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딸기 > 만델라의 연설문 (2)

어제에 이어서... 만델라의 법정 모두진술. 앞부분에서 만델라는 자신과 ANC 지도부가 생각했던 '폭력전'의 형태를 네 가지(사보타주/게릴라전/테러리즘/공개 혁명)로 요약하고, 첫번째 사보타주 단계에 들어간 배경을 설명했다.

뒤이은 부분에서는 공산당과의 연합에 대한 ANC의 공식 입장, 그리고 맑스주의에 대한 만델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 만델라가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과 오랜 세월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만델라와 카다피의 관계를 비난했을 때, 만델라는 이렇게 응수했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밑에서 힘겨운 투쟁을 벌일 때 우리를 도와준 것은 미국보다는 리비아였다"고. 

물론 만델라는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연설문에서 보이듯, 만델라는 사회주의자/공산당과의 연합을 어디까지나 전술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고, 통일전선을 벗어난 사상적 일체감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만델라의 시선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그 애정의 바탕은 카다피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드러냈던 것과 같은 '동지적 친밀감' 혹은 '연대감' 같은 것이다.

특기할 점은, 이는 남아공 백인정권의 '반공적' 성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국내에서는 흑백 차별로 악명높은 정권이었지만, 냉전 체제 내에서 보자면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불어닥친 사회주의적 흑인 민족주의 바람에 맞서 미국을 대신해 '반공주의의 보루'로도 기능했었다(미국-남아공-이스라엘의 삼각 협력구도). 백인정권은 반공을 내걸고 보안기구들을 강화해 흑인 민족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일쑤였고, 따라서 공산당과 흑인 운동가들의 이해관계는 '정권에 의해'서도 일치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

정부가 제기한 주장 중 또 하나는 ANC와 공산당의 지향과 목적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점과 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정부측은 틀림없이 내가 ANC에 맑스주의를 도입하려 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은 거짓입니다. ANC의 이념적 신조는 예전부터 늘 그래왔듯이, 아프리카 민족주의입니다. 그것은 "백인을 바다 속에 처넣어라!"라는 절규에 표현된 극단적 개념이 아닙니다. ANC가 대변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모든 이들의 자기실현과 자유이며,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의 청사진이 아닌 우리의 자유헌장에 소중히 담겨 있는 그대로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토지의 재분배를 요구할 뿐 국유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국유화의 대상은 광산, 은행, 독점기업입니다. 이는 현재 한 인종이 거대 독점기업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까닭에 정치권력이 분산된다 하더라도 이 기업들의 국유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종적 지배가 영구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내가 그들의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맑스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의 건설을 표방합니다. 공산당은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문제들을 해결할 단기적 처방으로서 자유헌장을 위해 일할 태세가 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유헌장을 자기 강령의 시작으로 여길 뿐 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ANC의 주요 목적은 아프리카 동포가 완전한 정치적 권리와 단결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반면, 공산당의 주된 목표는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그들을 대체하여 노동자 계급의 정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계급간의 차이를 강조하려 했지만, ANC는 계급간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이 점이 특히 중대한 차이점입니다.

ANC와 공산당이 종종 서로 긴밀히 협력했던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협력은 공동의 목적-이 경우에는 백인 우월주의의 철폐-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뿐, 이해관계가 같은 완전한 공동체였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세계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예들은 수도 없습니다. 그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히틀러에 맞서 함께 싸웠던 영국, 미국, 그리고 소련간의 협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누구도 그러한 협력에 대해, 처칠 혹은 루스벨트가 공산주의자라거나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어버렸다거나, 영국과 미국이 세계 공산화를 앞당기려고 노력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협력의 또다른 예를 바로 '국민의 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창'이 창설된 직후 나는 일부 조직원들로부터 공산당이 우리 조직을 지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곧 사실로 나타났고, 시간이 더 흐른 단계에서는 공개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식민지 국가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언제나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믿습니다. 이는 공산주의의 단기적 목표들이 자유운동의 장기적 목표들과 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공산주의자들은 말레이 반도, 알제리,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나라들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들 중 어느 나라도 지금 공산주의 국가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공산주의의 가장 지독한 적 중 한 명이라 할 장제스조차도 지배계급에 맞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싸웠고, 그 투쟁으로 인해 1930년대에 중국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비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협력 양식은 남아프리카의 민족해방 운동에서도 되풀이되었습니다. 공산당이 보안관찰 처분을 당하기 전에는 공산당과 ANC가 모두 참가한 공동 운동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프리카 공산주의자들은 ANC의 회원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되었으며 일부는 민족위원회, 지방위원회,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민족위원회 간부로 활동한 이들로는 공산당 서기를 지낸 아버트 은줄라, 마찬가지로 서기를 지낸 모지스 코타네, 그리고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던 J.B. 막스가 있습니다.

