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4 #시라는별 60
여행으로의 초대 L‘invitation au voyage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내 소중한, 내 사랑아,
꿈꾸어보아요.
그곳에서 함께 사는 달콤함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죽는 날까지 또 사랑할 테요.
그대 닮은 그곳에서!
흐린 하늘의 촉촉한 태양이
내 마음 매혹시키네,
못 믿을 만큼
신비로운 그대 눈동자에
스치듯 반짝이는 눈물로.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세월의 광택으로
빛나는 가구들로
우리 침실을 장식하리라.
진귀한 꽃들
그 향기와 어우러지는
은은한 호박향
호화로운 천장
깊숙한 거울
동방의 찬란함
그 모든 것이 들려주리라.
내 영혼에 은밀하게
정겨운 그대의 고향 언어를.
그곳에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저 운하 위에
잠든 배들을 보아요.
방랑벽에 젖은 채로
그대 소망 아주 작은 것까지
채워주려
세상 끝에서 왔답니다.
ㅡ 저무는 저 태양이
물들이고 있어요. 저 벌판과
운하와 도시 곳곳을,
보랏빛과 금빛으로.
이제 세상은 잠들 거예요,
따뜻한 햇빛 속에서.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아니 에로느의 『얼어붙은 여자』 에서 보들레르를 만났다. ˝뜨거운 사랑이 나타나기까지 어쨌든 살아야 한다. 누군가 손을 잡게 내버려둬요, 나의 사랑 나의 누이여.˝(111쪽) ˝나의 사랑 나의 누이여˝가 등장하는 시의 제목은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라고 주석이 달려 있다. 그래? 나는 보들레르를 더러 읽었건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 읽던 책 잠시 내려놓고 소장하고 있던 보들레르의『악의 꽃』 을 꺼내 찾아 보았다.
민음사 번역과 문예출판사 번역은 꽤 다르다. 시적 리듬에선 민음사에 손을 들어 주고 싶고, 번역 자체로는 문예출판사 쪽이 더 잘 읽힌다. 이 시는 보들레르가 Marie 라는 젊은 여배우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스물다섯에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땐, 나 역시 시인처럼 사랑의 달콤함과 영원함을 믿으며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햇빛˝ 속을 거니는 꿈을 꾸었으리라. 시인의 말처럼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
이 가득하리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살아온 만큼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고 이 시를 읽으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죽는 날까지 또 사랑할 테요˝는 무슨! 나는 저 시행을 이렇게 바꿔 읽었다. ˝죽는 날까지 또 읽을 테요.˝ 왜냐하면 책들은 언제나 나를 여행으로
초대하고(코로나 이후 더해졌음) 나는 책속에서 ˝질서와 아름다움 /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을 가장 짙게 느끼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읽은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의『내 방 여행』도 생각나는구나. 지호에서 2001년 출간되었던 이 책은 2016년 유유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는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여 가장 애송되는 시이기도 하단다. 다음은 그 중 하나인 프랑스 작곡가 앙리 뒤마르크가 작곡한 가곡이다. (1870년)
https://youtu.be/o-d2KXgpaS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