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4/19/ladykh/v12427378.html

“금융시장은 상위 5%가 95%를 경영하는 블루오션이다”

예금, 적금, 주식, 채권, 아파트, 전답, 부동산 등 유형의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부자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진짜 부자와 빈자는 무형의 자산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무형 자산은 당신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을 때 일어설 수 있는 능력, 또 유형 자산을 잘 굴려서 자산 보존이 자산 증식을 하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금융시장을 안다는 것은 무형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좋은 수단이 된다.

유형 자산vs무형 자산의 차이

금리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생겼다면, 이제 금리와 자산이 상징하는 투자 수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부자’ 혹은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사람은 “당신은 부자인가?”라는 타자적 시선과 “나는 부자인가?”라는 내적 시선 모두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자론의 베스트셀러이자 부자 열풍의 주역이 되었던 저자 몇 사람은 필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만나본 …”이라는 이야기를 한 시간 내내 입에 달고 있었다. 다시 말해 트렌디 드라마 같은 이런 류의 저작들은 그저 부자 엿보기 혹은 부자 이벤트의 산물일 뿐이다. 얄팍한 대중의 기호와 맞물려 베스트셀러는 될지언정 ‘부자’라는 가장 진지하고 절박한 주제에 대한 해답은 주지 못한다. 물론 그런 책을 쓴 저자들이 책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을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부자’란 누구나 꿈꾸는 초미의 관심사가 분명하다. 하지만 금리와 자산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된다.

“당신의 자산은 얼마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대강 이렇다.

1. 예금, 적금, 보험 등 현금성 자산 * 억 2.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 *억 3. 살고 있는 아파트 * 억 4. 물려받은 전답 ** 억 5. 처가에서 증여받은 기타 부동산

그런데 이러한 답은 필자가 요구하는 모범 답안이 아니다. 50점짜리 낙제점에 해당한다. 위에 열거한 답안은 유형 자산이며, 이것의 가치는 그리 변하지 않는다. 다만 늘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안심해도 된다. 사실 이 정도의 유형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여차하면 생업을 접어도 밥은 먹고 살 수 있다.

시장의 체계적 위험 범위에서는(경기 순환 등) 앞서 말한 것처럼 주식이 떨어지면 채권 수익률이 오른다(채권수익률과 채권금리는 아주 많이 다른 개념이다).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이 떨어지지만, 대신 예금보험 연금 이자가 증가한다. 경기가 나빠 이자 수익이 적으면 다시 부동산과 주식이 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열거한 자산의 경우 포트폴리오 효과로 인해 어지간히 한곳에 몰아서 투자한 사람이 아닌 한 종전 유형 자산의 가치는 지킬 수 있다.

가장 안정적인 무형 자산의 소유자는 국립대학 교수들

그러나 이것은 전부 유형 자산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다음은 무형 자산인데, 사실 진짜 부자와 빈자는 여기서 결판난다. 무형 자산은 당신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을 때 일어 설 수 있는 능력, 또 유형 자산을 잘 굴려서 자산 보존이 자산 증식을 하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점에서 현재 사회의 공적이 되고 있는 전문직들은 무형 자산이 많다. 때문에 전문직의 무형 자산 가치가 반영되어 입시 경쟁에서 전문직의 경쟁률이 그렇게 치열한 것이다. 개괄적으로 변호사나 의사, 대기업 과장이나 부장의 급여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기업 과장은 해고되면 끝이지만 전문직들은 그렇지 않다. 직업의 인기도는 이런 점이 반영되어 있고, 그런 점에서 내가 영위하고 있는 직업 그 자체는 무형의 자산이다. 즉, 그것 역시 경제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들이 높이 쳐주는 이 무형 자산의 가치도 위협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는 두세 배씩 배출되고, 과거 희소가치가 있던 자격증들은 이제 거의 일반화되었다. 그래서 무형 자산의 가치는 각자가 좀 다르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 사이, 심지어 같은 학번의 샐러리맨 사이에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아주 크게 달라진다,

첫째, 자산 가치 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무형 자산의 소유자는 국립대학의 교수들이다. 이분들의 전문성과 직업적 안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분들은 현재 보유한 유형 자산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무형 자산의 가치가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므로 행복한 분들이다.

둘째로 꼽을 수 있는 직업은 대기업의 중간 간부들이나 공무원, 혹은 사립대학 교원을 꼽을 수 있다. 이분들은 위의 그룹에 비해서는 입지가 다소 약하기는 하지만 자산 가치의 하락 폭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학생수의 감소로 대학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고, 대기업도 부장 이후에는 자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단점은 있다. 그렇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최소한 그만하면 안정적일 수 있다. 즉, 이분들의 경우에는 본인의 결정적인 문제가 없으면 자산 가치가 몰락하지 않는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자산가치를 지키려면 지금보다 많은 분발이 필요하다. 때문에 이분들은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안감은 없다

세번째가 가장 많은 부류이고, 가장 걱정이 많은 그룹이다. 비상장기업의 임직원, 지방 사립대학 교직원, 진입 장벽이 있는 소규모 기술자영업자(예를 들면 열쇠, 정비, 인테리어 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정 수준의 유형 자산은 있으나 그렇다고 놀고먹기에는 부족하다. 때문에 무형 자산이 단단해야 하는데 무형 자산의 가치가 언제 하락할지 모른다.

실제 전 국민의 70% 이상에 해당하는 이들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하다. 약간 시니컬한 구성이지만, 이로써 유형 자산보다 무형 자산의 위기가 ‘위기의 본질’이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지금은 분명히 계급 투쟁의 시대

그렇다면 이제는 무형 자산의 보존과 유형 자산의 복원에 관해 생각해야 할 때다. 먼저 직업의 무형 자산 문제를 거론해보자.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무형 자산의 획득이라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두고 벌이는 계급 투쟁의 과정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 계층의 절대적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정규직을 향한 비정규직의 시선, 의사를 향한 약사의 시선, 타워펠리스 주민을 향한 도시 서민의 시선 등으로, 각자 뚜렷한 대립적이고 상대적인 이미지를 기준으로 삼고 행동한다.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분명히 계급 투쟁의 시대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과 같은(사실 무형 자산 제로인 계층이다. 해고 즉시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퇴직금도 없다) 힘없는 서민들이 서서히 자신의 무형 자산에 눈뜨기 시작하면 그들의 목표는 사회적 공감측면에서 이미 성공이 보장된 이데올로기가 된다. 사실 이러한 면은 경제 성장에 따른 필연적 복지적 재분배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청계천 노점의 동대문운동장 진입(결국 그들에게 노점상의 권리라는 무형의 자산을 국가가 보장해준 셈이다), 화물노조의 유류대 인하, 공공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하층 서민의 목표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

사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옳은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이 분배의 과정이 A의 몫을 빼앗아서 B에게 주는 데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A에게서 빼앗아서 B에게 준다는 발상은 사회주의적이다. 다시 말해서 반시장경제적이라는 뜻이다. 빼앗긴 A는 A대로 반발하고, 뚜렷한 자신들의 법적, 정치적 논리를 가지게 된다. 얼마 전 삼성그룹에서 법무팀을 강화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금산법 관련 헌법소원 제기라는 점을 한번 떠올려보자.

