상태라고 부른다. 이 상태는 정지되어 있는 잉크병 속의 물과 비슷한 상태다. 이 상태는 운동이 정지된 상태로서 이미 유용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다. 바로 이 상태가 엔트로피가 최대로 된 상태요, 이는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한다.
리프킨은 “궁극적으로 정치경제의 흥망, 국가의 성쇠, 상공업의 변화, 부와 빈곤의 원천 그리고 인간 모두의 물질적 복지 등을 좌우한다.”라는, 노벨상을 수상한 화학자 소디의 발언을 인용하며 인간이 행하는 모든 물리적 활동은 열역학 제1법칙 및 제2법칙의 형태로 표현된다고 한다. 저자는 “카드 한 장을 한 장을 숫자와 그림에 맞추어 질서 있게 쌓아놓았다고 하자. 이 카드 뭉치는 질서의 최대값, 또는 엔트로피의 최소값에 있다. 이 카드 뭉치를 방바닥에 던지면 무질서한 상태로 흩어질 것이다. 카드 한 장 한 장을 집어 처음처럼 질서 있는 상태로 쌓아올리려면 카드를 뿌릴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카드의 예를 든다. 이 비유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카드 뭉치를 던진다는 것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일, 곧 무질서도를 증가시키는 일이다. 이는 곧 인간의 에너지 사용 행위를 의미한다.
리프킨은 무엇이 엔트로피를 증가하는 데 일조했는가를 책을 통해 조목조목 살핀다.
먼저 기술이다. 기술의 규모가 크고 복잡할수록 에너지의 소비량이 많아진다.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에너지의 소비는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쓸 수 없는 에너지, 곧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술이 환경에 대한 의존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제도의 발달 역시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리프킨은 정치 및 경제기구들은 기계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변환자들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문화전체를 통과하는 에너지 흐름을 더욱 원활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에너지의 흐름이 원활하게 되어 결국 에너지의 부족사태를 맞을 때 국가는 유용한 에너지원을 찾아 영토확장을 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라고 리프킨은 설명한다.
전문화는 증가하는 복잡성 및 집중화와 나란히 진행되는데 이 역시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이 전문화로 인해 각 개인의 기능은 더욱 세분화되고 한정되지만 지나친 전문화로 인해서 융통성을 잃어버리고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리프킨은 경고한다.
리프킨은 미국에서 농업장관을 지낸 클리포드 하딘이 “한 사람의 인력으로 현대적이고 기계화된 사육시스템을 통해 7만 5,000마리의 닭을 키우고, 자동 사료 공급 장치를 써서 5,000 마리의 소를 키울 수 있는 나라가 미국 이외에 어디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현대적 농업이 얼마나 고엔트로피 산업인지를 설득력이 있게 말해준다.
이동의 효율을 현저히 증가시켜주는 수송수단과 도시화 역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고 리프킨은 지적한다. 도시의 팽창으로 무질서가 축적됨에 따라 도시의 통치기구는 더욱 비대해진다는 것도 도시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역시 골치다.
리프킨은 전쟁준비는 인간 활동 중 가장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활동이라고 하면서 미사일을 만드는 것은 “후손들이 쓸 쟁기를 빼앗아 칼을 만들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교육제도의 중앙집중화 또한 문제다. 교육제도의 중앙집중화로 새로운 정보기술이나 전문화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보가 대량으로 늘어나면서 에너지 소비도 크게 늘어났으며, 그 결과 쓰레기 정보와 같은 무질서가 축적되고, 엔트로피 과정이 더욱 빨라졌다는 것 또한 문제다.
리프킨은 세계인구의 6%를 차지하는 미국이 전세계 에너지 총소비량의 1/3을 차지한다고 비판하면서 에너지 문제의 대안으로서 내놓은 자구책들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를 검토한다. 먼저 석탄을 원료로 휘발유를 얻는 합성연료는 화석연료와 같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에서 파생된 것일 뿐이고, 합성연료의 에너지를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합성연료의 효율성은 형편없으며, 그 안정성이 문제가 되는 핵연료도 에너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리프킨은 지적한다.
