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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을 이끄는 어느 장인의 이야기 입니다.

어느날 시계 수집가가 물었답니다.

"당신네 시계는 괜히 비싸기만 하고 시간도 일반 시계에 비해 부정확하다. 사람들이 왜 당신네 시계를 세계 최고로 생각하는지 모르겟다" 그랬답니다.

그랬더니 그 장인 왈...

"우리의 시계를 차는 사람들은 돈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갑부들이다. 그러므로 시계의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시계를 차는 사람들은 시간의 부정확함을 문제삼지 않는다. 단지 그 전통과 명성을 느낄 뿐이다. 시간이 부정확하면 어떤가... 시계의 역사를 손목에 차고 있지 않은가... "

자만인지 자신감인지... 무엇보다도 그만큼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에 영혼을 담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죠.
 


Vacheron Constantin의 로고
 





Les Masques – Edition 2007
왼쪽부터 "Indonesia” pink gold  /  "Alaska” white gold  /  "China” yellow gold  /  "Congo” platinum
Limited to 25 sets of 4 watches

Ref. 86070
Pink gold, white gold, yellow gold and platinum
Self Winding Movement
Calibre 2460 G4
Hours, minutes, date and days of the week
Frequency: 28,800 v.p.h.
Number of jewels: 27
Power reserve: 43 hours approx.br>

  Hallmark of Geneva

Watch’s diameter: 40 mm
Transparent caseback
Water-resistant to 30 meters
Folding clasp
 


Malte Tonneau openworked tourbillon
Ref. 30067
Pink gold
Manual Winding Movement
Calibre 1790 SQ
Hours, minutes, seconds at 6 o'clock,
date and power reserve
Frequency: 18,000 v.p.h.
Number of jewels: 27
Power reserve: 45 hours

Watch's diameter: 36 mm
Water-resistant to 30 meters


Tribute to great explorers

Ref. 47070
Yellow gold
Self-Winding Movement
Calibre 1126
Hours, minutes
Frequency: 28,800 v.p.h.
Number of jewels: 36
Power reserve: 38 hours

Watch's diameter: 39 mm
Water-resistant to 30 meters
Enamelled dials available for now in two
different versions ; Magellan and Zeng Hé Expeditions
 


Malte openface retrograde perpetual calendar

Ref. 47032
Platinum
Self-Winding movement
Calibre 1126 QPRD
Hours, minutes, perpetual calendar with retrograding date
display, day of the week, month and leap year indications Frequency: 28,800 v.p.h.
Number of jewels: 36
Power reserve: 38 hours

Watch's diameter: 38.5 mm
Water-resistant to 30 meters
 


Patrimony Traditionnelle openworked perpetual
calendar


Ref. 43172
Pink gold and platinum
Self Winding Movement
Calibre 1120 QP SQ
Hours, minutes, perpetual calendar with days of the week, months, leap years and moon-phases indications
Frequency: 19,800 v.p.h.
Number of jewels: 36
Power reserve: 40 hours approx.


  Hallmark of Geneva

Watch’s diameter: 39 mm
Water-resistant to 30 meters



Malte Tonneau tourbillon

Ref. 30066
Pink gold and Platinum
Manual Winding Movement
Calibre 1790
Hours, minutes, seconds at 6 o'clock, date and
power reserve
Frequency: 18,000 v.p.h.
Number of jewels: 27
Power reserve: 45 hours

Watch's diameter: 36 mm
Water-resistant to 30 meters
Transparent caseback
 


20$ openworked model

Ref. 33059
Yellow gold
Manual winding movement
Calibre 1003 SQ
Hours, minutes
Frequency: 18,000 v.p.h.
Number of jewels: 18
Power reserve: 31 hours

  Hallmark of Geneva
Watch's diameter: 34.7 mm

 
 

화려한 마감이 돋보이는 22k 무브먼트~
 
 

