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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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 대학교의 화학자 그레이엄 케언스스미스가 주장하는 ‘무기광물질’ 이론은...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케언스스미스는 DNA`단백질 기구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대략 30억년 전 정도 되는 비교적 최근에 그것들이 출현했다는 말이다. 그전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복제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룩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있었다. 그러던 중 DNA가 출현했고 그것이 훨씬 효율적인 복제자로 판명되자 원래의 복제 시스템은 DNA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잊혀져갔다.
...케언스스미스는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생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규산염 같은 무기 결정에 바탕을 둔 존재라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기물 복제자 즉 DNA는 나중에 그 역할을 넘겨받았거나 찬탈한 것이 된다. ...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원자들은 용액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우연히 결정을 만나면 결정의 표면에 있는 적당한 위치에 끼어들어가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다. 가끔 결정은 용액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씨’가 들어가야만 하는데, 그것은 먼지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작은 결정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이론에서 점토와 다른 광물 결정들이 하는 역할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저급한 수준’의 복제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에 ‘고급 수준’의 DNA로 대체되었다.-254쪽

문화의 진화는 여러 면에서 DNA에 기초를 둔 진화보다 빠르다. 이것 때문에 또다른 ‘넘겨받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주도권을 넘겨받기 시작했다면 그것들은 장차 그들의 부모인 DNA를(그리고 케언스스미스가 옳다면 조부모인 점토를) 저 뒤편으로 떨쳐버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는 컴퓨터가 선두에 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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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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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의 얼굴은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어서, 왜 그런 모습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일그러진 얼굴은 원하는 방향으로 초음파를 발사하기 위한 절묘한 형태이다.
-56쪽

매미에는 세 가지 종이 있으며, 각기 모두 17년 변종과 13년 변종을 갖고 있다. 13년 변종과 17년 변종으로의 분화가 각각 독립적으로, 최소한 세 차례 일어난 것이다. 14년, 15년, 16년이라는 중간 주기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무시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세 번에 걸쳐서. 왜 그럴까? 모른다. 단지 13이라는 숫자와 17이라는 숫자가 소수(素數)라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소수란 1과 자신을 제외한 어떤 수로도 나눌 수 없는 수를 말한다. 주기적으로 대규모로 발생하는 동물들은 천적이나 포식자, 기생충을 궁지에 몰아넣거나 굶어죽게 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의 발생이 소수의 연주기를 가지도록 조심스럽게 조절된다면 천적들이 매미의 생활사를 거기에 맞추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172쪽

남반구에 있던 거대한 초대륙 곤드와나가 갈라지기 시작한 때는 공룡의 시대라 불리는 중생대였다. 남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가 나머지 땅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와 오랜 세월 동안 고립되어 있었을 때 그 대륙들은 공룡과 오늘날 포유류의 조상이 될 몇가지 동물들을 실은 독립된 화물칸이 된 셈이었다. ... 수백만 년이라는 진화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공룡의 빈 자리는 채워졌다. 그 자리를 채운 동물은 대부분 포유류였다. 원시포유류는 세 지역에서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멸종된 남아메리카의 자이언트그라운드나무늘보를 닮은 동물이 구대륙에는 아무것도 없다. 남아메리카의 다양한 포유류에는 멸종된 자이언트기니피그가 포함된다. 이 동물은 지금의 코뿔소만한 크기였지만 쥐와 같은 설치류이다.(‘지금의’ 코뿔소라는 말을 쓴 이유는 구대륙의 동물군에는 한때 이층집만한 거대한 코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175쪽

