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의 <코스미코미케>는, 아마 97~8년 쯤 영등포문고에서 구입한 듯 싶다.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서가에서 골라낸, 그야말로 보석같은 작품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에게 홀딱 반해서 다른 책들도 읽기 시작했는데, 암만해도 <코스미코미케>가 최고였다.
그런데 그 책을 친구가 빌려갔고, 어쩌다보니 연락이 끊겼다. 뿐 아니라 이제는 절판된 <아르마다>와 내가 제법 좋아한 <키리냐가>, 츠바이크의 <폭력에 대항한 양심>도 함께였다. 어떻게든 돌려받아야겠다 궁리를 했지만, 그러고서도 벌써 몇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포기 상태다.
절판본 구매 대행을 하시겠노라 말씀하신 시아일합운빈현님께 가장 먼저 부탁한 책도 당연히 <코스미코미케>였다. 드.디.어.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같은 헌책방을 같은 날, 그것도 내가 먼저 돌고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운빈현님께서 찾아내어 보내주신 것이다. 받고 보니 제법 깨끗한, 1994년의 초판이다.
후배 녀석 하나도 이 책을 잃어버려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인데, 오늘 전화해서 자랑질해야겠다. ㅎㅎ

저 옆에 보이는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은 운빈현님께서 덤으로 얹어주신 프랑시스 퐁쥬의 시집.

내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고 여러분에게 말한다면─ㅋ프우프ㅋ는 말했다─, 여러분은 무에서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고 또 아무것도 기억될 수 없다고 반박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을 한마디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주장을 논박하기 어렵다는 것은 나도 인정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존재하게 된 순간부터, 다른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 무엇인가는 바로 우주였다는 사실, 또한 전에는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없었던 이전 및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이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시간이 존재하기 시작했고, 시간과 함께 기억이 존재했고, 기억과 함께 기억하는 누군가가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 또는 나중에야 바로 나라고 깨닫게 될 무엇인가가 존재하게 되었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무의 시대에 내가 어떠했는가를 기억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비록 내가 존재했었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내가 존재했었을 하나의 지점, 즉 우주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내가 비록 원했더라도, 내가 어디에 존재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이 되었으며,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 이전과 이후 사이의 차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나의 추론 역시 일리가 있으며, 게다가 여러분들처럼 단순주의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시아일합운빈현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