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인간의 동반자
제임스 서펠 지음, 윤영애 옮김 / 들녘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애완동물,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고통이 선택되다




피실험자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한 장의 사진은 정상적인 아기 사진이고, 또  한 장의 사진은 아기다운 특성이 의도적으로 과장된 ‘인공적인’ 사진이다. 성인 피실험자에게 실제 아기에 가장 가까운 사진을 고르라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실험의 결과, 대부분의 피실험자는 인공적인 사진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피실험자들이 생각하는 ‘아기다움’이란 어떤 특성들일까.


동물학자 콘래드 로렌츠는 여러 척추동물의 새끼들을 비교해보면 이들이 모두 일정한 물리적 특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척추동물의 새끼들은 성인과 비교해볼 때, 머리가 몸통에 비해 훨씬 크고, 사지는 짧고 통통하고, 눈이 크고, 턱, 입, 코는 더 작다. 전체적으로 살집이 많고 통통한 외형을 지녔으며, 피부나 껍질과 털은 더 부드럽고, 움직임은 더 서툴다. 이런 특성을 지닌 동물들은 귀엽다는 느낌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귀엽다는 느낌은 보호하고 돌봐주려는 욕망마저 불러일으킨다. 로렌츠는 이런 반응은 인간이 자기 자식의 모습과 소리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도록 진화된 탓이라고 설명한다.


할리우드의 만화가들은 바로 이런 특성을 극대화하여 만화의 캐릭터들을 만든다. ‘아기유령 캐스퍼’를 떠올려보라. 오동통한 볼과 커다란 눈과 머리는 로렌츠가 말하는 ‘아기다움’의 특성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이런 아기다운 특성을 가진 강아지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활짝 미소를 짓는다. 길을 가다가도 그런 개를 품에 안고 가는 사람을 보면 “한 번 만져볼 수 있을까요?”  대범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뺨에 부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다.


개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진화된 동물이 아니다. 1만 2천 년 전부터 개는 인간에게 사육되어 왔다. 모든 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개들은 작고 귀엽고 어려 보이는 동물들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인간의 속성이 반영되어 그 크기와 생김새가 변화했다고 『동물, 인간의 동반자』의 저자 제임스 서펠은 말한다.  턱과 코는 납작해지고, 눈은 비교적 커지고 돌출되었으며, 이마가 넓어진 경우가 이런 변화라는 것이다. 불독, 치와와, 시츄를 떠올려 보라. 이런 동물들의 얼굴 표정은 사람들에게 귀엽다는 느낌을 주는 반응을 유발하도록 맞춰진 듯한 여러 외형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시츄의 커다란 눈은 인간으로 하여금 귀여움을 느끼게 할지 모르지만 시츄 본인에게는 썩 달가운 것이 아니다. 시츄를 길러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시츄는 늘 눈에 눈꼽이 끼고, 눈과 관련한 질환을 자주 앓는다. 진화론의 논리대로라면 눈과 관련한 질환을 유발하는 커다란 눈은 시츄의 생존에 불리하므로 도태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애완동물의 역사에서 진화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애완동물의 역사를 이끈 것은 진화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은 개체의 복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개가 눈병을 앓건 말건 관심이 없다. 오직 큰 눈이 귀엽게 보이면 기꺼이 그 개를 애완용으로 선택한다. 납작한 코와 툭 튀어나온 눈이 개의 삶에서는 불리한 조건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조건이라면 인간은 기꺼이 그 종을 선택한다.


제임스 서펠은 우리가 애완동물들에게 요구한 온갖 매력적인 특성들로 인해서 수많은 동물들은 신체적 기형을 안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불독과 킹 찰스 스패니얼의 튀어나온 눈은 건조해지기 쉽고 다치기 쉽다. 이들의 납작한 얼굴은 호흡곤란과 치아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재미있고 사랑스런 표정을 갖게 해주는 얼굴의 주름 속에는 박테리아가 자리잡기 쉬워 심각한 전염병에 걸리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고통이 선택된 셈이다.


물기가 있는 대변을 피하기 위해 애완동물들에게 변비에 가까운 대변을 유발하는 먹이를 주는 인간들에게도 애완동물들은 꼬리를 흔든다. 자신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었든 말든 치와와는 커다란 눈으로 인간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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