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 반납일이 임박하여 지난 일요일에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다 읽었다. 일주일 전 30페이지 가량을 읽었지만 두어 가지 에피소드 외에 기억이 나지 않아(요즘은 읽자마자, 아니 읽는 그 순간부터 까먹는다 ㅠ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첫 단락에서 나는 감지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기법. 거리 두기 작법.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7) 

작가는 분명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 위주로 글을 썼는데, 나는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훌쩍이고, 코를 풀어야 했다. 책 한 권을 내내 울며 읽기는 처음이다. <한 여자>는 맘 잡고 읽으면 앉은 자리에서 두어 시간이면 뚝딱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다. 총 110쪽. 그러나 책의 무게가 꼭 쪽수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무게는 제목 그대로 '한 여자'의 인생 무게다. 

"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한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 치매 환자였다."(18)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19) 

나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처음 접했다. 특이한 글쓰기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가장 가까웠던 존재의 인생을 이만큼 떨어져 서술할 수 있다니. 작가 스스로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있는 글이라 칭하는 작법. 감정은 밀어 놓고 있었던 사실들을 충실히 따라가는 자기분석적 글쓰기. 

나는 내 인생에 딱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다. '싶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열여섯에 내 어미가 들려준 엄마 인생의 한 귀퉁이. 고작 귀퉁이만 들었을 뿐인데 내게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제고 엄마 이야기를 써야지.

이 책을 읽다 저자의 어머니의 삶과 성격이 내 어미의 삶과 성격과 너무나 닮아 있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물론 내 어미는 책, 음악, 영화 따윈 모르는 분이었고 대신 저자의 어머니처럼 한때 가게를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 다 버려두고 어미는 혈혈단신으로 첫 남편의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 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전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51) ​

 

내 어미는 내게 조금도 살갑지 않은 엄마였다.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이 있어 나의 엉성함과 미숙함과 가벼움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내 뒤통수에다 대고까지 지겹도록 잔소리를 해대는 어미였다. 나는 내 엄마가 티비 속 다정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교회도 안 다니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도무지 싫기만 한 내 어미를 나는 이십대 중반 무렵부터 저자처럼 개인사와 사회사를 엮어 한 인간으로 이해해 보려 애썼다.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가 엄마같이 살았다면 지금의 엄마만큼 끈덕지게, 의연하게, 살았겠냐고. 답은 '아니오'였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엄마의 삶을 존중하게 되었고 어미를 존경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부분만큼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군가 너를 열두 살에 공장에 처넣어 버렸다면 너도 그렇게는 못할 거다. 넌 네가 누리는 행복을 몰라.> 그리고 또, 종종 나에 대한 분노 섞인 생각. <저런 물건이 사립 기숙 학교엘 다니다니. 다른 것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건만.> / 어떤 순간들에는 자기 앞에 있는 딸 속에 계급의 적이 있었다.(65) 

내 어미의 말은 이랬다. "내가 니년만큼 공부했으면 판검사를 하고 있거나 청와대 들어가 있었을기다!" 그랬을 것도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억척스럽기가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했던 어미가 팔순 생일을 기점으로 생을 부여잡은 손에서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녀는 변했다. . .  소소한 불편 거리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말이지 신물이 나>라고 말했다."(89)​

"일이 보배다"라는 말을 성경 말씀처럼 가슴에 품고 일을 보물단지마냥 끼고 살던 어미가 "사는 게 무재미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 어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밥을 같이 먹는 것, 아이들 재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것조차 해주기 힘들어지는 날이 오리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다.  왜. 내 어미는 언제나 강건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돈에 호기심을 보인다며 그들 전부를 싸잡아 비난하고 . . .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더러운 꼴 보기도 지겹다 지겨워.>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는 위협에 맞서느라 뻣뻣하게 굳어 버린 듯했다."(90) 

