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2 매일 시읽기 85일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시인이 운영하는 나눔문화로부터 매주 화요일 시를 수신 받는다. 밤사이 또 한 번의 눈이 내린 날 이메일로 날아온 시는 ‘겨울 사랑‘이다.
이 시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박노해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소유하고 있으나, 이 시집은 없다. 2020년 1월시인은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라는 제목의 사진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딸이 초등학생이 된 후로 여름방학이면 딸 친구들과 그들의 형제자매와 그 엄마들과 서울 자하문에 있는 백사실 계곡에 놀러갔다. 계곡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가 있었다. 현재는 경복궁역 쪽으로 이사를 했다.
나눔문화는 ˝정부 지원과 재벌 후원을 받지 않고 언론 홍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후원 회비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사회운동단체이다.
박노해 시인은 대학 시절 우리의 우상 같은 시인이었다. 노동자도 아니면서 노동인 척하며 노랫말에 담은 시인의 시를 막걸리잔 앞에 놓고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는 진심이었으나 돌아보면 노동자코스프레를 한 꼴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요즘 시는 80년대의 치열함과 처절함에서는 물러난 모양새다. 대신 그 자리에 따뜻함과 포근함이 들어와 있다. 겨울이 깊어진다는
건 봄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아직은 겨울 초입. 시인의 사진에세이 제목처럼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이 겨울을 보내리. 추위를 껴안고 사랑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