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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의 동물학
비투스 B. 드뢰셔 지음, 이영희 옮김 / 이마고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동물을 존중하는 것이 곧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능적이고 동물은 본능적이라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야생』의 저자인 신디 엥겔은 자연계에서 이런 상식을 깨는 풍부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쥐는 동료 쥐에게서 독에 대해 배우는 능력이 탁월하다. 쥐는 보통 낯선 먹이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한 조심성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쥐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쥐는 낯선 먹이는 아주 조금만 맛보고 일정 시간을 기다린다.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그때서야 쥐는 나머지를 모두 먹어치운다. 설사 그 먹이가 유독성 물질이라 해도 처음에 조금만 먹기 때문에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는다. 또 쥐들은 다른 쥐가 낯선 음식을 적은 양 먹었을 때 아무 해가 없다고 판단되면 자신이 먹는 양을 네 배로 늘린다고 한다.
쥐는 다른 쥐의 실수에서도 배운다. 실험 결과 쥐는 다른 쥐가 이미 먹어본 유독물질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몽고황무지쥐는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오직 가까운 친척이 먹어본 먹이만 신뢰한다고 한다. 낯선 쥐가 먹어서 아무 문제가 없던 먹이라도 그들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전략일 수 있다.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해독 능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먹이에 독이 있는 경우, 그 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물질과 함께 먹으면 독성이 중화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쥐들도 있다. 예를 들어 떫은맛이 나는 타닌과 사포닌은 따로 먹거나 다른 비율로 먹으면 서로의 독성이 중화된다. 쥐는 타닌과 사포닌을 정확히 해롭지 않은 비율로 먹는다고 한다. 쥐가 어떻게 그 정확한 비율을 알고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양도 도토리에 있는 떫은 맛 성분인 타닌의 함유량이 높은 먹이를 먹을 때 타닌을 중화하는 폴리에틸렌글리콜이라는 물질을 주면 그것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안다고 한다.
중남미의 한 개미는 나뭇잎을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땅 속에서 저장해서 진균류를 번식시킨 후에 먹는다고 한다. 진균류는 나뭇잎에 들어있는 유독성 화학물질을 분해해 개미가 먹기 좋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쥐는 염화리튬에 중독되면 평소에 먹지 않던 점토를 먹는다. 염화리튬을 몸 밖으로 토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점토를 먹고 싶게 만든다고 한다. 만약 염화리튬을 단맛이 나는 사카린과 함께 주면 쥐는 사카린을 염화리튬과 연결시켜 단맛이 나는 사카린을 구토의 느낌과 연결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이후에 사카린만 주어도 토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서 점토를 먹고 싶어 한다. 이런 실험 결과로 과학자들은 쥐들이 자신이 중독되었다고 생각만 해도 점토를 먹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투스 B. 드뢰셔의 『휴머니즘의 동물학』은 동물들의 행동양식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풍부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책에 의하면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하고 언어를 습득하며, 새끼들을 교육시키고 수치심을 느낀다. 또 동물들도 무리의 질서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을 할 줄 안다. 물론 동물의 세계라고 해서 힘의 논리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힘의 논리로만 동물의 세계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책에 의하면 아프리카 초원지대의 ''사바나 개코원숭이'' 무리는 소수의 수컷 동맹이 지배층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연구결과 그 무리가 모계사회라는 것이 사바나개코원숭이와 15년간 함께 생활한 여성 동물학자 셜리 스트럼에 의해 밝혀졌다. 통념을 완전히 뒤집고 할머니, 어린 새끼, 성인 암컷, 성인 수컷 순서로 위계질서가 잡혀 있었다. 젊고 힘센 수컷이 폭력적으로 나오면 암컷들이 집단으로 징계하고 교미에서도 왕따를 시켰다. 사바나개코원숭이의 사회는 폭력 질서 대신 사회적인 전략이나 목표를 추구하는 현명함과 우정이 지배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l7세기에 데카르트는 동물기계론을 제창하여, 동물체를 태엽을 감은 기계와 같이 생각한 바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남긴 데카르트는 사유 능력이 없는 동물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기계나 마찬가지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물을 상대로 실험을 하거나 도축할 때 동물이 내는 비명은 기계에서 나는 삐걱거림이나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본능에 끌려 다니는 동물의 행동은 그저 생리적인 반응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도 나와 같은 존재라는 유사성의 인식이 평등의 근거가 된다. 나도 바늘에 찔리면 아프듯 남도 바늘에 찔리면 아프다는 유사성의 인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마치 나의 고통처럼 느낀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것이 인간의 공감 능력이다. 인간에 대한 평등이 인간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하는 것처럼 동물이 인간과 유사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피터 싱어다. 그는 동물 권리의 합리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자신의 이론이 인권 운동의 근거 또한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동물 권리 운동은 인권 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역설한다. 동물을 존중하는 것이 곧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자는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