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질병을 만들어서 판다고?



  이 세상 사람들의 병을 모두 없애주시고 그들을 질병과 고통의 근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소서, 라는 어떤 종교지도자의 간절한 기도를 전능한 조물주께서 들어주셨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해방시켜주신 신이여, 감사합니다. 당연히 환자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울상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병원이나 약국의 경영자이다.

  질병이 있기 때문에 병원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질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병원의 경영자들로서 보면 이 또한 골칫거리다. 오히려 질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대단한 병에라도 걸린 양 호들갑을 떠는 건강염려증 환자들 때문에 병원은 북적거릴 수 있는 것이다.


  래이 모이니헌과 앨런 커셀스가 공동 저술한 『질병판매학』은 놀라운 사실을 폭로한다.  제약 회사들이 '병을 만들어서 약을 판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흰머리를 질병으로 분류한다면 제약회사들로서는 많은 양의 염색약을 팔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몸에 적당히 살이 붙는 것도 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한 조사에 의하면 어떤 대학교의 여대생 10명중 4명이 자신의 체격을 비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여자 신입생 절반 이상이 운동으로 살을 빼고 있다고 한다. 물론 게 중에는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과체중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적당한 몸무게를 가진 여학생들마저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생각하는 여학생들 때문에 다이어트 사업은 날로 번창해간다.


  정상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라. 이것이 제약회사의 판매 전략이다. 병(病)의 사전적 의미는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고, 약(藥)의 사전적 의미는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을 말한다. 그러나 제약회사들로서는 병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 경영상 이익을 가져다준다. 당연히 그들은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으로, 정상인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그들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폐경도 여성호르몬을 주사하면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강조한다. 뿐만이 아니다. 우울증처럼 환자의 환경이나 정서나 마음의 문제도 결국 뇌의 문제로 귀결시켜 약물치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처럼 병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일상적인 증상을 약물치료가 필요한 질환임을 강조하여 약물복용이 필요 없는 환자들까지 약물복용에 대한 유혹을 갖게 한다. 월경 전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여러 증상을 ‘월경 전 불쾌장애’라는 새로운 진단명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또 아이들이 주의가 산만한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아동주의력결핍장애’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면 이 또한 치료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또 여러 사람 앞에서 무엇인가를 발표하는 일이 생기면 약간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는 것도 보통 사람들이 겪는 흔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에 ‘불안장애’라는 병명을 붙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약을 제시한다다면 멀쩡한 사람들도 그 약을 복용할 것이다. 제약회사로서는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다.


  아무리 강철의 심장을 가진 부모라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 냉정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부모는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다 묻는다.’라는 속담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찢어지는 심정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만약 어떤 제약회사의 영업자가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다가가 “당신의 슬픔은 우리 회사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를 상상해보라. 십중팔구는 뺨을 한 대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식이 살아있을 때 내가 왜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왜 조금 더 친밀하게 자식과 대화하지 못했을까, 두고두고 후회하고 아파하는 것이 어쩌면 슬픔을 진정으로 치료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별로 인한 상실감, 실패로 인한 좌절감 등을 우리는 삶에서 숱하게 만나게 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국면들이다. 바로 그런 국면들에 부딪혀 극복해가는 과정이 성장이요 성숙의 과정이다. 그러나 약물을 통해 고통의 과정을 생략하겠다는 것은 성장과 성숙을 멀리하겠다는 자폐적인 태도다. 고통에 직면하는 것은 시련과 대면함으로써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불은 쇠를 시험하고 고통은 인간을 시험한다.” 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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