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9/17/ladykh/v14060466.html

진정으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줌의 지식으로 수천만이 부딪치는 곳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사회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곳에서 성공하려면 수천만의 생명을 상대로 어르고 달래는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달라져야 한다.

인생은 통찰과 미시적인 부분의 대립

‘꽃을 본다’. 이 말에서 당신과 내가 소통하는 꽃이란 같은 꽃이지만 다른 꽃이다. 우선 ‘꽃’이라는 말에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이미지는 꽃이 아니라 ‘말’이었다. 당신이 생각한 이미지의 꽃을 만나려면 이 말 다음에 실제 꽃의 모양을 하나하나 그려봐야 한다. 그 다음에야 당신이 ‘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꽃을 떠올렸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이것이 대개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수준이다. 당신이 아직 어스름한 새벽에 숲길을 가다가 새끼줄을 보았다. 이때 당신이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해서 움찔하고 놀랐다면 그것은 당신이 받아들이는 오감의 매너리즘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순간 물러서서 그것을 자세히 살핀 다음 뱀이라기엔 질감이 딱딱하고, 움직임이 없고, 뱀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알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때 뱀을 보고 놀라는 당신의 마음은 ‘숲길에는 뱀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때로는 당신을 보호하지만 때로는 당신에게 숲을 즐길 수 없도록 만드는 마음의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통찰적인 부분과 미시적인 부분의 대립 속에 살아간다. 당신은 숲길에서 뱀을 밟을까 두려워 땅만 보고 걸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숲을 지난 다음에도 숲에서 들리던 아름다운 새소리와 들꽃의 아름다움,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의 군무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숲을 느끼고 오래된 나무등걸에 자란 작은 들풀에 취한다면 언젠가는 뱀에게 발을 물릴 수도 있다.

그래서 통찰은 간과를 필요로 한다. 이번에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감상해보자. 이 시에 등장하는 꽃은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을 불러주는 ‘나’는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다. 지금 이 순간 설악산 계곡의 어느 골짜기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 한 떨기는 스스로 피어 있지만 없는 것이다. 그 꽃은 누군가의 눈에 띄어 ‘꽃’이라는 인식이 덧씌워지지 않는 한 그것은 꽃이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그렇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지극히 작고 편협하다. 전 우주를 생각하고 흘러간 억겁의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한 점의 먼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모르는 시간의 저편 공간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기다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가 아는 한 줌의 지식은 미시적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한계에 다다른다. 우리가 지구를 알고 은하와 태양계를 다 안다고 해도 시공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차원의 공간에서는 그것 역시 한 줌의 먼지일 뿐이다. 그래서 이치를 알기 위해 양적인 지식에 집착하면 남극에서 길을 잃어버린 탐험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영원히 이치의 주변을 맴돌 뿐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

성공은 수천만의 생명을 상대로 벌이는 치열한 전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죽도록 그것을 부여안는 것이 격물치지다. 양명학의 아버지 왕양명은 격물치지를 위해 어린 시절 뜰앞의 나무를 하루 종일 보고 또 보았다. 나무가 자라는 이치, 봄바람과 가을바람이 나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무가 잎과 꽃을 피우는 과정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는 침식을 전폐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느라 청년기를 다 보냈다.

물론 그것에서 그가 얻은 이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일생을 통해 이루어낼 학문의 모든 준비를 끝냈다. 심지어 바위와 마주 앉아 이치를 찾는 마음과 인내는 그가 생각한 ‘꽃을 보지 않으면 꽃은 없다’는 암중화의 인식론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는 양명학의 태두로 우뚝 서서 한국의 실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남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치에 닿은 사람은 모두 그랬다. 그들은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상의 이치를 탐구했다. 모두가 꽃을 보고 ‘꽃이다’라고 할 때, 그들은 꽃이 피고 지는 이치를 생각했다. 모두가 ‘눈이 내린다’라고 할 때, 그들은 자연의 순환을 생각했다. 누군가가 상(喪)을 당하면 기의 순환과 인식을 뛰어넘는 윤회의 사상으로 연결지었다.

이것은 이치를 구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치를 접하려는 자세를 상징한다. 우리가 고작 한 줌의 지식으로 수백만 수천만이 부딪치는 곳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교만이다. 사회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 안에서 성공을 꿈꾸는 것은 나를 제외한 수천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생명을 상대로 어르고 달래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과 같다.

지금 당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라고 수긍하는 데서 출발해라. 지금 당신의 작은 지위가 혹은 지식이 혹은 재산이 남보다 많고 우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모든 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해라. 지금까지 주어진 행운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스스로 누추하다고 여겨지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라.

당신은 버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차라리 채우기가 쉽다. 어설프게 알고 어설프게 가지면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 더 괴롭고 힘든 것이다. 당신이 성공을 꿈꾼다면 쓸데없는 것들은 모두 버리고(간과하고) 통찰력(이치)을 키워라. 한 가지 이치를 깨달으면 다른 이치를 볼 수 있는 눈은 저절로 열린다.

그렇다면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늘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한 가지 영역에 집중할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당신이 부자를 꿈꾸는 것은 바로 보유한 자산이 일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등이 되는 과정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해온 일들을 답습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것을 배워서 익히면 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재테크 역시 나만의 철학과 노하우를 확립하고 그것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면서 세상의 변화에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다. 재테크는 과정의 결과일 뿐 목표가 아니다. 당신이 성공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안목을 기르는 것이고, 그러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발전하는 데 가장 큰 바탕이 되는 것은 옳은 판단이고, 옳은 판단은 탁월한 안목을 필요로 한다. 안목은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그런 면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철학적이다. 당신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재해석된다. 모든 사람이 무심코 지나는 태종대 자갈밭에서 수백만원짜리 수석을 캐는 사람이 있고, 공원을 걷다가 이름 모를 들풀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그것을 잡초로 알고 스쳐가는 사람과는 다르다.

삶을 관리하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노력이 필요

당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길거리를 지나다가 들리는 모차르트의 선율에 가슴 저린 감동을 받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당신의 귀는 소음에 시달렸을 뿐이다. 같은 사물을 두고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그것을 해석하고 교감하는 당신의 뇌는 스스로에게 더 나은 발전을 요구한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 당신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사물의 형상에 자극받고 당신의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그 과정에서 당신은 세상을 푸는 지혜를 발견한다. 예술가가 작품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영감을 포착해본 경험이 있는가?

베토벤이 신을 향해 절규하던 그 마음이 ‘9번 교향곡’을 들으 느껴지는가? 무용처럼 대사 하나 없는 몸짓을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 현대미술관 앞뜰에 놓인 설치미술에서 그것을 만든 이의 영감을 떠올려본 일이 있는가?