내가 ANC에 가담한 것은 1944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ANC가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실행하고 특정 이슈들에 대해 이따금 공산당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결국 남아프리카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희석시키고 말 거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ANC 청년연맹의 일운으로서 ANC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축출하자고 제안한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 제안은 압도적 반대로 거부당했는데, 반대표를 던졌던 이들 중에는 가장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를 지닌 분파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존의 정책을 옹호한 이유는, ANC가 애당초 같은 경향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단일 분파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수용하면서도 민족해방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아프리카인의 의회로 건설되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결국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뼛속 깊이 편견을 지니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백인들로서는 경험이 풍부한 아프리카 정치인들이 대체 왜 그리도 기꺼이 공산주의자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지를 아마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억압에 대항해 투쟁하는 이들 사이의 이론적 차이란 구입하기 부담스러운 사치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자들만이 지난 수십년간 남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들을 인간 대접하고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즉 우리와 함게 앉아서 먹고,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와 함께 살고, 우리와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정치 집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몫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정치집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남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유와 공산주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믿음을 고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민주 정부와 아프리카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버리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그들 중 상당수를 공산주의버으로 탄압하여 보안관찰 처분을 내리는 입법부입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우리의 대의를 지지하는 이들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만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보아도 공산 국가들은 늘 우리를 도와왔습니다. 유엔과 그외 국제조직에서 공산권은 식민주의에 대항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투쟁을 지지해 왔고, 일부 서구 강국들보다 우리의 어려운 처지에 더 공감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전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를 비난합니다만, 공산권은 대부분의 백인 국가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솔직하게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고 잇습니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적이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1949년의 나처럼 경솔하고 성급한 정치가 뿐일 것입니다.

이제 제 입장에 관한 애기로 방향을 돌려보겠습니다. 나는 그간 내가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은 내 정치적 신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아프리카 애국주의자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사회의 매력은 부분적으로는 맑스주의 서적을 읽은 경험에서, 또 부분적으로는 이 나라에 있던 초기 아프리카 공동체들의 구조와 조직을 향한 내 존경심에서 솟아난 것입니다. 그때는 주요 생산수단인 토지가 부족의 소유였습니다. 부자와 빈자가 따로 없었고 착취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맑스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간디, 네루, 은크루마, 나세르등 다른 지도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약간의 사회주의적 형태를 통해 우리 국민이 세계의 선진국들을 따라잡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극단적 빈곤을 극복할 필요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거나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는 공산당이 우리의 특수한 현 정치투쟁 단계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 자유헌장을 토대로 민주적 권리들을 획득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공산당이 그 과제를 촉진하는 한, 나는 그들의 도움을 환영합니다. 나는 모든 인종을 우리의 투쟁에 나서게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공산당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문헌을 읽고 맑스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바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서양의 의회체제를 비민주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반대로 그러한 체제를 옹호하느 사람입니다.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그리고 권리장전 등은 전세계 민주주의자들이 숭상하는 문헌들입니다. 나는 영국의 정치제도와 그나라의 사법체계를 대단히 존경합니다. 나는 영국 의회를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제도로 여기고 있으며, 내게 그 나라 사법체계의 불편부당함과 독립성은 언제나 존경의 대상입니다. 미국 의회나 그 나라의 권력분립 원칙,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도 역시 내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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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만델라의 연설문 (1)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내게 묻는다면, 만델라 할아버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미래형이냐면 아직 내게 그렇게 물어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데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이 책이 중간중간 '슬플' 것임을 알고 있다. 다 읽고 나면 슬픔의 과정은 기쁨의 결말로 바뀔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어떤 측면에서 비코의 이야기는 희망이 예정돼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선 '슬픔의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 흑인, '검둥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언한, 젊은 나이에 숨져간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의 압도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를 위협하고 있단 말이다. 강력하고 흥분되는, 좀 들뜨게 만드는 위협이다.

