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휴머니즘이다
데이비드 와인버거 지음, 신현승 옮김 / 명진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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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터넷의 불완전성을 옹호한다

인터넷은 휴머니즘이다/데이비드 와인버거/명진출판/2003


  할리우드 애니매이션 <개미Z>의 주인공, 일개미 Z-4195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발라 공주와 바깥세계로 통하는 수렁에 빠져 곤충의 천국, 인섹토피아를 찾아 나선다. 그가 처음으로 당도한 곳은 샌드위치와 콜라와 나이키의 땅. 그러나 그곳은 벌레들의 천국이 아니다. 샌드위치를 싸고 있는 비닐랩은 오염과 불순함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인간들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 비닐랩이 개미들을 배척한다. 번쩍거리는 광택의 세계는 상품과 소비의 왕국이었는지는 몰라도 벌레들의 천국은 아니었다. 종국에 개미 Z가 찾은 인섹토피아는 의외로 쓰레기장이었다. 먹다 버린 사과의 숭숭 뚫린 구멍 사이에서 벌레들은 춤을 춘다. 온갖 너저분한 것 속에서 벌레들은 해방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곳엔 획일적인 도덕률을 강제하는 어떠한 권력도 없다. 불순한 공간이 오히려 자유를 구가하는 해방의 공간일 수 있다는 역설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 속의 쓰레기장은 가히 인터넷을 연상시킨다. 음란물이 범람하고, 익명성을 이용한 사이버 테러와 악플이 넘쳐나고, 스팸메일이 무차별적으로 보내진다. 각종 범죄 사이트도 횡행하고. 게시판에는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런 인터넷의 불완전성이야말로 인터넷의 가능성이라고 『인터넷은 휴머니즘이다』의 저자이자 미국 미디어 비평가인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말한다.

  와인버거는 단적으로 반문한다. “인터넷에는 오직 하나만을 주장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인터넷을 방문하고 싶어 하겠는가?”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중앙집권적 권력기구가 인터넷에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이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되고 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인터넷이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는 토대다. 악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했다고 생각해보라. 누가 조직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글을 함부로 쓰겠는가. 인터넷 실명제는 통제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극단론은 차치하고라도 실명제로 인해 인터넷의 다양성과 활력은 현저하게 위축되고 말 것이다.

  인터넷은 완벽함과 품위와 격식을 이상으로 숭배하는 인간의 공간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들의 공간이라는 것이 와인버거의 주장이다. 그는 인터넷이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현실세계의 삶을 짓누르는 완고한 전문가주의에 대한 도피처를 제공한다.”라고 말하며 인터넷의 불완전성을 옹호한다. 칸트니 공자니, 어려운 이론들을 들먹이면 군중들은 겁을 먹지 않는가. 저자는 정부나 기업에서 말하는 방식, 즉 권위 있는 지식을 동원해 말하는 고상하고 정확한 표현들이 따지고 보면 소통의 언어가 아니라 대화를 죽이는 언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이 책은 현재의 무분별한 인터넷 문화에 대한 강력한 옹호의 책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와인버거는 인터넷이 다양성과 자유가 최고로 발현된 세상, 관리자도, 억압도, 금기도 없는 기쁨의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악플의 문제점을 성찰해보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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