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4 매일 시읽기 87일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남정림

어젯밤 하느님께서
크리스마스 케익을 만드셨나봐
새하얀 밀가루를 고운 채로 흔들흔들 흔드셨나 봐

꿀맛 프로스팅도 잊지 않으셨지!
앙증맞은 성탄별과 지팡이
장식을 올린 하느님표 수제케익

쌔근쌔근 잠든 어린이들 머리맡에
두고 오라는 하느님 말씀에
천사들의 날개짓이 빨라졌지

간밤에 내린 눈은
천사들의 입김이 꽁꽁 얼어붙은 것이지


크리스마스 관련 시를 검색하니, 이분의 시가 제법 포스트 되어 있었다. 이런 류의 약간 오글거리는 시는 내가 선호하는 시가 아니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천사들의 날개짓˝에 기대어 가볍게 날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내일이면 ˝천사들의 입김이 꽁꽁 얼어˝ 세상이 하얀 눈에 덮여 눈이 부시려나.

남정림 작가는 따로 시집을 내지 않고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에만 작품을 올린다고 한다.
https://m.blog.naver.com/catnam7/222177619064

코로나로 콧바람 새는 것도 
사람 만나는 것도
삼가야 하는 연말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혼자,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캐럴은 들을 수 있잖아
그러니 크리스마스 
모두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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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24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늘 책 님의 김치가 눈에 똭 들어오나요!!ㅠㅠ 새벽에 일어나서 갑자기 허기를 느낍니다, 그려. 😢
글고 시는 밑에 시가 더 좋은걸요!😍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책읽기 님!!🎄🎁🎆❤️

행복한책읽기 2020-12-25 01:30   좋아요 0 | URL
아. 라로님께는 김치가. 저건 2년된 묵은지에요. 겹살이 구이용이거나 찌개용인데. 가까이 있음 정말 나눠 주고프네요. 저희 김치는 정말 맛있거든요. 마구 자랑질^^;;;

라로 2020-12-25 04:48   좋아요 1 | URL
저 묵은지 좋아해요!!! 그런데 2년이나 묵은 것이라니!! 와우!!
말씀은 너무 고마와요. 더 먹고 싶어지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주소 알려주세요. 제 이벤트에 당선되셨거든요.ㅋㅋ

2020-12-25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6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atnam 2021-03-1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시에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3-15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15 16:58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20201223 매일 시읽기 86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 
- 김행숙  

거의 잊혀진 것 같다 
머리 하나를 두고 온 것 같다 

머리가 두 개인 사람처럼 
머리를 일으켰다 

모든 게 너의 착각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헤어질 때 
당신이 한 말 

두 명의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간신히 한 사람만 안아 일으켰다 

라디오 스위치를 켜고 
어제와 똑같은 방송을 들었다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를 다시 펼쳤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아침에 일어날 때 몸과 맘이 천근만근 무거운 상태를 ˝머리가 두 개인 사람˝으로 비유했다. 무거운 이유는 화자에게 뼈아픈 말을 화살처럼 던지고 떠난 사람 때문이다. 내 모든 관심과 사랑이 ˝다 너의 착각˝이었다고,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그것도 사랑하는 이에게서 듣게 된다면 무릎이 구부러진다. 가슴이 무너진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 화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간신히˝ 일으킬 힘이 남아 라디오를 켜 방송을 들으니까. 몸에 밴 습관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으니까.

떠나간 사랑으로 상처 입는 나이에선 저만치 물러나 있으나, 지금은 맘보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녹록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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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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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만에 다 읽었다. 2020년 나의 최애 소설로 선정. 내가 한 권의 소설을 쓴다면 딱 이런 문체로 글을 쓰고 싶다. 간결한 시적 문체. 글이 찰랑거리고 넘실거린다. 때론 거문고 줄을 타듯 읽혔다. 내년엔 더 많이 읽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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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2 매일 시읽기 85일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시인이 운영하는 나눔문화로부터 매주 화요일 시를 수신 받는다. 밤사이 또 한 번의 눈이 내린 날 이메일로 날아온 시는 ‘겨울 사랑‘이다.