책 중에 할아버지의 연설문이 나온다. 1964년 4월20일자 법정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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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나는 학사학위를 땄고 요하네스버그에서 올리버 탐보와 동업하여 여러 해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허가없이 이 나라를 떠났다는 죄목과 1961년 5월 말에 사람들에게 파업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5년형을 살고 있는 기결수입니다.

모두(冒頭) 발언을 통해, 나는 재판 개정 초반에 정부측이, 남아프리카의 투쟁에 외국인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다고 시사한 내용은 전적으로 틀렸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포의 지도자로서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남아프리카에서의 내 경험과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내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지 어떤 제3자가 말해준 것 때문이 아닙니다. 트란스케이에서 보낸 젊은 시절에 나는 나이드신 분들이 옛날 우리 부족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새겨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선조의 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담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우리 동포에게 봉사하고 자유를 향한 그들의 투쟁에 나 자신을 바칠 기회가 내 삶에 주어지기를 희망했습니다. 내가 이 재판에서 받은 모든 혐의와 관련하여 내가 한 행동은 모두 그러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야겠습니다. 지금껏 법정에 전해진 것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사보타주를 계획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계획한 것은 경솔한 판단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폭력을 좋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백인들이 우리 동포에 대해 독재를 행하고,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수많은 시간 동안 발생했던 정치적 상황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평가한 결과 그 사보타주를 계획한 것입니다.

나는 내가 '국민의 창'의 창설에 조력한 이들 중 하나이며 1962년 8월에 체포되기까지 그 조직의 사업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점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나 그리고 그 조직을 시작했던 이들이 그같은 일을 했던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아프리카 동포의 폭력은 정부 정책의 결과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책임있는 지도부가 우리 동포의 정서를 조절하고 인도하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테러리즘이 일어나 이 나라 여러 인종들 사이에 지금까지의 전쟁에 의해서도 생기지 않았던 극렬한 적대감과 비참한 감정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폭력이 없이는 아프리카 동포들이 백인 우월주의 원칙에 항거하는 투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 원칙에 반대를 표명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들은 모두 법률에 의해 폐지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열등한 상태를 영국히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정부에 맞서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법에 맞서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법을 위반하였습니다. 그 방식을 처벌하는 법률이 생기고 정부가 자신의 정책에 ㅐ한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무력을 과시하는 것에 의지하자, 그때서야 우리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폭력은 테러리즘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의 창'을 조직한 우리는 모두 ANC의 일원이었고, 우리의 뒤에는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비폭력과 협상을 사용한다는 ANC의 전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가 어느 한 집단이 아니라 백인이건 흑인이건 그 안에 사는 사람 모두의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최후의 순간까지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사실은 50년간의 비폭력이 아프리카 동포들에게 가져다 준 것이라곤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가는 법과 점점 더 줄어드는 권리 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네 가지 형태의 폭력 즉 사보타주, 게릴라전, 테러리즘, 공개혁명이 고려되었습니다. 우리는 첫번째 방법을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그 방법을 더이상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다른 어떤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최초의 게획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주의깊게 분석한 바에 기초했습니다.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외국 자본과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발전소들을 계획적으로 파괴하고 철도와 전화 통신에 장애를 초래하면, 겁먹은 자본이 이 나라에서 빠져나가려 할 것이고, 상품들은 산지에서 항구로 일정에 맞춰 도착하기가 더 어려워져, 결국에는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누수 현상이 생기게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의 유권자들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재고해보지 않을수 없게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경제 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은 정부 건물들 및 다른 인종분리정책의 상징들에 대한 사보타주로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한 공격들은 우리 동포들을 고무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공격들은 폭력적 수단의 채택을 촉구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출구를 제공할 것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이전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채택하여 정부의 폭력에 맞대응하여 투쟁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중적 행동이 성공적으로 조직되고 그래서 그에 대해 대량 보복이 가해진다면 다른 나라들도 우리 대의에 공감하기 시작할 것이고, 남아프리카 정부는 크나큰 압력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계획이었습니다. '국민의 창'은 사보타주를 실행하기에 앞서 성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작전의 계획 혹은 수행 중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폭동이 일어난다면 정부가 우리 동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남아프리카 땅이 이미 무고한 아프리카인들의 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무력에 대항하여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력 사용을 장기적 과제로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만일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우리 동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하에서 그 싸움이 진행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측에 가장 큰 승산을, 그리고 양측에 가장 적은 인명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 싸움은 게릴라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우리가 하게 될지도 모를 게릴라전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군사교육을 받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아무런 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릴라전이 시작될 경우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훈련받은 핵심 인물들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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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1-0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헛 블루님께서 벌써 퍼가셨네요. 이 연설문(정확히 말하면 연설은 아니지만), 꽤 길어서 나눠서 올리려고 하고 있는데. :)
 