- A LITTLE HISTORY -

약 2000년 전에 건설된 제네바는 광대한 역사와 그에 따른 상업적 경험을 축적해 왔다. 초기부터 이 도시는 보석과 장식품을 중심으로 한 무역 활동을 통해 경영, 성장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금세공사(goldsmiths), 주얼리(jewelers), 보석 세팅가(gem-setters)로 형성된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널리 그리고 멀리 팔렸고, 유럽 전역에서 그 명성을 드높였다. 17세기에 이르러 제네바는 모든 사이즈와 디자인의 탁상 시계를 만드는 데 있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곧 손목시계 분야에서도 이러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인접 국가의 장인들이 점점 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근면함과 창의력으로 제네바의 명성에 이바지했다. 1601년에 이르러 제네바는 세계 최초의 시계 제조자들의 길드(guild)가 되었다. 일세기 혹은 조금 더 이후에 시계 생산은 제네바의 리딩 산업이 되었고 제네바는 다른 스위스 지방에도 시계 산업을 확산시키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당시에는 시계 장인들을 캐비노티에(cabinotiers)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명칭은 시계 제조자들이 최상의 자연 광선을 즐기며 조용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실, 일종의 다락방인 캐비닛(cabinets)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뛰어난 기술과 독립 정신을 가진 캐비노티에들은 제네바의 시계 생산에 있어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장-마르크 바쉐론(Jean-Marc Vacheron)이라는 캐비노티에가 1755년에 창업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의 결정이 시계 산업에 새로운 장을 연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사업을 번창해 갔고, 장-마르크 바쉐론의 계승자들은 자질과 재능을 지닌 수많은 파트너들과 인물들을 영입하는 통찰력을 보였다.


1819년에는 프랑소아 콘스탄틴(Francois Constantion)이 기업에 합류하게 되는데 모험적이고 지칠줄 모르는 그는 수 십년간 유럽을 종횡무진하면서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현존 시장의 통합을 통해 이제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et Constantion)으로 불리우게 된 회사의 제네바 워크샵에서 만들어진 멋지고 기발한 시계들의 새로운 고객들을 확보해 나갔다.


1839년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on)은 운 좋게 기계의 천재인 조르쥬-오거스트 레쇼(George-Auguste Leschot)를 고용하는데 조르쥬는 자신의 독창성과 실용적인 정신으로 기업에 이바지 했다. 또한 그는 바쒜론 콘스탄틴의 역사에서 최초로 시계 부품과 콤포넌트의 기계적, 실용적 생산이 가능한 기구를 개발한 인물로 남게 되었다. 그의 업적은 곧 시계 업계의 생산공정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심지어는 시계 판매에 있어서도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를 통하여 바쉐론 콘스탄틴은 시계 제조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갔고, 더욱 커진 시장의 수요를 위해 고안된 매력적인 디자인의 시계들을 생산했다. 이 기간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오늘날까지 칭송 받는 완벽하고 우수한 품질의 제품에 대한 규율을 정립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훈련과 노력은 프랑소와 콘스탄틴의 모토인 가능하면 더욱 잘 하라-그리고 그것은 항상 가능하다에서 비롯되었다.

세기가 시작되면서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 생산은 두가지의 기본적인 방향을 따르며 계속 늘어갔다. 19세기의 시계 디자인은, 시계 메이커들과 관련 사업들의 미학 세계의 탐험과 도전적인 디자인에 대한 실험을 통하여 일찍이 없었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에나멜 페인팅과 같은 전통적이며 본질적으로 제네바적인 예술의 번영도 극에 달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바쉐론 콘스탄틴은 제네바 에나멜 워크(Generva Enamelwork)를 현지 예술가인 뮤리엘세쇼(Muriel Sechaud)에게 주문하고 있으며 디자이너들도 19세기 선임자들의 무한함 창의력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디자인과 함께, 19세기 동안 시계 기술 또한 무한히 발전했다. 야금술(metallurgy), 보다 정교한 금속 제조(metal favrication), 그리고 평평하게 깎는 기술(milling technology)분야의 진보는 시계 생산자들의 시야를 넓혀 그들로 하여금 풀 캘린더(full calendar), 문-페이즈 인티케이터(moon-phase indicator),

스플리트 세컨드 크로노그라프 (split second chronograph), 점핑 아워 (jumping hours), 뚜르비용 레귤레이터 (tourbillon regulator)와 같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메커니즘의 무브먼트를 개발하게 하였다.이 과정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 메이커들도 커다란 역할을 하여 현재 세계적인 콜랙터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는 이 시대의 정교한 마스터피스들을 생산하였다. 기계적인 우수함과 독창성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워크샵에서 지속적으로 추구되고 있으며 최근 컬렉션 또한 이런 바쉐론 콘스탄틴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 PRINCIPLES AND POLICIES -