당신이 그것을 이해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작품이지만, 당신이 지나치면 그것은 고철 덩어리다. 당신이 소리를 듣고 작곡가와 연주자의 영감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언어라는 교착된 수단을 벗어나서도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성에게 고백하고 싶다면 그(그녀)의 표정에서, 눈빛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는가? 굳이 고식적인 언어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소리나 색깔로 혹은 격식과 문법이 사라진 시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의 오감은 살아 있다. 당신의 오감을 일깨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신은 길을 걷다가 발바닥으로 전달되는 땅의 느낌을 느끼는가?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서 당신의 엉덩이가 닿아 있는 그 느낌을 이 글을 보지 않고서도 항상 느낄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뺨을 스치는 공기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오감은 어떠한가?

어느새 당신은 그것들을 전부 활용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단순화된 수단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당신의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폐를 거쳐 동맥을 타고 손가락마디, 발끝까지 흐르는 그 살아 있는 느낌을 당신은 느낄 수 있는가?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것, 내 손으로 만지는 것, 당신이 사물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경로는 혹시 그것이 전부가 아닌가?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만질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는가?

통찰적 사고를 하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지금과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 예전에 당신이 보고 듣고 만져보고 판단했다면 이제는 느끼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라.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달라져야 한다.

하루에 잠은 여덟 시간 이상 자는 것이 좋다는 망발을 잊어버려라. 지금 당장 당신의 삶을 관리하고 자신을 단련할 준비를 시작해라.

그 방식은 무엇이라도 좋다. 지금 당장 맨발로 땅위를 걷는 운동을 시작해도 좋고, 모차르트 전집을 사서 그것을 다 외울 때까지, 그것이 소음이 아닌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 오르가슴을 느낄 때까지 그것만 들어도 좋다. 황동규의 시집을 사서 ‘풍장’을 소리내어 외워도 좋다. 아니면 곰브리치의 미술사를, 힐드베르거의 철학사를 붙잡고 이를 악물면서 읽어도 좋다.

그냥 지금과 달라지면 된다. 내일은 오늘과 달라지고 모레는 내일과 달라지면 된다. 거리를 걸으면서 공기를 맛나게 먹는 연습도 하고, 물을 한 잔 마실 때 꼭꼭 씹어 먹어도 좋다. 당신의 죽어 있는 오감을 살리기 위해 지금부터 당신은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한 가지씩만 돌파하라. 책을 읽는 것이 싫다면 철학사를, 음악 듣는 것이 싫다면 말러를, 그림이 싫다면 피카소와 맞서라. 그저 당신의 오감을 편안하게 하는 일들을 하나씩 주변에서 치워나가라.

손쉬운 수단의 선택… 성공 가능성 멀게 해

그것이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들어가자. 당신이 1년만 그런 도전을 한다면 도전 결과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관심 없었던 혹은 싫어했던 것을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새로운 지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놀라운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굴드의 골드베르거를 들으며 일어나는 당신을, 읽다 베갯머리에 두고 그대로 잠든 데리다의 해체론에, 당신의 거실에 걸려 있는 리히터의 그림에 스스로 놀라고 변화한 자신에 대해 당황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 일에 도전하라. 그것도 당신이 가장 하기 싫었던 순서대로 시작하라. 영어 회화를 선택하든, 중국어를 배우든, 가게에 한 시간 일찍 나가 유리창을 닦든 간에 당신의 일에서 중요하지만 미루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부터 먼저 도전해라.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다시 그 다음으로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골라 뛰어들어라. 그러면 당신은 어느새 화두를 들고 수십 년을 선방에 앉은 스님보다 맑은 정신과 판단의 소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깨달음 혹은 통찰은 목숨을 건 수행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당신이 가장 손쉬운 수단을 선택하려는 순간 당신에게서 성공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질 뿐이다.

돈을 벌고 싶은가?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필자의 책을 비롯한 돈을 벌게 해준다는 그 수많은 ‘쪽집게’ 책들부터 마당으로 끌어내 불사르라. 주식에서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TV에서 흘러나오는 증권방송 채널부터 망치로 부숴버려라.

통찰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스스로를 개발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바로 통찰이다. 당신이 진정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

▶ 연재를 시작한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었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루션’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리더스북) 출간했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원태·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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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공 ]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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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8/10/ladykh/v13649952.html

10억이 언제부턴가 노후에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에쿠스를 타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노후자금 차이는 없는 것일까? 재테크를 해야 하고, 보험을 들어야만 하는 이데올로기는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게 전염되어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상대적인 관점이 필요한 때다. 모든 사람에게 노후자금으로 10억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후자금의 기준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평균

최근 모 경제연구소에서 노후에 필요한 자금은 서울 기준 7억, 대도시 5억, 중소도시 3억 수준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10억’이라는 피상적인 노후자금 내지는 은퇴 준비에 매달리던 이 나라의 선남선녀들에게 상당한 희망을 안겨주는 낭보다.

그러나 이것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 鼻懸鈴 :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이다. 당신에게 노후에 필요한 자금은 당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다. 당신이 노후에 바닷가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생을 반추하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삶을 마무리 하고 싶은지, 혹은 대도시 인근의 실버타운에 거주하면서 그동안 축척한 부를 향유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가령 당신이 이 나라의 평균인이며 평균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당신의 노후에 필요한 자금은 지금 당신이 속한 사회에서 비슷한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 노후에 어떤 삶을 누리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당신이 사교모임이나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의 평균이 바로 당신의 기준이다. 당신이 한 달에 서너 번의 골프 모임을 가지고, 1년에 두세 번씩 해외여행을 즐긴다고 치자. 그리고 타워팰리스에서 거주하며 에쿠스를 타는 사람이라면 노후에 필요한 자금은 수십 억이 될 것이다. 당신이 30평 아파트에 소나타를 보유한 평범한 가장이라면(현재 절대적 부의 총량과 무관하게 지금 당신이 누리는 삶을 기준으로) 노후에는 10억의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1백억원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와이셔츠 하나를 깃이 닳을 정도로 입는 사람이라면 노후 자금은 달라진다. 당신의 노후에 필요한 자금은 역모기지를 이용한다면 불과 2억 수준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의 양식은 획일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필자의 인척 중에 어떤 약사 부부가 60년을 열심히 일했다. 그분들은 아침 6시면 일어나 약국 문을 열고 밤 10시가 되어야 문을 닫는다. 이분들은 칠순이 되어서야 겨우 약국을 그만두고 쉬었는데, 그것도 두 분 중 한분이 류머티스로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평생을 그렇게 일하고 저축했다. 그렇게 저축해서 돈이 모이면 5년이나 10년 만에 조금씩 땅을 사고, 작은 건물을 사두었다. 하지만 정작 당신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불과 100km 반경을 벗어나본 적이 없고, 지난 세월 동안 외식 한번 해본 적도 없다. 결국 이분들은 은퇴 시점에서 상당한 자산을 모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자식들의 뒷바라지나 사업자금으로 쓰였고, 두 분은 지금도 여전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때 이분들에게 자산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분들의 가치관은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겠다는 것일 뿐 정작 스스로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이분들의 삶은 행복하다. 그것은 스스로가 선택한 가치관에 충실했고 그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내 가치관을 충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때 이분들의 노후자금은 얼마가 필요한 것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적 관점

사회는 획일적 기준을 강요한다. 사회 구조의 변화로 고용을 기반으로 하는 2차 산업이 쇠퇴하고, 3차 산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4차 산업이 발달한다. 그것은 곧 금융공학이다. 이때 4차 산업의 특징은 이미 이루어진 부를 배분하는 산업이다. 2차, 3차 산업의 고도 성장기에 이어 나타나는 4차 산업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부가가치를 재배치함으로써 성장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소모적이다.

