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이런 스승에게 배우고 이런 스승을 본받기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

그런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참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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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에 쓰던 자료들 사이에서 성격책 한 권을 발견했다.

거의 새것과 다름없었는데, 앞에는 '영희에게 브루닉 신부가' 라는 영어 서명이 있었다.  오래 전 내가 유학 떠나기 바로 전날, 브루닉 신부님이 내게 선물로 주셨던 성경책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 브루닉 신부님은 나의 대학 스승님이다. 아니 단지 스승을 넘어 내 삶의 은인이시다.  신부님이 안계셨으면 나는 아예 대학에 다니지도 못했들지 모르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아니, 아리로니컬하게도)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故 장황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찿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결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했다.  어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찿아가 제발 시험만이라고 보게 해 댤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고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마치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쁜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 고.....

 

  약간 불그스레한 얼굴에 순진하고 맑은 큰눈, 늘 만면에 미소를 띠시던 신부님은 1학년 전공필수인 영문학 개론을 강의하셨다. 그때 나는 서양문학 최고의 고전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이며, 성경에 관한 지식 없이는

영문학을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신부님은 문학작품을 마치 무슨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온몸으로 연기하시며 강의하셨다. 프란시스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강의하실 때는 온 교실을 누비시며 정말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리고 다니셨고,<라 만차의 사람>이라는 돈키호테에 관한 연극을 소개하실때는 말을 카고 가며 창을 던지는 시늉을 하셨다.  교실 밖에서 나를 보시면 신부님은 두 팔을 벌리면서 "마라아(나의 세레명), 마리아, 사랑하는 마리아" 라고 당시 유행하던 패티 김의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신부님은 당시 우리말을 배우고 계셨지만,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시라 별로 큰 진전은 없는 듯했다.  그런데

한번은 강의를 하시다가 문득 한국말에서 제일 발음하기 힘든 두단어는 '교통순경' 과 '욕심꾸러기' 라고 하셨다. 정말 신부님의 발음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웠던지. 철없은 우리는 책상을 치며 깔깔 웃었다. 조금 머쓱해지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삶의 '교통순경'이다 교통순경이 차들이 남의 차에 방해되지 않도록 자기 차선을 따라 반칙 없이 잘 가고 있는가를 지키듯이, 문학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진정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킨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부나 권력을 좀더 차지하려는 나쁜 '욕심꾸러기'들이 많지만, 지식과사랑,그리고 꿈의 욕심꾸러기가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책을 많이 읽고 제데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라, 그리고 지식과 사랑의 욕심꾸러기들이 되어라"

 

  신부님은 성품이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온화한 분이셨지만 나는 신부님이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서강대학교에서는 체육이 대학4년 내내 교양필수 과목이었는데, 담당이신 고 교수님은 내게 그 과목을 면제해 주시지 않고 체육관까지 와서 견학을 해야 점수를 주겠다고 하셨다.  수업이 있는 본관에서 노고산 밑의 체육관까지는 꽤 거리가 멀고 부분적으로 비포장도로라 사실 내게는 그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체육'을 넘어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더 힘들었다.  게다가 눈이나 비가 올라치면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였다.  그러나 고 교수님은 그렇게 힘들게라도 견학을 하고 페이펴를 써내야 겨우 낙제 점수를 면한 D를 주곤 하셨다.

  그런데 한번은 소나기가 오는 날 체육관으로 오다가 비포장도로에서 넘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나를 보시더니 비오는 날은 오지 않아도 결석으로 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대학 3학년 되던해 여름, 일찍 찿아온 장마

때문에 세번 결석한 내게 교수님은 당신이 한 말씀을 잊으시고 내게 가차 없이 FA(서강대학교 특유의 학사 제도로 학점의 두 배수 이상 결석하면 자동으로 F 처리되는 점수)를 주셨다.

  나의 충격은 컸다. 교수님에 대한 원망, 억울함, 부당함,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F라는 굴욕적인 점수를 내 성적표에 담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또 한과목 낙제를 하면 다른 과목이 성적이 좋아도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학칙 때문에 그 학기에 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당시 영문과 과장님이시던 브루닉 신부님을 찿아갔고, 내 이야기를 들이시다가  신부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셨다. 너무나 화가 나서 얼굴은 빨개지고 말까지 더듬으셨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그건 제 잘못이 아닌데........"

