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지 않게 된 건 5년쯤 전이다.

학교 다닐 때는 술을 제법 마셨다. 과에서는 물론이고 동아리에서도 늘상 술을 끼고 살았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던 탓에 저녁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부름을 받았으니. 누가 시비를 걸면 참지 못하고 같이 마셔주어야했고, 비라도 올라치면 당연히 수업을 제끼고라도 또 마셔야했다. 이 세상에서 학생들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도 없을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직장엘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알았다. 1월 2일을 시작으로 연일 벌어지는 회식에 일일이 쫓아다니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팀 모임, 부서 모임, 입사 동기 모임, 선후배 모임, 동문회 모임 등등... 맥주로 시작해 소주, 폭탄주, 다시 맥주 혹은 소주로 이어지는 술판이 거의 일주일에 4~5일. 아, 학생들이 마시는 술은 술도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지 (내가 술값 낸 적이 없으니),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새벽에 귀가해서 다음날 9시에 출근하고 일은 어떻게 하는지 (나는 신입이었으니) 궁금하여라.

2~3년쯤 열나게 술을 마셔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술이 맛이 없어졌다. 그 전에는 술맛을 알고 먹었냐고? 설마. 가끔은 맛있기도 했지만 매일 마시고 괴로워하기 바쁜데 무슨 수로 술맛을 느끼겠는가. 어쨌거나. 술이 맛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한 후로 안 마셨다. 회식 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친구들을 만나도 과나 동아리 모임이 있어도 맥주만 조금씩 홀짝거릴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뻔히 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너 왜 그래? 평소 하던대로 하지?' 등 코웃음이 날아왔지만 꿋꿋하게 버텨냈다. 아닌 건 아닌거거든. 기어코 나한테 술을 주겠다고 덤비던 옆 팀 과장은 내 옆자리에서 한 5분 쯤 서 있다 결국은 그냥 돌아서기도 했다. 술을 안 마시겠다면 그러냐고 넘어가면 좋을텐데 왜들 기어코 먹이려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술을 마시는 횟수는 일년에 서너번쯤. 간혹 회가 동해서 맥주 서너병씩 마셔줄 때도 있지만 거의 한병에서 끝난다. 소주와 양주는 절대 사양. 확실히, 주량은 마시면 늘고 안 마시면 준다. 이제는 맥주 한병으로도 알딸딸한 취기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ㅎㅎ

술 끊어서 좋은 점은, 술 대신 맛있는 거 찾아서 먹게 된다는 거. 돈도 덜 들고, 집에 일찍 들어가고, 몸도 안 망가진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 MT가서, 초롱초롱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과 친구한테 배웠나보다. 하루에 대여섯 개비 정도로 많이 피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꽤 긴 시간을 담배와 함께 지낸 셈이다. 술은 끊었으니 담배는 안 끊는다, 가 내 주장이었다. 건강을 생각하면 반대로 해야 한다지만, 담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서 굳이 끊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담배가 주는 위안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서른이 넘으면서 몸이 내 맘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담배를 끊을까, 살짝 생각해봤다. 그래봤자 진지한 고민 수준도 아니었는데, 문득 담배 끊기가, 내가 자신했던 것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드는 것이다. 나 중독이야? 설마.

결정적으로 결심을 하게 된 건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 8시 1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 지각을 하지 않는데 매일 7시 40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해 용을 쓰다가 결국은 항상 10~20분씩 늦었던 것이다. 지각이 크게 문제가 되었던 건 아니고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내가 답답했다.

에잇, 이까짓 담배 끊는다. 지난 유월 초에 그렇게 선언했다. 당장 끊어지더냐고? 무, 물론 그건 아니고. -_- 끊겠다고 말하고는 한갑 더 샀다. 그리고는 끝.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신기하게 여기고 있는데, 이게 마지막이야, 이러고서 한갑을 다 피웠더니 담배 생각이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후 두어번 친구들을 만날 때 어떤가하고 담배를 피워 봤다. 다시 피우고 싶어서가 절대 아니고! 테스트, 테스트. 결과는, 콜록거리다 꺼버렸다. 술과 마찬가지로 마치 처음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 음. 놀라운 이내 적응력.

