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렌초의시종 > 그들의 번영법-삼성 업은 애플의 대공습-한겨레
삼성 업은 애플의 대공습 중소MP3업체 “고사위기”
● 저가 플래시 메모리 납품덕 용량 크고 값싼 ‘아이팟 나노’ 상륙 체비
“대기업 수출 전략에 국내중기 등터져” 업계, 삼성 ‘노림수’에 분통
“가격 면에서 도저히 경쟁이 안된다. 속무무책이다.” “이대로 가면 아예 업종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스럽다.”
애플의 파격적인 저가 공세로 국내 중소 엠피3 제조업체들 사이에 위기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회사의 존폐를 걱정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애플의 가격 경쟁력이 애플의 경쟁사이기도 한 삼성전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중소 엠피3 업체들은 같은 한국기업인 삼성전자가 애플에게 국내 중소업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싼 가격에 플래시 메모리를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바람에, 고사 위기의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중소업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오는 24일 애플의 ‘아이팟 나노’가 출시되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플래시 메모리가 장착된 이 제품의 국내 출시가격은 2기가급이 23만원, 4기가급이 29만원이다. 현재 엠피3 시장에서 이보다 메모리 용량이 떨어지는 1기가급 제품이 30만원대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파격적인 가격이다. 애플은 넉달 전에도 경쟁사 제품에 비해 절반 가격의 제품을 선보였다.
플래시 메모리는 엠피3 기기의 저장장치로, 제조원가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지난해까지 엠피3 저장장치로 하드디스크를 탑재하던 애플은 올해부터 플래시 메모리로 바꿨다. 세계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생산 1위 기업인 삼성전자로서는 호재인 셈이다.
애플이 최근 저가형 제품을 잇따라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에서 플래시 메모리를 시장가격에서 40% 정도 낮춰 공급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엠피3 업체 관계자는 “국내 중소업체들은 외국 업체도 아닌 국내 대기업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에서 원천적으로 불리한, 출발선이 다른 공정치 못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공급 가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통상 많은 물량을 사는 업체에 구입 단가를 낮춰주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좋은 조건으로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애플을 앞세워 기존 중소 엠피3 업체들을 정리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하는 곳도 있다. 상당수 엠피3 업체들은 “삼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외치더니만 되레 중소기업 목조르기에 나선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앞서 중소 엠피3 제조업체들로 구성된 한국포터블오디오기기협회는 지난 5월 말 산업자원부에 ‘공정 경쟁의 기회’를 달라는 호소문을 전달했다. 중소업체들은 이 호소문에 ‘공동구매’를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회원사를 중심으로 제조 물량을 모을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시장 규모의 25% 수준인 600만여대에 이른다”며, 외국 업체보다는 국내 벤처를 우선 지원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은 삼성의 핵심부품 가격과 물량 정책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 하락으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업체들이 조만간 잇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에스켐의 박기영 연구소장은 “거의 독과점 구도에서 부품공급 가격과 물량을 전략화시키면 대기업과 대자본만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벤처업체들이 국내 엠피3 시장만 키워주고 주도권을 외국 업체에게 넘기는 처지로 전락할 지도 모를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기사등록 : 2005-09-21 오후 06:37:10 기사수정 : 2005-09-21 오후 07: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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