4차 산업은 급여와 자산이 잉여 상태에 이른 사회에서 그 잉여가 소모될 때까지 번성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잉여 유동성의 이동을 촉발하는 자극이다. 돈은 이동하면 비용이 발생하고 그 비용은 4차 산업의 연료가 되어 소모된다.

GDP(국내 총생산) 성장으로 늘어난 자산은 그 사회의 삼투압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증가한 삼투압은 상대적으로 잉여 상태에 있는 나라의 자금을 흡수한다. 아직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생산력은 이미 노화하고 쇠퇴한 나라에 생산물을 팔아 그쪽의 부를 끌고 오지만 이것은 스스로가 상대 열위에 속하는 순간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 사회의 성장은 정체되고, 벌어놓은 유동성을 한쪽으로 몰고 간다. 사회의 성장은 기대 수명을 늘리고, 고용의 감소는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이것은 곧 오래 살 위험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남겨진 가족에 대한 우려는 빨리 죽을 위험에 대한 걱정을 리마인드한다.

보험사는 오래 살 위험과 빨리 죽을 위험을 강조한다. 그리고 대부의 증가 국면에는 위험이 정체되지만 절대부의 감소 국면에 처한 사회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자산이 증가하던 시대에서 시간이 흐르면 자산이 감소하는 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기준은 한껏 부풀려진다. 사회나 개인이나 나이가 들면 활동량이 감소하고 유혹이 줄어든다. 지금 기준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누리고 싶은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줄어들지만 그것은 보험사가 원하는 생각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과 여유의 현재 가치를 유지하려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절대적 관점이지 상대적 관점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부자를 부러워하고, 당신보다 더 가진 사람을 향해 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나이가 들수록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내적인 충실에 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당신이 오십이 되면 지금보다 상대적 빈곤감이 더욱 감소하고, 육십이 되면 당신의 현재만이 중요한 시기가 된다.

그리고 스스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칠십이 되면 상대성에 대한 관점은 사라지고 절대적 기준만 남게 된다. 물론 이것은 지금 당신이 속한 수준의 삶을 유지한다는 가정에서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을 교란한다. 이대로 지낸다면 당신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에게 공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구명정이 턱없이 부족한 타이타닉호에 승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는 충분한 잉여를 가지고 있고, 그 잉여는 나름의 삼투압을 발휘해 당신의 노후를 준비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제비뽑기를 해서 구명정에 오르는 타이타닉의 승객도 아니고, 먹을거리가 떨어져 한 사람에게 나머지 식량을 몰아줘야 할 사막에 버려진 난민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험과 연금, 재테크의 대열에 올라타지 못하면 미래에 노숙자가 될 것 같은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불안과 혼란은 과장된 것

지금 당신이 주어진 삶을 충분히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이 받을 연금이나 퇴직금은 예상보다 적지 않고, 당신이 가진 작은 집 한 칸은 당신의 미래를 충분히 책임 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은퇴를 걱정하는 사회에 속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가진 사회적 공유자산의 규모가 예상보다 만만치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국가는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이지만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그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마련이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그 국가는 스스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인류가 위기에 빠지면 인류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움직이게 된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이 곧 인류가, 국가가, 사회가 절멸하는 시기일 것이다.

국민연금은 2040년이면 지급 불능에 빠지고, 의료보험은 GDP의 10%를 넘어설 것이며, 그때 20대는 수입의 30%를 연금으로 지출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 남기 위해 빨리 배를 탈출해야 하는 쥐들의 무리나 다름없다.

30년 전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이 지금의 위기를 가져 왔다면 시험관 아기 시술에 3백만원을 지원하는 움직임은 연금이 증발하는 2040년의 위기를 다시 넘기게 할 것이다. 지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망각한 부도덕한 부자들의 주머니는 투명해질 것이다. 회계부정을 일삼던 기업들의 모럴헤저드는 도덕적인 기업으로 바뀔 것이다. 부는 적절히 재편되고 우리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미래에도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두려워하는 은퇴 목표로 삼는 10억 만들기는 새로 성장하는 4차 산업의 연료로 소모될 뿐이다. 정작 당신에게는 어떤 도움도 주질 못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보험에 가입하기보다 보험료만큼의 자산을 저위험 자산에 누적적으로 적립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당신이 미래에 탈 보험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금액을 적립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낸 보험료의 일부는 거대 보험사들을 굴리는 운영비로 사용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또 당신이 일찍 죽을 수 있는 위험이 두려워서 종신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면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 있다. 지금 당신의 나이에서 주변 사람 중 과연 몇 명이나 암으로 죽었는지, 혹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지를 돌아보라. 일반화의 오류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당신이 사는 복권이 1등에 당첨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이 내일 갑자기 급사할 위험을 경계하라.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차라리 하루에 30분씩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강변을 산책해라. 그리고 오늘 저녁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떠오를 때 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고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방에 가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불러라. 그것이 그 어떤 보험보다 더 유용하고 효율적인 보험일 것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불안감과 혼란은 다분히 과장된 것이다. 당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기 전에 먼저 당신의 가치관과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라. 그 과정에 필요한 준비는 당신이 지금 챙겨야 할 직장과 가게 그리고 사업에 몰두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약간의 여력으로 위험에 대비하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3백만원의 급여을 받아서 30만원의 종신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를 먼저 돌아봐라. 당신이 그중 1백만원을 투자해서 주식시장을 고민하는 것보다 그 고민의 90%를 지금 당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당신은 지금 혼자서 헬리해성이 지구에 부딪힐 것이라는 소식에 절망하고 있을 뿐 생각보다 당신의 주변은 의외로 담담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골 의사’ 박경철씨는…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었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루션’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리더스북)을 출간해 다시 필명을 떨치고 있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원태·경향신문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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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7/14/ladykh/v13372945.html

“인간이 할 수 있는 투자 중 가장 어리석은 것은 바로 토지투자!”

사람들은 “장기투자가 유리하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장기투자가 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특히 토지에 대한 장기투자는 가장 어리석은 투자 방식이다. 장기투자에서 토지투자는 제외해야 한다. 장기투자의 최우선순위는 금리투자다.