쌈짓돈이 없어졌다, 통장이 안 보인다, 도장이 사라졌다, 주민등록증이 보이지 않는다 . . . 도둑이 들었다 . . . 나와 옆지기는 졸지에 "칼로 배때지를 찔러 죽일 년놈"이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졌지 팔순을 한참 넘긴 내 어미의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살피지 않았고, 살필 생각도 하지 못했다. MRI 촬영 사진 속 내 어미의 뇌는 해마가 많이 망가져 있었고, 전두엽도 쪼그라든 상태였다. 치매 판정과 함께 어미는 심장 부정맥 판정을 받고 스탠드 시술을 받았다. 어미는 점점 여위어 갔다.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여러 번,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가 그녀만을 돌보고 싶다는 급작스러운 욕망, 그리고 곧 그럴 능력이 내게 없다는 깨달음. (사람들이 말하듯 <나로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는 해도, 어머니를 그곳에 놔뒀다는 죄책감."(105) 

나는 어미를 겨우 6개월 돌보고 요양원에 모셨다. 요양원에 모신 첫 한 달은 많이 울었다. 죄책감에 날마다 한숨을 쉬고 가슴을 쳤다. 이런 전철을 밟아본 많은 사람들과 요양원 관계자들은 어미가 요양원에 정착할 때까지 보러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따랐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런 경우 모든 치매 환자의 말은 거의 동일하다. "왜 나를 여기 놓고 갔어. . . . . ."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더욱 복받쳤다. 하여 나는 그네들의 말을 모두 무 자르듯 잘라버리고 날마다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랑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엄마가 부르는 노래와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안정을 찾아갔다. 다행히 어미는 기억만 시나브르 읽어갈 뿐 요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잘 지내고 계신다. 어미는 여전히 나와 사위와 손녀손자를 기억하고 우리가 오면 반가워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음식을 맛나게 드신다. 나는 아직은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110)를 잃지 않고 있다. 

나는 내 어미가 내게 허락한 시간, 내가 어미를 돌볼 수 있게 해준 시간에 감사한다. 켜켜이 묻어 두었던 말들을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 토해내 준  것에 감사한다. 그 말들은 내게 울음을 넘어 통곡을 끌어냈지만, 어미라는 한 여자를, 어미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로도 이끌었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함부로 가여워하지 말라.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15) 

나도 저자와 같은 생각이다. 기억을 잃어간다고, 수족을 못 쓴다고, 누워만 지낸다고, 살 권리를 박탈 당할 이유는 없다. 그것을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3-05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여기 놓고 감 ^0^

행복한책읽기 2021-03-05 16:17   좋아요 1 | URL
나보다 먼저 알고 축하글 남겨주는 scott님이 바지런함을 어쪄. 고마워요. 애들 개학하니 좀 정신없음요. 특히 둘째 땜에 ㅋㅋ 경칩이었다니. 아. 그래서 햇살이 이리도 좋았군요. 넘 따땃한 날이어요.^^ 난중에 스캇님 페이퍼 놀러갈게유~~~^^

희선 2021-03-06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사실 저는 그런 말 들으면 좀 창피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네요 이 글 봤을 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맞았네요 행복한책읽기 님 어머님이 기억은 잊는다 해도 건강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6 14:05   좋아요 0 | URL
희선님 쑥스러움 누르고 축하글 남겨줘 고마워요. 희선님은 매번 당선되던대요. 책도 열심히 읽고 리뷰도 열심히 쓰고, 본 적은 없지만 뭔가 야리야리하실 듯한데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궁금한 분이에요. ㅋㅋ 저희 엄마는 기억은 시나브르 잃어가지만 순간순간 즐겁게, 건강하게 살고 계세요. 다행히도요. 희선님이 기원을 해주니 넘 뭉클한 거 있죠. 고마워요~~~~^^

2021-03-18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19 19:05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 고마워요. 댓글 읽다 울컥했음요. 엄마 책 쓰고팠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
 

<<향모를 땋으며>>를 절반 정도 읽었다. 좋다. 정말 좋다. 강추가 ‘강강추‘로 레벨업 되었다.  

문체가 호수처럼 일렁인다. 산들바람이 풀밭을 쓸고 지나가는 문체이기도 하다. 저자 로비 윌 키머러는 과학을 시로 승격시킨 레이첼 카슨의 뒤를 잇고 있는 느낌이다. 이 책에는 네이티브 어메리칸,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토박이 나무꾼과 나물꾼의 지식과 지혜, 전문용어로 생태적 윤리로 가득하다. 그들의 입을 빌어 키머러가 글로 전하는 이야기들은 아주, 아주 아름답다. 세상은 선물들로 넘쳐나고 감사할 것 투성이나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산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토착민들의 계율을 공유한다. 나는 저 지침에 따라 냉장고를 반만 채우고 살고 싶다. ^^  

​* 받드는 거둠의 지침(271) 


자신을 보살피는 이들의 방식을 알라. 그러면 그들을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소개하라. 생명을 청하러 온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라. 