프랑소와 콘스탄틴의 모토에서부터 현재 바쉐론 콘스탄틴의 이념과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우수함을 간직한다는 목표는 항상 한결 같아 왔다. 2세기 반에 이르는 경험과 세대를 이어가는 시계에 대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관심은 현재의 미학적이고 기술적인 발전을 불러왔다. 오늘날 제네바 바쉐론 콘스탄틴의 사유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장-마르크 바쉐론의 최초 시계 이후에 만들어진 최근 컬렉션들도 그런 문화적인 영감과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 AN IMAGE DESIGNED TOD ENDURE 변하지않는 가치

처음부터 바쉐론 콘스탄틴은 독창적이며 변함없는 가치로 시간의 예술과 과학을 지지하고 발전시켜왔다. 이것은 세계 시계시장을 바쉐론 콘스탄틴 제품과 이미지에 대한 평가에서 증명된다. 이 명성은 전세계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에서도 볼 수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모든 시계에는, 500개 이상의 부품, 15개 이상의 기능을 가진 그랜드 콤플리케이션(Grande Complication)시계에 요구 되어지는 것과 똑 같은 수준의 주의와 정성이 요구된다.

- TRUE TO IST DESTINY 전통에 충실

역사를 통해 바쉐론 콘스탄틴은 전통을 반영한 디자인의 시계를 엄격하게 제한된 숫자로 생산하는 장인정신에 충실했다. 기업과 국가의 전통이 반영된, 또한 까다롭게 요구되는 작업윤리에 충실한 제품을 수 세기에 걸쳐 생산해 왔다. 소비자 존중이 가장 중요하고 각각의 디테일에 완벽을 기하는 정신은 오늘날 바쉐론 콘스탄틴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모든 시계의 홀마크(hallmark)이다.

- ATTUNED TO THE TIMES 시대를 반영

기계적인 뛰어남 외에도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는 항상 그 시대의 초고를 반영해 왔다. 세대가 다르게 변하는 소비자를 기쁘게 하기위해 디자인 된 시계들은 그 전 세대의 시계들과 같은 찬사를 받는다. 이것은 오늘날 레 콤플리케이션(Les Joailleries)라인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사랑에서도 볼 수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는 스타일 또는 기술적 정교함 등 소비자 그룹에 따라 다른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라인을 제시한다. COMMUNICATION BREEDS ESTEEM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최고의 장인 기술과 품질의 제품도 제품의 우수한 특징들이 눈길을 끌지 못하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게 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소비자에 대한 존중, 제품과 시계 메이커에 대한 존경과 믿음에 기반을 둔 상호적인 관계에 충실한다.


모든 곳의 소비자들에게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시지를 명확하고 강력하게 전달하며 기업 정신과 제품 윤리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매체, 소매 주얼러(retail jewelers), 세일즈(sales representatives)와 일반 에이전트 (general agents)모두의 책임이다.


- VACHERON CONSTANTION (바쉐론 콘스탄틴) 국내에 진출 -

17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 1999년 10월 한국에 진출하였다. 이로써 까르띠에(Cartier), 보메 메르시에(Baume & Mercier)등과 함께 방돔 럭셔리 그룹(Vendome Luxury Group)의 멤버인 바쉐론 콘스탄틴이 한국의 시계 매니아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17세기부터 제네바는 탁상시계와 손목 시계 분야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근면함과 창의력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되어, 바쉐론 콘스탄틴이 탄생했던 18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이 당시 캐비노티에(cabinotiers)라고 불리는 시계 장인들은 최상의 자연 광선을 즐기며 조용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실인 캐비닛(cabinerts)에서 시계 기술 연구와 생산에 전념하였다.
이후 바쉐론 콘스탄틴은 시계 제조의 전문성, 즉 매력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풀 캘린더(full calendar), ans-페이즈 인디케이터(moon-phase indicator),스플리트 세컨드 크로노그라프(split second chronograph), 점핑 아워(jumping hours), 투빌론 레귤레이터(tourbillon regulator)와 같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메커니즘의 무브먼트를 탄생시켰다. 이는 가능하면 더욱 잘 하라 - 그리고 그것은 항상 가능하다(Faire mieux si possible, Ce qui est toujours possible)는 프랑소와 콘스탄틴의 모토와 함께 바쉐론 콘스탄틴의 매력적인 디자인은 Les Complications(레 콤플리케이션), Les Essentielles(레 에센시엘), Les Specialites(레 스페시알리테), Overseas (오버시즈), Les Joailleries(레주아이어리)의 다섯 가지의 패밀리로 나누어져 있다.


