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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생각해 봐! -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걸
홍세화 외 지음 / 낮은산 / 2008년 10월
평점 :
경제의 논리, 효율의 논리만이 능사인가
1970년대 후반 세계 굴지의 기업인 포드 자동차 회사는 서민을 겨냥한 주력 품목으로 ‘핀토(Pinto)’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 차는 충돌 시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드사는 이 차의 양산을 강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포드사는 이 결함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드사는 왜 알면서도 ‘핀토’의 출시를 강행했을까. 결함을 가진 차를 회수해서 교정하는 비용, 즉 리콜 비용이 사고가 났을 때 보상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크다는 계산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둘째로 치고 우선 이익을 남기고 보자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효율성의 논리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가장 막강한 논리가 이 효율성의 논리다. 경제학에서 비롯된 이 논리가 정치는 물론 종교, 교육, 의료와 복지의 울타리를 넘어 무한 확산되고 있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의 저자 이정전은 어느 한 영역이 비대해져서 다른 영역을 침범하면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영역이 이상적으로 비대해져서 정치의 원칙인 평등의 원칙이 경제영역을 지배하게 된다면 경제는 엉망이 될 것이고, 반대로 시장의 원리인 효율성의 논리가 정치영역을 지배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정의롭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효율의 논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 거품을 만들고 있다.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 걸』, 이 다소 긴 제목의 책은 효율성의 논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는가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말해주는 책이다.
책이 가르치려고 하는 길은 효율성의 길이 아니라 사람됨의 길이요, 공생의 길이요, 정의의 길이다. 성장과 성공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불편해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경제적 거래는 오직 최대의 이윤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과학이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자들, 인간의 생명보다는 이윤의 창출이 더 먼저라고 생각하는 의료자본가들, 소설과 시를 읽는 것을 낭만주의적 사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나눈다는 것은 제 몫을 뺏기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세계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정치가들이 읽으면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는 책이 바로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 걸』이다.
책이 말하는 ‘거꾸로 생각해’보자는 것은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창의적인 방식,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소위 ‘크리에이티브’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돈의 논리, 효율의 논리, 가진 자의 논리를 뒤집어 보자는 것이다.
돈의 논리, 효율의 논리, 가진 자의 논리는 ‘함께’라는 부사를 기피한다. 승자를 찬양하고 약자를 능멸하며, 공생은 효율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작태라고 비난한다. 우석훈은 말한다.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작동원리를 이해’하자고. 그가 말하는 생태계의 작동원리란 곧 다양성의 길이다. 밀림의 세계처럼 다양한 생물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누리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길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고혈을 착취해 싼값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겠다는 약탈의 논리가 아니라 비록 한잔의 값을 비싼 돈으로 마시더라도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익을 돌리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공존의 논리다.
과학전문기자인 강양구는 <과학기술만 발전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라는 글에서 과학에 대한 우리들의 장밋빛 낙관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논파하고 있다. 가령 녹색혁명이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로 개량된 씨앗을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의 영업이익을 보장해주고, 그 개량 씨앗에 알맞은 비료, 살충제, 농기계를 파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뿐, 농민들은 오히려 녹색혁명과 개량 씨앗 때문에 경제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또 캘진(Calgene)이라난 회사가 개발한 유전자조작 토마토는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쉽게 문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토마토를 보존하고, 진열할 수 있게 되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이 토마토는 먹을거리 생산량을 늘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모든 이의 편의와 행복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부를 증식시켜주는 데만 관심이 있다는 증거다.
책은 이렇게 구체적 예,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례들을 통해서 논의에 재미와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독서량도 많지 않고, 세상의 경험도 짧은 청소년들은 아무래도 세상에 뿌리내리지 않은 관념들이 낯설게 마련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이 갖는 구체성은 청소년 책이 가져야 할 중요한 미덕임에 틀림이 없다.
우석균은 돈의 논리, 효율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거꾸로’ 행동했던 사례를 말해준다. 바로 백신 개발자 소크(Jonas Edward Salk) 박사의 이야기다. 그가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하자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특허를 양도해달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라고 주위의 권유를 물리쳤다. 간단히 말해 ‘거꾸로’의 논리란 바로 이런 논리다. 돈의 길을 따라가는 논리가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가는 논리다. 바로 이런 ‘거꾸로’의 논리가 지구상에서 소아마비를 ‘박멸’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살벌한 입시경쟁에서 시와 소설을 읽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와 소설을 통해 우리의 이웃의 삶을 돌아보고 내 삶과 의식의 건전성을 성찰해보는 것이 어찌 나쁜 일이겠는가. 한편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나’와 세계를 성찰해보는 시간이지 않은가.
책은 나눔의 가치를 역설하고, 평화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그 주장은 공소하게 들리지 않는다. ‘기차길옆작은학교’라는 공동체를 꾸려가는 김수연, ‘인간방패’가 되어서라도 전쟁을 막아보겠다는 신념으로 이라크에 들어가 이라크인들과 생활을 함께 했던 동화작가 박기범 등, 저자들의 실천적 삶이 그들의 담론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머리로만 읽을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몸으로 읽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