리프킨은 고엔트로피 사회에서 저엔트로피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핵심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제3세계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구의 생물학적 한계를 지키자는 주장은 가난한 사람을 영원한 노예상태로 묶어두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으리으리한 욕실이 달린 저택에 살면서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벤츠를 모는 상류사호의 생태론자들이 깨끗한 공기를 요구하려면 우선 자신들의 경제적 풍요를 이루는 부를 좀더 균등하게 재분배해야 한다고 리프킨은 지적한다.
둘째,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전력시스템을 분산적인 태양에너지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전력시스템을 태양발전시스템으로 대체하면 고도의 에너지가 필요한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과 같은 고엔트로피 산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태양에너지에만 의존하는 체제로 전환하려면 기술과 경제에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리프킨은 현재의 고엔트로피 문화에서 태양과 같은 재상가능에너지를 사용하는 저엔트로피 문화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생각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엔트로피 시대에는 성장이 삶의 목표였지만 저엔트로피 시대에는 검약이 삶의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하고, 무절제한 소비와 물질적 집착 등에서 벗어나 내적인 성장을 중시하는 태도, 생태적인 관심 등에 기초를 두는 사고방식으로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경제학자 슈마허는 “태양에너지로 집 한 채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록펠러 센터에 난방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양에너지와 풍력을 합친다 해도 엘리베이터조차 가동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대량생산과 대도시의 삶이 태양에너지 시대의 모델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에너지 시대에 맞는 모델은 어떤 것일까.
리프킨은『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슈마허가 제시한 이른바 ‘중간기술’을 그 모델로 든다. 중간기술은 인간의 노동력을 최대로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작은 규모의 기술이다. 호미로 농사를 짓고 있는 제3세계의 농촌을 개발하기 위해서 트랙터와 콤바인을 들여오게 되면, 농촌인구 과잉에 일자리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 대다수의 제3세계에 더 많은 실업과 혼란을 야기하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복잡한 기계에 무지한 농민들은 기계와 그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 매여 버리게 된다. 그래서 슈마허 박사는 호미와 트랙터의 중간에 해당하는 그 지역의 상황에 적합한 기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중간기술이라 이름붙이고, 그러한 기술을 연구, 개발하기 위하여 '중간기술 개발 그룹'이라는 국제적인 단체를 조직하게 된다.
중간기술의 개념은 순전히 슈마허 박사의 창안은 나이다. 슈마허 스스로가 인정하듯 그것은 본래 간디의 아이디어였다. 영국의 지배하에 들면서부터 영국의 섬유 공업이 인도 가내 공업을 파괴하면서 영국은 섬유 산업을 통해서 인도로 인해 많은 이윤을 가져가고 있을 때 간디는 서양의 거대한 생산체계가 제3세계의 민중을 소외시키고 자연을 약탈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지배하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그리고 인도의 지방 산업을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도의 섬유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영국의 섬유공업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인도인들 스스로가 물레를 돌려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레 역시 인간의 편리를 증진시키는 기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의 대규모 섬유공업처럼 인도인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며 인간성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 간디의 생각이었다. 슈마허의 ‘중간기술’은 바로 이런 간디의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시대, 경제 성장을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 시대, 기술만이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것이라는 기대로 기술과 인력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대에 어떤 정부가 중간기술과 같은 저엔트로피 기술을 도입하겠는가. 인류의 세계관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지 않는 이상 요원한 일이다. 지구는 현세의 인류만을 위한 곳이 아니고 미래의 후손들과 같이 공유하는 곳이며, 인류는 홀로 독불장군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이루는 한 구성원일 뿐이라는 세계관의 대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리프킨의 책『엔트로피』는 독자들에게 통렬한 각성과 실천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