최근까지도 오세아니아와 신대륙에는 고양이과에 속하는 맹수와 개과에 속하는 맹수가 없었다.(푸마와 재규어는 구대륙의 고양이로부터 진화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두 대륙 모두에 유대류로서 그에 상응하는 종류가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주머니늑대(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라고도 불림)가 있었는데, 이 동물이 사람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리고 일종의 ‘스포츠’로서 어마어마한 수가 도살되었고아직도 생생한 기억 속에서 비극적으로 사라져갔다. 주머니 늑대를 딩고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딩고는 더욱더 최근에 인간(애버리진)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여온 진짜 개다.
남아메리카 대륙에도 진정한 개와 고양이 종류는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오세아니아처럼 유대류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단한 것은 구대륙의 검치호랑이를 빼닮은 틸라코스밀루스일 것이다. 틸라코스밀루스는 아가리를 검치호랑이보다 더 넓게 벌릴 수 있어서 훨씬 더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틸라코스밀루스라는 이름은 이 동물의 외양이 검치호랑이 Similodon와 주머니늑대 Thylacinus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졌다.-179쪽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또 땅을 파는 개미핥기가 있는데 바로 바늘두더지이다. 바늘두더지는 유대류가 아니라 단공류라고 불리는 알을 낳는 포유류인데 이들은 태반류와의 유연관계가 멀다. 이들과 유대류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유대류가 우리에게 더 가까운 친척이다.
...아프리카에는 이상하게 생긴, 개미 먹는 곰 또는 땅돼지(남아프리카산 개미핥기의 일종)가 있는데 특별히 땅을 파는 종으로 분화된 것이다. 유대류든 단공류든 또는 태반류든 개미핥기의 특징은 대사율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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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ahara Lounge (Digipak)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그날 아침 이래저래 기분도 가라앉은 상태였고, 또 우리 동네(사무실의 제 자리 부근) 기압골이 심상찮고... 그런데 창밖은 화창하고 해서 낮에 산책 나가리라, 했었답니다. 마침 문화상품권 1만원권 두 장이 생겨서 교보문고에 갔어요. 손목시계를 살까 꼼꼼이 장난감을 살까 외국 책 한 권을 살까... 모두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이라 이 참에 하나를 선택해야지 했는데 뜬금없이 핫트랙스에서 CD를 사는 걸로 낙착.

사하라 라운지. 근사하죠? 푸투마요는 미국 월드뮤직 레이블인데요, 사보는 것은 저도 이것이 처음이예요. 이런 류의 월드뮤직 레이블로는 러프가이드 투~가 유명하고, 저도 그쪽은 '러프가이드 투 쿠반 뮤직' 때문에 아무래도 귀에 익게 느껴지는데(그렇다고 그 레이블의 CD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만;;)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것들로는 푸투마요 쪽이 더 다양할는지도 모르겠네요. 듣기로는 러프가이드가 확실히 더 '학구적'이고, 푸투마요는 대중적이라고 해요.

푸투마요는 카이로에서 알제까지, 그러니까 마그레브를 테마로 잡은 것도 있고, 커피로 유명한 나라들의 음악, 와인이 많이 나는 나라들의 음악, 이런저런 다양한 테마로 지역들을 나눠 월드뮤직을 선보이고 있거든요.
마그레브 것과 사하라 것이 어떻게 다를지는 모르겠지만(지역적으로는 거의 일치하니까) 아마도 제가 산 것은 '라운지'가 붙어있으니 좀 토속적인 느낌이 덜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듣고 있는데, 진짜 중동 가요들(이라크산 불법 복제 CD로 몇장 갖고 있습니다;;)보다는 훨씬 '월드뮤직'스럽네요. 중동을 '서남아시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중동 음악이 아무래도 유럽이나 미국 음악보다는 아시아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친근하기도 하고 그래요.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유치해, 라고 말할만한 가요들도 꽤 있는 것 같고요. 뽕짝스러운 구석이 분명히 있거든요. 서양 좋아하는 사람들, 아시아적이고 뽕짝스러운거 노골적으로든 은밀히든 싫어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겐 중동 음악 들으라 얘기하기 싫습니다만.  이 사하라 라운지의 경우는 아시아적인 중동 음악이 아니라 세계화(미국화 유럽화) 된 듯한 분위기가 많이 나고(오늘날의 미국풍 한국 가요를 듣는 외국인들도 이렇게 평가할지 모르지요) 맛뵈기로 들을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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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동가요는 한번도 못들어봤는데 어떨지 궁금하군요. 음악은 들어봐야 아는데.

