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8 #시라는별 66 

나의 떨켜 
- 이산하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죽음을 연습하고 
잎은 떨어지는 힘으로 삶을 연습한다. 
헝클어진 뿌리들도 자세히 보면 
그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그 어느 잔뿌리 하나 쓸모없는 게 있던가. 

사람이 죽으면 가장 깊은 정으로 맺힌 부위가 
가장 먼저 썩는다지만 썩어서 나무들의 떨켜처럼 
제 목숨의 무게만큼만 돋아나지 않더냐. 
나는 내 몸에 돋은 떨켜를 모두 떼어내 
나를 멸종시켜버린다. 


‘떨켜‘는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을 말한다. 주말에 관악산을 다시 찾았더니 알록달록 예쁘게 산을 물들여놓았던 나뭇잎들이 일주일만에 거의 지고 없었다. 이산하 시인의  『존재의 놀이』에 수록된 이 시가 떠올랐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죽음을 연습하고 
잎은 떨어지는 힘으로 삶을 연습한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도 한 그루 가을 나무. 몸의 어떤 부위가 삐거덕거릴 때면 잎이 투두투둑 떨어지는 가을 나무 같다. 죽음 또한 이전과 사뭇 다르게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에 사시나무 떨듯 몸과 맘이 부르르 떨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떨어지는 힘으로˝ 살고 싶은 나무에 가깝다. 우리네 삶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기에 사실 연습이 불가하지만, 잎을 떨어뜨리듯 악착 같이 부여잡고 있는 무언가를 하나씩 내려놓으며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잎이 떨어진 자리,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지점에 돋아나는 ‘떨켜‘. ˝떨어지는 힘˝으로 생겨난 세포층. 이산하 시인은 자신의 ˝몸에 돋은 떨켜를 모두 떼어내 / 나를 멸종시켜˝ 버리겠다 말하지만, 나는 아직 나를 멸종시켜 버릴 수가 없다. 추락을 사는 힘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생은 아물지 않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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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8 11: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11월의 시~
행복한 책읽기님이 올려주신 시어 속에 오늘의 감사와 내일의 희망을 품으며
마지막 사진 속 붉은 열매 처럼
행복한 책읽기님 한 주 시작, 건강하게 ^ㅅ^

행복한책읽기 2021-11-09 12:42   좋아요 4 | URL
요즘 손이 넘 저려요. 목디스크가 도져서 핸폰도 들고 있기 힘들다는 ㅠㅠㅠ 건강하고 싶어 다시 치료 받으러 다닙니다. scott님 감사해요^^

미미 2021-11-08 13: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을을 잘 포착하신 행복한 책읽기님~♡ 벼랑의 꽃이 먼저 피나봐요. 이 글을 읽고나니 포착하는 시인의 삶은 분명 생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1-09 12:45   좋아요 3 | URL
벼랑이 볕이 잘 들어 그렇겠죠. 위태로워 더 바쁘게 피는 꽃. 사람살이는 평지 꽃처럼 느긋하게 피어나면 좋겠어요. 그죠^^

새파랑 2021-11-08 13: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죽음을 연습하고, 잎은 떨어지는 힘으르 삶을 연습한다니 너무 멋진 문장이네요 ㅜㅜ 역시 시인의 언어란 울림이 있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11-09 12:47   좋아요 4 | URL
시인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해 지는 읽기만 합니다. 허나 감상할 줄 아는 독자도 멋진 거겠죠. 공유로 공명하니 울리겠죠^^

mini74 2021-11-08 17: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통통 튕기는 공처럼 살아간다면 떨어지는 힘으로 더 높이오를텐데. 높이 오르는게 다 좋진 않지만요. 가을도 다 가나봐요. 이파리 하나 남은 나무 운치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1-09 12:50   좋아요 5 | URL
와. 통통 튀는 공처럼!!! 생각해보니 저 한때 그렇게 살았던것 같아요. 지금은 바람 빠진 공.^^;;; 근데 말씀대로 높이 오르는게 좋지만은 않다고 하신 것처럼 낮은 곳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듯해요. 인생의 가을도 즐겨보려구요^^

얄라알라 2021-11-10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덕분에 이산하 작가님의 시를 듣고,
시와 어쩌면 이렇게 사진이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요? 감동입니다.

2021-11-10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2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1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