그리고 나는 그때 분명히 보았다. 신부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이제 20여년이 흘렀고, 나는 2002학번 새내기들에게 그때 신부님이 당당하셨던 영문학 개론을 가르친다.  알량한 체면 때문에 나는 학생들 앞에서 신부님처럼 그렇게 재미있는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며 가르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신부님을 기억하며 새삼 생각한다. '삶의 교통순경' 인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제자들을 "지식과 사랑의 욕심꾸러기'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단 한 번이라고 진정 제자를 위해 눈물 흘린적이 있는지....

  먼 훗날 지금 내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 중에 누군가 단 한 명이라고 지금 내가 브루닉 신부님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기억해 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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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님이신 장영희 교수님이 신문에 컬럼으로 쓰셨던 글입니다.

신체장애를 갖고 계시지만 항상 명랑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감성이 풍부하셔서 정말 닮고 싶은 분입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funnyhappy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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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정말 이런 세상이 오긴 올까...

그리고 오면 과연 행복할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사네요.

자료출처: http://news.media.daum.net/culture/woman/200705/11/joins/v16699188.html?_right_TOPIC=R6

중앙일보 이나리.김경진.권혁재] 한 기업 홍보팀의 회식 자리입니다. 여자 선배가 말합니다. "요즘 우리 남편 밤마다 손에 약 바르고 비닐랩까지 싸맨 다음 자잖아. 물 일 많이 해 주부습진이 도졌다나."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남자 후배, 버럭 한 소리 합니다. "거, 남자가 그렇게 살면 되겠습니까." 이어지는 후배의 진지한 발언. "주부습진이라니 마님 걱정되시게 그런 실수를 왜 합니까. 전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까지 끼고 설거지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 후배, 요즘 급격히 늘고 있는 '우렁 신랑'이거든요. "집안일은 당연히 내 일"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를 외치는 대한민국 신(新)남편. 남자들에겐 눈엣가시, 여자들에겐 '꿈의 반려'인 우렁 신랑들을 만나 보시죠.

글=이나리·김경진 기자 windy@joongang.co.kr windy@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해외 출장 길이었어요. 30대 중.후반 남자 셋이 같이 다녔는데 한참 수다 떨다 보니 우리가 살림 사는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전은 두 번 부쳐야 모양이 예쁘다느니, 셔츠는 팔부터 개야 덜 구겨진다느니. 마주 보며 웃고 말았죠." 결혼 10년차 직장인 이문규(39)씨의 말이다.

중견기업 팀장인 신미혜(가명.36)씨는 '신이 내린 남편'과 산다. "동료들이 제 남편에게 붙인 별명이에요. 청소.요리.쓰레기 분리 수거는 기본, 머리 감고 나오면 수건 들고 서 있다 닦아주기까지 하는 걸요(웃음)." 그것도 결혼 9년째인데 말이다.

'우렁 각시' 설화에 빗대 '우렁 신랑'이라 부를 만한 이들은 대개 맞벌이 가정의 20, 30대 남편들이다. 육아.요리.청소는 물론 공과금 납부나 장 보기, 집안 대소사 챙기기도 아내와 함께한다. 가부장적 남편이 1세대, '말로만 돕기'형 남편이 2세대라면, 우렁 신랑은 3세대 남편이라 할 만하다. 여성개발원 박수미 연구원은 "가사 분담에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맞벌이라도 손 하나 까딱 않는 남편이 여전히 많은데, 한쪽에선 아내 이상으로 가사에 적극적인 남편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결대 사회복지학과 신연희 교수는 "젊은 층일수록 부부가 가사와 가정 경제를 공동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하지만 '몸'과 현실이 이를 안 따라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우렁 신랑들은 그 차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이들인 셈이다.

