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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30년에서 소주나 막걸리까지. 술에는 분명한 계급이 있다.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셔도 어떤 사람들은 시장통 순대국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갈데 없는 ‘망쪼인생’들은 서울역사 왼쪽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들이킨다. 취생몽사, 싼 술에 취해도 취하기는 마찬가지.
커피에도 계급은 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 원두를 사용한 제품도 있지만 동네 슈퍼에서 살 수 있는 싸구려 가루커피도 있다. 누구는 스타벅스에서 우아하게 사오 천 원 하는 명품 커피를 마시지만 누구는 이삼 백 원 하는 자판기 커피에 만족해야 한다. 그것도 운이 나쁘면 아무리 두드려도 동전만 삼키고 맹물만 나오기 일쑤다. 그러나 그 어떤 기호품보다 커피는 평등한 음식인 셈이다. 마시는 장소와 모양새만 다를 뿐이지 검은 즙액을 홀짝이면서 잠깐의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담배도 그렇다. 조금 고급스럽다고 해봐야 오십 보 백 보. 폐부 깊숙하게 빨아 들여 코로 내뿜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담배 연기를 들이키고 한 숨을 길게 내뱉으면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사람들, 그들은 속상하면 한 대 피우고, 불안해도 한 대 피우고, 이야기가 꼬여 분위기가 마땅치 않을 때도 한 대 피운다. 커피 한 잔도 안 되는 가격으로 이만한 진정 효과를 주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담배야말로 아주 저렴한 진정제인 셈이다. 구순기 때 젖을 빨며 식욕과 쾌락을 충족시키지 못해 욕구불만인 사람이 성장 후에 담배를 입으로 빨며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심층심리학적 분석을 내놓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먹물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과거로 돌아가 다시 엄마에게 젖가슴을 요구할까. 멀리까지 갈 것 없이 담배 하나를 입에 물면 된다.
어쨌든 커피와 담배는 저렴한 기호품이다. 카페인과 니코틴의 해악을 들먹이면서 웰빙을 위해서 담배를 끊고 녹차를 마시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보다 업그레이드된 삶과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금연을 주장한다. 어떤 회사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결단력이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까지 취급하기까지 한다. 담배를 물고 있는 자들이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짐 자무쉬는 이런 작태들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력에 의해서 금연을 하면 몰라도 체제가 강요한다고 해서 끊을 수 없다는 고집, 그런 게 언더그라운드의 삐딱이 정신이지 않은가. 짐 자무쉬는 담배와 커피에 관한 한 남이야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든 말든 상관 말라는 투다. 나는 내 식으로 살다가 가겠다는 투다. 역시 뉴욕 인디펜던트 무비의 기수다운 배짱이다. 그런 배짱으로 만든 영화가 <커피와 담배>다.
짐 자무쉬는 웰빙주의자들의 충고가 무색하게 <커피와 담배>의 전편에 걸쳐 커피와 담배를 전면 배치해 놓았다. “자, 보아라. 얼마나 많은 삶이 커피와 담배를 사이에 두고 전개되는가?”라고 외치는 듯하다. 모두 11개의 단편 속에 커피와 담배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당신의 사연 하나를 슬쩍 끼워 넣어도 영화의 맛이 크게 손상되지 않을 만큼 영화가 보여주는 삶은 오밀조밀하고 밋밋하다. 휘황찬란한 로맨스도 없고 액션도 없다. 고만고만한 우리네 일상을 영화는 이야기할 뿐이다. 게다가 화면은 시종일관 흑백이다. 때문인지 배경은 구질구질해 보이고(물론 예외적으로 호텔라운지가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인물들은 싸구려스럽다. 그래서 친근하고, 또 그래서 안쓰럽다.
그의 데뷔작 <천국보다 낯선>에서 영화 속 에디는 말한다. “어딜 가도 왜 이렇게 다 똑같은 거지.” 뉴욕이건, 클리블랜드건, 플로리다건 그들에게는 다 똑같다. 뉴욕의 낡은 아파트건 플로리다의 바람 부는 바닷가이건 황량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커피와 담배> 속의 무대가 커피잔이 하나 달랑 놓인 테이블인 것도, 어딜 가도 다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짐 자무쉬의 황량한 현실인식이 반영된 탓은 아닐까. 이 황량한 세계 위에 현란하게 세팅을 하고 화려한 액션이나 로맨스를 보여주며 영화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짐 자무쉬는 그 밋밋하기 짝이 없는 배경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조로운 흑백 화면 그리고 다시 매번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는 성공신화를 거부하고 아웃사이더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짐 자무쉬의 현실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장치들이 아닐까. 그러나 어디든 똑같이 황량하다고 말하면 삶이 너무도 쓸쓸하니까 슬쩍 농담도 끼워놓으면서 삶을 한번 살짝 눙쳐보는 것은 아닐까. <커피와 담배> 속의 유머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이런 변두리의 삶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라고 말하는 짐 자무쉬의 위안처럼 들린다. 커피의 색깔과 같은 짐 자무쉬의 블랙 유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