즉, B는 감성적, A는 논리적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정치 권력이 이 상황을 극복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경제 개발과정에서 누적된 A의 약점을 무기로 A의 반발을 극소화하면서, B의 지지를 발판으로 삼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것을 만약 파퓰리스트라고 부른다면, 파퓰리스트는 기본적으로 A의 지지를 포기하고 다수인 B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파퓰리스트의 성공은 대개 A와 B가 같이 망하거나 B의 성장으로 A와의 격차가 줄어들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분배론과 성장론의 핵심적 차이다. 이 구도는 기층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 가정에서도 청년 자녀가 실업 상태라 무형 자산이 없다면 미래에는 가구 전체가 B그룹으로 쉽게 편입된다는 이해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좌분배나 복지, 양극화 해소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상당한 필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자산가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입지는 상당기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산가와 테크노크라트의 입지 위축은 필연적으로 규제의 그물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볼셰비키 혁명이 아니고서는 기존 기득권 그룹의 자산을 빼앗는 것은 탈취에 해당하므로, 수단은 반드시 합법의 논리에서 이루어지는 규제라는 방식을 통한다는 뜻이다.

금융을 알려는 노력, 무형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

그러나 규제는 항상 피하려는 자와 규제하려는 자의 싸움이다. 다시 말해 실제 테크노크라트가 만들어놓은 규제의 그물망에 포위되어 조금씩 분배의 영역으로 손을 내밀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상대가 완전히 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목을 조르는 사회적 힘겨루기의 속성상, 이러한 압박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목표점에 도달할 때까지 압박은 점점 진행될 것이다.

삼성그룹의 8천억원 헌납과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생각해보자.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신질서 속의 신흥 크라트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즉, 과거의 원죄가 없는, 혹은 벗어난 부자들이나 신흥 테크노크라트의 입장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경쟁에 유리한 구도를 확보하게 된다. 손발이 묶인 삼성그룹과 아시아나 그룹의 움직임을 비교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성공담이 남겨진 99.99%의 구체제형 테크노크라트에게 새로운 억압의 논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때 발 빠르게 규제를 벗어나는 일부의 부와 성취가 다시 사회적 기준으로 작용해 전체를 재단하는 잣대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하면 노력에 비례해서 수입이 보장되는 시기,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보람과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만으로는 호구지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즉, 자기 직업에 충실할수록 더 큰 바보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과거 대부분의 직업은 직업적 경험과 학습이 곧 자산의 축척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직업적 이상과 철학에 충실할수록 바보가 되어버리는 기형적 구조에서 대부분이 질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금융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여러분이 그간 직업(무형 자산)에 쏟았던 정열의 1/100만 이곳에 관심을 두고, 우리가 공부하고 외웠던 지식들의 1/1000만 알면 이곳에서 다른 형태의 무형 자산을 늘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선의든 악의든 서로 경쟁을 벌이던 곳과는 다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경쟁하던 시장은 최소한 같은 일을 하고 나름대로 일정수준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좁은 밀도에서 다투던 시장이다(레드오션).

하지만 금융시장은 생각과 달리 연령과 직업, 지적수준의 차이가 크고, 시장의 평균은 기대 수준보다 낮다는 데 있다. 또 금융시장은 5%가 95%를 경영하는 곳이므로, 이 시장의 상위 5%에 진입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 국부의 60%를 점유하는 멤버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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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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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3/22/ladykh/v12118069.html

“부자에게는 이자율이 중요한 가치고, 보통 사람들에게 이자율의 중요도는 떨어진다”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럴까? 부자들의 투자 행태를 이해해야 한다. 부자들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 비해 ‘금리’에 민감하다. 금리의 상승과 하락에 따라 부자들은 예금, 채권, 부동산, 주식 등으로 투자를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부자들이 수익을 낸 후 빠져나간 투자처에 뒤늦게 들어오게 된다. 금리를 이해하는 것은 재테크의 기본이다.

금리는 시간을 사고파는 결과

부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이 있다. 바로 ‘금리’에 대한 이해다. 지난 호에서 말한 것처럼 ‘금리란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다. 약간 철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자산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증식을 하게 된다. 자산 보유자는 그것을 이용해서 좀더 많은 자산으로 늘리는 행위를 한다. 역사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 행위는 미덕이며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미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한편 당연하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하다. 자산이란 인류가 발전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증식된다.

원시시대 인간의 유일한 자산인 돌도끼의 부가가치는 도끼 하나당 토끼 1백 마리, 혹은 맘모스 1/100마리 수준의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 인간이 보유한 칼은 사슴이나 고라니 1백 마리의 가치를 가지고, 근대에는 총 한 자루의 가치가 곰 1백 마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 전체의 총 자산의 가치를 두고 생각해보자. 원시시대 인간의 자산은 어느 정도의 사냥감과 과실, 그리고 작은 동굴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의 자산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농지를 통해 농산물을, 토지를 통해 공산품을 만들어냈고, 인류의 자산가치는 끝없이 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다시 말해 시간은 늘 인류의 자산을 키우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혜자는 바로 인류 그 자신이다.

금리는 바로 이러한 순간순간의 가능성을 계량화해서 보여주는 잣대이며 시간을 사고파는 결과다. 즉, 시간이란 곧 돈이며, 자산은 그대로 가지고만 있기만 해도 가치가 자가증식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산은 잘 굴려야 하고, 또 그것을 잘 굴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물론 마르크스주의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돈을 굴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결과가 곧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무엇인가 저평가되어 있는 것과 교환해서 그것이 고평가되었을 때 다시 화폐와 교환하는 방식이 재테크라면, 이 반대의 경우에는 돈을 굴리는 목적성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실패일 뿐이다.

