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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자유주의시리즈 60 ㅣ 나남신서 1157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김이석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식은 어떤 상황에서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가
노예의 길/하이에크/나남/2006
최근 정부와 야당은 한 목소리로 민생의 안정을 위해 아파트를 반값에 분양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함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참여 정부가 집권 전반기 동안 집값 잡기에 전력투구했지만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도 그 원인이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정부의 시장개입과 지나친 긴축정책이 부동산가격의 안정화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10.29대책이 그랬고, 2,17대책이 그랬다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의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사례를 그 근거로 든다. 가령 우리나라의 현재 부동산 대책은 시장 위주가 아니라 일본의 부동산버블이 붕괴되던 당시 일본정부의 직접 개입정책과 유사한데, 일본은 부동산 거품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1980년대 말 토지관련 융자총량규제 실시, 토지기본법 세제개혁, 공정할인율 인상 등 급격한 시장개입과 긴축적인 정책을 펼친 결과 금융권 부실채권이 확대되고 기업 자산가치가 하락, 장기불황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개입에 철저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낸 학자는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의 저자, 하이에크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전체주의가 득세한 시대였다.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 정당들이 집권했다. 많은 지식인들은 이에 열광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하이에크가 활동했던 영국에서는 히틀러 체제를 모방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만연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파시즘과 나치즘과 같은 국가사회주의의 뿌리가 사회주의임을 간파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가 부의 평등한 분배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다는 계획은 사실상 강력한 독재 권력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와 사상을 강하게 억압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했던 하이에크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한다. 경제의 기반이나 테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각종 법이나 제도들을 시행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국한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이 그의 소신이었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경제의 일반 개별 주체들이 지켜야 할 경제 제도와 규칙, 시스템을 만들고, 이 시스템이 공정하게 잘 작동하고 있는지, 심판관의 역할만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정부가 그 이상으로 시장에 개입하면 오히려 인위적인 독점을 낳을 것이라고 보며, 정부의 간섭을 정당화하는 케인즈적인 재정정책의 무용성을 주장한다. 정부의 경제 정책들이 경제를 더욱 불완전하게 만들고 개인의 합리적인 경제 활동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가 내세우는 ‘계획경제’가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고 모든 권력을 소수의 계획자들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하이에크는 누가 어떤 재화를 좋아하는지, 생산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생산가능성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누가 어떤 생산기술과 재주,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관한 지식은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어떤 절대 권력도 모든 지식을 가질 만큼 전지전능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는 지식은 각 개인들에 소유되는 것, 즉 사회의 각처에 흩어져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이에크는 이를 지식의 분산(division of knowledge)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지식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암묵적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개인들은 이러한 지식을 기초로 하여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고 본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경쟁의 문제’를 누가 얼마나 좋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문제 상황에 접근하느냐 하는 ‘지식과 정보의 문제’로 본다.
하이에크는 정보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정책당국이 일반 개인보다도 더 정확히 수집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과학적 정보’이다. 둘째는 특정한 개인이 정책당국에 비하여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정보이다. 하이에크는 경제 전체의 균형은 예상치 못한 사소한 상황 변화에 대한 부단한 적응의 결과이기 때문에 후자에 속하는 정보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정보들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에게 집중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경제주체에게 널리 분산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회에 분산되어 있는 지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자본주의는 개인 간의 경쟁에 의해 지식을 이용하는 체계이고, 사회주의는 중앙정부의 계획에 의해 지식을 이용하는 체계다. 개인 간의 경쟁에 의해 지식이 이용되는 체계는 가격기능에 근거하는 분권화된 시장경제체제를 의미하며, 중앙정부의 계획에 의해 지식이 이용되는 체계는 중앙집권화된 계획경제체제를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분권화된 시장경제체제의 장점은 분산된 지식이 모두 활동의 대상이 되지만, 중앙집권화된 계획경제체제에서는 의사결정이 계획입안자의 지식에만 의존하므로, 분산된 지식이 모두 활용되지 못한다고 한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정보의 전달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시장에 참여한 거래자 중에서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정보를 소유한 거래자는 자신의 계획대로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하게 된다. 따라서 소유하고 있는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은 거래자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게 될 것이므로, 개별적 경제 주체들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려고 경쟁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정보가 가장 큰 이익을 안겨 줄지는 경쟁의 과정을 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이때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 참여하여, 한 회사의 주식을 샀을 경우, 그 주식의 판매로 인한 실제적 이익이 기대한 이익보다 적을 수가 있다. 이 경우 경제 주체들은 몇 차례의 실제이익과 기대이익과의 차이를 경험하면서 경쟁의 과정에서 더 좋은 정보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이에크는 경쟁을 '발견적 방법으로서의 경쟁'이라고 칭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경쟁이 완전해질수록 정보의 전달속도는 빨라지며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 있을 때에는 정보전달의 속도도 그만큼 늦어진다고 본다.