토지는 추가적으로 생산이 불가능한 한정적 재화

왜 모두들 장기투자가 유리하다고 할까? 과연 모든 사람이 장기투자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단기투자자는 정말 손실만 입을까?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 이후 자본시장에서 성공한 많은 투자자들은 스스로 장기투자를 해왔다. 이들의 성공은 장기투자라는 기간적 요인에 의존한 것이었을까? 당신도 장기투자를 한다면 과연 높은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장기투자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주식시장은, 아니 자산가치는 시간가치를 충분히 반영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발전은 지속되고 자본시장은 과학과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인류가 생긴 이래 과학과 문명은 발달하고, 그 발달 속도와 가치는 곧 인류가 보유한 자산의 부가가치도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기껏해야 동물이 뛰놀던 들판에 지나지 않던 땅에 지금은 아파트가, 공장이 혹은 빌딩이 세워지면서 자산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기원전 500년경 공자가 지닌 한 평의 땅은 보리 한 말의 부가가치가 있었지만, 지금 한 평의 부가가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인류가 보유한 자산은 분명 수백 배의 증가를 이루었지만, 한 평의 토지는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증가가 있었을까? 만약 2천5백년 전 중국의 어느 지점에 땅을 1백 평 가진 부자가 지금까지 대를 이어 그 땅을 지키고 있었다면? 혹은 로마시내 중심가의 땅 1백 평을 가진 귀족의 후손이 지금도 여전히 그 땅을 지니고 있다면 그 땅의 자산가치 증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장소에 따라 가치는 다르겠지만, 2천5백년 전의 땅값을 현금화해서 복리 이자율로 증식했다면 그 가치는 지금 얼마쯤일까? 또 만약 그 가치를 당시의 가장 유망한 산업에 투자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투자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바로 토지투자다. 왜냐하면 토지란 기본적으로 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추가적으로 생산이 불가능한 한정적 재화이고, 기본적으로 그 가치는 절대로 문명의 발전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토지란 인간이 그것을 이용하는 산업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때만 효율성이 있을 뿐 문명의 발달과는 전혀 등비례곡선을 그리지 못한다. 토지란 기본적으로 거주와 생산 시설의 기지라는 용도일 뿐 그 자체가 능동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장기투자에서 토지에 대한 투자는 제외하는 것이 옳다. 토지에 대한 투자는 필연적으로 금리 이상의 효율을 얻을 수 없다. 금리란 유동성의 크기이며, 위험을 부담할 수 있는 용기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인간이 어딘가에 투자할 때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는 금리로 나타나고, 유동성의 부피 역시 금리로 나타난다. 토지는 예전부터 이런 유동성을 완충하는 장치일 뿐 그 자체 유동성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인간의 문명은 위험부담을 지고 행하는 투자 행위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투자의 대상으로 토지를 선택하는 것은 절대 평균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장기투자의 최우선순위는 금리투자다

모든 투자 수단 중 금리투자가 가장 뛰어난 결과

금리투자는 곧 인류의 자산가치의 평균에 대한 투자이며 가장 적절한 벤치마크 투자 수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기투자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 투자란 먼저 벤치마크 수익률(평균 수익률)에 대한 추적이라는 관점에서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금리에 투자해야한다. 물론 금리투자 안에서도 다양한 수단이 존재하므로 그 안에서 다시 수익률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금리 상승기에 예금을, 금리 하락기에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과 금리의 변동에 무관하게 현재 가능한 최고 금리에 예금하는 방법 중 투자 결과는 전자가 유리하다.

그러나 왜 우리는 벤치마크 투자 수단을 이기지 못할까? 투자기간이 단기이건 중기이건 장기이건 적절한 투자 수단이 있고 그 순간 최선의 투자를 선택할 경우 분명히 수익률 측면에서 최고의 수익이 보장된다. 그런데도 결국은 평균을 넘어서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또 지난 수백 년간 혹은 최근 20년간 투자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왜 모든 투자 수단 중에서 금리투자가 가장 뛰어난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것은 바로 위험에 대한 노출도의 차이다.

인간의 거래 행위는 위험을 수반한다.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매도와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매수로 형성되는 결과물이라면 가격을 형성하는 모든 투자 행위는 50%의 위험을 수반한다. 또 그것이 특별한 능력에 따른 성과물만이 아니라 운이 작용하는 것이라면 이 운이라는 부분은 결국 반복될수록 평균에 수렴한다.

결국 어떤 투자 수단을 선택할 때 그것이 나의 능력과 안목으로 50% 이상의 확실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평균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평균이 아닌 투자 수단을 선택할 경우에는 그것의 결과로 우리는 비싼 거래 비용만 지불하게 된다.

예로 부동산이라고 가정하자. 직접 도시계획 선을 긋거나 혹은 선을 긋는 사람이 내 피붙이가 아니라면 당신은 사실 당신의 직관이나 안목이라는 이름의 운에 투자하는 것이다. 또 주식에 투자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 그리고 분석이라는 이름의 운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에 투자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문명과 자산가치의 증가에, 혹은 기회 비용의 크기에 투자하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실물 자산,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현 시점에서 가능한 모든 가능성의 평균에 투자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장기투자는 승리한다는 이치는 곧 진리지만 그 진리는 아무데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금리에 대한 장기투자는 반드시 이익이 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위험을 제거한 정상가치의 유지에 해당한다. 즉, 평균 기회 비용만큼의 수익(시간가치)을 잃지 않았을 뿐 초과 수익을 올린 것은 아니다.

그만큼 수익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렵다. 돈을 벌어서 산술적으로 금고에 모아둔다면 그것은 절대수치의 증가는 있지만 시간가치의 기회 비용만큼의 손실을 의미하고, 그것을 금리에 투자한다면(평균금리로 빌려준다면) 시대의 자산가치 증가의 평균치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 외의 투자 수단을 택한다면 그것에 더한 평균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부자가 되는 길에 다가서겠지만 그만큼 리스크를 안고 그만큼 자산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투자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나르시즘’

어떻게 해야 할까? 자산가치의 획기적인 증식을 이룬 사람들은 자신의 기회를 이용한 사람들이다. 민망한 이야기지만 정말 당신이 도시계획의 금을 그을 기회가 있거나 혹은 그쪽에 종사한다면 당신은 자금을 금고에 넣는 어리석음이나, 금리에 맡기는 평균이 아닌 부자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즉, 당신은 부동산에 투자해서 금리수익의 수십 배나 되는 이익을 취해 부자가 되는 수단을 확보한 것이다.