1999년 10월 국내 5개의 공식 지정 판매처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을 만나볼 수 있다. 공식 지장 판매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세계적 선정 기준에 의거하여 엄선된 국내 최고의 시계 코너로서 바쉐론 콘스탄틴을 고객에게 presentation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은 딜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DATES AND MILESTONES -

1755 장-마르크 바쉐론(Jean-Marc Vacheron)이라는 한 야심찬 젊은 시계공이 제네 바의 쌔-제르베(Saint-Gervais)에 작업장을 열었다. 이 때부터 그곳은 바쉐론 콘스탄틴 S.A.(Vacheron Constantion S.A.)라고 불리게 되었다.


1785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마르크의 아들인 아브라함 바쉐론(Abraham Vacheron)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혁명으로 인해 유럽은 대격변을 겪게 되었고, 돈 쓰기 좋 아하는 고객이던 프랑스 귀족층이 사라지게 되었다.

1786 아브라함의 장인의 성을 따라 이 회사는 바쉐론 지로드(Vacheron Girod)로 불 러졌다.

1810 아브라함의 아들인 자끄-바르떼레미(Jaques-Barthelemy)가 사업에 참여하였 다. 그는 곧 새로운 고객들을 찾아 주변 국가들을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 다.

1812 자끄-바르떼레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찰스-시저(Charles-Cesar)가 태어났다.

1816 외할아버지인 지로드가 사업에서 은퇴하자 자끄-바르뗄레미는 새로운 파트너 을 찾았고, 결국 찰수-프랑소와 쇼세(Charles-Francois Chossat)와 손을 잡았 다. 회사의 명칭은 이제 바쉐론 쇼세 앤 시에(Vacheron Chossat & Cie)가 되 었다

1819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 가면서 회사오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또 다른 파트너 가 필요하게 되었고, 자끄-바르뗄레미는 프랑소와 콘스탄틴9Francois Constantin)을 영입하였다. 프랑소와 콘스탄틴은 타고난 세일즈맨이었음이 증 명되었다. 그는 유럽을 종횡무진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이를 굳건히 하였다. 그는 회사에 엄청나게 많은 교류의 흔적과... 그리고 그의 이름을 남 겼다

1833 유명한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가 판매되었다.

1839 회사는 조르쥬-오거스트 레쇼(Georges-Auguste Leschor)를 영입하였다. 그는 곧 새로운 시계 제조 기계를 발명하여 시계 부품 교환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 는 시계 부품 생산의 혁신을 가져왔다. 이로써 바쉐론 콘스탄틴은 기술적 완 성품뿐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던 시계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선 두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1840 세기가 시작하면서 이 회사는 시계 전문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마하여 갔다. 이 시계들은 매력적이고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소개되어 그 해 처음 진출한 브 라질을 포함하여 점차 많은 해외 시장에 팔리게 되었다.

1844 한 해전에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한 찰스-시저가 부친의 은퇴로 경영권을 도맡 게 되었다.

1846 찰스-시저의 아들 찰스의 출생과 동시에 제네바의 현재 본사에서 멀지 않은 뚜르 드 일르(Tour de llle)에 새로운 사업장들이 열렸다. 그곳에서 처음으 로 생산한 시계들은 다음 해에 네델란드령의 서 인도제국에서 판매되기 시작 했다.

1849 프랑소와 콘스탄틴은 3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다 은퇴하여 제네바로 돌아왔 고, 5년 후 죽었다

1854 찰스-시저 바쉐론(Charles-Cesar Vacheron)의 권유로 프랑소와의 조카이자 후 계자인 장-프랑소와 콘스탄틴(Jean-Francois Constantin)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1855 자끄-바르뗄레미 자신도 은퇴하여 찰스-시저에게 회사를 맡겼다. 같은 해 중 국 왕실에서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된 매혹적인 푸른 에나멜 디자인의 시 계를 주문하였고, 이는 세기를 지내온 시계 메이커의 실력을 단적으로 승인하 여 보여주는 것이었다.

