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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 투발루에서 알래스카까지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을 가다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황사의 현장을 발로 뛰고 가슴으로 쓰다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마크 라이너스/돌베개/2006
‘경제성장은 선(善)’이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더글러스 러미스는 성장이 만인의 상식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는『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를 통해 파국을 향해 치닫는 현재의 성장주의적 태도를 ‘타이타닉 현실주의’라 이름 붙인다.
생태학자들은 현재 수준의 생산과 소비방식을 고수한다면 언젠가 지구는 타이타닉처럼 침몰할 것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경고한다. 선진공업국들이 자원 소비를 90% 감소시키지 않으면 지구 같은 행성이 다섯 개는 필요하다며 발전의 엔진을 멈출 것을 환경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지구온난화가 거대한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기사와, 화석 에너지의 고갈을 걱정하며 대안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기사와 지구촌의 곳곳에서 기상이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뉴스와도 자주 접한다. 2007년 2월 10일자의 신문에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여파와 해수면 온도에 이상이 생기는 엘니뇨 현상 때문에 116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비유하건대 타이타닉호의 선내에서는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있는 터라, 선내의 승객들은 방송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진한다는 것만이 타이타닉호의 본질인 이상, 빙산에 충돌할 것이라는 예언에도 아랑곳없이 타이타닉호는 성장을 위해 앞으로 줄기차게 나아간다. 경제성장에만 관심이 있는 현실주의 경제학자들과 기업의 CEO들은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라는 명령을 한다. “속력을 떨어뜨려선 안 된다.”라는 것, 즉 성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타이타닉 현실주의’의 행동 강령이기 때문이다.
여기 타이타닉호의 선내 경고방송을 아주 심각하게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의 저자, 마크 라이너스가 바로 그다. 그는 국제환경단체인 '원월드넷(Oneworld.net)' 일원으로 5년 동안 일하면서 중앙아메리카의 허리케인 미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뭄과 기아, 모잠비크의 대홍수, 베네수엘라의 살인적 진흙사태 등을 취재했다. 그는 이 모든 재해의 원인이 지구온난화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확고한 물증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물증을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3년 동안 그는 세계의 곳곳을 누비며 '지구온난화의 현장'을 취재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가라앉고 있는 남태평양의 산호섬 국가 투발루, 황사로 인해 양과 염소를 먹일 풀마저 사라진 황무지 네이멍구(내몽골) 자치구의 농민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집과 도로가 지면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알래스카, 허리케인으로 쑥대밭이 된 미국, 빙하가 녹아버리는 바람에 식수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페루의 빈민들에서 저자는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 중인 지구 온난화의 재난을 똑똑하게 목격한다. 책은 바로 그가 눈으로 본 재해의 현장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이다. 머리로 쓴 책이 아니라 발로 뛰고 가슴으로 쓴 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마크 라이너스의 메시지는 과학자들의 경고의 메시지보다 강력하게 들린다.
타이타닉의 선내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그 방송의 내용이 추상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마크 라이너스의 책을 영상화한 영상물을 선내에 방송했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땠을까. 재앙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박진감 있게 보여주는 마크 라이너스의 영상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을까.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바다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해수면 상승이 투발루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 영향은 이제 세계의 거의 모든 해안지대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세계 해안선 모래사장의 70퍼센트 이상이 뒤로 물러나면서 좁아지고 있으며, 짠물의 유입은 멀리 중국의 양쯔강이나 호주의 메리강의 지대 낮은 삼각주에서도 기록되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를 과연 대중들이 태연하게 외면할 수 있을까. 지구 온실효과로 일단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지구표면의 반사력이 감소하여 태양열이 더 잘 흡수되어 온난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또 어떤가.(저자는 고위도 지방의 이런 악순환을 양성피드백 positive feedback이라 이름 붙인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숲, 주택, 도로 및 기타 인프라의 피해가 가속화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잠잠히 얼어붙어 있던 습지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가스의 방출이 어마어마해질 것이다.”라는 경고의 메시지는 또 어떤가.
고대의 간쑤성 지역은 풍부한 물과 비옥한 땅으로 중앙정부의 관심을 끌었던 곳. 그러던 곳이 지금은 전지역의 94퍼센트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주변 사막의 모래언덕이 매년 10미터의 속도로 침입해오고 있다. 마크 라이너스는 지구온난화의 또 다른 측면이 간쑤성의 강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간쑤성 서쪽에 있는 치렌 산맥은 핵심적인 오아시스 강들의 원천인데, 이 일대의 강들이 일 년 내내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 산맥의 빙하들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 빙하들이 빠르게 사라짐으로 해서 이 일대의 강들의 4분의 3이 전면적으로 흐름을 멈추었고, 절반은 지난 150년 동안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강이 사라지고 그곳이 사막지대로 변하면서 모래폭풍이 일면 사람들은 삶의 근거지를 잃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삶의 모태를 이루던 문화는 모래폭풍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 처지에 놓이게 된다. ‘환경난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결국, 그 모든 재앙이 하늘이 만든 천재(天災)인지, 사람이 만든 인재(人災)인지를 따져 묻지도 못한 채 도시 언저리에서 막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과연 모든 지구인들이 ‘환경난민’에 처할 운명과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마크 라이너스는 알래스카 사람들은 자연이 파괴되고 북극곰과 같은 오랜 친구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가슴 아파하지만 석유를 얻기 위해 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을 개발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알래스카인이다.” 알래스카인들이 성장이냐 생존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인류 또한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크 라이너스의 경고인 셈이다. 물을 끓이기 위해 스위치를 켜고, 자동차 운전을 하고, 더위를 피해 에어컨을 켤 때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떠올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알래스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