또 당신이 무언가 특별한 생산 아이디어가 있어서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지렛대 삼아 부자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1억으로 10%의 영업 이익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을 금리에 투자하기보다 오히려 5%의 금리로 100억을 빌려서 단숨에 10억을 벌 수도 있다. 또 당신이 이 거래를 중개할 수 있는 수완이 있다면 위험을 없애고 거래를 중개하면 된다. 때문에 금리 이상의 이익을 통해 부자가 되려면 반드시 금리 이상의 영업 이익을 낼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확보한 다음 그것의 효력을 최대한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혹은 당신이 생각한 투자 유망지에 땅을 산다면 그것의 성공과 실패 확률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당신이 유망지라고 생각한 그 땅은 누군가는 파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라. 누구나 스스로에게 도취하기 쉽다. 거울을 보라. 매일 아침 거울에 비치는 익숙한 당신의 얼굴에서 그리 심각한 흠집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당신이 비록 50대에 접어들었어도 거울에 비친 당신은 여전히 30대다. 당신이 무언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이 가진 가능성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하게 될 것이다.



대개 투자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르시즘이다. 길거리에 널린 수많은 식당과 술집을 보라. 당신의 눈에 정말 턱없는 곳에 자리한 많은 가게들도 결국 그곳에 문을 연 사람들의 눈에는 장사가 잘 될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세상에 어느 바보가 장사를 하면 망할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개업을 하겠는가?

돈이 없어서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없다면 가게를 열기보다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불리한 상황에서도 억지로 희망의 요소를 만들어낸다. 내가 열심히 한다면, 밤잠 안 자고 알린다면, 고객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내 솜씨라면 등등의 많은 핑계들은 결국 당신을 파멸로 인도한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옳지 않은 투자 판단을 내린 뒤 좌절하고 실패한다.

인간의 투자 행위는 20%만이 겨우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투자에 나선 80%의 사람들은 손해를 입는다. 그러나 금리에 투자한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 모은 원금에 사회적 자산 증가분(금리)만큼의 비율로 자산을 축척할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금리에 투자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부자가 된다. 물론 금리 외에 효율적으로 투자한 사람들 중 20%의 성공 사례를 뺀다면 그렇다.

모든 투자자가 동시에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장기투자

그렇다면 성공한 20%에 속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내 능력을 증가시켜 투자가 아닌 수단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유능한 엔지니어가 되거나, CEO가 되어 시대적 평균보다 월등한 급여를 수령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리스크를 기본적으로 안지 않으며 굳이 투자 수단을 찾지 않아도 그만이다.

다음으로 내가 그 부를 더 늘리고 싶거나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투자를 통해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평가를 잘 내려야 한다. 이때 나르시즘은 최악이다. 자신이 이 투자에서 금리수익 이상을 거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평가해보라. 사돈의 팔촌 중에 개발계획에 정통한 자가 있거나, 자신만의 탁월한 기술이 있거나,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르는 재테크의 노하우를 터득했다고 생각하면 투자하라.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라. 자신을 폄하하고 끊임없이 얕잡아보라. 자신을 거꾸로 세워 털어보고 스스로를 혹독하게 비판하라. 그래도 당신이 금리 이상의 확실한 수익을 낼 자신이 있다면 그때 당신은 투자를 해도 좋다.

다시 장기투자를 생각해보자. 장기투자는 절대로 무조건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 지난 세월 50년을 보유해도 쌀 한 말 값도 나오지 않는 땅에는 아무리 장기투자를 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파퓰리스트 대통령이 그 지역에서 나와 그곳을 위락단지로 개발하거나, 난데없이 뜨거운 온천물이 콸콸 흘러나오지 않는 이상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도심 외곽에 땅을 사서 10년을 묻어두었다가 세 배의 대박을 낸 사람은 그 지난 10년간 복리예금에 맡겨두었어도 그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20년을 묻어두었더라면 오히려 손해였다.

물론 정부의 고관들이 청문회에서 우연히 조상묘를 쓰려고 땅을 사뒀는데 그것이 도시계획에 들었다는 그런 얘기는 학교수업만 열심히 들었는데 수석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희극적이다. 그래서 부동산에 장기투자하는 사람은 바보다. 부동산은 가격의 변동성이 추세를 형성하기 때문에 상식과는 달리 가격의 상승이 자리잡힌 후 단기투자를 하는 것이 적합하다. 부동산에 장기투자를 해서 기다리는 얼간이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장기투자의 효과를 누릴 수 있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리는 것이다. 워렌버핏처럼 수십 년 전부터 금리 이상의 이익을 낼 만한 회사에 투자했다고 하자. 그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 차입금 이상의 수익, 즉 빌린 돈의 몇 배의 이익을 내고, 빌린 돈보다 상당히 많은 경상 이익을, 빼야 할 것은 빼고 내야 할 것은 낸 순이익도 금리보다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그런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회사가 도저히 금리 수준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다른 회사에 투자하고, 그 회사가 최소한 금리만큼의 배당을 주거나 혹은 그만큼 가치가 커지거나 하는 한 그 회사에 장기투자를 한다면 앞서 설명한 논리대로 사회적 자산 증가분에 상당한 효율을 더한 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식당을 하고 싶다면 CJ나 풀무원을, 술집을 하고 싶으면 두산을, 당신이 도박장을 열고 싶으면 강원랜드를, 당신이 제조업을 해보고 싶었다면 그에 해당하는 기업을 골라라.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그 사업을 해보고 싶을 만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던 중이었으므로 이미 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가능성을 살피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회사가 장사가 시원찮고, 금리 이상의 가치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효율을 보여주지 못하면 냉정하게 포기하라. 그러나 그 회사가 당신이 처음 생각한 조건을 충족시켜준다면 죽을 때까지 그 회사와 동행하라. 그것이 장기투자다. 그렇게 경제의 파이는 커지고, 그 커지는 파이는 나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 파이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장기투자는 플러스 섬 게임이다. 그러나 줄을 잘못 서면 그것은 마니너스 게임이 될 수도 있다. 장기투자는 자산가치의 증가를 공동으로 향유할 수 있으므로 모든 투자자가 동시에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사회적 자산가치가 10배 증가하면 유용한 수단에 투자한 장기투자자는 30배의 이익을 올리고, 그렇지 못한 장기투자자는(엉뚱한 투자) 2배의 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장기투자의 강점은 있다. 단순하게 부동산과 주식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당신이 거간에게 수수료를 지불할 우려가 없다. 장기투자는 플러스 섬이고 단기투자는 마이너스 섬이다. 장기투자는 전원이 이길 수 있지만 단기투자는 전원이 질 수도 있다.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었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루션’도 진행하고 있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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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6/14/ladykh/v13037579.html

“내가 가장 합리적이고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자신이 접한 정보의 질과 양에 대한 가치 판단을 못한다면 투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거시 경제적 요인을 가지고 거래에서 이익을 얻기란 쉽지 않다. 투자의 핵심 요소는 가격의 평균치와 타인의 판단을 고려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주식 거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적정 가격은 계산할 수 없는 상대적인 것