KTX 승무원인 김성곤(30)씨는 맞벌이 아내와 사이에 여섯 살배기 딸을 두고 있다. 김씨는 "업무상 쉬는 날이 많아 아이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안고 다니는 일은 내가 더 많이 했다"고 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바깥일도 하고 돈도 버는 거잖아요. 아내도 똑같이 힘든데 집안일 나눠 하는 거야 당연하죠. 사실 이건 일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우렁 신랑들은 아내에 대한 '서비스'도 특별하다. 회사원 이성호(29)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내의 발을 마사지해준다. "따뜻한 물에 발을 20분 정도 담그게 한 뒤 손에 아로마 제품을 묻혀 부드럽게 마사지하죠. TV 보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아요." 회사원 김대환(31)씨 또한 "피곤에 지쳐 부은 아내 다리를 맥주병으로 밀어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게 낙"이라고 했다.

우렁 신랑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김대환 씨는 "우리 부모님은 '남자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고 했다. 박종규(71)씨는 "43세인 맏아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밥하고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하지만 혼자 버느라 고생하는 것보다 며느리가 직장 생활을 잘하도록 돕는 게 길게 봐 현명한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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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근위병... 일단 유니폼이 예술이당~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가 가장 명예로운 교황 근위병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긴 하지만, 어찌 보면 영세중립국이기에 다른 나라에서 딴지를 걸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 일이기도 할 것 같다.

자료출처: http://news.media.daum.net/foreign/others/200705/07/joins/v16648433.html?_right_TOPIC=R6

 

[중앙일보 조문규 기자]

6일 교황청 바오로 6세 홀에서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대 신병 38명이 교황과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고 있다 사진 .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켜온 것은 언제부터일까.

1506년부터 교황청을 지켜온 스위스 근위대의 위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27년 5월 부르고뉴(현재의 네덜란드,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왕 샤를 5세(Charles Ⅴ)가 로마를 침략한 '로마약탈'에서였다. 이 전투에서 근위대는 189명의 근위병 중 147명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끝까지 지켜냈다. 빨강.파랑.노랑의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 복장에 도끼 창을 든 스위스 근위대는 501년 동안 교황청을 지켜오고 있다.

근위대 신병들은 로마약탈 때 교황을 호위하다 목숨을 잃은 것을 기려 매년 5월 6일 충성 서약식을 거행한다. 서약식 때 사용하는 깃발에는 현재의 교황과 스위스 용병군단의 창설자 율리시스 2세, 그리고 사령관을 상징하는 세 개의 방패가 등장한다.

 




현재의 제복은 1548년에 제정됐다. 근위대에 입대하려면 키 174㎝ 이상, 19~30세의 용모 준수한 스위스 출신의 미혼 남자여야 한다. 또 가톨릭 신자여야 하며 수염을 길러선 안 된다. 월급은 1000달러 정도다. 적어도 2년간은 복무해야 하며 25년간 복무하는 사람도 있다. 병력은 사령관을 포함해 장교 5명, 사병 101명 규모다. 스위스는 1859년 스위스인의 외국군 입대를 법률로 금지했지만 교황청 근위대만큼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스위스는 농사지을 땅이 없는 알프스로 둘러싸인 산악지대다.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사람 뿐이었다. 그래서 스위스 사람들은 중세부터 주변국에 용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렸다. 싸우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 이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하루라도 빨리 싸움을 끝내야 돈을 벌었기에 전쟁에서도 속전속결이었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이 로마 교황청에도 알려졌다. 추기경 시절 이들 스위스 용병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5년 6월 교황청을 지키는 상비군으로 용병을 파견해줄 것을 스위스에 요청했다. 이에 15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무려 720㎞를 걸어 이듬해인 1506년 1월 22일 교황청에 도착해 임무수행에 들어갔다. 바티칸을 지키는 군대인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들의 공식명칭은 '코홀스 헬베티카(Cohors Helvetica)'이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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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가 일본에서 건너온건 알았지만. 이런 뜻이 담겨져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우리나라도 놀이문화를 좀더 활성화시켜야 할 것 같네요. 요즘은 물론 인터넷 게임이 대세이긴 하지만요.. ^^*

출처: http://news.media.daum.net/society/others/200704/25/SpoSeoul/v16503024.html?_right_TOPIC=R1

