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에 다니는 선배는, 내가 적금 통장이나 주택 청약 하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시시때때로 내 상태를 확인시켜준다. “네가 얼굴이 예뻐, 몸매가 좋아, 어리기를 해. 그런데다 가진 것도 없어요. 어떤 남자가 널 좋다고 하겠냐.” “뭐 그래도 좋다는 사람 있지 않을까요? 없음 말구요. ㅎㅎ” “저거 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그래, 미인도 아닌데 나이 서른 넘어서 애인도 없고 돈도 없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결혼할 생각도 없이 혼자 놀기만 좋아한다. 그런데?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전부 좀 더 싱싱하고 값 나갈 때 결혼이라는 안전한 그물망에 자신을 내 던져야 하는 건가? 아니면, 부지런히 돈 벌어 재테크다 뭐다 신경써서 두둑한 밑천을 마련해야 하는 건가? 그런거야?
하여간, 이런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아가씨가 있으니, <사랑의 달걀>의 마코 되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별 생각없이 몇 년 동안 일을 하다가 서른이 코 앞에 닥쳤는데 회사에서는 이제 필요없으니 그만 나가달란다. 믿었던 애인이란 작자는 그 동안 양다리를 걸쳐온 데다, 다른 여자에게 채이고 나더니 결혼하잔다. 갑자기 날벼락이 세트로 떨어졌다.
엄청나게 냉철하고 뛰어난 애라 이런 상황에 닥쳐서, ‘흥, 왜 이러셔, 난 나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고. 잘 살아보일 테니 두고 보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얘가 또 한 소심 한다. 어쩌다 보니 약간 멋지게 사표를 던졌고, 어디 한 군데 볼 거 없는 애인이란 놈도 확 차버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가 좀 한심하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래도 나보다 나은 건 쫌 미인에다 몸매도 좋다는 사실. ㅠ.ㅠ) 그런 주제에 마음에 든 남자가 드나든다는 이유로 덜컥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확실히 정신이 없는 애다.
하긴, 얜 좀 정신 없어도 된다. 명색이 만화 주인공이잖아. 주인공답게, 얘는 서서히 자신의 소질을 계발해가고, 마음에 담았던 멋지구리한 연하의 남자와 사랑도 키워나간다. “달걀을 깨뜨리지 않으면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라는 작가의 말이다.
두 마리 토끼를 손에 넣은 확실한 결말,을 보면서 나를 위로한다. 거봐, 이렇게 살아도 된다니까. 흐흐. 그렇지만, 아마 선배가 이런 나를 보면 혀를 차겠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만화를 보면서 좋아해. 언제 철들래?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는 거야.” ㅠ.ㅠ
뭐, 만화를 현실과 혼동할 만한 나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은 만화랑은 다르다,는 뻔한 말 따위 얌전히 수긍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런 저런 삶의 방식이 있는데 한 가지만 고집할 이유가 뭐냐,는 진리(?)를 혼자 확인할 뿐이다.
이런거 저런거 다 떠나서, 꽤 재미있는 만화다. 마코의 새 남자친구는 잘 생겼고, 카페에서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토모라는 아가씨도 엄청 특이한 게 귀엽다. 마코가 아니라 토모처럼 사는 것도 괜찮겠다. (아, 다양한 재주는 물론이고 귀염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 것두 힘들겠구만. 으흑. 역시 생긴대로 살아야지.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