이 때문에 고대 이래 인간은 ‘대부업’이라는 제도를 고안해낸다. 돈을 자산가치의 자연적 증가분 이상으로 좀더 많이 혹은 빨리 불릴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가진 사람은 대가를 지불하고 남에게 돈을 빌려서 투자행위에 나서게 됐다. 반대로 돈을 자산가치의 자연 증가분 이상으로 늘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차라리 자신의 돈을 빌려줌으로써 최소한 평균적인 수준의 자산증식은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돈은 가만히 있으면 가치가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흐르면 가치가 증가한다. 하지만 잘못 흐르게 되면 전부를 잃을 수도 있고 잘 활용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돈이 가진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 명제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부업은 자산가치의 점진적 증식이나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서 돈을 모아서 자산가치를 늘리려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행위다. 하지만 대부업은 왜 단테의 「신곡」에서 가장 악질적인 직업의 하나로 꼽히고, 성서나 기타 종교의 경전들에서도 하나같이 악덕 직업으로 묘사되어 있을까?

그것은 첫째 기독교적 사고가 하나의 단초다. 앞서 말한 ‘시간은 자산가치를 증식시킨다(인류 역사는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명제는 곧 ‘시간은 돈이다’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행위는 곧 시간을 사고파는 행위와 같다. 따라서 신의 영역인 시간을 감히 인간이 사고파는 행위는 최악의 범죄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생존의 위기에 놓인 사람에게 고리의 이자율로 대부하기 때문이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합리적이다. 앞서 말한 대로 투자에 능하지 못한 사람이 최소한 자산가치의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돈을 빌려주고 금리를 받아 가치를 늘리거나 최소한 유지하는 것이다. 가치를 늘릴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돈을 빌려서 이자비용을 지불하고도 충분히 이익이 남는 투자 행위나 생산 행위를 함으로써 경제 발전의 속도를 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계가 근로소득을 모아 은행에 맡기면 은행은 적절한 이자율(대개 인플레 비율보다는 높다)을 계산해서 예금자에게 지불한다. 이렇게 모아진 자금은 생산시설을 가진 기업에 대부됨으로써 기업은 이자율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금리를 중심으로 얽힌 경제다.

만약 이자율이 산업에 투자되는 등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고,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고리의 이자율로 대부된다면? 고리의 이자율로 돈을 빌리는 것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빌리는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합리적 이자율이 아닌 비정상적인 이자율을 받는다면, 이때는 이미 이자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긍정적인 금융시스템을 벗어나버린다. 때문에 부란 항상 정상적인 범주에서 허용된 수단으로 움직여야 하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철학의 기반 위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부자는 이자율을 기준으로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

결고적으로 이자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좀더 빠른 성장의 수단을 제시한다. 사회주의의 발전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이자율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본주의의 발달은 곧 이자율이라는 획기적인 수단을 경제의 중심축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자율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철학적이며 심오한 발명의 하나다. 한 사회의 경제 행위는 이자율이 결정한다. 굳이 이자율을 올리는 미국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이자율 결정에 온 세계가 일희일비하는 것을 사례로 들지 않더라도, 이자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가치를 늘리려는 인간의 양식을 결정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특히 부자들은 이자율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또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자율을 중심으로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부자란 더 이상 돈을 벌 생각이 없는 사람, 빈자는 돈을 벌려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면 이제는 새롭게 생각해볼 만하다. ‘부자란 이자율을 기준으로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 ‘빈자는 경제적 결정에 있어서 이자율보다 더 중요한 고려 사항이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해도 별로 무리가 없다.

이제 이자율이 왜 부자일수록 더 중요한 가치이며, 부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지 살펴보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라는 전설적인 유럽의 투자자는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라는 주식투자 모델을 제안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왜 주가가 정점에 있을 때 주식을 사들이고, 주가가 바닥에 이르면 주식을 파는지를 설명하는 유명한 모델이다. 이 코스톨라니의 달걀 모델을 금리에 대해 적용해보자.

먼저 금리가 과열 단계를 넘어 정점에 이르면(서서히 경기 연착륙, 경착륙에 대한 논쟁이 붙기 시작하고 장기금리가 하락하게 된다) 통화 당국은 금리 인하를 고려하기 시작한다. 이때 예금에 투자된 자금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를 잃어버린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은행에 돈을 맡기기만 하면 인플레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지급하는 고금리 환경에서 예금은 돈을 벌기보다 지키는 데 익숙한 부자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수단이다.

막상 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동안 보장받았던 안전수익(금리수익)이 쪼그라들기 시작하고, 자산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부자들은 다른 안전 자산을 찾아 나선다. 즉, 금리 인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확정금리(채권)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은 표면금리만큼의 이율을 보장하기 때문에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수익율이 급증하게 된다. 부자들은 금리 하락기에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투자한 채권을 통해 표면금리뿐 아니라 ‘+α’의 상당한 이익까지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하락이 가속화되어 금리가 바닥에 접근하기 시작되면 문제가 생긴다. 금리 바닥을 인식한 채권 시장에서 채권수익률은 서서히 ‘마이너스’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금리에 예금을 맡기는 것도 세금이나 인플레를 감안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때 부자들의 선택은 부동산으로 이동한다.

금리의 변화에 따라 투자처를 바꾸는 부자

부동산 투자에서 얻는 시세차익이 목적이 아니라 부동산 임대 수익률이 이자율보다 현저하게 높기 때문이다. 채권투자나 은행 금리로는 내 자산을 지킬 수 없는 환경에서 10억짜리 건물을 사서 월 1천만원의 월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때부터 부자들의 자금은 임대 수익률을 겨냥해 부동산으로 향하고, 경기 침체로 인해 가격이 하락해 있던 부동산들은 급속히 주인이 바뀌게 된다. 쓸만한 건물들은 속속 부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 건물에서 시작된 부동산 투자는 아파트, 토지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불러일으킨다.

이즈음에서 다시 부동산 투자에 대한 부자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10억짜리 건물에서 받는 월 1천만원의 월세는 세금을 감안해도 임대 수익률이 금리보다 세 배나 높지만, 건물이 30억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부자들은 그동안 매수한 부동산을 시장에 내놓고 임대소득 외에 상당한 규모의 시세차익을 거둔다.

하지만 막상 부동산 거래로 돈을 벌려고 하는 개인들은 이때가 부동산 투자의 적기라고 오판하고 부자들의 매물을 받아 낸다. 경기는 다시 바닥을 치고 반등을 시작하고 통화 당국은 추가적인 금리인하보다는 부동산가격과 물가를 고려한 금리 인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때는 시장의 실세금리가 이미 오르기 시작했고, 부동산에서 수익을 올린 부자들의 고민이 다시 시작된다. 아직 금리는 낮고, 부동산은 이미 수익을 내고 빠져나온 상태이며, 금리 상승기에 채권투자는 무모하다.