[이슈&화제] 48장 패에 담긴 ‘화투의 비밀’ 전격 공개

“쓰리고에 웃고… 피박·광박에 울고…”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의 논문 한 편이 화제다. 화투에 대해 연구·분석한 자료가 그것이다. 최근 이 논문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김 교수는 강한 왜색을 지닌 화투 패를 조명,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싶었다고 논문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월별로 각각 4매씩 총 48장으로 구성된 화투는 ‘일본 문화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은 물론 월별 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 기원의식 심지어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 있다.
<일요시사>는 김 교수의 논문을 긴급 입수해 화투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봤다.

일본 문화적 코드 “쓰리고에 웃고, 피박에 울어라”

성인들이 여가시간에 가장 즐겨하는 게임은 무엇일까. 바로 화투놀이의 하나인 ‘고스톱’일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약 70%가 화투를 즐긴다고 한다. 이쯤 되면 화투가 ‘대한민국 대표 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화투에 담긴 비밀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화투의 비밀’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는 “화투는 일본 문화의 축소판”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가 ‘고스톱 공화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며 “그러나 정작 월별로 각각 4장씩 총 48장으로 이뤄진 화투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밝힌 화투의 숨겨진 비밀은 다음과 같다.

김덕수 교수 논문 '화투의 비밀' 화제 "왜색 화투패 조명"

"세시풍속, 선호, 기원의식, 교훈 등 일본문화 축소판"

1월 송학
세칭 ‘삥’이라고 불리는 송학의 화투 문양을 보면 1/4쪽 짜리 태양, 1마리의 학, 소나무, 홍단 띠가 나온다. 태양은 신년 새해의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다. 또 소나무가 등장하는 이유는 가도마쯔 행사에 소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도마쯔는 1월을 맞이하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 일본인들이 1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다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한 행사다. 학을 의미하는 ‘츠루’가 소나무를 뜻하는 ‘마쯔’의 말운을 이은 점은 일본식 풍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월 매조
2월에 해당한 매조에는 꾀꼬리와 매화가 나온다. 일본의 매화 축제가 2월에 시작되는 이유에서다. 매화 축제는 이바라키현 미토의 가이라크 매화 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매화 공원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꾀꼬리는 ‘우구이스다니’라는 도쿄의 지명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새다.

눈에 띄는 점은 꾀꼬리가 봄철(4월 이후)이 아닌 2월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꾀꼬리와 매화가 봄의 전령사임을 노래하는 대표적 시어인 동시에 꾀꼬리의 일본어 표기인 ‘우구이스’와 매화를 뜻하는 ‘우메’간 두운을 일치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3월 벚꼿
일본의 벚꽃 축제는 3월 최고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3월의 화투 문양은 온통 벚꽃으로 가득 차 있다. 삼광의 벚꽃 밑에 그려진 것은 ‘만막’이라는 일종의 천막이다. 이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경조사 때 천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속에는 벚꽃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춘객들이 있지만, 삼광의 화투에선 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상춘객들이 화투 하단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상춘객이 만막 안에서 낮술에 취한 채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4월 흑싸리
4월 화투 문양은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흑싸리로 착각하고 있다. 흑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빗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의 색깔은 녹색이며, 가을철에 그것을 베어 햇볕에다 말리면 갈색으로 변한다.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로, 등나무는 일본 전통시의 시어로 쓰이는 여름의 상징이다. 여기에 그려져 있는 두견새 역시 일본에서 시제로 자주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새다.



5월 난초
5월 화투 문양도 난이 아니라 붓꽃이다.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 T자 모양의 막대와 3개의 작은 막대기는 각각 ‘제도용 자’와 ‘딱성냥’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T자 모양의 막대는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 만든 산책용 목재 다리며,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일본인들은 이 목재 다리를 ‘야츠하시’라고 부른다.

다리 끝에는 붓꽃을 감상하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이 있는데, 이 또한 삼광과 마찬가지로 화투 하단의 보이지 않는 1인치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6월 모란
6월 화투 문양은 모란꽃이다. 모란은 고귀한 이미지로,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꽃과 나비하면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 사회에선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쳐준다.

