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성장만이 마치 인류의 최종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타이타닉 현실주의’라 이름 붙이면서  지금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고수한다면 언젠가 지구는 타이타닉처럼 침몰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한바 있다. 이런 근본적인 생태주의자들의 입장은 명백히 경쟁을 온전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한다. 러미스는 성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항발전 counter-development)’을 주장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대항발전의 첫째 목표는 ’줄이는 것‘이다. 소비를 줄이고, 경제활동에 쓰고 있는 시간을 줄이고, 가격이 붙은 것을 줄이자는 것이다. 둘째,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경제 이외의 가치,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 활동, 시장 이외의 모든 즐거움, 행동, 문화, 그런 것들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러미스는 말한다. “자본주의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 속에는 경제성장이야말로 진보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것을 대항발전의 과정으로 전환하면, 진보하는 대상이 바뀝니다. 진보에 따라 바뀌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이나 사회나 문화가 바뀌는 것을 진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강수돌 교수의 저서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또한 러미스의 대항발전의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강수돌은 경제학자답게 경제에서 말하는 ‘효율성’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경제학에서의 효율성이란 투입량 대비 산출량의 비율을 말한다. 동일한 투입량이라면 산출량이 늘어야 효율이 향상되고, 또 동일한 산출량이라면 투입량이 줄어야 효율이 올라간다. 투입이 줄면서 동시에 산출이 늘어나면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이러한 효율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생산성’이다. 투입을 줄이고 산출을 늘리자면 인간을 단순한 생산요소로 환원시켜야 통제해야만 하고, 건강과 인격은 무시되기 일쑤다. 바로 여기에 효율성과 생산성이 만능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강수돌은 고등학교 ‘공통사회’ 교과서가  ‘합리적인 선택’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이 효율성의 개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돈과 권력이 대부분의 의사를 좌우하는 사회에서의 선택이란 계급적으로 계층적으로 이미 ‘불평등한 자유’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에서 노사분규가 심각할 경우 그 경영진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없는 농촌지역이나 후진국으로 공장을 쉽게 옮길 수 있지만, 노동자들은 그 노동력을 ‘합리적’으로 팔기 위해 쉽사리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때의 합리성이란 ‘가진 자’를 위한 것이지 ‘못 가진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고등학교 ‘공통사회’가 “경쟁을 통해 경제는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라고 쓰고 있지만 그것은 일정한 한계 안에서 적용되는 말이라고 비판한다. 경쟁이 일정 한계를 넘으면 그것은 더 이상 삶의 질 경쟁이 아니라 파괴경쟁이 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의 대량실업 현상과 일2반 상품 시장에서의 과잉생산, 과잉소비 등은 인간파괴, 자연파괴를 낳고 있는 것이 그 예라는 주장이다.


그는 단적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경쟁이란, 인간의 살아 숨 쉬는 노동을 흡입함으로써 자기 몸을 무한정 불려나가는 자본의 지배적 논리가 눈에 띄게 관철되는 사회적 공간‘이라고 말한다. 경쟁의 논리, 즉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는 생산의 결과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생산과정에서 파괴되는 인간과 자연의 건강성은 문제로 포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생태주의적 입장에서 경쟁의 논리를 파괴의 논리로 규정한다. 또 이익의 무한확장을 추구하는 경쟁의 논리는 세계평화나 홍익인간과 같은 보편성의 논리보다는 제국주의와 맞닿게 된다는 점에서 그는 경쟁의 논리를 파괴의 논리로 규정한다.


우리가 국가경쟁력의 논리에 빠져드는 순간 우리는 홉스가 말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공간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수돌은 말한다. 경쟁의 논리 안에서는 모두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진정한 내면의 욕구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밟히지 않으려면 밟으라’는 명령만이 냉혹하게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쟁의 논리가 흔히 ‘대박’으로 일컬어지는 한탕주의의 심리를 키우고,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를 따돌림하는 ‘왕따’의 심리적 기초가 된다고 그는 우려를 표명한다. 바로 이런 한탕주의 사회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같은 책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국의 부자들』이란 책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란 돈벌이, 이윤추구, 부자 되기가 아니라 건강한 살림살이 즉 건강하게 먹고사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못 박으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는 ‘내면’이 충실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내면을 충실하게 하는 데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 기능적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지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입시교육 위주의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사실이다. 세상에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오직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하는 교사가 과연 몇이 있을까. 어떤 시련이 올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좇아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라고 말하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영어 못하면 나중에 후회한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많아도 “독서 안하면 마음이 거지가 된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설령 독서를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수능 문제 풀이와 논술고사 향상을 위한 사고력 향상의 재료로서만 협소하게 ‘책’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독서 현실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주도했던 ‘신지식인’ 논의도 생산성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신지식인의 성공은 결국 생산성이나 부가가치, 매출액, 수출액이나 특허권 등 주로 경제적 가치의 잣대에 의해 평가된다. 게다가 과정보다도 결과를 보고 사후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학문 세계에서 돈이 안 되는 인문학이나 기초 과학은 도외시될 위험이 크다.’라고 그는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 시대와 다음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새로운 사람들이란, 지식이나 기능을 넘어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필요하고 절박한지’를 분별있게 가릴 줄 아는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사람,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새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강수돌은 역설한다.


강수돌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사관계 분야를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한경쟁 속에서 괴로워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고 그 원인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일류대에 입학하려고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도 겨우 절반만이 취업하는 현실은 분명히 모순이죠. 내가 찾은 결론에는 잘못된 학교교육과 학부모들의 왜곡된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라고 말한 바 있다. 강수돌은 교육?노동?경제 전반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며 그러기 위해선 가정에서부터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들이야 어떻든 ‘나부터’라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 강수돌의 주장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하나의 삽화(揷話)는 우리 시대의 교육이 무엇을 결하고 있는가를 따끔하게 말해준다. 경쟁이 아닌 협력, 효율성의 논리가 아닌 상생의 논리.


미국의 어느 학교에 인디언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어느 날 선생님이 "자, 여러분 이제 시험을 칠 터이니 준비하세요" 했다. 백인 아이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필기 도구를 꺼내고 책상 가운데에 책가방을 올려 짝꿍이 엿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험 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인디언 아이들은 마치 게임이라도 하려는 듯 책상을 돌려 둥그렇게 모여 앉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선생님은 "얘들아, 시험 칠 준비하라고 그랬잖니?"하고 화를 냈다. 이에 인디언 아이들이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은 예전부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해결해야 한다고 배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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