 

 

 

 

 

정치적 힘

60 , 아르헨티나의 작가 로베르토 아를트(Roberto Arlt) 정치에 몸을 담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이렇게 선언하십시오. ‘나는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한방 도둑질하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 최후의 뼘까지 팔아치우고, 의회도 팔고, 법원에는 아파트를 짓겠다고 약속하십시오. 연설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여러분, 도둑질하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남을 비꼬는 냉소적인 사람이라야 하는데,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배신자도 되어야 합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의 그대로가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는 공식일 것이다. 후안무치한 깡패들은 하나같이 정직함을 들먹거리고, 사람들은 거짓말에 지칠 만큼 지쳤다. 브라질의 정치인 아데마르 바후스(Adhemar de Barros) 사는 형편이 제일 나은 상파울루의 유권자들을 사로잡은 구호는 해먹어도 일은 (Rodba mas faz).”였다. 반면에 아르헨티나 후보자들 사이에서는 충고가 전혀 먹혀들지 앟았다. 지금 세상엔 자기가 무엇을 도둑질하겠다고 이야기하거나, 무엇을 도둑질했다고 똑똑하게 고백하는 용기있는 정치인을 만나기란 불가능하고, 공금을 약탈하고 내가 한번 잘살아 보려고 도둑질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만에 하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도둑놈이라면 최소한 당과 국민과 나라를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정치인은 자기 나라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모든 것을 챙겨서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올해의 첫번째 .

엄청 재미있다. 온갖 부정부패와 부조리와 경악할 만한 사실들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읽지만, 순간순간 저자의 말발 푸하하 웃는다. 물론 입은 쓰다만.

한동안 추천 목록에 올라가 있겠다.

 

어째 정치인들이 하는 소리는 60년 전이나, 지구 반대편이나 다를 바가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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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1-0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책이 책으로 안 읽히더이다.



같이 온 마르쿠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도 정말 좋았어요.

urblue 2005-01-0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보셨군요! 좋은 책입니다.

마르쿠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도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전 우화 종류에 약간 거부감이 있어서요. ^^;

2005-01-05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5-01-0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이죠? 흐흐....

2005-01-07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동안 해외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동유럽 발칸이 현대미술 을 중심으로 한국문화가와의 교류를 시작하고 있다.

발칸은 현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 소보, 마케도니아의 개별국가로 독립되기 전까지 이젠 역사책에 만 남아있는 국가 유고슬라비아였던 지역. 이곳은 한동안 극단적 인 폭력과 파괴가 일어났던 지역으로 유럽대륙의 지정학적 요충 지다. 그러나 발칸지역은 개별국가로의 독립과정에서 불화, 분단 ,적대적인 지역으로만 알려져 왔다.

지난해 12월초 열린 발칸지역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미술활동을 소개하는 심포지엄은 국내에서 발칸지 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던 행사였다. 대안공간루프- 대안공간풀-쌈지스페이스-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등 대안공 간 네트워크가 주최한 발칸의 현대미술 심포지엄(기획 박찬경)은 신년들어 발칸의 현대미술전 및 영화행사로 그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예술진흥원이 2월3일까지 열고 있는 국제미술교류전 도 발칸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기획이다.