이에 따라 일본화에는 모란과 나비가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화에선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다.

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의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인 셈이다.

7월 홍싸리
7월 화투 문양은 싸리나무다. 싸리나무는 녹색이다. 그러나 이 문양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처리돼 있다. 이는 화투 제작자의 단순 실수로 추정된다.

여기에 멧돼지가 나오는 이유는 근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이다. 멧돼지 사냥은 종족보존을 위해 주로 수컷에만 국한돼 있었다.

8월 공산
8월 화투 문양엔 산, 보름달, 기러기 3마리가 등장한다. 이는 8월이 일본에서 ‘오츠키미(달구경)’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문화적 암호다.

검은색으로 처리된 것은 산이다. 흰색으로 처리된 부분은 하늘을 의미한다. 한국 화투엔 산에 억세 풀이 없는 반면 일본 화투엔 억세 풀이 그려져 있다. 또 한국 화투엔 홍색이나 청색 띠도 없다.

즉, 일본에서 8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추수철이기 때문에 한가롭게 시를 쓰고 낭송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시사한다.

9월 국준
고스톱꾼들은 9월 화투를 유난히 좋아한다. 9월은 일본에서 국화 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계절이다. 그 쌍피엔 ‘목숨 수(壽)’자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이는 9세기경인 헤이안 시대부터 유래된 ‘9월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를 한다’는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국화는 일본의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이를 감안하면 일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놓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권세와 부귀가 영원하기를 기원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도 보인다. 쌍피가 피와 10점짜리로 동시에 활용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은 일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10월 단풍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수사슴과 단풍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슴을 의미하는 ‘시카’와 단풍을 뜻하는 ‘카에데간’에도 말운과 두운이 일치하는데, 이것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1월 오동
오동은 가장 각광받는 화투 패다. 속칭 ‘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은 광으로도 쓸 만하고, 피 역시 오동만이 유일하게 3장이다. 오동의 광에는 닭 모가지 모양의 조류와 싹 같은 것이 등장한다. 닭 모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는 평범한 새가 아니다.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머리다. 검은색의 싹은 오동잎이다. 오동잎 역시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화폐 5백엔 주화에도 오동잎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다.

12월 비
절기상으로 12월은 추운 겨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 광을 살펴보면 낯선 선비 한 명이 양산을 받쳐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며 일어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 양산과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개구리가 왜 12월에 등장했을까. 이는 일본의 ‘오노의 전설’을 묘사한 것이다.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비 광에 등장하는 선비의 모습은 오노가 붓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머나먼 방랑길을 떠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오노는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개구리의 광경을 보고 “미물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했다고 한다.

한국 화투는 일본 화투에 나오는 이 선비의 갓 모양만 일부 변형시켰다. 또 쌍피의 문양은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피가 쌍피로 대접받는 것은 이 문에 붙어 있는 귀신을 대접한다는 의미다.

⊙ 청단·홍단’에 얽힌 일본 이야기
홍색, 길조…청색, 불운”

‘꽃들의 싸움’으로 해석되는 화투를 고안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일본인들은 화투를 일명 ‘하나후다’라고 불렀는데, 19세기말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뱃사람들에 의해 한국에 유입되면서 화투로 불리게 됐다.

그 전까지 조선에선 숫자가 적힌 패를 뽑아 우열을 겨루는 ‘수투’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일본 화투가 들어오면서부터 수투가 화투에 밀려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1년 열두 달 중 8월과 11월을 의미하는 공산과 오동을 제외한 나머지에 등장하는 청·홍색 띠는 일명 ‘단책’이라고 불린다. 일본에선 ‘하이쿠’라는 일본의 전통 시구를 적을 때 이 종이를 사용한다.

한국에선 빨간색이 사망, 공산당, 화재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일본에서의 빨간색은 쾌청한 날씨, 경사, 상서 등을 나타낸다. 홍단의 구성요소는 송학(1월), 매조(2월), 벚꽃(3월). 일본인들에게 1, 2, 3월은 매우 상서로운 달임을 시사해 준다.

