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생애라~

올해가 황금돼지의 해라고 해서 금돼지 행사가 많았는데... 실제 돼지들은 이렇게 쓸쓸하게 살다 죽는군요. 조금 짠하네요.

자연수명의 20분의 1, 돼지의 한평생




[한겨레] 국내 최초 동물 복지 관점 보고서 나와… 콘크리트에서 삶을 시작해 열흘 만에 송곳니 잘려나가고 10마리 중 3마리가 질병으로 일생을 마감

▣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월28일 취재진이 찾은 수도권의 한 돼지 도축장. 오전 10시가 되자 컨베이어 벨트가 돌며 정적을 깨뜨린다. 돼지를 빽빽이 실은 1t 화물차가 계류장에 몸을 기댄다. 관리인이 나와 화물차에 실린 돼지들을 날카로운 막대기로 찌르며 몰기 시작한다. 돼지들이 마지못해 끌려가는 곳은 목욕장. 죽음 직전에 몸을 씻는 곳이다. 목욕을 끝낸 돼지들은 다시 막대기에 쫓겨 좁은 통로로 이동한다. 돼지들 앞에는 경사 30도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죽음을 예감한 듯 돼지들은 괴성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어떤 돼지는 뒷걸음질하며 몸으로 버틴다. 하지만 전기 막대기가 몸에 닿는 순간 돼지는 화들짝 놀라고, 어느새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서 있다.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스톨에서

컨베이어 벨트의 정상에는 전기장치가 설치돼 있다. 돼지가 정상에 올랐을 때 전기장치는 돼지의 머리를 양쪽에서 거머쥔다. 돼지는 통나무처럼 뻣뻣해져 2.5m 아래로 떨어진다. 날카로운 도축용 칼이 돼지 목 부위의 동맥을 찌르고, 생을 마감한 돼지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려 운반된다.

국내 최초로 ‘동물 복지적’ 관점에서 돼지의 일생을 다룬 농장동물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사단법인 한국동물복지협회는 2005년 6월부터 돼지 농장 11곳, 도축장 7곳을 방문하고, 국내외 통계 자료를 분석해 돼지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돼지의 탄생부터 성장, 그리고 도축에서 소비까지,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존중하는 관점에서 자료를 수집, 가공, 재해석했다. 한국동물복지협회는 이 보고서와 실태를 담은 동영상을 4월 말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에는 약 890만 마리(2005년 기준)의 돼지가 산다. 1만2천여 곳의 농장이 그들의 집이다. 농장은 도축장으로 끌려간 돼지들로 비워졌다가 이내 새로운 돼지들로 채워진다. 한 해 1346만 마리의 돼지가 도축된다. 사람들은 한 해 83만8천t의 돼지고기를 소비한다. 1인당 소비량은 17.4kg이다. 통계를 거두고 돼지의 일생을 쳐다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축산물’이 아닌 ‘생명’으로 돼지를 인식하는 순간 그들이 받는 대접이 비인도적으로 느껴진다.

번식용으로 키워지는 어미 돼지가 사는 곳은 ‘스톨’이라고 불리는 금속 틀이다. 스톨의 폭은 단 60cm, 길이는 200cm이다. 어미 돼지는 좁은 스톨 안에서 평생을 산다. 스톨 안에선 뒤돌아서거나 움직일 수 없다. 평생 취할 수 있는 동작은 앉았다 일어서는 것뿐이며, 평생 보는 물체는 양돈장의 검은 벽뿐이다.