1867 부친이 죽기 한 해전에 찰스 바쉐론이 회사에 합류하면서 장-프랑소와 콘스탄 틴이 영업에서 손을 떼었다.

1869 장-프랑소와 콘스탄틴이 영업에서 떠나 파트너로 남으면서 찰스 바쉐론이 새 롭게 재구성된 찰스 바쉐론 앤 시에(9Charles Vacheron & Cie) 라는 명칭이 경영 파트너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그를 돕기 위해 G.-A. 레쇼(G.-A. Leschot), 필립-오거스트 웨이스 (Philippe-Auguste Weiss)가 영입되었다.

1870 찰스 바쉐론의 갑작스런 죽음과 동시에 창립자의 가족은 더 이상 회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장-프랑소와 콘스탄틴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동업자가 되면서 회사는 생산 관리 담당인 G.-A. 레쇼와 최고경영자 P.-A. 웨이스에 의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1875 뚜르 드 일르(Tour de llle)의 무대가 비좁아지자, 회사는 가까운 물랭 (Mourlins)거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본사 사무실들과 매장이 오늘날까지 계속 그곳에 자리잡고 있다.

1880 시계의 일부분이지만 보통 말티스 십자가 (Maltese Cross)라고 불려지는 회 사 심볼이 도입되었다.

1887 그때까지 공식적으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관리 담당자였던 찰스 바쉐론의 미망 인이 죽자 회사는 P.-A. 웨이스를 경영책임자로 둔 주식회사로 변화하였다.

1889 한 해에 세 개의 특허를 받음으로써 기술적 진보의 주근원지임이 확인되었다.

1896 바쉐론 콘스탄틴이 제네바에서 열린 스위스 박람회의 금상과 밀라노 박람회의 대상을 받았다.

1901 바쉐론 콘스탄틴이 시계 세팅 메커니즘에의 획기적인 개발로 특허를 받았다.

1906 물랭 거리에 바쉐론 콘스탄틴 매장을 열었다.

1911 회사 주식가격이 두 배로 불어나 600,000 스위스 프랑이 되었다.

1914 베름(Berne)의 스위스 박람회와 리옹(Lyons0의 국제 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았 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첫 손목시계가 시장에 소개되었다.

1914 영국과 이후에 미국 군대에 바쉐론 콘스탄틴의 크로노그래프와 나침반이 공급 되었다.

1918 바쉐론 콘스탄틴은 미국 기술병을 위한 특별 디자인까지 개발했다.

1922 새로운 인덱스(레귤레이터) 디자인으로 특허를 받았다.

1923 다음 해에는 콤플렉스 인텍스 부속품으로 다시 한번 특허를 받았다.

1924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혁신적인 배럴(barrel)디자인으로 특허를 받았다.

1935 리코딩 크로노그라프로 또 다른 특허를 받았다.

1938 예거-르 쿨트르(Jaegar-Le Coultre)사가 바쉐론 콘스탄틴의 지배적인 이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은 그 운영에 있어서는 여전히 독립 된 상태였다.

1948 이 해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그룹의 세일즈 매니저인 조르쥬 커테러(George Ketterer)는 점진적으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지배적인 이권을 차지해 나가게 된다.

1955 두께가 거의 1.64m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메카니컬 무브먼트를 새발 함으로써 창립 200주년에 한 획을 그었다.

1961 방수 와인딩 스템(winding sterm)디자인으로 또 하나의 특허를 획득하였다.

1969 조르쥬 케테러(George Ketterer0가 죽고 그의 아들 자끄(Jacques)가 뒤를 잇 게 되었다.

1979 바쉐론 콘스탄틴의 칼리스타(Kallista)는 순금으로 만들어지고, 프레임은 정련된 다이아몬드로 세팅 되어 있어 유래 없이 아름다운 주얼리 시계로 극찬 을 받게 되었다.

1980 스트럭츄라(Structura) 모델이 출시되었다.

1984 더욱 복잡하고 세밀한 영구 캘린더(Perpetual Calendar)디자인이 소개되었고

1885 그것의 속이 들여다 보이는 오픈 워크(openworked), 스켈레톤 (skeletonised)버전이 소개되었다.