또 모란(6월), 국준(9월), 단풍(10월)에는 청단이 있는데, 일본에서 청색은 우울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암시하는 색상으로 여긴다. 실제 일본에선 6, 9, 10월에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수재민들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평균적으로도 1년 중 이기간에 각종 사건·사고가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                        


⊙ 김덕수 교수는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는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일요시사 김성수 기자ㅣ스포츠서울닷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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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생애라~

올해가 황금돼지의 해라고 해서 금돼지 행사가 많았는데... 실제 돼지들은 이렇게 쓸쓸하게 살다 죽는군요. 조금 짠하네요.

자연수명의 20분의 1, 돼지의 한평생




[한겨레] 국내 최초 동물 복지 관점 보고서 나와… 콘크리트에서 삶을 시작해 열흘 만에 송곳니 잘려나가고 10마리 중 3마리가 질병으로 일생을 마감

▣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월28일 취재진이 찾은 수도권의 한 돼지 도축장. 오전 10시가 되자 컨베이어 벨트가 돌며 정적을 깨뜨린다. 돼지를 빽빽이 실은 1t 화물차가 계류장에 몸을 기댄다. 관리인이 나와 화물차에 실린 돼지들을 날카로운 막대기로 찌르며 몰기 시작한다. 돼지들이 마지못해 끌려가는 곳은 목욕장. 죽음 직전에 몸을 씻는 곳이다. 목욕을 끝낸 돼지들은 다시 막대기에 쫓겨 좁은 통로로 이동한다. 돼지들 앞에는 경사 30도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죽음을 예감한 듯 돼지들은 괴성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어떤 돼지는 뒷걸음질하며 몸으로 버틴다. 하지만 전기 막대기가 몸에 닿는 순간 돼지는 화들짝 놀라고, 어느새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서 있다.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스톨에서

컨베이어 벨트의 정상에는 전기장치가 설치돼 있다. 돼지가 정상에 올랐을 때 전기장치는 돼지의 머리를 양쪽에서 거머쥔다. 돼지는 통나무처럼 뻣뻣해져 2.5m 아래로 떨어진다. 날카로운 도축용 칼이 돼지 목 부위의 동맥을 찌르고, 생을 마감한 돼지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려 운반된다.

국내 최초로 ‘동물 복지적’ 관점에서 돼지의 일생을 다룬 농장동물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사단법인 한국동물복지협회는 2005년 6월부터 돼지 농장 11곳, 도축장 7곳을 방문하고, 국내외 통계 자료를 분석해 돼지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돼지의 탄생부터 성장, 그리고 도축에서 소비까지,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존중하는 관점에서 자료를 수집, 가공, 재해석했다. 한국동물복지협회는 이 보고서와 실태를 담은 동영상을 4월 말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에는 약 890만 마리(2005년 기준)의 돼지가 산다. 1만2천여 곳의 농장이 그들의 집이다. 농장은 도축장으로 끌려간 돼지들로 비워졌다가 이내 새로운 돼지들로 채워진다. 한 해 1346만 마리의 돼지가 도축된다. 사람들은 한 해 83만8천t의 돼지고기를 소비한다. 1인당 소비량은 17.4kg이다. 통계를 거두고 돼지의 일생을 쳐다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축산물’이 아닌 ‘생명’으로 돼지를 인식하는 순간 그들이 받는 대접이 비인도적으로 느껴진다.

번식용으로 키워지는 어미 돼지가 사는 곳은 ‘스톨’이라고 불리는 금속 틀이다. 스톨의 폭은 단 60cm, 길이는 200cm이다. 어미 돼지는 좁은 스톨 안에서 평생을 산다. 스톨 안에선 뒤돌아서거나 움직일 수 없다. 평생 취할 수 있는 동작은 앉았다 일어서는 것뿐이며, 평생 보는 물체는 양돈장의 검은 벽뿐이다.