이 시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박노해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소유하고 있으나, 이 시집은 없다. 2020년 1월시인은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라는 제목의 사진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딸이 초등학생이 된 후로 여름방학이면 딸 친구들과 그들의 형제자매와 그 엄마들과 서울 자하문에 있는 백사실 계곡에 놀러갔다. 계곡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가 있었다. 현재는 경복궁역 쪽으로 이사를 했다.

나눔문화는 ˝정부 지원과 재벌 후원을 받지 않고 언론 홍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후원 회비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사회운동단체이다.

박노해 시인은 대학 시절 우리의 우상 같은 시인이었다. 노동자도 아니면서 노동인 척하며 노랫말에 담은 시인의 시를 막걸리잔 앞에 놓고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는 진심이었으나 돌아보면 노동자코스프레를 한 꼴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요즘 시는 80년대의 치열함과 처절함에서는 물러난 모양새다. 대신 그 자리에 따뜻함과 포근함이 들어와 있다. 겨울이 깊어진다는
건 봄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아직은 겨울 초입. 시인의 사진에세이 제목처럼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이 겨울을 보내리. 추위를 껴안고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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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매일 시읽기 84일 

감자는 감자 아닌 걸 생각나게 하고 
- 이규리 

슬픔을 감자 바구니에 담아놓고  
파먹기 시작한다 
토실토실하구나 
얼마든 배불러도 되겠어 

하지 햇볕은 끊어 쓰고도 남아 
또 남아 
다시 끊어 쓰다가 눈이 베어 

ㅡ왜 여기 앉아서 뜨거운 감자만 먹고 있는 거야 
ㅡ이 소금 바가지는 다 뭐야 

그렇더라도 
아픔을 사용하진 마 
병을 이용하지 마 

오늘은 다르다 하며 오늘을 가고 
길어진 해는 등에 모아서 

슬픔은 등뼈가 곧아 머리를 숙이지도 않네 

유리창에 바싹 다가가면 내일이 일찍 올지도 몰라 
내일이 오면 다른 마음이 들지도 몰라 

감자는 왜 감자 아닌 걸 생각나게 하지 
배가 부른데 왜 허무한 거지 
감자가 아니야 슬픔이 아니야 

길었을 뿐이야 

모아둔 볕은 어디에 풀어야 할까 

어떤 믿음은 이제 이곳으로 오지 않을 텐데 
망초꽃은 하염없는데 


다시 이규리. <감자는 감자 아닌 걸 생각나게 하고>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규리 시인이 2019년 두 권어 시론집을 펴낸 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쓴 글이 떠올랐다.

˝그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인식을 심어준 문장은 바로 ‘종이는 종이 아닌 것으로이루어졌다’(틱낫한)이다. 종이는 종이 그 자체가 아닌 물, 나무, 바람, 햇빛 등 수많은 요소로 이뤄졌다는 것. ‘종이’와 ‘종이 아닌 것’이 같다는 걸 알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렇듯 시로써 다 말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모아 그는 ‘시의 인기척’과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에 담았다.˝ (2019년 7월 11일자 이지혜 기자)

˝종이는 종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졌다˝라는 틱낫한의 잠언을 살짝 틀어 ‘감자는 감자 아닌 걸 생각나게 하고‘라는 문장을 만들어냈다. 

감자 바구니에 든 것은 감자지만, 감자를 파먹는 행위는 슬픔을 먹는 것이다. 감자가 토실토실하다며 ˝얼마든 배불러도 되겠어˝라고 하다니. 슬픔으로 배를 불리면 어떻게 될까. 허무˝해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슬픔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채워주지 않는다. 날이 서 있는 슬픔, 남아 돌아 눈을 베는 슬픔, 망초꽃처럼 하염이 없는 슬픔.

˝슬픔은 등뼈가 곧아 머리를 숙이지도 않네.˝ (기억해 두고 싶은 시구다) 

현재 시점에서 내 슬픔은 등뼈가 조금 굽었다. 슬픔이 자아낸 눈물 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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