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경제학
피에트라 리볼리 지음, 김명철 옮김 / 다산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티셔츠의 일생을 추적하여 세계화의 실상을 밝힌다

티셔츠 경제학/ 피에트라 리볼리/다산북스/2005




요즘 한국의 시장에서 팔리는 옷들의 절반쯤은 중국의 현지 공장에서 제조된 것들이다. 한국에서 의류제조업을 하기에는 높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으로 의류공장을 옮겨가는 사업가들의 변이다.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 세계화이고 보면, 사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가들에는 세계화가 하나의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화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가 않다.


세계화 시대에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더 낮은 임금과 더 약한 노동조합을 내걸고 ‘바닥을 위한 경쟁(race to the bottom)’-세계무역이 자유화되어 가면서 가령 중국산 물건과 같이 싼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환경기준이나 노동기준을 낮추어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비판적으로 바닥을 향한 경쟁이라고 표현한다.-을 벌인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시위의 현장에는 이 바닥을 위한 경쟁을 중지하라는 구호가 등장한다. 세계화가 자본가들을 살찌우고 노동자들의 삶을 열악하게 만든다는 주장인 셈이다.

1999년 세계화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던 미국 조지타운대학 캠퍼스에서 한 여학생이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는 누가 만든 것입니까? 베트남 어린이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만든 것이며, 시간당 18센트를 받는 인도의 소녀가  화장실도 못가고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불결함과 질병에 시달리면서 나이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 당시 같은 대학의 국제경제학 교수였던 피에트라 리볼리는 이 여학생의 연설을 듣고  "과연 저 여학생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에 빠져든다. 리볼리 교수는 의문을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5년 동안 미국의 텍사스산 목화가 중국산 티셔츠가 되어 다시 미국 땅을 밟기까지,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버려진 티셔츠가 아프리카의 구제옷 시장에서 다시 팔리기까지의 티셔츠의 인생을 추적한다. 『티셔츠 경제학』은 바로 그 집요한 추적의 결과다.


리볼리 교수의 첫 방문지는 텍사스의 넬슨 라인쉬 농장. 그는 그곳에서 목화산업이 노예제, 멕시코 이주노동자, 기계화, 산학협동 등을 거치면서 200년 동안 세계 목화산업을 지배해온 내력을 밝힌다. 그는 <빈곤의 경작 Cultivating Poverty>이라는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미국의 목화 재배농들이 구가하고 있는 경쟁우위는 정부의 보조금에서 비롯된다고 하면서 “보조금만으로는 미국의 시장 지배력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조금이 그 결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실제로 단위면적을 기준으로 할 때 목화 재배농들에게 주어지는 정부의 보조금은 옥수수나 콩을 재배하는 농민들의 5~10배에 이른다고 한다. 보조금 지급과 같은 정부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미국식 자유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시장의 질서를 위배하고 있는 셈이다.


리볼리 교수의 다음 여행지는 중국 상하이 공장이다. 그곳에서 목화는 실로 만들어지고. 실은 다시 옷감으로 짜이고, 옷감은 재봉을 거쳐 티셔츠로 탈바꿈한다. 목화가 티셔츠로 다시 탄생되는 과정에는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먼지투성이의 공기와 뇌를 마비시킬 정도의 소음에 시달리며 티셔츠를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이 전제되어 있음을 저자는 구체적 현장을 통해 보여준다.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중립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곳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세계화가 ‘바닥을 향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반세계화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홍콩, 한국, 대만처럼)바닥을 향한 경쟁에서 밀려난 나라들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제국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면직물 공장 및 노동력 착취 공장을 점화스위치 삼아 도시화, 산업화, 경제적 다각화를 이루어냄은 물론, 농촌여성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자유를 선사했다.”라고 말한다.


중국산 민짜 티셔츠는 미국에 들어와 염색을 거쳐 완성품이 된다.  미국의 섬유시장은 그동안 자유무역주의의 예외지대였다. 자국의 섬유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섬유 업계의 입김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MFA(다자간 섬유협정)법안들이 만들어진다. 리볼리는 2005년부터 폐기된 MFA가 미국의 섬유산업 보호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수십 개의 약소국의 경제적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일국의 수입상품을 일정기준에 따라 국가별 또는 수입업자별로 할당하여 일정기간의 수입 수량을 제한하는 수입쿼터제가 MFA의 종료로 인해 철폐되면 중국이 수출을 독점하게 되고 나머지 나라가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또 자유주의 무역으로 값싼 중국산 섬유가 미국으로 흘러들어오면 미국으로서는 최고의 티셔츠를 최저의 가격으로 살 수 있어 실질적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으나, 섬유업에 종사하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는 사태를 맞게 되므로 자유주의 무역이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 무역을 기조로 하는 세계화가 빈부의 차이를 극대화시킨다는 주장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이 버린 헌 옷은 전세계적으로 100여 개국에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미국은 전세계 구제옷 시장의 약 4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쓰레기 같은 옷들이 탄자니아에서는 훌륭한 옷으로 평가된다. 이 미국의 헌 옷이 아프리카의 섬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용을 위협하지만 이 헌 옷을 수입하는 사람과, 헌 옷을 분류하는 사람, 세탁하는 사람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또 저자는 아프리카 섬유산업이 빈사상태에 있는 원인은 보조금이나 무역장벽 같은 부유한 국가의 정책에도 일부 원인이 있지만 더 큰 원인은 부정부패와 불안정한 정치, 낮은 교육수준, 불안정한 재산권, 비효율적인 관련 법률 등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시장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베트남이나 인도의 섬유공장 노동자들이 아닌 값싼 물건의 수입 증가를 두려워하는 정부나 이익집단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티셔츠의 생애가 시장의 경쟁보다는 시장에 대한 정치적 작용 아래 놓이게 되어, 가난한 사람들은 무자비한 시장의 힘 때문이라기보다 정치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고통받는다고 한다. 세계화가 이런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세계화가 되어야 하고  아직 산업화되지 못한 국가에 기회를 주는 ‘인간적인 세계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 티셔츠의 일생을 추적한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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