취하기 전에 허락을 구하라. 대답을 받아들이라. 

결코 처음 것을 취하지 말라. 결코 마지막 것을 취하지 말라. 

필요한 것만 취하라. 

주어진 것만 취하라. 

결코 절반 이상 취하지 말라. 남들을 위해 일부를 남겨두라. 

피해가 최소하되도록 수확하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용하라 .취한 것을 결코 허비하지 말라. 

나누라. 

받은 것에 감사하라. 

자신이 취한 것의 대가로 선물을 주라. 

자신을 떠받치는 이들을 떠받치라. 그러면 대지가 영원하리라.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2-08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2-08 23:07   좋아요 2 | URL
히히히. 지두 대출해 읽고 있는데 소장하고파요. 문체도 좋지만 내용이 새겨 읽어야할 것들 투성이에요. 물질 풍요 속 허함을 채워주는 삶의 철학이 녹아 있어요. ^^

scott 2021-02-08 2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겨두어야 할 구절이네요 받은것에 감사하고 자신이 취한것은 선물로 주고
[결코 처음 것을 취하지 말라. 결코 마지막 것을 취하지 말라.

필요한 것만 취하라.

주어진 것만 취하라. ]
이구절은 뷔페식 먹을때 나의 성향인데 ^ㅎ^

행복한책읽기 2021-02-08 23:10   좋아요 2 | URL
어머나. scott님은 저 지침들 중에서도 핵심을. 처음 것을 왜 취하지 말라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저자가 나중에 알려주더라구요. 듣고 아!! 했는데, scott 님은 뷔페에서 이미 실천을 ㅋㅋ

청아 2021-02-08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호수처럼 일렁인다‘에서 어머머 저도 찜~♡

행복한책읽기 2021-02-08 23:11   좋아요 2 | URL
미미님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거임^^

희선 2021-02-09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자연과 함께 살려고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그렇게 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군요 사람은 왜 그렇게 자신한테 있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지, 그건 없을 때를 생각해서 그런 거기는 하겠지만... 많은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살기도 하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2-09 11:23   좋아요 1 | URL
ㅎㅎ 희선님은 더 많이 가지려 다투지 않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본 적이 없어 그저 느낌으로만. 저 책을 읽으면 정말 아끼고 나누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든답니다.^^

막시무스 2021-02-09 0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레벨업된 추천 기꺼이 받아 봅니다!ㅎ 정혜윤 PD님도 이 책 살짝 언급하여 잘 참았는데, 행복한책읽기님께서 또 한번 언급하시니 지갑 강탈됩니다요!ㅎ 즐건 하루되십시요!

행복한책읽기 2021-02-09 11:27   좋아요 1 | URL
정혜윤 PD님이 당근 좋아할 만한 책일 듯요. 이 분 레이첼 카슨 완전 팬인 걸루 알거든요. 저는 지갑 열지 않고 두 도서관서 예약과 상호대차를 오가며 읽고 있는데, 소장하고파서 조만간 지를 거예요. 막시무시님께도 애독서가 되면 좋겠어요. ^^
 
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207 시라는별 9

아,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 이성복 

냇물 가장자리 빈터에 새끼오리 너댓 마리 엄마 따라 나와 놀고 있었는데, 덤불숲 뒤에서 까치라는 놈 새끼들 낚아채려 달려드니, 어미는 날개 펼쳐 품속으로 거두었다 멋쩍은 듯 까치가 물러나고, 엄마 품 빠져나온 새끼들은 주억거리며 또 장난질이었다 그것도 잠시, 초록 물무늬 독사가 가는 혀 날름대며 나타나니, 절름발이 시늉하며 어미는 둔덕 아래로 뒷걸음질 쳤다 그 속내 알 리 없는 새끼들 멍하니 바라만 보고, 그때 덤불숲 까치가 다짜고짜 새끼 모가지 하나를 비틀어 물고 갔다 그리고 차례차례 그 가냘픈 모가지를 비틀어 물고 갈 때마다, 남은 새끼들은 정말 푸들, 푸들, 떨고 있었다 다 아 얼마나 무서웠을까? 돌아온 어미가 새끼들 부를 때, 덤불숲 까치는 제 새끼 입속에 피 묻은 살점을 뜯어 넣어주고 있었다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