사이비 교주가 있었다. 그는 모년 모월 모시에 세상을 심판하는 휴거가 일어난다고 교인들에게 선언했다. 교인들은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교주가 이야기한 동산에 모여 휴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교주의 말만 믿고 모든 재산을 처분한 사람들은 교주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실을 기뻐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휴거를 믿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동산에 모인 이 믿음이 신을 감동하게 했고 그것이 바로 세상을 구원했다”라는 교주의 말 때문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 참여하지 않은 누가 보아도 이것은 분명히 비합리적인 사건이다. 문제는 이 상황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논거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투자 행위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당신은 주식과 부동산 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현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오랫동안 주식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부동산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때 당신은 ‘백발백중’ 주식에 투자하게 된다. 이때 당신의 논리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 주식이므로 내가 잘 아는 곳에만 투자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동산은 정점에 이르렀고 주식은 80년대 미국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으므로 주식이 오를 것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우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투자란 자산을 사는 것이고 자산을 살 때 이익을 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나쁜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사고 파는 행위에서 한 사람이 이익을 보았다면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산다’와 ‘판다’의 기준이 되는 ‘적정 가격’은 무엇일까? 적정 가격이란 정확히 계산할 수 없고 상대적인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거품이라고 말할 때 그 부동산의 적정 가격은 어떤 기준이어야 할까? 예를 들어 부동산 임대 수익률 대비 혹은 10년 전 가격 대비, 인플레 대비와 같은 비교 가격으로 견주어 판단하는 것이 적정 가격이다.

정보의 특성을 이해한 후에 투자해야

주식의 경우는 좀 더 세련되다. 예를 들어 ‘이론주가 = 1주당 이익 / (금리 + 리스크 프리미엄 - 이익성장률)’라고 말할 때 실제 주가는 한 번도 그 가격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가는 그렇게 평가된 가격을 때로는 많이 넘어서기도 하고 때로는 많이 하락하기도 한다. 이때 이론주가를 형성하는 근거는 어떤 수식이나 모델이 주가가 오르내린 진폭의 중심값과 근사한 결과를 보여줄 때 그것을 적정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격의 지난 1백 년간 등락을 그래프로 표시한 후 그 등락의 중심값을 적정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면에서 ‘가격판단’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적정 가격은 추상적 기준을 두고 가격이 상하로 괴리를 보일 때 그 괴리를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괴리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또 투자로 수익을 내려면 기본적으로 이 괴리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철학적으로 근접한 매매 모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 괴리를 더 벌리려고 들까? 그것은 바로 ‘기간의 함정’이다.

다음 그림을 보자.

가격 a는 이 기간의 평균 가격으로부터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가격 a는 분명히 매도해야 할 시점인데 사람들은 매수를 한다. 이때 가격 b는 아래쪽으로 괴리를 보이고 있다. 당연히 가격 b는 매수해야 하는 가격대가 분명하다. 그러나 두 개의 그림을 합치면 가격 a와 b는 같은 지점이다. 가격 b의 관점에서는 싸고 a의 관점에서는 비싸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가격의 함정이다. 사람들이 투자에서 손실을 입거나 터무니없는 실패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가격논리에서 보이는 적정가의 함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격 추세가 상승기에 이르면(사람들이 흥분하면) 가격의 논리는 b를 따른다. 하지만 가격이 하락하면(공포에 질리면) 가격 논리는 a를 따른다.

사실 이것은 사이클 개념의 본질이다. 경기를 예측하는 전망들이 한 번도 맞지 않고, 주가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절반도 맞히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가격을 결정할 때 정보를 믿는 사람들은 그 정보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판교 분양에서 당첨되면 그것은 당장 로또복권과 같은 수익률을 올려줄 것이라는 명제는 맞다. 그러나 그것이 10년 후 전매가 가능한 시점에서도 그러하다는 확증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전제를 믿는다.

유용한 정보에 대한 몇 가지 전제

유용한 정보란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 첫째, 내가 가진 정보는 다른 사람이 가진 정보와 달라야 한다. 둘째, 내가 가진 정보는 다른 사람의 정보보다 정확해야 한다. 셋째, 내가 가진 정보는 좀더 직접적이어야 한다. 넷째, 유용한 정보는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제 성장률을 산출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당신의 정보는 다른 사람보다 다르고 양이 많지만 그것이 실제 주식을 사고 파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당신의 정보는 직접적이지 않고, 주가에 실시간 반영되는 정보가 아니므로 시의성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기업의 실적을 담당하는 IR(Investor Relationship, 기업 설명 활동) 부서의 장이라고 하자. 당신은 당신 회사의 실적에 대한 정보를 타인보다 많이, 정확하게, 직접적으로, 적절한 시점에 알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와 동생에게 당신 회사의 주식을 사놓으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이 정보는 유용하다.

또 당신이 도시 계획을 입안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내부 회의에서 혁신 도시의 건설지를 결정했고, 이제 그 발표만 남아 있다. 이때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는 타인보다 많고, 정확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이다. 물론 당신이 공직자의 윤리를 더럽히는 참관오리라는 기준에서만 가능할 뿐,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정보의 가치는 이렇게 달라진다. 때문에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을 평가하고, 정보에 대한 확실한 가치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당신이 신문에서 혹은 방송에서, 때로는 메신저를 통해 얻은 정보를 두고 어떤 판단을 내렸다면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라기보다 우매한 사람이다.

사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후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투자할 때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것은 일부는 옳고 일부는 틀리다.

알려진 정보를 두고 당신의 투자 판단에 이용한다면 당신은 틀린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를 두고 당신이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지 평가하는 데 이용한다면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다.

거래를 할 때 중요한 요소

우리가 거시 경제적 요인이나 기타 정보를 가지고 거래에서 이익을 얻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투자는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거래를 할 때 가격의 평균치와 타인의 판단을 고려해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투자의 핵심 요소이다. 예를 들어 2005년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이때의 가격은 지난 몇 년간의 가격 변동치를 볼 때 상당히 괴리가 커져 있었다. 다시 말해 합리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타인의 판단은 어떤 것일까? 타인의 판단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가격 변동치를 살피면서 아직도 가격은 더 올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당신은 어떤 결론을 도출 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아직 멀었다’라는 사람과 ‘괴리가 크다’고 여기는 사람들 사이의 괴리를 살피는 것이다.

같은 정보를 두고 멀었다고 여기는 사람과 괴리가 크다고 여기는 사람의 차이는 앞으로도 거래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아직 멀었다’라고 말하면 모든 사람이 매수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여기서는 ‘아직 멀었다’라고 여겨줄 사람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거래의 임계점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호가가 상승하고 거래가 부진하면 “팔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람들만 있다는 뜻이다. 이때는 사겠다는 사람이 초조하고 팔겠다는 사람은 여유롭지만, 여기서 가격이 좀더 오르면 이제는 사겠다는 사람이 철수하고 팔겠다는 사람이 초조해진다. 이때 누군가가 팔겠다고 나서면 갑자기 시장은 모두 팔겠다로 돌아서고 거래가 급증하면서 가격은 하락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거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지 부조화 상황을 경계하라. 내가 가장 합리적이고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만약 내가 항상 옳다면 분명히 나는 지금 이 거래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위치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가진 정보를 평가하라. 그 정보의 유용성을 평가해서 그것이 독점적이지 않다면 그 정보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살피는 돋보기로 활용하라.