어미 돼지는 생후 230~240일쯤부터 교배를 시작한다. 114일 동안 임신한 뒤, 아기 돼지를 낳는다. 낮에 분만할 수 있도록 어미 돼지에겐 유도 분만제가 주사된다. 새끼 돼지에게 포유를 하는 기간은 20일이다. 이렇게 134일이 지난다. 새끼가 젖을 떼고 난 뒤 일주일이면 재발정이 가능하다. 돼지는 다시 교배‘당하고’ 임신하고 포유하며 134일을 보낸다. 연평균 2.4회, 이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뉴질랜드 항생제 사용량의 30배

어미 돼지가 스톨에서 벗어나는 기간은 1년에 단 20일뿐이다. 어미 돼지의 운동 부족을 ‘해소’하고, 출산에 대비해 다리 힘을 길러주기 위해 만삭이나 포유기 직후 짧은 휴식을 준다. 하지만 이미 어미 돼지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유럽 수의과학회의 1997년 보고서는 스톨에 갇힌 어미 돼지가 “만성 우울증이나 의미 없는 반복 행동을 보인다”고 밝혔다.

어미가 낳은 돼지(육돈)들은 콘크리트 위에서 삶을 시작한다. 돼지는 원래 흙을 파는 본능이 있어서 깔짚이나 톱밥을 깔아주면 좋지만, 동물복지협회는 한국에서 그런 돈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대부분 콘크리트 바닥으로 배설 공간과 활동 공간이 분리된 ‘슬러리 돈사’다. 동물복지협회는 “톱밥 돈사는 돼지들이 활동하기에 편하고, 신체 오염도 덜했으며, 다리 부상 발생도 적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전국적으로 톱밥 돈사를 도입한 곳은 극소수”라고 밝혔다.

예전부터 지적됐던 밀집 사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림부는 단위 면적당 사육 기준을 고시했다. 올해부터 축산업자는 비육돈 1마리당 0.9㎡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복지협회는 “몸 길이 1m가 넘는 비육돈에게 0.9㎡의 면적은 충분하지 않다”며 “돼지가 눕는 곳과 배설 장소를 모두 포함했을 때 면적이 정부 권장 기준에 근접한 곳도 많았지만, 배설 장소를 제외한 실질적인 사육 공간은 여전히 좁다”고 지적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밀집 사육하기 때문에 돼지들은 여러 질병에 노출돼 있다. 이는 항생제 남용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은 한 해 169만t의 축산물을 생산하는 데 1541t의 항생제를 쓴 반면, 뉴질랜드는 이와 비슷한 132만t의 축산물을 생산하는 데 53t의 항생제를 썼다. 거의 30배 차이다. 공장식 축산업이 발달한 미국보다 많다. 축산물 1t 생산에 들이는 항생제량은 미국이 146g인 반면 한국은 911g이다.

새끼 돼지는 태어난 지 열흘 안에 송곳니가 잘린다. 서로 싸움을 하다가 다치는 것을 방지하고, 어미의 젖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등 공격성의 표출을 막기 위해서 꼬리도 잘린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두 시술의 효과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희경 동물복지협회 대표는 “돼지들의 공격성과 이상 행동은 열악한 환경에서 나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이런 시술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영국은 꼬리와 이빨 자르기가 관행적으로 행해져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일본은 이빨을 자르지 않고 사육하는 농장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산화탄소법, 가스법보다 고통 덜해

자연 상태라면 돼지는 10~15년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농장동물인 돼지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수명이 조절된다. 돼지(육돈)는 수명의 20분의 1도 살지 못한다. 돼지는 가장 육질이 좋은 110kg, 160~180일째 되는 날에 도축된다. 어미 돼지(모돈)는 6~7차례 출산을 거듭한 뒤, 번식 능력이 퇴화되는 3~4살에 생을 마감한다.

전국 도축장은 2005년 12월 현재 93곳. 경기 부천·경북 고령 등 극소수 지역을 제외하면 대다수 도축장은 전기로 돼지를 기절시킨 뒤 도축한다. 유럽에서 일반화된 가스(이산화탄소) 실신법은 전기 실신법보다 돼지들이 고통을 덜 느낀다. 농협중앙회가 부천에서 운영하는 도축장은 2005년 10월 이산화탄소 실신법으로 전환하면서 고기 품질이 좋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자 육색이 창백하고 조직이 흐늘거리는 이상육인 PSE 출현율이 줄었다”고 말했다. 전기충격법(400V)과 이산화탄소 실신법으로 각각 38마리와 40마리를 비교 시험한 결과, 이산화탄소 실신법의 PSE 돈육 출현율은 13%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기 실신법을 사용할 때는 40%가 나타났다.