고민 끝에 부자들의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사실 부자들의 속성에 가장 맞지 않는 것은 주식시장이다. 부자들은 굳이 주식시장에서 얼마를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자산을 지켜줄 수단으로 주식을 선택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삼성전자, 포항제철, 국민은행, 현대자동차, 한국전력과 같은 초 우량기업들의주식이다.

부자들의 자금이나 법인들의 뭉칫돈이 들어오면 주식시장은 블루칩(수익성, 성장성, 안정성이 높은 대형 우량주)을 중심으로 한 우량주만 가격 상승이 이루어진다. 부자들이 부동산에 투자할 동안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올린 개인 투자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개미투자자들은 그들에게 합당한 중소형 종목이나 변동성이 큰 종목에 투자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부자들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본격적인 상승이 시작되고 개인 투자자들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가는 상당한 수준으로 오르고 난 다음이다. 주가가 오르고 그 효과로 시중에 돈이 풀리면 경기는 과열되고 경기 전망 지표들은 장밋빛 일색으로 바뀐다.

이때쯤이면 금융 당국의 금리 인상은 막바지에 이르고, 주식투자 열기는 시장의 난전까지 번진다. 이제 부자들은 다시 안전한 상품을 선택한다. 굳이 위험한 주식시장에 자산을 맡겨두지 않고 은행에 맡기기만 해도 내 자산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금리가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자금은 서서히 예금으로 이동하고 개인들의 자금은 예금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한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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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2/15/ladykh/v11712619.html

“지난 20년간 1백만원의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린 것은 주식이 아닌 예금”

우리나라도 산업재편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는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보다는 금융자산의 가치를 주목하고 금융자산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금리에 대한 공부다. 금리에 대한 이해와 운용 능력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재테크의 기본이 될 것이다.

인구의 급증, 가족 분화로 택지가격 상승

재테크의 기본은 먼저 부가가치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부의 가치란 ‘특정 재화에 대한 기회비용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이란 제한적이고 더 이상 생산이 불가능한 재화이므로 땅은 항상 특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때 땅의 가치는 현재 시점에서 그 땅을 활용해서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땅의 가치는 항상 인간의 활동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면 유목민에게 땅의 가치란 그저 말에게 풀을 뜯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들에게 최고의 부가가치는 땅이 아니라 말이나, 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는 다르다. 농경사회에서 모든 부가가치의 원천은 작물을 생산하는 땅이 중심이 되고, 땅에서 얻어진 생산물의 양이 부의 가치를 결정한다. 따라서 농경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부가가치는 곧 농사를 지을 땅이고, 거주지의 분산으로 인해 택지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부의 중심은 공산품으로 이전되었다. 이때 토지란 기본적으로 공장을 지어서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만큼의 가치만을 가지게 된다.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거주가 집단화되고 상업활동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형성된다. 생산시설이나 상업시설에 근접할수록 거주용 토지의 부가가치는 덩달아 상승하지만 상대적으로 농지의 가치는 하락한다.

이러한 토지가격의 결정구조는 현대에 들어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맞물리면서 그 무게중심을 택지로 이전시켰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며 농토에서 일했지만, 현재는 훨씬 좁은 땅에 고밀도의 공장을 짓는다. 밀도의 증가는 곧 집단거주가 가능한 주거용 택지가격의 상승을 불러왔다. 지금은 공장 근로자 1천 명이 1천 평의 공장에서 일하지만 과거에는 1천 평의 땅에서 두 명의 농부가 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생산시설에 기반한 토지가격보다는 거주의 집단화로 인한 주변 택지의 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가족의 분화가 가속화되면서 택지의 필요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생산시설의 집중화가 아니더라도 한 집에 보통 20여 명이 거주하던 과거 농경시대의 관행에서 한 집에 4명 정도가 거주하는 형태가 되면서 주택 수요의 증가가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택지가격의 상승은 필연적이다.

불과 몇 년 후, 부동산 가치는 급격히 하락할 것

최근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쌍의 부부가 3명의 자녀를 출산할 때 부모에게서 집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녀는 셋 중 한 명 뿐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주택을 구입해야 한다. 이것을 우리나라 인구구조와 대입해보면 10년 전부터 한 해 50여만 명의 신규주택 수요가 발생하였지만, 외환위기 직후 주택 공급은 한 해 20~30만 가구로 제한되었다.

이것은 경제적 여건상 독립을 늦추었던 세대가 최소 4년간 한해 30만 호 이상이 누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후 주택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때 누적된 부족량을 해소하는 데 이후부터 한 해 최소 70만 가구씩 최소 6년 이상을 공급해야 하는 규모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결국 현재의 부동산 가격 역시 아직 정점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택 공급부족이 해소되는 향후 3~5년 후에 있다. 인구구조는 10년 후부터 독립 세대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오는데 종전에 공급된 주택은 그대로 남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굳이 그때가 아니더라도 불과 몇 년 후면 두 명의 부모에게서 겨우 1.3명의 자녀가 독립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한 해 결혼하는 세쌍의 부부 중에서 최소 다섯 쌍은 각자의 부모로부터 집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즉 다섯 집 중 세 집은 두 채의 집을 물려받게 되어 오히려 한 채의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주택 중에서 절반은 슬럼화하거나 빈집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새로 지어지는 주택은 그만큼의 기존주택의 잉여를 촉발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인구가 고령화하고 생산시설을 운영할 청년층이 감소하면 기존의 생산시설 역시 더욱 감축되거나 인력이 풍부한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그 결과 주택뿐 아니라 공장부지마저도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전체적인 부동산의 부가가치가 급락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더구나 기성세대의 자산이 급속히 연금화 혹은 기금화되면서 금융자산은 증가하지만 부동자산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산업구조도 1·2·3차 산업에서 4차 산업, 즉 투자금융산업이 급팽창하는 구조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산업의 속성상 다시 인력이나 토지이용의 필요성을 감소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산업구조와 인구구조의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출산율을 맹렬히 높인다 하더라도 최소 30년간은 생산인구의 감소와 노령인구의 증가에 시달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러한 변화에 수긍하지 않고 기존의 토지나 인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에 투자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래산업지식기반산업과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재편