어떤 사업에 뛰어들 경우, 초기에 시설투자비용이 너무 높다든지 과점이나 독점으로 인해 사업 시작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를 일러 ‘진입장벽’이라 하는데, 하이에크는 진입장벽이나 자연독점은 정보속도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특정한 사업에 대한 충분한 ‘노하우’ 즉 지식이 활발하게 유통되지 못할 경우, 이는 그 사업에 뛰어 들려고 하는 사업가에게는 큰 벽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해보자.) 그렇다면 중앙당국의 계획에 의해 경제가 집행될 경우, 정보의 속도는 어떤 양상을 보일까.
중앙당국의 계획이라는 것은 모든 정보를 완전히 갖춘 집단에 의해 경제적 계산이 행해짐을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이런 계획은 실행불가능하며 사회적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문제는 다양한 목표를 위하여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는 선택과정이다. 그러나 자원은 제한되어 있다. 중앙당국은 자원을 다양한 목표를 위해 배분해야 한다. 여기서 하이에크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현대와 같은 거대 사회의 복잡한 조건하에서 중앙당국이 경쟁자본주의의 결과에 비견하거나 근접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정확도와 성공도를 성취할 수 있는가”라고.
계획의 수립에는 자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의 지식이 필요한가이다. 적어도 경쟁체제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수준까지의 지식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하이에크는 이에 대하여 통계적 기술의 난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수준의 지식을 현실적으로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우선 계획담당자가 계획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수준, 자본, 상품 등에 대한 모든 상세한 정보를 소유해야 하는데, 이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 재화의 생산에 있어서는 소비자의 기호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비자의 기호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의 실패는 정보로서의 지식의 본질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설령 통계적 난점이 극복되어 자료수집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문제는 그치지 않는다. 얼마만큼 생산해야 적정량의 생산량일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따른다. 생산량은 끊임없이 변수에 의해서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중앙정부가 존재 가능한 수많은 변수를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또 경영상의 문제도 따른다. 모든 자원과 생산수단이 공유되어 있는 사회에 있어서도 이러한 자원과 생산수단은 누군가에 의해서 이용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용의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또 누구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과연 여기에 따르는 엄청난 정보를 중앙정부가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하이에크의 답은 ‘아니오’다.
다음으로 비용 계산의 문제를 보면, 하이에크에 있어서의 비용의 개념은 생산요소에 지불된 보수의 총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생산요소를 다른 생산에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과의 비교에서 구해지는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쟁시장에 있어서 동일산업내의 개인 기업들은 다른 기업의 비용과 자신의 비용을 비교함으로써 이러한 비용의 산출이 가능하다. 이렇게 산출된 비용이 경쟁시장에서 생산물의 가격으로 나타난다. 한편 한 상품이 오직 한 기업에 의해서만 생산되는 독점산업의 경우에는 이러한 비용은 현재의 수익과 미래의 수익에 기초해서 추산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수익은 시장에서 가격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미래의 수익을 명백히 추계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한 것은 예상가격일 뿐이다. 중앙계획당국의 비용계산은 독점 사업의 경우와 유사하다. 독점기업은 시장에서 비용과 독점이윤을 포함하는 가격을 설정한다. 가격설정자라는 점에서 중앙계획당국은 독점기업과 같다. 여기에서 계획담당자의 과제는 한계비용과 일치하도록 가격을 설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획담당자의 비용 산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하이에크는 이 모든 지식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시장 경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이것이 당시 하이에크를 비롯한 오스트리안 학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영국 사회는 물론 서방 세계에 지배적인 생각은 자본주의는 정부의 대규모적 통제를 통해서만 구제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1944년 『노예의 길』을 통해 당당히 “사회주의는 붕괴하고야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는 경제적 자유는 물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마저도 파괴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기에 아직은 불완전하다. 공정한 시장의 룰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현실에서 정부의 간섭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람들의 주장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절박성을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