셋째, 타인의 판단을 주시하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라. 다만 이때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대의 예측을 이해하고, 수를 읽는 기호일 뿐이다. 그것을 보고 따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넷째, 거래 자체를 주목하라. 거래란 매도자와 매수자가 존재해야하고 거래가 많다는 것은 곧 어떤 상황이 크게 변할 수 있는 시그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연재를 시작한 ‘시골 의사’ 박경철씨는…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었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 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루션’도 진행하고 있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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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zine.media.daum.net/mega/ladykh/200605/16/ladykh/v12721590.html

“보험금 지급액의 총액은 절대 보험금 납입액을 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보험상품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온다. 명심해야 할 것은 보험상품은 절대 투자상품이 아니라는 것. 재테크는 항상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위험을 회피하려면 그 목적에 부합하는 보험상품을 골라 가입하고, 목적이 자산 증식이라면 목적에 맞는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이 목적을 혼동하는 순간 재테크의 길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고도성장의 결과, 우리나라 금융자산은 예금 위주

우리나라의 금융자산은 1천2백~1천4백조 수준이고, 이 중에서 절대액의 50%는 예금이다. 그리고 30%는 채권으로, 10%는 보험으로 약 9%는 주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은 약 7백조이고, 그중에서 주가가 급상승한 2005년의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유동성 금액은 약 20조 내외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60%가 주식으로, 나머지 40%가 예금이나 보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OECD 기준으로는 대개 5:5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과연 어느 쪽이 옳다고 볼 수 있는가? 우리나라가 이렇게 예금 위주의 자산으로 편성된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고도성장기의 당연한 결과다. 지금 미국의 저축률은 -1% 수준이고, 중국은 35% 수준이라는 점을 살펴보아도 고도성장기에 예금 사이드의 자산 편중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먼저 국가가 선택하고 유도한 결과이기도 하다. 산업형성기에 필요한 자금은 가능한 모든 국내 유동성을 모아 대출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 다시 말해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는 노동자의 급여로 지출되고, 지출된 급여는 다시 금리의 형태로 은행에 모아졌다가 새로운 기업 활동을 위해 재투자된다. 이때 기업은 확장에 대한 욕망이 불가사리처럼 꿈틀거리는 시기이므로 수익성이나 금리 부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는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과거보다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미래의 성장이 불확실해지고 현재보다 미래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환경에서는 저축의 유용성이 크게 떨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업은 수판을 튕기게 되고 갈 곳을 찾지 못한 잉여유동성은 증가하게 된다.

개인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더 나은 투자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 이것은 곧 은행에서 보장하는(인플레 수준+이자소득세) 수준의 금리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지배하게 된다. 종전의 자산이 예금 등의 수단으로 지키기에 급급한 수준이라면 급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거나 혹은 일자리의 안정성이라도 보장되어야 미래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된다.

보험은 미국 흑인 수십 명의 상조에서 시작

그래서 개인은 은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먼저 위험에 대한 헤지(hedge, 울타리, 방지책)를 위해 보험 비중이 급증하게 된다. 이것은 오래 살 위험과 빨리 죽을 위험이라는 고전적 개념에 대한 보장이라는 일차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은행 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성향과 위험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교묘하게 결합된 보험상품의 급격한 확대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위험 논리를 전파한다. 은퇴 후에 필요한 자금을 부풀리고, 40대에 요절한 가장의 유족이 가입 1년 만에 받게 된 수억원의 보험금에 대한 신화를 포장한다. 보험사는 당신의 미래 기대 연령을 지속적으로 높인다. 만약 당신이 1백~ 1백20세를 살 수만 있다면 종신연금으로 타게 될 당신의 총 보험금이 당신의 입금액에 비해 얼마나 많은 금액인지를, 그것이 투자 수익률 측면에서는 얼마나 탁월한 투자 수단인지를 노트북에 그래프를 그려 비주얼로 보여준다.

이 세상 누가 오래 살기를 거부하겠는가? 더구나 현재 기대 수명 75세로 설정된 상품이 당신이 죽을 무렵 바이오산업의 발달로 기대 수명 90이나 1백세로 증가한다면 당신은 가만히 않아서 얼마나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인지를 꿈꾸게 된다. 더구나 거기에다 직접 투자하기에는 두려운 주식형 상품이나 기타 공격적인 상품을 운용해서 수익률이 더 높아진다면 당신은 보험이 더 이상 안전보장이 아닌 공격적 투자상품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부자는 절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바로 보험에 대한 생각이다. 당신이 부자라면 보험이라는 상품은 기본적으로 불필요하다. 내가 당장 죽더라도 유족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당신이 지금 부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당신이 미래에 1백 세까지 살고 중간에 암에 걸려도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 당신은 부자다.

보험은 미국에서 흑인 수십 명이 시작한 상조에서 출발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의 부조와 같은 것이지 투자상품이 아니다. 보험사는 당신이 납입한 보험료에서 기본적으로 보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자금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투자한다.

그것은 당신이 보험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보험이란 주식시장의 선물옵션처럼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헤지 수단일 뿐 투자 수단이 아니다. 위험에 대한 헤지는 문자 그대로 불가측한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일 뿐 그것이 당신의 잉여자산 대부분을 투자할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위험이 부풀려지고 보험산업은 급팽창한다.

그리고 당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보험이라는 형태의 금융자산의 비중이 커진다. 당신은 뉴스에서 연일 들리는 40대 사망률 세계 최고, 혹은 어느 개그맨의 슬픈 죽음 같은 뉴스에 자극받게 된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이웃집의 누군가가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당신도 로또를 사러 달려가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는 보험료 이상의 돈을 돌려주지 않아

보험은 기본적으로 소비재이며 비용이다. 보험이란 현재 당신의 수준에서 감당하는 리스크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이므로 당신은 보험에 가입한 이후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이후부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상품의 가치를 조금씩 돌려받는다.

또 당신이 보험에 가입한 시점은 당신의 보험금 납입 기간 중 가장 위험도가 낮은 시기이다. 그래서 당신이 낸 보험료는 처음에는 손실구조를 가지고 시간이 흐르면 손익분기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당신의 납입 보험료와 리스크 가치가 증가한 탓이다. 이것을 잘 생각해보면 보험이란 미묘한 상품이다.