대학로 마로니에미술관(02-760-4603)과 인사미술공간에서 전시중 인 ‘새로운 과거’전에선 발칸지역 작가 외에 국내작가들도 참 여, 개별작품 외에 양국 작가의 공동작업도 선보인다. 문화예술 진흥원은 ‘새로운 과거’전 기간에 발칸영화전을 기획, 매주 토 요일 오후2, 5시 미술관 세미나실에서 발칸영화 ‘아빠는 출장중 ’‘카바레 발칸’‘티토와 나’‘율리시즈의 시선’‘아라아트’ 등을 상영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02-379-3994)에서 23일까지 열리 는 ‘발칸-오키나와-코리아’는 발칸과 한국이란 두개의 반도와 열도인 오키나와를 연결한 또 하나의 현대미술전. 국내기획자 이 영철씨와 터키출신 알리 아카이의 공동기획. 지정학적 문화적 접 경인 세지역이 근대화과정에서 극심한 전쟁을 치렀고 냉전의 후 유증을 앓고 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지목, 지역 특성이 현대미 술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살폈다.

서구의 뉴스에선 문화의 불모지처럼 비쳐온 발칸지역의 작품으로 전통적인 평면회화 외에 웹아트 및 첨단영상기기를 활용한 미디 어아트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새로운 과거’전에는 크로아티아 의 이고르 그루비치, 코소보의 알레브트 헤타, 슬로베니아의 그 룹 어윈 등 10여명 외에 국내그룹 플라잉시티와 세르비아작가 노 비 사드의 공동작품인 ‘레드 아트’등 5점의 프로젝트작품을 전 시중이다.

한편 토탈미술관 전시에는 그리스 영화감독 앙겔로풀로스와 공조 한 세자 파커의 비디오설치 및 유고슬라비아시절의 최고작가였던 마리나 아브라모빅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드리톤 하지레디니의 비디오 등 코소보, 터키, 그리스, 오키나와 및 미국작가 외에 장 화진, 홍성민, 차도연, 박미나씨도 참여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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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다니는 선배는, 내가 적금 통장이나 주택 청약 하나 없다는 알게 이후로 시시때때로 상태를 확인시켜준다. “네가 얼굴이 예뻐, 몸매가 좋아, 어리기를 . 그런데다 가진 것도 없어요. 어떤 남자가 좋다고 하겠냐.” “ 그래도 좋다는 사람 있지 않을까요? 없음 말구요. ㅎㅎ” “저거 , 아직도 정신을 차렸어요.”

 

그래, 미인도 아닌데 나이 서른 넘어서 애인도 없고 돈도 없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결혼할 생각도 없이 혼자 놀기만 좋아한다. 그런데?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전부 싱싱하고 나갈 결혼이라는 안전한 그물망에 자신을 던져야 하는 건가? 아니면, 부지런히 벌어 재테크다 뭐다 신경써서 두둑한 밑천을 마련해야 하는 건가? 그런거야?

 

하여간, 이런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아가씨가 있으니, <사랑의 달걀> 마코 되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생각없이 동안 일을 하다가 서른이 앞에 닥쳤는데 회사에서는 이제 필요없으니 그만 나가달란다. 믿었던 애인이란 작자는 동안 양다리를 걸쳐온 데다, 다른 여자에게 채이고 나더니 결혼하잔다. 갑자기 날벼락이 세트로 떨어졌다.

 

엄청나게 냉철하고 뛰어난 애라 이런 상황에 닥쳐서, ‘, 이러셔, 나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고. 살아보일 테니 두고 보셔.’라고 당당하게 말할 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얘가 소심 한다. 어쩌다 보니 약간 멋지게 사표를 던졌고, 어디 군데 없는 애인이란 놈도 차버릴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래도 나보다 나은 미인에다 몸매도 좋다는 사실. .) 그런 주제에 마음에 남자가 드나든다는 이유로 덜컥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확실히 정신이 없는 애다.

 

하긴, 정신 없어도 된다. 명색이 만화 주인공이잖아. 주인공답게, 얘는 서서히 자신의 소질을 계발해가고, 마음에 담았던 멋지구리한 연하의 남자와 사랑도 키워나간다. “달걀을 깨뜨리지 않으면 오믈렛을 만들 없다.”라는 작가의 말이다.

 

마리 토끼를 손에 넣은 확실한 결말, 보면서 나를 위로한다. 거봐, 이렇게 살아도 된다니까. 흐흐. 그렇지만, 아마 선배가 이런 나를 보면 혀를 차겠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만화를 보면서 좋아해. 언제 철들래그러니까 시집을 가는 거야.” .