이 시는 이성복 시인이 인생을 십 년 단위로 나눈 시기(래여애반다라 來如哀反多羅) 중 ‘哀‘에 해당하는 시다. 그러니까 ‘슬픔을 맛보‘는 때이다. 그 뜻 그대로 이 시를 읽고 펑펑 울 뻔했다. 흐르는 눈물은 그대로 두었고 꺼이꺼이 나오려는 울음은 삼켰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건 제목부터였고 기어이 눈물 터지게 한 건 마지막 구절,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였다.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내 엄마, 세월호 부모, 각종 재난과 참사로 숨진 이들과 그들의 가족, 친지, 지인 등등등.

인생의 슬픔(哀)을 맛보는 때가 비단 스물에서 서른 사이에 국한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이 시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을 맛보고 그 사실에 치를 떨고 그 사실 앞에 좌절하다 결국은 그 슬픔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삶의 본질을 깨달아버린 듯하다. 왜냐하면 까치도 뱀도 남의 새끼를 죽여야 제 새끼를 살릴 수 있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새끼오리들은 모가지 비틀린 채 어미 까치에게
물려가는 자매들을 두 눈 뜬 채 보면서 그저 ˝푸들, 푸들˝ 떨고 있을수밖에 없다. 엄마 무서워요, 엄마, 어디 있어요? 어미오리는 다리를 절뚝이며 뱀을 유인하러 갔다. 어미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지 못했다. 지킬 수 있을 줄 알고 지키려 했던 새끼들을 잃은 어미 오리는 이제 어이 살까?

이성복 시인은 1977년 계간 <문학과지성>에 발표한 시 <정든 유곽에서>으로 등단했고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출간했다. 데뷔 나이 스물여섯, 첫 시집 발표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이성복 시인은 대학 은사이자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 선생의
추천사를 늘 가슴에 새기고 살려 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이 시절(청년)의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고.

˝우리는 이번 호에도 새로운 시인을 소개하는 즐거움을 갖고 있다. 이성복 씨의 시에는 상처 받은 젊은이의 아픔과 아픔 그대로 선열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 아픔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획실하지 읺으니, 우리는 그것이 오히려 이성복 씨의 시가 가지고 있는 큰 장점 중의 하니라고 생각한다. 아픔의 근원과 증세가 확실하다면, 이미 그것은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이기 때문이다.˝(문학평론가 김현의 1977년 추천사 중 )

인생의 어느 때고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때가 없다. 이유가 있는 상처들은 그 어느 때고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흐려지되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도 있다. 남의 목숨에 빌붙어 사는 존재가 어디 저 시의 까치와 뱀 뿐이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러하다. 모든 생명은 생명이 깃든 다른 존재를 등쳐먹고 살거나 잘해봐야 그것에 기대어 산다. 인생의 본질이 그러하다. 아프고 슬프다. 이 아픔과 슬픔은 결코 치유될 수 없고
죽어서야 끝이 날 터이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 라는 물음 뒤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그럼에도 . . . 그럼에도 여전히 살고 있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지만,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쓰리라. 몰라 그렇지, 아름다움 역시 지천에 깔려 있을지 모르니.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2-07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哀‘인생의 어느 때고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때가 없지만‘ 오늘처럼 공기는 탁하고 하늘도 뿌옇지만 햇살만큼은 1월보다 좀더 따뜻한, 매순간 반짝였던 햇살이 지난밤에 어둠을 잊게 만들죠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좀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꺼라는 희망 그 희망이 삶에 버팀목이 되주는것 같습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행복한 책읽기님 사진 지인짜 잘찍으쉼 ^0^

행복한책읽기 2021-02-08 10:27   좋아요 2 | URL
ㅎㅎㅎ 사진 진 ~~~ 짜 잘 찍는다는 말 첨 들었음요. ㅋㅋ 지가 찍는다기보다 자연이 그저 보여주니 지도 그저 담을 뿐이지요. scott 님은 매순간의 반짝임을 잡아챌 줄 아는 눈 밝은 자로군요. 님의 희망 무지개는 바로 그런 눈과 마음이군요.^^