당신의 총 리스크는 절대 당신이 보험금을 탈 수 있는 기대 수익률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보험사는 당신이 낸 보험료 이상의 돈을 당신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험이라는 상품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강원랜드에서 카지노를 할 때 기대 수익률은 50% 이하다. 이 때문에 강원랜드에서 카지노를 하는 한 당신은 언젠가 빈털털이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카지노에서 돈을 벌 확률은 단 한 가지다. 당신이 카지노에서 사용할 금액을 미리 확정하고 그 돈을 잃으면 깨끗하게 일어서서 위험을 고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카지노에서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카지노에 발길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 수익의 환상에 속은 일단의 사람들은 그곳에 자동차와 집을 날리고 결국에는 목을 매기까지 한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보험 역시 그러하다. 보험금 지급액의 총액은 절대 보험금 납입액(운용수익 포함)을 넘지 않는다. 사실은 턱없이 적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험에 가입한다. 이것은 진실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보험은 필요하다. 그것은 당신이 비록 확률은 낮지만 만약의 경우 당신에게 낮은 확률의 불행이 닥쳤을 때 그 불행의 크기는 카지노에서 20배의 잭팟을 터뜨리는 것만큼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지노에서 대박을 기대하는 심리와 보험에서 위험을 보장하려는 심리는 극과 극이지만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험은 위험을 헤지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소비함으로써 위험 보장이라는 복권을 사는 소비재인 것이다.

항상 목적을 명확히 하라. 위험을 회피하려는 헤지라면 당신은 그 목적에 부합하는 보험 상품을 골라 가입하고, 그 목적이 자산 증식이라면 당신은 그 목적에 맞는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당신이 이 목적을 혼동하는 순간 재테크의 길은 혼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또 보험에 관해서 생각해야 할 두 번째 과제가 있다. 그것을 의식하던 안 하던 당신이 보험금으로 납입하는 자금만큼 당신의 기타 자산에 대한 투자 여력은 감소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현재 주택을 살 때 월 1백만원의 모기지론 이자를 감당할 수준만큼의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면, 당신이 지금 보험에 50만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순간 당신의 부동산 투자 여력은 월 50만원의 이자를 감당하는 수준의 주택으로 줄어든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투자 자산의 재배분을 초래한다.



민간 보험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이번에는 당신이 들고 있는 두 번째 보험 상품인 국민연금을 살펴보자. 비록 이것은 현재 미래가 위험하지만 그 점에서는 민간 보험 역시 그리 안전하지는 않다. 국민연금의 고갈은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피라미드 상품이기 때문이다. 우선 가입자들이 늘어나는 동안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흑자를 누리지만, 그 가입자들이 정작 수혜를 입어야 할 순간에 가입자들이 감소한다면 그 회사는 부도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민간 보험은 안전 상품으로 인식하면서 국민연금을 불안하게 생각할까? 더구나 민간 보험은 보험사 자체의 경비와 다단계의 판매 수수료를 감안할 때 유지운용의 비용이 많이 들고, 국가가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그런 부대비용이 현저하게 낮은데도 말이다. 더구나 민간 보험의 위험성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어 있다.

기업이란 업황이 좋으면 방만한 경영을 한다. 연금보험과 종신보험, 그리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들로 보험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보험사들은 지급 여력에 대한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 지금처럼 물밀듯이 밀려드는 자금이 어느 수준에서 정체에 이르고 현재 30~40대 연령층이 납입을 끝내는 시점이 오면 보험사로 유입되는 납입금액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물론 그 순간부터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이때를 대비해서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제외한 납입 보험료를 운용해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내도록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IMF와 같은 고금리 환경에서 가입했던 보험에 대해 보험사들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잊지 말자. 만약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산시장에 변동이 일어나고 시장이 급변할 경우 보험사의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이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잘 고민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보험 판매를 많이 하고 있는 대형 보험사가 회사 자체의 위기로 인해 보험 가입자가 급감하는 경우, 또 특정 보험사가 자산 운용에서 실패하는 경우, 우리나라 자산시장의 가치가 하락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하지만 민간 보험은 아무도 이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물론 회사마다 정부의 감독 비율이 있고 자산건전성을 살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과거 은행이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은행이 망했듯이 보험사 역시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는 항상 안고 있다. 때문에 당신이 위험 자산으로 생각하는 국민연금보다 민간 보험이 훨씬 큰 위험 자산이다.

사실 인식의 오류는 누구나 알다시피 국민연금의 설계의 잘못이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제때 납부할 경우 생애 연소득의 60%(연봉 4천만원 이상의 경우 40%, 6천만원 이상의 경우 30%)를 받을 수 있다. 연금 지급액은 매년 소비자 물가를 감안해 지급 기준의 화폐가치로 지급하고 또 국가가 연금의 지급을 보장하는 특이한 보험 상품이다. 더구나 본인이 연금을 받다가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받거나 경우에 따라 다른 유족이 받을 수도 있다(18세 미만 자녀 혹은 2급 장애인의 경우).

그렇게 보면 연금은 현재 기준으로 볼 때 그 어떤 보험 상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의 재테크에서 중요한 축을 감당할 수 있는 좋은 투자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계당시 이러한 좋은 점만을 기준으로 설계한 것이 문제다. 마치 다단계 상품처럼 현재의 인구 산업구조상 유입되는 자금만 생각한 것이지 불과 20년 후를 상정하지 않은 상품이다, 그러나 연금은 이렇게 과도하게 설계한 기능을 수정하고 보완하더라도 결국 국가가 존속하는 한 유지될 것이며, 그것의 기능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갈에 이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연금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무엇일까? 바로 수익률을 늘리는 것이다. 연기금의 수익률이 연 3%만 증가하면 연금 고갈은 수십 년이 늦춰지고, 5%가 증가하면 오히려 연금액이 증가할 수도 있다. 이런 치명적 유혹은 현재와 같은 연기금의 안정성이라는 논리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유혹으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연기금은 필연적으로 리스크를 더 감당하면서 수익을 더 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갈 것이다. 물론 그 결과에 따라 국가적 재앙이 있을 수 있지만 역사 발전을 믿는다면 하늘이 무너질까 지레 걱정은 하지말자.

별개의 이야기지만, 민간 보험의 보험은 임의적이지만 국민연금은 강제적이다. 이왕 강제적으로 가입하는 것이라면 기분 좋게 가입하자. 국민연금은 당신에게 가장 좋은 투자 수단이다. 다만 당신의 연봉이 6천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연재를 시작한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씨(42)는 현직 의사로는 드물게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대 재학 중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후 오기가 발동해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10년간의 도전 끝에 큰돈을 벌었고, 증권사 게시판과 경제 신문 등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MKS(매경증권방송)의 ‘고수 대 고수’에 출연해 솔직하고 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에 50여 차례 이상 기업 연수원과 공공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얼마 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출간해 뜨거운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고향 안동에서 신세계연합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MBN에서 ‘머니 레볼루션’도 진행하고 있다.

기획 / 최영진 기자 글 / 박경철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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