마노아 2007-05-2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음악은 제대로 들어야 감상을 하는 거죠. 저도 궁금하와요. ^^
 
진화하는 세계화 - 현대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
타모츠 아오키 외 지음, 새뮤얼 헌팅턴.피터 L. 버거 엮음, 김한영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편저자 이름은 유명한데 제목은 어째 번역해 내는 출판사에서 꿔다붙인 것 같고 출판사도 통 모르는 곳이고 해서, 알라딘에서 이 책 보관함에 넣어놓고 몇 번을 클릭했다 놓았다 반복했다. 인터넷에서 잘 모른채 책 샀다가는 실패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 애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함정을 피해가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뭐 노하우랄 것도 없이 저자 이름, 출판사 이름, 서평 같은 것들 가지고 책을 고르거나, 아니면 오프라인 서점에서 먼저 한번 구경하고 살지 말지를 정한다든가 하는 방법 말이다.

서점 나가서 일단 뒤져볼까 하다가 어찌어찌 여의치가 않아서 그냥 속는셈 치고 책을 샀는데, 책상 위에 놓여있던 이 책을 본 후배가 한 마디 던진다. “그 책 나도 샀는데 별볼일 없어요.” 어, 그럼 실패한 것인가.


전혀 아니었다. 뭐냐고? 전혀 실패가 아니었다. 이 책 별볼일 없다고 했던 후배는,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이름은 순전히 ‘이름값’으로 쓰기 위해 붙인 것 같다. 이 책은 각국의 학자들이 보스턴대학 교수 피터 버거의 세계화 잣대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현상들을 포착해 놓은 것이다. 저자는 제각각이지만 총체적으로 버거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버거가 서문에서 설명한대로, 책은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을 뼈대 삼아 세계화라는 도전과 그에 반응하는 각 지역/지역사회/지역문화의 응전을 다루고 있다. 지역은 세계화에 포괄되지만 무작정 휩쓸리지 않는다. 지역에 맞춰 세계화는 변용되고 ‘진화한다’(책의 원제는 그러나 ‘진화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Many Globalizations 즉 ‘다양한 세계화’다).

그 반응의 양상은 그야말로 다양하지만 그 속엔 세계화라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버거는 세계화가 각 지역들에서 이끌어낸 사회문화적 변화의 양상들 중 보편적인 네 가지를 추출해낸다. 첫째는 ‘다보스 문화’로 상징되는 국제 여피족 혹은 경제 엘리트들의 문화, 둘째는 맥도널드 헐리웃 영화 따위로 대변되는 미국식 ‘맥월드 문화’, 셋째는 지식인들 중심의 ‘국제적인 교수 클럽’ 넷째는 오순절교회로 대표되는 미국식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확산을 비롯한 신흥종교운동.

이 네가지가 ‘보편적 요소’라고는 했지만, 경향성을 지칭한 것일 뿐이지 세계화의 흐름에 빠져든 나라들에서 이 네가지 현상이 모두 똑같이 나타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 같으면 워낙에 공화국 건국에서부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오순절교회(그냥 우리나라 ‘교회’라고 생각하면 된다)가 종교현상의 지배적인 양상이 된지 60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신교 확산이 가톨릭 대륙인 남미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하면 그것은 또한 세계화의 반영인 것이다.


책은 중국, 대만, 일본, 인도, 독일,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터키, 미국 학자들이 한 편씩을 맡아 자기네 나라에서 저 네 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중심으로 특수성들을 펼쳐보이는 형식으로 돼 있다.