어미 돼지는 생후 230~240일쯤부터 교배를 시작한다. 114일 동안 임신한 뒤, 아기 돼지를 낳는다. 낮에 분만할 수 있도록 어미 돼지에겐 유도 분만제가 주사된다. 새끼 돼지에게 포유를 하는 기간은 20일이다. 이렇게 134일이 지난다. 새끼가 젖을 떼고 난 뒤 일주일이면 재발정이 가능하다. 돼지는 다시 교배‘당하고’ 임신하고 포유하며 134일을 보낸다. 연평균 2.4회, 이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뉴질랜드 항생제 사용량의 30배

어미 돼지가 스톨에서 벗어나는 기간은 1년에 단 20일뿐이다. 어미 돼지의 운동 부족을 ‘해소’하고, 출산에 대비해 다리 힘을 길러주기 위해 만삭이나 포유기 직후 짧은 휴식을 준다. 하지만 이미 어미 돼지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유럽 수의과학회의 1997년 보고서는 스톨에 갇힌 어미 돼지가 “만성 우울증이나 의미 없는 반복 행동을 보인다”고 밝혔다.

어미가 낳은 돼지(육돈)들은 콘크리트 위에서 삶을 시작한다. 돼지는 원래 흙을 파는 본능이 있어서 깔짚이나 톱밥을 깔아주면 좋지만, 동물복지협회는 한국에서 그런 돈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대부분 콘크리트 바닥으로 배설 공간과 활동 공간이 분리된 ‘슬러리 돈사’다. 동물복지협회는 “톱밥 돈사는 돼지들이 활동하기에 편하고, 신체 오염도 덜했으며, 다리 부상 발생도 적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전국적으로 톱밥 돈사를 도입한 곳은 극소수”라고 밝혔다.

예전부터 지적됐던 밀집 사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림부는 단위 면적당 사육 기준을 고시했다. 올해부터 축산업자는 비육돈 1마리당 0.9㎡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복지협회는 “몸 길이 1m가 넘는 비육돈에게 0.9㎡의 면적은 충분하지 않다”며 “돼지가 눕는 곳과 배설 장소를 모두 포함했을 때 면적이 정부 권장 기준에 근접한 곳도 많았지만, 배설 장소를 제외한 실질적인 사육 공간은 여전히 좁다”고 지적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밀집 사육하기 때문에 돼지들은 여러 질병에 노출돼 있다. 이는 항생제 남용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은 한 해 169만t의 축산물을 생산하는 데 1541t의 항생제를 쓴 반면, 뉴질랜드는 이와 비슷한 132만t의 축산물을 생산하는 데 53t의 항생제를 썼다. 거의 30배 차이다. 공장식 축산업이 발달한 미국보다 많다. 축산물 1t 생산에 들이는 항생제량은 미국이 146g인 반면 한국은 911g이다.

새끼 돼지는 태어난 지 열흘 안에 송곳니가 잘린다. 서로 싸움을 하다가 다치는 것을 방지하고, 어미의 젖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등 공격성의 표출을 막기 위해서 꼬리도 잘린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두 시술의 효과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희경 동물복지협회 대표는 “돼지들의 공격성과 이상 행동은 열악한 환경에서 나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이런 시술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영국은 꼬리와 이빨 자르기가 관행적으로 행해져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일본은 이빨을 자르지 않고 사육하는 농장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산화탄소법, 가스법보다 고통 덜해

자연 상태라면 돼지는 10~15년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농장동물인 돼지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수명이 조절된다. 돼지(육돈)는 수명의 20분의 1도 살지 못한다. 돼지는 가장 육질이 좋은 110kg, 160~180일째 되는 날에 도축된다. 어미 돼지(모돈)는 6~7차례 출산을 거듭한 뒤, 번식 능력이 퇴화되는 3~4살에 생을 마감한다.

전국 도축장은 2005년 12월 현재 93곳. 경기 부천·경북 고령 등 극소수 지역을 제외하면 대다수 도축장은 전기로 돼지를 기절시킨 뒤 도축한다. 유럽에서 일반화된 가스(이산화탄소) 실신법은 전기 실신법보다 돼지들이 고통을 덜 느낀다. 농협중앙회가 부천에서 운영하는 도축장은 2005년 10월 이산화탄소 실신법으로 전환하면서 고기 품질이 좋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자 육색이 창백하고 조직이 흐늘거리는 이상육인 PSE 출현율이 줄었다”고 말했다. 전기충격법(400V)과 이산화탄소 실신법으로 각각 38마리와 40마리를 비교 시험한 결과, 이산화탄소 실신법의 PSE 돈육 출현율은 13%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기 실신법을 사용할 때는 40%가 나타났다.