미래산업은 생산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기반산업(바이오·나노 실업 등)과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 대열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의 주류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지금 노령화에 대비한 연금과 보험의 급격한 증가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자산은 금융위주로 재편된다. 퇴직연금, 국민연금, 공적자금 등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공공부문에서도 금융투자가 본격화된다. 또 이러한 부가가치의 창출에 대한 욕구는 유동성의 급격한 증가를 부르고 이렇게 부풀려진 유동성은 다시 국내에서 해외로 투자의 시선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향후 10년이면 국내 금융자본은 그동안 적립된 금융자산의 규모가 국내에서만 운용하기에는 어려워지게 되고 이것은 곧 해외투자로 이어진다. 지금처럼 후발경제에 속한 우리나라 금융투자는 안전한 미국이나 기타 선진국에 대한 국채 투자나 소규모의 펀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의 산업자본들은 국내에서 공장을 짓기보다는 해외의 생산시설에 지분을 참여하는 형식으로 전개 될 공산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 유가증권 시장의 40%를 외국인이 장악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산업시설은 거의 초토화되고 무역부문에서 엄청난 재정적자를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삼성전자, POSCO, 국민은행과 같은 기업들의 주인은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다. 즉 미국은 현재 국내 산업의 급격한 경쟁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힘과, 전 세계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자산가치만으로도 건재하고 있다. 공장 하나 없이 엄청난 양의 산업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본다면 외국자본의 침탈이나 공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 변화 과정의 하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사례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리에 대한 투자는 언제나 무위험 투자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따라서 이제는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의 가치보다는 금융자산의 가치에 주목하고 금융자산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금리에 대한 이해다. 땅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가 그 땅이 가지는 부가가치라면, 금리 역시 그 돈이 가진 부가가치의 가능성에 비례한다. 일례로 돈을 빌려서 이자를 지출해도 평균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면 금리는 상승한다. 하지만 돈을 빌려서 사업을 했을 때 손해를 보기 쉬운 상황이라면 금리는 하락한다.

인류가 절멸하는 시기가 될 때까지 사회는 진보할 것이다. 이 진보의 양만큼 부가가치는 어떤 곳에서건 늘어나기 마련이다. 반복되지만 야생 과일을 따먹다가 농사를 짓는 단계에서는 땅으로 부가가치가 집중된다. 돈을 빌려서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는 주택에 부가가치가 몰린다. 그러나 돈을 굴려서 이익을 얻는 구조에서는 부가가치는 돈으로 집중된다,

이렇게 인류가 진보하는 한 부가가치는 어딘가로 배분되어지는데 앞으로 돈을 굴려서 이익을 얻는 단계에서는 이 부가가치에 대한 권리투쟁이 시작된다. 즉, 땅을 사서 이익을 얻자면(불가측 변수를 배제한다면) 결국 그만큼 열심히 농사를 짓거나 생산시설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만 이익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돈을 굴려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노동력이나 성실성이 아닌 금융에 대한 이해와 금융자산을 다루는 능력에 따라 부가가치가 분배된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관점에서 볼 때 10억의 자산을 가지고 금고에 넣어두는 사람은 금리(돈으로 할 수 있는 부가가치 창출의 가능성의 크기)만큼의 기회비용을 상실하는 것이다. 하지만 3%의 금리로 다른 사람의 돈을 활용해서 10%의 이익을 내는 사람은 순수한 이익만 7%를 올리게 되는 것이고, 그 돈을 빌려준 사람은 3%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것을 다시 금리와 상호 관계에 있는 물가와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금리를 획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자산이 고정되고, 금고에 넣어둔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며, 7%의 이익을 올린 사람 역시 사실은 4%의 수익을 올린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금리를 만만하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250년 전 미국 뉴욕의 맨해튼을 인디언으로부터 단돈 6달러에 산 네덜란드 상인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 헐값에 땅을 팔아버린 인디언들은 지금 그들의 조상을 원망하고 있겠지만 실제 6달러를 미국연방 평균금리 기준으로 복리예금을 했을 경우 그 돈은 지금 현재 맨하튼 부동산가격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두 배나 많다. 또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 1백만원을 투자해서 가장 큰 수익률을 올려준 투자수단 역시 예금, 채권, 부동산, 주식의 순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돈벌이는 부동산이고 지금 가장 좋은 재테크 수단은 주식 같은데 20년간의 누적 수익률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금고를 지킨 사람과 돈을 빌려준 사람(예금), 빌려서 투자한 사람의 관점과도 괴리가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행위란 곧 그만큼의 위험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3%의 금리로 돈을 빌려서 10%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내기란 그야말로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물가상승률을 소폭 상회하는 금리에 대한 투자는 언제나 무위험 투자로서 복리이익을 안겨주었고, 이 복리 예금의 힘이 바로 맨해튼이나 국내 투자시장에서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만큼 투자라는 것이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금리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다음에는 이 부분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연재를 시작한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게 됐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류션’도 진행하고 있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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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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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더 이상 부를 확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

이제는 ‘10억 만들기’ 열풍이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10억 만들기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된 듯하다. 하지만 10억 만들기 열풍에 빠져들기 전에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재테크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나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10억 만들기 열풍의 근원지는?

요즘 10억 만들기가 열풍이다. 하지만 10억이라는 금액이 상징하는 바는 자못 수상쩍다. 이 나라의 장삼이사(張三李四,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10억으로 상징되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재테크에 뛰어드는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와중에 시중에는 ‘나의 꿈 10억’ ‘1년에 1억’류의 재테크 책들이 넘쳐 나지만 정작 이런 책을 쓴 저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궁금하다. 1년에 1억을 버는 법을 가르치던 일류 강사가 3천만원을 사기 쳐서 쇠고랑을 찼다는 기사는 더더욱 수상쩍다.

대체 10억 원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혹자는 여론조사의 결과라고도 하고, 혹자는 노후에 예상 가능한 모든 불가항력적인 지출을 감안하여 계산하면 10억이란 금액은 거의 최저 생계비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그것도 인플레를 감안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지 만약 인플레를 감안하면 최소 20억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더구나 이런 문제는 주로 보험회사 등에서 전파하는 은퇴, 노후라는 개념과 맞물려 있다. 어쨋든 늙어서 길거리에서 노숙하지 않으려면 너도나도 하루빨리 10억, 아니 20억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10억은 고사하고 현재 우리나라 사람 50대의 절반, 40대의 40%가 노후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또 2040년이면 피 같은 급여를 덜어서 낸 국민연금이 단돈 10원도 남지 않는다고 하니, 지금 30대인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 국민연금마저 수익률은 고사하고 원금마저 돌려받을 길이 막막하다. 더구나 수십 억짜리 아파트와 길거리에 널려 있는 빌딩 수만 해도 몇만 개인데, 스스로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 국민의 0.3%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 많은 부자와 돈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돈을 번다’ 혹은 ‘돈을 굴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꼭 부자가 되려는 생각보다 “큰 걱정 없이 적당히 먹고 살기 위한 것이지, 부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라는 항변을 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내 몸을 누일 세 평짜리 방 한 칸과 밥그릇 하나, 수저 한 벌이면 족하다”면서 안빈낙도를 주장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대개 20~30대 전후의 미혼 여성이라고 가정하고(기혼이래도 상관없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부자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10억 정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소박한 사람이고, 한 백억 정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통이 큰 사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한 30억 정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그만한 돈이 있건 없건 섣불리 동의하기도 그렇다고 부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40억이라면? 그만한 자산을 가진 사람은 부자일까 아닐까? 이런 질문을 잘 나가는 재벌그룹 회장에게 던져보거나, 강남에 땅만 5만 평쯤 가진 졸부의 상속자에게 던져본다면 5백억이면 좀팽이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1천억 정도면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분들은 범부라면 단위조차 입에 올리기 어려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부자로 규정하는 기준으로 제시할지도 모른다.