그리 게으르지 않은 후배가 이 책을 ‘별볼일 없다’고 한 것은, 아마도 이 책의 그런 특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칠레에서 오순절교회가 왜 확산되는지, 에이즈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남아공에서 개 나발부는 금연운동이 일어난 가닭이 무엇인지, 일본식 패스트푸드점이 맥도널드식 패스트푸드에 맞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인도의 사이바바 신앙촌은 대체 어떤 곳인지 등등 구체적인 사례들은 관심 있는 사람에겐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꼭 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겐 너무 구체적이라 오히려 재미없고 알아도 그만 몰라도 아는척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아주 재미있었다. 세계화가 미국화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면의 진실이다. 무엇에든 절반의 자명한 진실과 절반의 가려진 사실이 있고, 어떤 현상에든 도전과 응전이 있다. 포괄적으로 주르륵 꿰는, ‘문명의 충돌’ 식으로 임팩트 팍팍 주면서 ‘세계화란 이거야!’ 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 지지부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다양하다’는 것, 그 자체가 세계화를 지탱하는 가장 일관된 특징이자 역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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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5-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필드면 <인류이야기>를 낸 출판사네요
 
세계화와 그 불만 - 前세계은행 부총재 스티글리츠의 세계화 비판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 / 세종연구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6세에 예일대 교수가 된 것을 시작으로 프린스턴, 옥스퍼드, 스탠퍼드 등등 미국과 영국의 ‘명문대’ 교수 자리를 돌았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클린턴 때에는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정말 쟁쟁한 경력이지만, 스티글리츠는 어찌 보면 경제학자로서보다는 ‘IMF(국제통화기금) 비판가’로 더 평판이 높다.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경제학자로서 스티글리츠가 주로 했던 일은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같은 금융시스템 문제에 대응했던 IMF의 조치를 비판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IMF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세계은행과 함께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를 움직이며 온 세상 힘없는 나라들한테(가끔은 중간 규모로 힘있는 나라들 한테도) 감놔라 배놔라 팔다리 잘라라 창자를 빼놔라 하던 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참 무서운 조직이다.

세계은행이나 IMF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기구는 생겨난 목적이 다르다. 세계은행은 세계 각국 ‘개발’을 돕기 위한 은행이고 IMF는 여러 나라들 재정 안정을 도우려고 급할 때 돈 빌려주는 기금이다. 극도로 단순화시키자면 그래도 세계은행은 남 잘살게 돕는 좋은일 좀 하는 기구이고(조지 W 부시가 미국 말아먹고 나서는 세계은행도 완전히 상놈이 됐지만), IMF는 돈꿔주고 유세 떠는 빚쟁이다.

빚쟁이 중에서도 아주 제일 고약한 빚쟁이가 IMF다. 빚 받아내려는 건 좋은데, 남의 나라 기업들 죽여라 없애라, 사람들 밥줄 잘라라, 시장 열고 미국 물건이니 영화니 받아들여라, 주문이 많아도 이만저만 많은게 아니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IMF 겪어봤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다 안다(꼴통 언론들과 시장 찬양론자들 중엔 아직까지 모르는 자들도 있는 것 같다만). 그래서 IMF의 구제금융이라는 것 한번 받아본 나라 사람들에게 이 기구 이름 알파벳 석자는 몬스터급 위력을 가지며, 공포의 상징이 되곤 한다. 그 무섭다는 사채업자들도 일가족 망하게 하는 걸로 끝인데 IMF라는 이 놈들은 수십만명 수백만명 밥줄 끊는 짓을 아주 예사로 한다.


세계은행에서 옆집 IMF 하는 짓을 꼼꼼히 들여다본 스티글리츠는 참견쟁이 빚쟁이가 아주 성질 더럽고 남 망하게 하는데 선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이 책은 IMF가 남의 나라 재정 살리겠다고 해대는 짓이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어떻게 남의 나라 경제를 오히려 망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에티오피아, 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IMF는 그 나라들 재정 튼튼히 해준다며 아주 초토화를 시켜놨다. 정말 필요한 조치는 안 하고, 무리한 요구에 엄한 짓만 해서 개도국 숱한 인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왜 그런가. 어느 나라 경제가 불안정해서 대책을 만들고 돈을 풀어 시행을 해야겠다 하는 필요가 있을 때 IMF와 해당국 정부는 진단을 잘 해서 원인을 찾아내고, 고칠 것들 순서를 잘 정하고, 그 나라 사람들 되도록 안 다치고 정치 불안도 안 생기게 차근차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 정서라든가 성장 동력이라든가 그 동네 사정도 알아야 하고 가장 잘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도 해봐야 한다. 제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돕는게 상책이고, 자기네들끼리 동력을 잘 찾아가게끔 가장 잘 돕는 방법을 찾아내 그걸 해줘야 한다.