담배를 끊고 나서 달라진 점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 6시 반이면 일어나서 간단하게 체조하고 아침 챙겨먹고 출근해도 회사 가면 30분 쯤 시간이 남는다. 커피 한 잔 타 놓고 지하철에서 읽던 책을 좀 더 읽는 그 시간이 무척 좋다. 그리고, 쉬는 날 이 시간에 일어나 앉아 있다는 걸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기본 12시까지는 내처 자기만 했으니까. 지금은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8시 전에 잠이 깬다. 하루가 무척 길다.

작년엔 차로 출퇴근하기를 그만두고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벌써 일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엔 걷기가 싫어서 아침마다 차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해야 했지만 딱 한 달 뿐이더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게 훨씬 낫다.

또 뭘 끊었더라. 아, TV. 이것도 안 본지 일년 쯤. 가끔 좋은 프로그램은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젠 TV를 보는 것 자체가 짜증이라 집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조금 보다가 그냥 꺼버린다. 음.

뭔가를 끊는 거, 생각보다 쉽고 없다고 아쉽지도 않다. 오히려 생활이 간소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러다가 '끊기 중독'이 되는 건 아닌지. 다음은 이, 인터넷?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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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9-03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만은 아니되옵니다~~^^

인터라겐 2005-09-0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세요.. 울 남편도 담배 끊어 버린다고 맨날 큰소리만 떵떵하는데 ...
일단은 정말 잘하셨다고 박수 보내드립니다요...

지도 어쩔땐 인터넷 끊어 버리고 싶을때 있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05-09-0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생각보다 독한분? ㅋㅋ
남들이 이런 것 다 끊을려고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세요? 대단 대단!!
글구 인터넷도 다 끊고 기냥 알라딘만 하세요. ^^

urblue 2005-09-0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aydreamer님, 인터넷은 끊기가 훨씬 어려울 것 같습니다. ㅎㅎ

인터라겐님, 헷, 저도 잘 한 거 같어요. (삐질삐질)

urblue 2005-09-0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예전에 저희 아빠가 담배 끊는 남자 만나지 말라고 하셨었거든요. 독한 사람이라구. ㅋㅋ 근데 제 애인도 담배 끊었다네요.
알라딘은 진짜루 끊기 어렵지요. ^^

로드무비 2005-09-03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저도 끊지 말고 계속 옆에 붙여주세요.^^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게 어느 날 너무 쉽게 정리가 되는 거,
인생의 오묘한 부분 중 하나지요.)

urblue 2005-09-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렇게 쉬울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역시, 님의 말씀 한 줄로 정리가 되는군요! 멋져요, 로드무비님!
글구, 님이야말로 저 끊지 마셔요. ㅎㅎ

chika 2005-09-0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은 알라딘 서재랑 접착제로 붙어있어서 안끊어져요. ㅎㅎ

chika 2005-09-0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행여 접착력을 의심하신다면....
접착제가 떼어질때쯤 서재지기들이 몰려와서 침 왕창 바르고 다시 붙여놓을꺼예요. 걱정마세요. ㅎㅎ

야클 2005-09-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뭐를 끊어야지....하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냥 조금 줄이는 편입니다.

그래도..술은 어렵던데요? -_-a


미완성 2005-09-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세상에...그 맛있는 술을....! (__)
님에 비하면 전 완존히 접착제 인생이어요. 부끄부끄;

마냐 2005-09-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만 끊지 않는다면이얏...호호호.

술을 끊을 수 있을까....이 열악한 환경에서 블루님처럼 '독하게' 버틸 수 있을까. 감히 생각도 못해봤고, 가끔은 좋아라하기 땜시 못끊겠슴다.