1987 자끄 케테러가 죽자 바쉐론 콘스탄틴의 경영 주도권이 H.E.쉐크(H.E.Sheik)와 A.Z. 야마니(A.Z.Yamani)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1992 남녀을 위한 엑스트라 슬림 디자인과 함께 미니트 리피터(minute repeater), 뚜르비용 시계(tourbillon watch), 셀프와인딩 영구-캘린더 크로노그라프 (selfwindng perpetual-calendar chronograph)가 선보였다.바쉐론 콘스탄틴의 가장 권위있는 참조서인 The World of Vacheron Constntion(바쉐론 콘스탄 틴의 세계)가 출판되었다.

1994 뚜르비용(tourbillon)과 미니트 리피터(minute repeater)도 속이 들여다 보이 는 오픈 워크(openworked)버전으로 소개 되었다. 제네바의 물랭 거리에 바쉐론 콘스탄틴의 사유 박물관 레 캐비노티에 9Les Cabinotiers)가 개관했다.

1996 오보시즈(Ovrseas) 스포츠 앤 아웃도어 스틸 시계와 에나멜 다이얼의 한정 품으로 오뒤봉(Audubon)이 런칭되었다.
방돔 럭셔리 그룹(Vendome Luxury Group)이 바쉐론 콘스탄틴 S.A.의 전체 지 분을 획득했다.
 
이미지 출처: 바쉐론 콘스탄틴 홈페이지
텍스트 출처: 네이버 지식검색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5&dir_id=51905&eid=Na0pFP/6xc02XShRX3pmcn3ZxfhFCgvv&qb=VmFjaGVyb24gQ29uc3RhbnRpbg==&pid=fK3qMsoi5T0ssuZ4Ni4sss--193166&sid=SM3p@wbRzUgAAFht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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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자동차라면 하면 누구나 롤스로이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고급자동차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롤스로이스...
그렇다면 시계에서도 롤스로이스급의 시계가 있을까..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PATEK PHILIPPE [파텍 필립]이라면 시계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다.
아마도 롤스로이스와 파텍필립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장인의 혼을 담아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정성들여 만들어 예술품의 경지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대량생산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우직하리만큼 사람의 땀이 스며들어 있는 제품에 우리는 더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파텍필립 이외에도 많은 시계제작자의 제작자 브랜드 시계들이 존재하고 어마어마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시계들이 있지만,
그것은 자동차의 경우에도 수제차를 만드는 곳이 많지만 롤스로이스라는 고급 브랜드가 차를 대표하는 것처럼 시계에서는
아직까지는 파텍 필립의 아성을 넘는 곳이 없는 것 같다.
 



폴란드의 망명귀족인 앙뜨와르드 파텍(Antoine de PATEK)과 1839년 당시 유명 시계제조자 "구자베크"는 [파텍과 구쟈베크상회]를 열고 시계생산과 판매를 전문적으로 시작하는데, 이 [파텍과 구쟈베크상회]가 파텍필립사의 모태이다. 이후 1844년 파리에서 개최된 박람회에서 '열쇠없는 시계'로 금상을 수상한 프랑스인 시계제조자 쟝 아드리앙필립(Jean Adrian PHILIPPE)과 함께 하면서 파텍필립의 신화는 시작된다.
1846년 독립분침, 1848년 자동태엽 등을 개발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시계에 접목하며 욱일승천의 기개로 발전하게 된다.

파텍필립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851년 런던 세계 대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왕족과 상류층 인사들에게 애용되면서부터이다.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물론 당대의 유명인사들과 시계수집가들에게 롤스로이스급의 시계로 자리매김하며 그 명성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개인이 구입할 수 있는 최고의 시계"라는 찬사는 파텍필립의 위치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위 사진처럼 수백개의 부품을 장인이 하나하나 깍아서 만드는 시계.. 그래서 예술품의 경지에 다다른 시계가 바로 파텍 필립이다.
정확성으로만 따진다면 쿼르츠 시계가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시계를 넘어 예술에 도전하는 장인의 혼과 땀이 녹아들어있기에
그 가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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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게 가장 비싼 시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비싸보이는 시계이긴 하네요.

시계의 가치를 논할 때 다이아가 많이 박힌 시계를 기준으로 하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멋진 시계로 눈요기를 잘 했네요.