돼지는 단조롭고 무료한 일생을 보낸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좀더 빨리 몸집을 불리거나 더 많은 새끼 돼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조건에서 돼지는 얼마나 살아남을까. 10마리 중 3마리가 질병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돼지의 평균 폐사율은 28.9%다.

“동물보호법 대상에 농장동물도 포함돼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규정은 애완동물 중심으로 짜여 있어요.” 조광호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한국의 농장동물 복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농장동물 복지를 위한 법 제도가 전무한 실정이고, 도축·운송 기준조차 없다고 한다. 최근에 사육 밀도를 규정한 게 거의 전부일 정도다.

농림부가 2006년 펴낸 ‘한국형 동물복지농장 모형 설정’이라는 연구보고서(총괄책임자 조광호)를 보면, 유럽연합 등은 이미 농장동물을 ‘생명’으로 인식하고 최소한의 인도적 조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996년 동물복지법을 통해 농장동물 복지 규정을 마련했다. 모든 돼지에게 물기가 빠지는 건조한 침구류를 제공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장난감을 접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육장의 온·습도, 통풍 등을 비롯해 전기 막대기 사용 지침, 운송 및 도축 시간 등 세세한 것까지 규정했다.

가장 비인도적인 사육시설로 지적받아왔던 스톨은 폐쇄되고 있다. 영국이 1999년 어미 돼지의 스톨 사육을 금지했고, 유럽연합은 2013년부터 금지할 예정이다.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영국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인증하는 ‘프리덤 푸드’(freedom food)는 동물복지 기준을 지킨 축산물이 받을 수 있는 공인 마크다.

동물복지,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수도

동물복지 문제는 앞으로 농축산물 교역에서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조광호 교수는 “이미 유럽연합이 비교역적 관심사항(NTC)으로 동물복지 표준을 세계무역기구(WTO) 테이블에서 제기하고 있다”며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반발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 대상은 되지 않고 있지만, 품질 표시 제도에는 조만간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농장동물들도 고통을 느끼고 피하는 생명체다. 같은 생명체로서 동류감을 가지고 바라보면, 다른 생명의 존엄도 지켜줘야 할 대상이다. 돼지의 관점에서 돼지의 일생을 바라본 ‘돼지 보고서’가 일천한 한국의 동물복지 현실을 바꾸는 작은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농장은 줄고 돼지는 늘고…

2000년에서 2005년, 1천 마리 미만은 90%→76%, 5천 마리 이상은 0.5%→1.6%

돼지 농장은 갈수록 줄지만, 돼지 수는 갈수록 늘어난다. 한국의 양돈업이 공장식 축산업으로 점점 쏠리고 있다는 증거다.

중소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축산법은 500마리 이상의 어미 돼지(모돈)를 기르는 양돈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보통 농가의 어미 돼지는 전체 돼지의 10% 정도를 차지하므로, 대기업은 5천 마리 이상의 양돈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농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00년 1천 마리 미만의 소규모 농장이 전체의 90%에 이르렀지만, 2005년에는 76%로 줄었다. 대신 1천~5천 마리 규모의 농장은 9%에서 22%로, 5천 마리 이상의 농장은 0.5%에서 1.6%로 늘었다. 대기업의 참여만 제한돼 있지, 통계적으로 보면 이미 한국은 공장식 축산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들의 생리에 사육 조건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육 조건에 동물을 맞추는 방식이다. ‘동물적 본능’을 억제당하는 동물로선 행복할 리 없다. 40~50년 전만 해도 농가에 남아 있었던 소규모 돼지 막사에서 어슬렁거리던 돼지들보다 대규모 농장에서 꼼짝달싹 않는 돼지들이 더 불행하지 않을까.

[ 기사제공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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