담배, 뭐 한달열흘동안 1개피 피웠으니, 이쯤은 봐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슴다..ㅋㅋㅋ

울보 2005-09-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옆지기는 그 몸에 안좋은 담배를 왜 아직도 같이 안고 살고 있는지,,
잘하셨어요,그런데 인터넷도 끝으신다구요,,안돼요,

stella.K 2005-09-0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가 해롭지만 않다면 끊을거 고민할 필요없을텐데...담배의 원료가 몸에 좋은 한약재로 만들어서 오히려 피우면 피울수록 몸이 더 좋아지는, 뭐 그런 거 좀 안 나올까요? 그러면 나도 담배연기 쭉~멋있게 피워올릴 수가 있는데...ㅋㅋ.
저는 담배를 원래 못 피웁니다. 길거리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면 째려보죠. 간접흡연 시킨다고. 가까이도 가지 않죠. 잘 끊으셨습니다. 이제 블루님과 제가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군요. ㅋㅋ.

urblue 2005-09-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아, 아뇨, 인터넷 못 끊지요. 그럼요. ^

마냐님, 전 '독하게' 버틴게 아니라 그냥 어느날 스르르 욕구가 없어진 것 뿐인데요. ^^;; 즐길 수 있다면야 술이든 담배든 굳이 끊을 필요 없다고 지금도 생각하긴 합니다. 끊지 마셔요. ㅎㅎ

사과님, 전 술이 맛이 없어요. ㅠ.ㅜ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정말 맛이 없어서 못 먹겠어요.

야클님, 제가 아는 사람은 담배 끊으려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그냥 담배 피우라고 하더랍니다. 스트레스 받을 바엔 아예 끊을 생각을 안 하는게 낫겠죠? ^^a

치카님, 오호~ 접착제라구요? 맞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

urblue 2005-09-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그렇군요. 한층 더 가까워진 거 맞는 것 같습니다. ^^
근데 뭐 담배가 꼭 암을 유발한다거나 이런 것도 아니라고 하니까...에... ('' ) ( ..)

stella.K 2005-09-0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새로운 학설이네요. 우린 이제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잖아요. 음...

sudan 2005-09-03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하셨던 생활의 간소. 좋군요.
생활의 단순함은 사고의 깊이와 정비례한다던데요? ^^

sooninara 2005-09-0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만은 끊지마시길..ㅋㅋ
술,담배를 끊으시다니 존경..전 맥주 한잔 생각나면 마시는데..
울남편은 술독에 빠져서 살지만..담배를 안피어서인지 그나마 버티던걸요?

비로그인 2005-09-03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면이 많으시네요. 특히 텔레비전까지..
결심 따윈 필요없이 그냥 땡기지 않으면 그 날부터 금연이 시작되더라구요..
근데 술 마시다 탁자 위에 담배가 있으면 손이 가요..요 놈아, 내 입술이 그립지 않았느뇨..낼름 그 자리에서 줄담배! (도루묵..)

클리오 2005-09-0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담배도 안피우는데 왜 아침에 못일어나는거죠? ^^ 저도 술자리에서만큼은 담배 무지 땡깁니다.. 흐흐..

urblue 2005-09-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권해드립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

수단님, 생활이 단순할수록 사고도 단순해지는거죠? -_-

수니나라님, 그게요, 맥주 한잔 생각이 안난다는게 문제죠. 사실은 친구들이 싫어합니다. 같이 술 안 마셔준다고. 흑.
술이랑 담배랑 같이 하는게 가장 나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다들 술 마시면서 담배를 안 피우면 훨씬 덜 힘들다고 해요. ^^

복돌이님, ㅎㅎㅎ 뭐 그럴 때는 그냥 피우시면 되죠.

클리오님, 저녁에 일찍 주무세요!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