자료출처: http://bbs5.worldn.media.daum.net/griffin/do/photo/read?bbsId=249&searchValue=&articleId=46819&pageIndex=1&searchKey=

제네바  Perlage and cotes에서 소개된 Leman collection

18K 화이트 골드와 194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세계에서 제일 비싼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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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억 손목시계’ 자세히 보기

세계적 명장 안트완 프레지우소의 작품 시계 둘러보기

미디어다음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얼마 전 시계 명장 안트완 프레지우소(48)의 16억 원짜리 손목시계가 한국에 전시되어 화제를 모았다. 웬만한 집 몇 채를 사고도 남을 가치를 지녔다는 이 시계의 비밀은 값비싼 재료보다는 시계 속에 집적된 기술, 즉 세 개의 ‘트루비옹’에 숨겨져 있다. 지난 12일까지 서울 청담동 와이트월갤러리에서 열린 ‘안트완 프레지우소’전에 출품된 손목시계들을 감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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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억 원짜리 손목시계 ‘트리볼루션’
트리볼루션(3Volution)에는 3중 트루비옹이 내장되어 탁월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한번 태엽을 감으면 72시간 동안 스스로 움직인다.
16억 원짜리 손목시계 ‘트...
나미비아 사막의 운석으로 ...
메떼오리떼의 뒷면

스위스의 시계 명장 안트완 프레지우소는 극소량의 작품을 수공으로 직접 생산하는 독립 시계 장인인 ‘캐비노티에(cavinotiers)’다. 스위스 시계학교, 세계적인 시계 회사 필립 파텍을 거쳐 1981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 공방을 운영해온 그는 트루비옹(Tourbillion) 무브먼트를 적용한 시계로 명장 대열에 올랐다.

안트완 프레지우소의 시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트루비옹은 시계의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모든 시계는 중력의 변화에 의해 미세한 시간 오차를 갖지만, 트루비옹이 내장된 시계는 스스로 작동하면서 시간 오차를 보정한다. 또한 배터리 없이 손으로 태엽을 감아주면, 일정 시간 동안 스스로 작동한다.

최근 16억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화제가 된 그의 최근작이자 대표작인 트리볼루션(3Volution)은 이 트루비옹이 무려 세 개나 장착된 것. 3중 트루비옹 장치는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시간의 오차를 보정하는 트루비옹은 금속 부품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 시계에 살아있는 듯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안트완 프레지우소는 디자인뿐 아니라 정밀한 시계 부품을 직접 세공하고, 조립하는 모든 공정을 직접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데 의의를 둔다. 디자인과 기술력, 장인 정신의 결합물이 바로 그의 시계들인 셈이다.

이 밖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방문을 기념해 제작한 무궁화 모양 시계를 비롯해 특정 시각마다 종소리를 울리는 시계탑의 기술을 손목시계에 응집한 미니 리피터 내장 시계, 나미비아 사막에 떨어진 운석으로 만든 시계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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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귀한 앤티크 시계들

18세기 프랑스 돔형 시계부터 20세기 초 회중시계까지

미디어다음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오르골로 비발디와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회중시계, 조각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장식 시계, 단단한 몸체에 정교한 장식을 새긴 앤티크 회중시계, 18세기 프랑스의 돔형 시계 등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수동식 시계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전시가 열렸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달 25일까지 열린 ‘제5회 앤틱 페어’에 전시된 용정콜렉션 소장 앤티크 시계를 화보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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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앤티크 시계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모습을 조각한 앤티크 시계. ‘햄릿’, ‘맥베스’라고 문자가 씌어진 책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셰익스피어 앤티크 시계
18세기의 장식 돔형 시계
시간의 여신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한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가게가 있다. 이렇다 할 장식 없이 ‘龍睛(용정)’이라는 한자만 씌어진 간판 아래, 쇼윈도를 바라보면 빼곡하게 자리 잡은 앤티크 시계가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 바로 국내 유일의 명품 골동시계 전문점을 표방하는 용정콜렉션이다.

째깍째깍, 시간 흘러가는 소리만 가득할 뿐 자못 엄숙해 보이는 매장은 선뜻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이 황홀해진다. 평소 보기 힘든 수동 시계들이 매장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용정콜렉션이 보유한 골동시계는 총 1000여 점, 매장에 전시된 시계만도 2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고미술협회 외국 유물 감정위원이었던 고 김희웅 씨의 유지를 이어 받은 김문정 씨가 부친의 수집품 중 골동시계만을 특화해 운영하고 있다. 문의전화 02-73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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