부자의 관심은 부를 지키고 부의 힘을 물려주는 데 있어

그렇다면 부자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것은 바로 부를 늘리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부자란 더 이상의 부를 필요로 하지 않아야 부자다. 부자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부를 지키고 이전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 더 이상 부를 늘려야 할 이유가 사라진 사람들이다. 지리산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 면벽 수도하는 스님이 부자일 수 있다. 수천억의 재산을 불리기는 고사하고 빼앗기지만 않아도 좋으니 그저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전직 대통령들도 부자다. 물론 스님이 환속하면 다시 가난뱅이가 되고 전직 대통령도 아들 대에 가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부자는 부를 늘리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또 부란 ‘권력’이다. 부로는 권력을 살 수 있지만, 권력은 항구적인 부를 보장하지 못한다. 이 나라의 대통령 임기가 고작 5년이지만 재벌가의 수명은 길게는 백 년이 넘어가기도 한다. 부는 혼맥과 인맥으로 엮여 부가 곧 권력이 되고, 이렇게 형성된 권력은 부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으로 기능한다. 때문에 부란 그 자체가 곧 ‘힘’이다. 누군가에게 노동을 시킬 수도 있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란 사람을 조종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대개의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부의 절대적 규모에 만족하면 그 다음부터는 부를 지키는 일에 온 정성을 쏟는다. 부를 지키려는 것에는 자신이 이루어 놓은 권력이 사후에도 약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강하게 작용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상속 방식인 장자 상속의 전통은 당대의 부를 형제들이 쪼개어 부가 약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자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만석꾼 부자라도 아들 3형제에게 똑같이 물려주면 3천 석이 되고, 다시 삼형제에게 물려주면 1천 석이 되며, 다시 한 대를 내려오면 농사 잘 짓는 수준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석꾼의 힘과 천석꾼의 힘은 부를 유지하고 늘리는 데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부를 지키고 부의 힘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데 주로 관심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부자인가? 당신은 현재의 호주머니 사정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또 당신은 현재의 부를(혹은 그 이상의 무엇을) 늘리기보다 지키고 물려주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가? 만약 여기서 “Yes”라는 대답을 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재테크를 위한 난삽한(?) 주장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그리고 가격이 오르는 땅만 꼭 집어주는 무슨 ‘족집게 부동산 강좌’나 ‘묻지마 투자교실’에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No”라고 답하는 당신은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가? 부족한 그것이 혹시 돈이나 부동산 같은 것이라면 당신은 과연 얼마나 더 벌고 모으면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저 다다익선인가?

우리는 이렇게 부자가 되려는 방법을 찾기보다 먼저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부의 목표치는 어디인가?’ ‘그것은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지, 또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다시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가자. 노후에 혹은 은퇴 이후에 필요한 생활자금을 계산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먼저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이 현재 2백50만 원이므로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이때 수입 250만 원은 현재 금리 기준으로 세금 공제 후 약 7억 원의 자산가치를 가진다. 즉 2백50만 원의 월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자산 7억 원을 보유한 사람이 놀고 먹을 때의 자산가치와 같다. 1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현재 약 3백5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과 동일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월 3백50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은 약 10억 원의 자산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월 수입 1천만 원을 올리는 의사 자격증은 대강 30억 수준의 가치를, 월수입 3천만 원을 올리는 변리사의 자격증은 60억 원의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자산가치는 얼마인가? 또 당신의 자산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하는가, 상승하는가? 또 영구적인가, 한시적인가?(최근의 전문직 열풍은 영속적이라는 가치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곧 우리들의 재테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를 알게 해준다.

노후와 은퇴에 대한 준비는 기본적으로 나의 자산가치에서 ‘잉여부분’을 덜어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노후에 10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월 3백5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현재의 경제적 수준을 노후에 유지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5억 원이 필요하다면 현재 기준 월 1백75만 원의 수입을 기준으로 하는 경제적 상황을 준비하는 것이 된다.

노후에 10억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월수입 3백50만 원의 도시근로자(4인 가족 기준)가 생계와 자녀교육 그리고 기타 생활비를 최소 2백50만 원으로 잡고, 나머지 1백만 원을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현재의 금리 기준으로 77년간 저축을 하면 10억 원을 모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두 배의 금액인 월 2백만 원을 저축하거나, 혹은 노후 자금을 차라리 5억 원으로 줄인다고 하면 이 사람은 최소 38년간 저축을 하면 노후 대비에 성공할 수 있다.

재테크는 자신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개념

여기에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이 계산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 여기에 만약 현재의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해 화폐가치 하락분을 반영하면 전자의 경우 약 90년, 후자의 경우에는 약 45년이 걸린다. 이 경우 은퇴 준비가 가능한 사람은 20세가 되는 해부터 월 2백만 원씩을 저축한 사람이나, 아니면 부족분을 부모의 유산에서 보충 받을 수 있는 사람뿐이다. 그 외의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은퇴를 맞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스스로의 자산 가치를 높여 나가는 것이다. 안정적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산가치의 급상승이 여의치 않다면(예를 들자면 공무원이나 교사) 결국 ‘RATIO’(비율)의 개념을 도입해야만 한다. 여기서 RATIO의 개념은 자산을 늘리고 관리하는 데 총량의 개념이 아닌 비율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월 2백만 원씩 세후 연 3% 수익 적금에 가입하는 것이 총량의 개념이다. 이에 반해 월 1백만 원씩 세후 약 6%의 수익을 올리는 투자 수단을 찾아보거나, 혹은 더 적극적으로 세후 약 10%, 아니면 20%짜리의 투자수익률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30년 후에 1백만 원을 투자한 사람이 2백만 원을 저축한 사람보다 월등한 자산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재테크’라는 개념의 기본적인 논거가 된다. 즉, 1백만 원씩 80년을 저축해야 10억을 모을 수 있다면, 연 15%의 투자수익률을 올리는 재테크 수단에 투자할 경우 불과 30년 만에 같은 금액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연 30%의 투자수익률을 올릴 경우에는 그 시기는 상당히 앞당겨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첫째, 부자란 ‘더 이상의 부를 확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재테크를 계획하기에 앞서 내가 더 이상 늘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의 총량은 얼마인가를 먼저 생각하자. 즉, 재테크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나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명심하자.(그렇지 않으면 평생 돈의 노예가 된다.)