 

, 만화를 현실과 혼동할 만한 나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은 만화랑은 다르다, 뻔한 따위 얌전히 수긍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런 저런 삶의 방식이 있는데 가지만 고집할 이유가 뭐냐, 진리(?) 혼자 확인할 뿐이다.

 

이런거 저런거 떠나서, 재미있는 만화다. 마코의 남자친구는 생겼고, 카페에서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토모라는 아가씨도 엄청 특이한 귀엽다. 마코가 아니라 토모처럼 사는 것도 괜찮겠다. (, 다양한 재주는 물론이고 귀염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 것두 힘들겠구만. 으흑. 역시 생긴대로 살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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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를 누루고 가오.....님은 유아블루처럼 살면 되지...생긴대로 말입니다. 멋져~

balmas 2005-01-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동병상련의 념을 느끼며 추천 한 방 ...

urblue 2005-01-0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감사^^ 그래요, 역시 유아블루처럼 걍 살라구요.



발마스님, 님이 동병상련의 념이라 하시니 쪼~끔 어색합니다? ^^

딸기 2005-01-0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블루님 글은 추천 한 방 입니다만, 발마스님의 '동병상련'은 머지요? +.+

mira95 2005-01-0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전 '내멋대로 산다'가 제 인생의 신조랍니다.. 그러니 우리 그냥 멋대로 살자구요.. 이 만화도 재미있겠네요~~

진/우맘 2005-01-0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이 넘어 블루님만한 감각 유지하고 살기가 어디 쉽나요.

그 선배, 아마 샘나서 그러는 거겠죠.^^

urblue 2005-01-0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또 칭찬에 약한 블룹니다. 딸기님, 감사하구요, 미라님, 제 인생이 여태 그랬습니다. 진/우맘님, 저만한 감각이라니, 아유, 황송..^^;

2005-01-04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icare 2005-01-0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유어블루님은 우는 소리해도 아무도 안 믿어주네요.우선 저부터도 재미있게만 읽었으니.날벼락이 '세트'로 떨어졌다,진리(?)를 '혼자' 확인할 뿐..유어블루님의 글을 읽고부터 귀염성이란 것의 범주가 상당히 넓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드보일드한 귀여움이라...상상을 별로 안했던 품목이거든요.

로드무비 2005-01-0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달걀 재밌죠?

제가 토모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시구.^^

urblue 2005-01-0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님 서재에서 뵙고 남자분일거라고 생각했었답니다. 알고보니 저랑 비슷한 분이시군요. ㅎㅎ 반갑습니다.



하니님, 흠..하드보일드한 귀여움이라...저도 상상못했던 품목입니다. -_-; 어쨌거나 저 귀엽긴 하다는 말씀이신거죠? (아, 무쟈게 헷갈리고 있다는...)



로드무비님, 반지의 약속보다 사랑의 달걀이 더 재미있습니다. 역시 결혼해서 사는 것 보다는 연애하는 게 재밌는 거죠. ㅎㅎ

지금껏 보아온 바로는 님은 확실히 마코보다 토모를 더 예뻐하실 거라고 생각했다구요.

로드무비 2005-01-0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까 화장실이 급해서 추천을 빠트렸네.

흥=3 지금껏 보아온 바가 어떻다고요?

제가 젤 먼저 댓글 남긴 게 제 만화 리스트 한번 와서 보라는 것 아니었습니까.

거기 <사랑의 달걀>과 토모에 대해 써놨구만.

마치 자기가 깨달은 것처럼.^^

urblue 2005-01-0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들켰다..

urblue 2005-01-0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좀 재밌었나요? 제 독서일기가 재밌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흠...

2005-01-04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01-0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녁에 달걀 깨뜨려서 오믈렛은 아니구, 후라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 진짜 진짜 고마워요~

반딧불,, 2005-01-0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블루님...부럽습니다...

어쨌든...그래도 다 제 짝도 만나게 되어 있고, 못 만나면...돈을 조금 비축하소서^^'''

녜...훌훌 털고 여행이라도 가게요.

음..여행가고 싶어서..^^;;; 아..미스가 부럽습니다.

urblue 2005-01-0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제가 그러고 놀러 다니느라고 돈을 못 모은다니까요. -_-;

2005-01-0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