청아 2021-02-07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너무너무 좋은데요? 두번읽었어요!!♡ 책 읽다 우는거 아주 반갑습니다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2-08 10:29   좋아요 2 | URL
와우. 걸출한 작가님들 훌륭한 글 많이 읽으시는 미미님이 두 번씩이나 읽어 주셨다 하니, 몸둘 바를 ㅎㅎㅎ. 전 책 읽다 자주 울어요. 어제는 책 한 권을 울며 다 읽었어요.^^;;; 미미님 오늘도 굿데이~~~~

희선 2021-02-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살면서 어느 때든 슬픔을 맛보겠지요 슬프다 해도 그만 살 수도 없고, 그래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만 그렇지 않겠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슬픈 거겠지요 슬픔도 있지만 가끔은 기쁨도 있으니 좀 낫겠습니다


희선
 
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204  시라는별 8 

極地에서 
- 이성복 

무언가 안 될 때가 있다 

끝없는, 끝도 없는 얼어붙은 호수를 
절룩거리며 가는 흰, 흰 북극곰 새끼

그저, 녀석이 뜯어먹는 한두 잎 
푸른 잎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을 내리찍을 
거뭇거뭇한 돌덩어리 하나 없고, 

그저, 저 웅크린 흰 북극곰 새끼라도 쫓을 
마른 나무 작대기 하나 없고, 

얼어붙은 발가락 마디마디가, 툭, 툭 부러지는 
가도 가도 끝없는 빙판 위로 

아까 지나쳤던 흰, 흰 북극곰 새끼가 
또다시 저만치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 몸은, 내 발걸음은 점점 더 눈에 묻혀 가고 
무언가 안 되고 있다 

무언가, 무언가 안 되고 있다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오라, 서럽더라‘로 풀이되는 <래여애반다라> 는 시인의 나이 예순이 되는 해에 완성된 시집으로 6장으로 나뉘어 있다. 시인이 육십 인생의 자취를 십 년 단위로 돌아본 것, 인생의 여섯 단계를 ‘래 여 애 반 다 라‘라는 여섯 글자로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生이라는 것을 부여받은 인간이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 (시인의 말 중)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오늘 올리는 ‘極地에서‘는 저 여섯 단계 중 네 번째 단계, ˝맞서 대들다가˝ 시기에 들어 있는 시다. 서른에서 마흔 사이. ˝무언가 안 될 때가 있다˝ 라는 첫행과 ˝무언가, 무언가 안 되고 있다˝라는 마지막행의 대구가 돋보이는 시. 저 두 행만으로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 가슴이
짠해지는 시. ˝무언가˝가 안 되는 때가 어디 저 때뿐이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무언가˝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는 존재로 살다 가는구라 라는 허무와 맞닥뜨리게 된다. 저 때는 아직 그 시기가 아니다. 저 때는 ˝무언가˝가 안 되고 있지만 그 ˝무언가˝를 향해 여전히 ˝맞서 대들˝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시기다. 생이 너를 배반할지라도 살으라 는 명령이 아닌, 살리라는 의지를 따르는 시기. 그래서 이 단계의 시들은 일상의 삶으로 도배되어 있다.

어제도 눈이 나려 오늘 아침 세상도 하얀 눈에 덮여 있다. 살으라. 살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2-04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무언가˝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는 존재로 살다 가는구라]
이구절에 가슴이 먹먹,,,

행복한 책읽기님에 사진은 수묵채색에 느낌이 ,,,,
2월4일 입춘날 눈을 먹고 있는 나무들

행복한 책읽기님 마이리뷰중 ‘시‘포스팅
가장 애정하고 있음^0^

행복한책읽기 2021-02-05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읽기 뿐 아니라 애정하고 계시다고라. 우와. 저 어깨 뽕 들어가게 생겼음요. scott 님이 이리 말씀해주니 더 힘이 납니다요. 오늘도 굿데이~~~^^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201 겨울밤 산책, 밤은 선생이다 