둘째, 나의 자산은 통장의 예금이나 부동산만이 아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와 나의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자산가치를 형성한다는 것을 명심하자.(가능하면 안정적이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자.)

셋째 노후와 은퇴 준비는 비율의 개념으로 접근하자. 예를 들어 노후에 받을 수 있는 개인 연금이 월 1백만 원 정도 확보되어 있다면, 당신의 자산은 이미 2억5천만 원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당신이 철학적으로 이런 준비가 되어 있다면, 힘은 들겠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인 재테크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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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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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맨 마지막에 책소개 같은 느낌이 들게 해서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우리가 일구고자 하는 부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글이 아닌가 싶어서 올립니다.

 

글에서처럼 대부분 2단계를 목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10/20/ladykh/v14428663.html?_right_popular=R10

 

[시골의사의 주식가이드]⑧부자에 이르는 세 가지 길

“‘재테크’와 ‘삶’이 공존하려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의 첫 번째는 일용할 양식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장식으로써 부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시대를 대표하는 부를 일구는 것이다. 당신이 부에 대해 어떤 단계의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재테크의 방법이 달라진다.

추구하는 ‘부’의 본질부터 판단해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 대한 목표는 생각보다 훨씬 소박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는 일이면 그것을 과장하고 확대해서 표현하는 습관이 있다. ‘실제 얼마만큼의 부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에는 ‘다다익선’이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실제 속마음마저 무조건 커다란 부자 되기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대개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차적인 부는 일용할 양식에 관한 부분이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건강한 가정의 건실한 가장들이 갖는 가장 큰 목표는 “나와 내 가족이 일용할 양식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 나아가서 “그 상태가 나이가 들거나 은퇴를 하거나, 혹은 실직이나 사고와 같은 불의의 환경에 처했을 때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 아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장들의 그런 소박한 소망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의 생활비, 교육비, 문화비, 통신비 등은 퇴근길에 삼겹살을 구워놓고 동료와 가볍게 한 잔 나눌 수 있는 자유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혹자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요해진 생활수준이 빈곤감을 대치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박탈감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지금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비율의 상대적 부자들이 존재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의 존재감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추구하는 부의 본질은 무엇일까? 잠시만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고, 신문에 등장하는 바다이야기 게임장 업주의 한 달 벌이가 수억원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완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가장의 삶은 더욱 고달파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 대다수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여전히 지금 당장의 일용할 양식이다.

그런 면에서 빈곤감의 일차적 원인이 상대적이라는 말도 그리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부에 대한 박탈감은 그나마 일용할 양식이 해결된 사람들이 말하는 배부른 논쟁일 뿐 여전히 우리는 절대적 기준에서의 빈곤에 허덕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일용할 양식이란 문자 그대로 단지 ‘양식’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이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데 한 달에 한 번쯤은 아이들 손을 잡고 콘도나 펜션에 머물 수 있고, 한 달 내내 고생한 아내의 젖은 손을 이끌고 고깃집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때 가장 큰 전제는 이 정도 지출에 대해서는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기꺼이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부’를 꿈꾼다면 재테크는 포기해야

어떤 사람은 그 정도라면 이미 부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자들의 늘어난 부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의 삶도 이 정도 수준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렇지 못하다. 설령 당신이 지금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미래 20년 뒤에도, 혹은 30년 뒤에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만약 당신이 이 두 가지 전제가(지금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삶, 그리고 미래에도 그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여유) 이미 충족되어 있다면, 이제 당신이 바라는 추가적인 부는 생존의 부가 아니라 장식의 부, 혹은 도구의 부를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식적 부란 무엇일까? 일용할 양식에 대한 준비를 마친 당신은 이미 잉여를 누리는 사람이다. 이 잉여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현재 내 삶을 확장해 타인(이 시대의 대다수에 대한)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을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부 자체를 하나의 철학으로 혹은 성취의 동기로,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일단 이 정도 수준의 부를 2단계의 부라 부르자. 이때 당신의 목적은 그랜저나, 체어맨을 타고, 완벽한 방호가 제공되는 주상복합으로 주거지를 옮기며, 당신의 자녀에게 타고 태어난 능력 외에 플러스 알파를 보태주는 사교육을 시킬 수 있기를 꿈꾸는 것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그 나머지를 누군가에게 덜어주고 나누는 삶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져도, 그렇지 못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 문자 그대로 이룰 수 있으면 좋지만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한 당신의 부에 대한 철학이다.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위해 투쟁하는 자와, 잉여를 위해 분투하는 자의 갈망과 의지는 현저하게 다르게 마련이다.

전자는 생존이지만, 후자는 장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큰 부자, 즉 우리가 재벌급이라고 규정하는 부를 목표로 하는 경우는 처지나 상황이 아주 다르다. 이것은 시대를 규정하거나, 혹은 시대를 선도하는 부를 축척하는 것을 말하고, 또 내가 가진 부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단순히 ‘부자’ 가 아니라, 정말 시대를 대표하는 부를 일구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단지 당신의 목표를 이룬 성취감에 지나지 않을 뿐, 그것인 이미 부가 아니다. 당신은 어떤 경우라도 당신이 소유한 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당신은 그 부의 노예가 되어 평생 그것을 지키고 늘리고 관리하는 데 봉사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내가 부의 주인이 아니라 부가 나의 주인이 된다.

많은 사람에게 이런 수준의 부는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거부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고 ‘기준’이며, 때에 따라서는 진짜 나를 죽이는 독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이 확고하고, 부를 다루는 그 자체를 장인정신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없다면 대개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불필요한 짐이며 고(苦)일 뿐이다. 편의상 이것을 3단계의 부라고 하자.

