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최대로 늘리고 손해는 최소로 줄이는 것이 이른바 ‘경제적 동물’들의 행동강령이다. 이 극단의 동물들은 타인의 손해를 최대로 늘리고 이익은 최소로 줄이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그 행동은 윤리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바람직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 냉혹한 자본주의적 현실이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만은 예외다. 나를 희생하더라도 내 가족은 살리겠다는 숭고한 ‘가족주의’를 보라. 새조차 자신이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있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경계음을 낸다. 영화 <포세이돈>에서 로버트(커트 러셀)는 그의 딸 제니퍼(에미 로섬)를 살리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유전자는 생명체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자손을 남기려는 이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체는 그것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미 로버트의 유전자는 그의 딸, 제니퍼에게 전해졌으므로 로버트가 죽든 말든 유전자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딸을 위한 그의 희생도 사실은 유전자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고 리처드 도킨스는 설명한다. 유전자의 입장으로 인간을 볼 때, 인간은 하찮은 전달자에 불과하다. 만물의 영장입네, 이성적 존재입네 떠들어 대지만 결국 유전자의 ‘탈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 속의 프로 도박사 존 딜런(조쉬 루카스)의 행위는 『이기적 유전자』로는 설명이 안 된다. 도박이 뭔가. 돈이 되면 배팅을 하고 돈이 안 되면 패를 거둬들이는 것이 도박의 상식이다. 자신의 이익은 최대로 늘리고 타인의 이익은 최소화하는 것이 경제적 동물의 합리적 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이 한심한(?) 도박사의 배팅은 어찌된 것인지 거꾸로 간다. 돈이 안 되는 배팅을 수시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피 한 점 섞지 않은 사람,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타인을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존 딜런의 행위는 아무래도 수상쩍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에 빠진 아이를 살리는 것도 그 아이의 엄마의 환심을 사기 위한 플레이보이의 전략적 행동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이론이 『이타적 유전자』의 "반복호혜성"이라는 가설이다. 매트 리들리는 이 책에서 친족관계가 아니더라도 반복해서 서로 혜택을 베풀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례로 흡혈박쥐의 경우, 피를 넉넉히 섭취한 박쥐가 피를 게워내서 굶주린 박쥐에게 피를 공급해주는데, 어떤 박쥐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 그에게 도움을 주는 박쥐는 그가 과거에 도움을 주었던 박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존 딜런이 가녀린 여인과 그녀의 아들에게서 과거에 도움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미시간 대학의 대니얼 크루거 박사 등 연구진은 휴먼 네이처지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현대의 남성은 옛날처럼 완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어진 대신,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물질과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느라 기력을 쏟아 수명이 단축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숫양들이 서로 머리를 들이 받으며 싸우고 수컷 새들이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등,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면서 막 성년기에 이른 13살 무렵 침팬지들의 사망률이 갑자기 높아지는 현상을 예로 들었다. 개체에게는 손해가 되더라도 결국 유전자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고 보면,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엔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의 마음을 끌기 위해 다른 원시시대처럼 몽둥이를 들고 경쟁자들과 몸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지만 성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 자체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크루거 박사는 "몽둥이 싸움에서 이기는 과거의 능력은 지금은 멋진 SUV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능력으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력도 없고, 믿는 것은 몸뚱이밖에 없는 영화 속의 존 딜런 같은 경우는 어찌해야 이런 경쟁에서 매력적인 암컷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기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박의 패를 던지지만, 때로는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건달. 이런 건달 앞에서 여자들의 마음은 속수무책이다. 선수도 프로 선수다. 재앙영화는 이런 프로 선수, 달리 말해 영웅을 만들어낸다. 쪼잔하게 돈이나 가족에 얽히지 않는 영웅. <특전 U보트>와 <퍼펙트 스톰>으로 위험을 제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볼프강페터슨은 이 영웅에게 끝없는 고행을 강요한다. 이 영웅에게는 카리스마도 없고, 근육질의 남성미도 없다. 그러나 배팅 실력만큼은 내로라하는 영웅에 뒤지지 않는다. 날건달 하나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 때, 이런 대책 없는 사내 하나를 보는 여성들은 환호한다. 그런 영웅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의 본전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족 하나! 포세이돈이 누군가? 바다의 신이요, 물의 신이다. 볼프강 페터슨이 북대서양에 띄운 유람선의 이름이 ‘포세이돈’이다. 신 앞에서 겸양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