돼지는 단조롭고 무료한 일생을 보낸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좀더 빨리 몸집을 불리거나 더 많은 새끼 돼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조건에서 돼지는 얼마나 살아남을까. 10마리 중 3마리가 질병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돼지의 평균 폐사율은 28.9%다.

“동물보호법 대상에 농장동물도 포함돼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규정은 애완동물 중심으로 짜여 있어요.” 조광호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한국의 농장동물 복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농장동물 복지를 위한 법 제도가 전무한 실정이고, 도축·운송 기준조차 없다고 한다. 최근에 사육 밀도를 규정한 게 거의 전부일 정도다.

농림부가 2006년 펴낸 ‘한국형 동물복지농장 모형 설정’이라는 연구보고서(총괄책임자 조광호)를 보면, 유럽연합 등은 이미 농장동물을 ‘생명’으로 인식하고 최소한의 인도적 조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996년 동물복지법을 통해 농장동물 복지 규정을 마련했다. 모든 돼지에게 물기가 빠지는 건조한 침구류를 제공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장난감을 접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육장의 온·습도, 통풍 등을 비롯해 전기 막대기 사용 지침, 운송 및 도축 시간 등 세세한 것까지 규정했다.

가장 비인도적인 사육시설로 지적받아왔던 스톨은 폐쇄되고 있다. 영국이 1999년 어미 돼지의 스톨 사육을 금지했고, 유럽연합은 2013년부터 금지할 예정이다.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영국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인증하는 ‘프리덤 푸드’(freedom food)는 동물복지 기준을 지킨 축산물이 받을 수 있는 공인 마크다.

동물복지,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수도

동물복지 문제는 앞으로 농축산물 교역에서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조광호 교수는 “이미 유럽연합이 비교역적 관심사항(NTC)으로 동물복지 표준을 세계무역기구(WTO) 테이블에서 제기하고 있다”며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반발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 대상은 되지 않고 있지만, 품질 표시 제도에는 조만간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농장동물들도 고통을 느끼고 피하는 생명체다. 같은 생명체로서 동류감을 가지고 바라보면, 다른 생명의 존엄도 지켜줘야 할 대상이다. 돼지의 관점에서 돼지의 일생을 바라본 ‘돼지 보고서’가 일천한 한국의 동물복지 현실을 바꾸는 작은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농장은 줄고 돼지는 늘고…

2000년에서 2005년, 1천 마리 미만은 90%→76%, 5천 마리 이상은 0.5%→1.6%

돼지 농장은 갈수록 줄지만, 돼지 수는 갈수록 늘어난다. 한국의 양돈업이 공장식 축산업으로 점점 쏠리고 있다는 증거다.

중소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축산법은 500마리 이상의 어미 돼지(모돈)를 기르는 양돈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보통 농가의 어미 돼지는 전체 돼지의 10% 정도를 차지하므로, 대기업은 5천 마리 이상의 양돈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농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00년 1천 마리 미만의 소규모 농장이 전체의 90%에 이르렀지만, 2005년에는 76%로 줄었다. 대신 1천~5천 마리 규모의 농장은 9%에서 22%로, 5천 마리 이상의 농장은 0.5%에서 1.6%로 늘었다. 대기업의 참여만 제한돼 있지, 통계적으로 보면 이미 한국은 공장식 축산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들의 생리에 사육 조건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육 조건에 동물을 맞추는 방식이다. ‘동물적 본능’을 억제당하는 동물로선 행복할 리 없다. 40~50년 전만 해도 농가에 남아 있었던 소규모 돼지 막사에서 어슬렁거리던 돼지들보다 대규모 농장에서 꼼짝달싹 않는 돼지들이 더 불행하지 않을까.

[ 기사제공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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