재테크로 이룰 수 있는 범위는 잉여의 부까지

이제 입장을 정리하자.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부는 일생동안 일용할 양식을 걱정 없이 해결하는 수준이라면, 거기서 굳이 과욕을 부려 두 번째 잉여의 몫까지 늘리는 것, 즉 2단계의 부를 목표로 하자. 당신이 재테크로 이룰 수 있는 범위는 바로 여기까지다. 만약 당신이 3단계의 부, 즉 시대적 부자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재테크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그 자체가 이미 그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지름길이 된다.

그렇다면 1단계의 사람들, 이 시대의 대부분의 가장, 혹은 청년들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재테크를 해야 하고, 그 결과는 과연 어떨까? 안타깝게도 이것이 가장 힘들다. 왜냐하면 부란 ‘구심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부는 그 크기가 클수록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가진 부의 크기가 적으면 적을수록 기회를 위기로 만든다.

예를 들어, 유전 징후가 있는 대륙붕을 한 번 탐사하는데 1억원이 든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석유 시추에서 성공할 확률은 1/10 이다. 그러나 이 탐사에서 석유가 발견된다면 그 가치는 1백억이다. 이때 당신에게 1억의 돈이 있다면 당신이 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10억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부를 결정적으로 늘려줄 절호의 기회다.

이것은 곧 리스크와 기회의 의미가 부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자산 규모 1천5백억의 장하성펀드대한화섬의 지분 5%를 취득하자 대한화섬의 시가총액이 단 이틀 만에 2천억이 늘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대한화섬의 주식을 매수했다면 ‘십중팔구’ 오히려 주가가 하락했을 것이다.

당신이 1천억의 자산가라면 종합주가지수가 1백포인트씩 하락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10억씩을 사들일 수 있고, 그 결과 설령 지금부터 대세하락이 시작되더라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시기의 문제일 뿐 당신은 최악의 경우에도 반드시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도 남는 충분한 이익을 올릴 수 있다. 더구나 이때 투자된 돈은 당신 자산의 고작 5~10%일 뿐이다.

하지만 1천만원이 전 재산인 당신은 이런 방식의 투자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당신의 잉여가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이고, 또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그것을 여유만만하게 기다릴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아닌 사람이 부자가 되기란, 부자가 더 부자가 되기보다 1백 배나 더 힘들고 위험하고 어렵다. 그래서 당신은 불가피하게 리스크를 안고 높은 수익률을 올려야 하지만, 사실 당신이 그런 생각을(높은 수익률) 하고 있는 이상 당신이 무엇을 하던 그 자체가 곧 위험이다.

그래서 당신은 두어 번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 운이 좋아 1천만원이 5천만원이 되더라도, 다시 1천만원 혹은 5백만원이 되기가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결국 당신의 성과는 50%에 수렴하게 된다. 사실은 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으로 인해 대개는 더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눈에 보이는 계산법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일용할 양식을 확보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고수익을 추구하지도 말아야 한다면 그저 좌절을 씹으면서 세상을 한탄하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당신의 가장 유리한 방법은 고수익을 추구하되 감당할 수 있는 범주에서 리스크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5천만원의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했다면, 혹은 5천만원을 빌려서 1억을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그리고 그 외에는 단돈 만원의 여유도 없다면 이미 당신의 투자는 리스크의 그물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매월 1백만원씩의 추가 수익을 본업에서 낼 수 있다면 당신은 그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고 리스크는 기회로 바뀐다.

재테크는 인내심을 양분으로 자라는 것

자산가치란 결국 단기적으로는 파동을 그리며 등락을 거듭하는 것이지만, 멀리 보면 반드시 증가하게 된다. 설령 당신의 투자가 지금 당장은 여의치 않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을 보전하는 시간을 벌 수가 있고, 당신은 그것을 기다릴 여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테크는 인내심을 양분으로 자란다. 당신이 일용할 양식이라는 일차적 목표가 절박하면 할수록 스스로 본업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취를 이루어 나가야 하고, 재테크란 그러한 전제에서 당신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1단계의 목표가 이루어진 사람들이 2단계의 부를 얻기 위해 재테크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앞서의 경우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성공 확률도 높다. 당신은 이미 두 번째 단계의 목표는 이루면 좋고, 설령 이루지 못하더라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또 이 경우에는 절박함이 없고, 내가 가진 부의 전부를 던질 이유도 없으며, 실제로 그러지도 않기 때문에, 당신은 이미 리스크로부터는 상당히 해방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런 범주에 드는 사람들은 굳이 그것을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산을 배분하게 된다. 그 사람의 투자자산은 리스크로부터 상당히 보호를 받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수익률이 획기적으로 크지 않더라도 안정적이고 누적적으로 자산을 증가시키게 된다. 사실 이 경우가 재테크에 있어서는 가장 유리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본인의 노력으로 재테크에 대한 안목만 키우면 수익률도 높일 수 있고,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은 냉정하게 보면 앞서 1단계에 해당하는 다수의 절박한 사람들이 잃어버린 판돈을 느긋하게 나누어 챙기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1단계의 목표는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의 본업에서 이루고, 2단계의 부는 재테크로 이루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조급하다. 그리고 신랄하게 말하면 그 내면은 스스로의 본업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 고생하기를 두려워하고, 좀더 쉽고 편한 길을 재테크를 통해서 찾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리스크에 노출된 1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재테크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란 동일한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어렵다.

물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스크를 전부 기회로 바꾸는 역량이란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공부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듣기 싫은 말은 귀에 거슬리고, 약은 입에 쓰다. 하지만 반드시 고민해보라. 혹시 자신이 재테크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좀 쉽고 편하게 큰돈을 벌고 싶은 욕망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파울 라인에 발을 디디고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부, 혹은 시대를 규정하는 부를 얻고자 노력한다면 재테크 따위는 잊어버려야 한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통찰, 산업의 미래와 정치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동물적 감각, 그리고 용기와 운이 동시에 따라야 한다. 그것은 돈을 굴려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정리하면 당신이 1단계의 부를 목표로 한다면 ‘재테크’와 ‘삶’ 두 가지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면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부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보다 재테크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1시간 덜자고, 1시간 더 일하면서 스스로 담금질한다면 재테크의 승률을 상당히 높이는 것이다.

당신이 2단계의 부를 목표로 한다면, 그때는 재테크의 노하우와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고 스스로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자근자근 목표를 밟아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부자가 되려면 지금 당신의 머릿속은 주식 시세나, 아파트 가격이 아니라 다음 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물결을 고민하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순간 당신의 전 생애를 걸고 뛰어들어야할 것이다.

▶‘시골 의사’ 박경철씨는…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었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루션’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리더스북)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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