IMF는 그렇지 않았다. 남의 나라 돕는다고 하는데 목적이 좀 불순하다. 내놓고 하는 말과 달리 이 기구 속셈은 미국 부자들, 금융회사들 돕는 쪽에 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금융회사들 높은 자리 있는 사람들이 IMF에서 한자리 꿰어 차는 식으로 자리 나눠먹기를 하니, IMF가 월스트리트 큰손들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을 수 없다.

머리만 왜곡된 것이 아니라 손발도 왜곡돼 있다. 관료주의다.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나라 일에 주문만 잔뜩 하니까 그 나라 사정과 안 맞고, 일이 제대로 안 된다. 서류 하나 놓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돈 빌어쓰는 나라들에는 “무조건 빨리 하라”고 한다. 뭘? 기업 팔고 사람 자르는 짓 말이다. 기본적으로 IMF의 발상은 ‘시장에 맡기는 게 최고’라는 것에 기대고 있다. 거기다가 오만방자하기까지 하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일본이 돈 내겠다고 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도 나서려고 했는데 IMF가 막았다. 돈 빌려주는 그 막대한 권력을 남들하곤 나누지 않겠다고 하고, 그것을 워싱턴이 밀어주니까 지역에 맞는 해결책 따위는 발 붙일 자리가 없다. 스티글리츠는 자기가 지켜본 것들을 토대로 IMF의 이런저런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IMF 구제금융 받은 나라들이 그렇다고 몽땅 망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한국 경제가 지금 샌드위치니 뭐니 해서 어렵다고 하지만 한국은 구제금융에서 금방 빠져나온 경이적인 복원력을 보여준 나라다.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가, 아시아 금융위기 겪은 다른 나라들보다 원래 경제가 더 튼튼했다는 것도 있지만, 유독 회복이 빨랐던 것에 대해서도 스티글리츠 나름의 진단이 있다. “IMF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이 ‘한국식(박정희식)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을 많이 칭찬하는데, 스티글리츠는 ‘한국식(김대중식) 국가주도형 위기극복’을 많이 칭찬한다.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로 마하티르 모하마드라는 고집쟁이가 있었기 때문에 IMF가 시키는대로 안 하고 자기 할 말 다 해가며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고 스티글리츠는 말한다.

박정희인지 김대중인지 우선 제쳐놓고, 장하준 얘기와 스티글리츠 얘기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첫째는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에 휘둘리는 국제기구나 세계화론자들 시키는 대로 하지 말아야 경제가 더 잘 된다는 것, 둘째는 뭐든지 시장에 맡겨놓지 말고 정부가 필요한 만큼 개입과 주도를 해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 몽땅 팔아치우지 않고 공적자금 투입해 살릴 건 살리고 우리나라 기업들끼리 빅딜하게 하고 했던 것이 잘한 거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담이지만 그때 우리나라 언론들은 무엇을 했던가를 돌아보면 우스꽝스럽다. 스티글리츠가 비판한 짓들, IMF가 시키는 짓들 왜 빨리 안 하냐고 무식하게 정부를 ‘조져댄’ 것은 우리나라 언론들이었다. 거기에 대면 우리나라 관료들은 다행히도 기자들보다는 훨씬 똑똑했다)


제프리 삭스의 책을 이미 읽은 뒤라, 비슷한 테마를 가진 책을 또 읽다보니 아무래도 맛이 좀 떨어졌다. 제프리 삭스가 세계 빈곤 문제를 열정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도움을 호소한다면, 스티글리츠는 그런 빈곤 문제를 악화시킨 IMF을 훨씬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책 자체는 트집 잡을 구석들이 좀 있다. 번역이 안 좋고 반복이 심하다. 하지만 논지가 명확하고, 한국 사례를 비롯해 동아시아 경제위기 당시 IMF 구제금융 뒷이야기들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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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2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읽었어요. 심각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구요^^;;;;;