​겨울 찬바람이 귓전을 때릴 때면 엄마의 말소리도 덩달아 귓속에서 울린다. ˝니년은 머가 춥다고 그리 웅숭그리고 있노.˝ 엄마는 욕쟁이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작은 아이였고, 엄마는 추위를 모르는 기골 장대한 어른이었다. 추워서 몸이 자꾸만 움츠러드는데도 나는 겨울이 싫지 않았다. 아니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겨울이 좋았다. 겨울의 알싸한 찬공기, 찬 담벼락에 스미는 따스한 햇살. 차가움과 따뜻함의 접속. 한류와 난류의 교류. 그 둘의 조화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물론, 그 시절엔 그런 줄 모르고 좋아했다. 

​겨울이 문턱을 지나 방안까지 쳐들어올 즈음,  유튜브를 켜놓고 따라하는 실내 운동이 슬슬 지겨워지고 있던 즈음, 기온이 영하 깊숙이 내려간 날 집밖을 나섰는데, 차디찬 공기가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겨울 바람의 매운 손찌검에 뒤따라온 것은 겨울 냄새였다. 내 몸이 기억하는 비릿한 한파 냄새. 아주 반가웠다. 겨울아, 진짜 너로구나. 그날부터 밤산책에 돌입했다. 밤이라 한동안은 아파트 단지를 뱅글뱅글 돌았는데, 재미가 덜해 요즘은 뒷산을 돈다. 뒷산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다. 나는 밤길을 그닥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늘밤의 기온은 영상 3도. 체감온도는 0도. 얼얼한 추위를 맛볼 기온은 아니지만 낮은 산이어도 찬바람이 들락거려 산 아래보다는 춥다. 바람을 밀며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몸이 조금씩 데워진다. 밖은 시리고 안은 훈훈하다. 겉은 따갑고 속은 따숩다. 극과 극의 교류는 정신을 깨우고 가슴을 때린다. 행복해진다.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는 행운아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 않다 해도.  

​밤과 걷기는 사색의 좋은 친구다. 오늘밤이 묻는다. 밤은 선생인가? 두 권의 <<코스모스>>가 내게 알려준 바로는 밤은 확실히 선생이다. 밤은 내가 이 세상에 오기 훨씬 전에, 헤아릴 수도 없이 먼먼 시절부터 존재했으니, 먼저 난 존재 先生이 맞다. 무릇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은 나의 선생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도 내게 선생이다. 그분은 내가 사랑하는 밤과 읽기 몰입의 희열을 동시에 안겨준 이였다. 

《밤이 선생이다》는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한 대목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를 빌어 선생이 밤에 대해 펼친 단상을 엮은 에세이다. 지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겸비된 글의 풍경이 펼쳐진 에세이.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셰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 . 문제는 이성을 빙자하여 말과 이론과 법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와 제도의 횡포에 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결국 그 횡포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일이며, ˝어둠의 입˝이 해줄 수 있는 말이란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의 말이자 미래의 말이다.˝(220) ​ 

​황현산 선생의 글은 냉기와 온기가 교차하는 겨울밤 산책을 닮았다. 선생의 지성은 차가우면서 따뜻하다. 낮에 벼린 차가운 이성을 밤이 되면 따스한 감성으로 둥글린다. 그렇기에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상하다. 또한 선생의 사유는 가슴을 무겁게 누르기보다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한파가 들이닥치기 전의 겨울밤, 걸음과 걸음이 포개지고 포개져 훈기가 발끝에서부터 머리꼭대기로 차오를 즈음 밤은, 말 그대로 나의 ‘선생‘으로 찾아와 내 삶에 윤기를 더해주었다. ​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21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2-02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야경 너무 근사하게 찍으셨네요~♡ 리뷰가 좋아요! 저도 밤길이 안무섭고 싶은데 인적이 드물면 한번씩 돌아보고 둘러보고 급해지고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2-02 11:34   좋아요 2 | URL
애인을 델고^^ 고것이 난감이면 강아지라도^^;; 저 사진은 지도 살짝 무서워 고개 돌렸다 얻어걸린 장면임다^^

scott 2021-02-02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만 있는줄 알았다가 마지막 사진이 예술!

행복한책읽기 2021-02-02 11:36   좋아요 2 | URL
자연과 인공이 연출해낸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